얼마 전 2018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영화 공개되었다. 선정위원이 고른 리스트에 빠져 아쉬운 한 편은 무엇이였을까?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2019.2.16~28)과 함께 오늘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그 영화 리뷰 연재 [KOFA 10 Best + 1]을 시작합니다.
이광국 감독의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호랑이의 ‘어흥’ 포효처럼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담은, 내게는 2018년의 한국영화 중 한 편이다. 제목은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의 인상을 단순하고 짧게 전하는 게 보통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인상보다는 내용과 형식에 관한 힌트를 개성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들의 ‘시장 친화적인’ 태도에 반(反)하는 의지가 충만하다.
진짜 호랑이거나 아니거나
처음 볼 때는 그래도 설마 호랑이가 직접 언급되거나 등장하지는 않겠지, 예상했다. 짐작이 무색하게, 여자 친구 현지(
류현경) 집에 군식구로 사는 경유(
이진욱)가 아침 식사를 하던 중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묻는다. 현지 왈, “뉴스 보니까 호랑이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대.” 호랑이가 탈출했다고! 근처에서 울음소리까지 들렸다고!! 그런데 경유와 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상적인 톤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도대체 왜?
바깥에서 호랑이가 날뛴다고 한들 그보다 무서운 현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경유를 비롯하여 주요 인물의 마음속에 가둬두었던 ‘호랑이’의 마음이 폭발(=탈출)하여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그러니까, 사실이거나 상징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꿈과 현실을 뒤섞고, 극 중 극의 구조를 활용했던 이광국 감독의 전작 <
로맨스 조>(2011)와 <
꿈보다 해몽>(2014)을 고려할 때, 호랑이의 의미는 어느 하나에만 기울지는 않을 터다.
현지의 부모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경유는 아직 결혼하기 힘든 형편(“나 어제 일 잘렸어”)이 부담스러워 집을 나온다. 친구 집에서 신세 좀 질까, 근데 문전박대당하고, 추운 밤 사발면에 의지해 대기하다가 겨우 한 건 잡은 대리운전 고객이, 글을 포기한 자신과 다르게 작가로 등단한 전 여자친구 유정(
고현정)이고, 그로 인한 패배감을 풀어보려 찾아간 현지는 글쎄 경유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이사를 떠났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것 같은, 억세게 풀리는 거 하나 없는 경유에게 차가운 현실이야말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과 다를 바 없다. “다른 대리 기사 불러줄게”(경유), “아니야 네가 해줘”(유정), “내가?”, “좀 불편한가?”, “아니”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답형의 대답으로 애써 마음을 채비하는 경유의 심리 상태는 유정의 차를 몰고 가는 라디오 뉴스 방송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탈출한 호랑이의 행방이 묘연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호랑이와 마주치게 되면 움직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데요.’
손님이거나 아니거나
최선을 다해 죽은 듯 하려는 경유의 마음은 대리기사로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최선의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최악으로 향한다. 대리기사 주제에 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느냐는 둥, 처음 탈 때는 멀쩡했는데 잠에서 깨어나 확인하니 왜 차에 흠집이 있냐는 둥, 지갑에 돈이 없다며 잠시 기다리게 한 후 연락을 끊는 둥, 운전 노동을 마친 후 경유가 손에 집어 드는 건 요금 대신 손님들의 경멸 어린 시선과 이에 따른 치욕과 그래서 참을 수 없는 분노다. 어쩌다가 받게 된 돈도 유정의 경우처럼 바닥으로 떨어진 경유의 자존감을 더욱 비참하게 하는 굴욕감의 형태다.
호랑이로 사실과 상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특징은 손님을 경유의 대척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경유의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기능하도록 한다. 대리기사일 때 경유는 손님을 받는 입장이지만, 마땅한 거처가 없어 그에게 묵을 곳을 제공하는 이들에게는 손님의 위치다. 후자로서 경유는 그 자신이 경험한 손님들처럼 불편한 존재다. 그렇지 않았으면 현지는 왜 경유 몰래 이사를 한 것이겠으며 친구는 또 왜 문 앞에서 모질게 대하며 경유를 집에 들이려고 하지 않은 걸까.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사실을 달리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 경유에게 이 말은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생존의 개념에 가깝다. 단편 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유정에게는 마감일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는 창작의 고통을 의미한다. 삶이 자기에게만 불공정하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혼란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질서의 양면성을 하나의 입장만 취해 바라본 까닭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은 대리운전 중 자살 시도하는 여성(김예은)을 구한 경유에게 경찰(정승길)이 전한 얘기 중 일부다. 경찰은 그러면서 “두 사람을 구했어요” 하자 경유는 그 여성이 만삭의 상태였다는 걸 알고 놀란다. 이의 설정에 관해 이광국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경유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나는 그에 더해 이 세상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질서에 관한 은유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이광국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취하고 있는 형식이 작동하는 원리다.
현실이거나 초현실이거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건 만삭의 여인처럼 이면 혹은 행간을 품고 있어서다. 호랑이의 동물원 탈출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 사실을 가지고 경유의 차가운 현실을 은유하는 이 영화의 서술 방식은 바로 그런 세계의 질서를 내재한다. 창작이란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호랑이보다 차가운 겨울손님>은 창작의 동력을 잃은 경유가 다시금 어떻게 펜을 들어 소설을 쓰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편소설 작업이 지난한 유정도 이에 해당할 수 있겠다. 물론 경유와는 다른 형태다.)
경유가 글쓰기 작업을 한동안 포기하면서도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소설이 있다. 『노인과 바다』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 산티아고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청새치를 끝내 뼈대만 남긴 채로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소설의 노인처럼 경유도 현재 몸뚱이만 남은 정신적인 뼈대의 상태다.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것은 차치하고, 유정이 실은 경유가 쓴 과거의 단편을 고쳐 쓸 목적으로 연락한 것을 알자 올라오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다. 짐도 챙기지 못하고 유정의 집에서 나와 추운 거리를 걷자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허무한 상태다.
누군가에게 삶의 허무는 인생의 끝을 의미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는 떨어질 수 없는 상태가 반동이 되어 새로운 시작의 계기로 작용한다. 경유는 후자의 경우로, 결과는 허무일지라도 이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유의미한 삶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을 다시 쓸 노트와 함께 구입한 담배에 불을 붙여 폐로 한 모금 빨아들인 연기는 차가운 현실처럼 쓰리다. 그래도 이를 숙성해 밖으로 내뿜을 때는 부연 연기일지라도 어떤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창작을 향해 퍼지는 의지이기도 하다.
경유가 구한 여인은 경유 자신의 창작욕을 구원한 일종의 다른 판본이기도 하다. 창작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살점 없는 세계의 질서에 구체적인 살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경유에게 남은 건 실체와 마주할 용기다. 그리고 기어코 등장하는 탈출한 호랑이의 정체. 이것은 호랑이인가, 호랑이의 탈을 쓴 인간인가. 당신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현실과 초현실을 하나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구체화한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그 이상의 무엇을 보았다. 뻔한 한국 대중영화의 울타리에서 탈출한 대담한 상상력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