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되지 못한 죽음,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본 첫 번째 고레에다 히로카즈(1962~)의 영화는 <
아무도 모른다>(2004) 이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그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는 보기 드문 ‘자기 현장’의 지식인이다. 나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계기로 처음 일본을 방문했다가 충격을 받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근대를 실현한 국가가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늘 보던 일본 영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석학, 도미야마 이치로는 일본을 일본이라고 쓰지 않는다. ‘일본’이라고 쓴다. 일본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글의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 자본주의와 일본’은 H. D. 하루투니언과 마사오 미요시가 엮은 유명한 일본 입문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을 바꾼 것이다. ‘일본’만큼 역설적인 공간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인문학 텍스트로는 최고라는 뜻이다.
<아무도 모른다>. 열두 살 소년부터 막내까지, 네 남매는 돌아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큰아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행복하면 안 되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어쩌면 저럴 수가……”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금방 고레에다의 카메라 속으로 빠져든다. 사회 구조나 부모를 비난하기 전에, 아이들만의 삶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모두 아이들의 생존 방식과 관련이 있다. 길거리에서 돈을 줍는 것, 몰래 음식을 얻어먹는 것. 모두 딱히 탈법도 불법도 아니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도 없고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아이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판기의 거스름돈 창구에 손을 넣어본다. 누군가 잊고 간 동전을 기대하면서. 영화를 본 후 나도 그들처럼 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몇 달 만에 딱 한 번, 500원을 횡재한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른다
일본에서 자판기 다음으로 많은 시설이 편의점인 듯하다. 편의점에서 직원이 유통 기간이 임박한 혹은 살짝 지난 먹을거리를 소년에게 주는 장면도 좋다. 일본어에서는 유통 기간을 ‘상미기한(賞味期限)’이라고 한다. 팔기 적당한 상품은 아니지만, 맛을 ‘즐기는데’는 큰 무리는 없다는……. 편의점 직원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쫓아내듯 빨리 가라고 손짓한다.
2017년 여름밤, 나는 교토 대학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맛있는 빵과 케이크를 잔뜩 들고서. 일본은 온 나라(?)가 맛있는 빵집으로 넘쳐나지만, 관광과 전통의 도시 교토는 특히 더 그렇다. 신호등이 바뀌는 동안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나랑 어느 소년 단 둘만이 거리의 행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소년이 <아무로 모른다>의 주인공 배우 야기라 유야와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역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탔지만, 중간고사 때문에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횡단보도의 그 소년은 도시락을 네 개쯤 들고 서 있었다. 흰 러닝셔츠, 마른 몸, 땀에 젖은 머리카락. 그런데 일본에서는 드물게 그가 들고 있던 물건은 비닐봉지 없이 낱개 그대로였다. 소년은 두 손에 도시락을 탑처럼 쌓아 턱으로 받치고 있었다. 나는 편하게 넣어 들고 가라고 종이봉투를 주었다. 그 소년도 <아무도 모른다>의 가장처럼 편의점에서 팔다 남은 음식을 자정 즈음에 얻어가는 길이었을까. 그는 내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꾸벅이며 뛰어갔다.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동경에서 발생한 ‘버림받은 네 남매’ 사건을 소재로 삼아 만들어졌다.(영화와 실화의 내용은 다르다고 한다.) 엄마는 각기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큰아이를 제외한 세 아이는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발견되기 이전까지 6개월 동안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낸다. 서류 한 장이 인생을 좌우하는 극도로 관료적인 일본 사회에서 등록되지 않은 어린이의 죽음은 당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행기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소년이 죽은 여동생을 공항 부근에 묻고 돌아오는 장면에 대해 소설가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누구에게나 이뤄지지 못한 약속의 땅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일이 한 번쯤은 찾아오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묻을 땅을 파느라 더러워진 옷, 아니 얼룩진 옷…….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만, 얼룩진 마음은 기억에서 잊혀질지언정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씨네21』, 934호)
태풍이 지나가고
가족 영화가 아니라…
고레에다의 영화들 - <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
세 번째 살인>, <
태풍이 지나가고>, <
바닷마을 다이어리>,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하나(花よりもなほ)>, <
공기인형>, <
걸어도 걸어도>,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원더풀 라이프>... 다 좋았다. ‘가족 영화’가 따로 있을 리 없지만,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이란 ‘이다’가 아니라 ‘된다’임을 잘 보여준다.
그의 모든 작품이 내게 위로가 된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치열하지만 고요하다. 나만의 감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 그림자가 내 삶의 번잡스러움과 욕심, 고통을 잊게 한다. 삶이란 죽음이라는 영원하고도 편안한 잠(永眠)이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기대하지 않으면, 삶도 행복하지 않다. 죽음만이 희망이다.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의 우리 말 제목 <어느 가족>은 마음에 안 들 뿐만 아니라 아주 ‘틀린’ 번역이다. 이 영화는 가족 영화 중 하나라기보다는 <아무도 모른다>처럼 일본 사회를 그린다. 좀도둑질과 막노동, 연금으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니, ‘좀도둑 가족’이 맞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의 <
우나기(うなぎ)>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좀도둑 가족>은 칸 외에도 유라시아 국제영화제, 뮌헨 국제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멜버른 국제 영화제 등에서도 수상 혹은 후보에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라면, 감독은 한국 사회의 그 어떤 추악함을 그렸더라도 청와대에 초대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수상 소식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못마땅해하다가) 뒤늦게 축하 전화를 하려 했으나, 감독은 아베의 축하를 거절했다(아베는 국제대회에서 자국을 빛낸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에게 축하 전화를 자주 해대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아베에게 <좀도둑 가족>은 일본 사회의 그늘에 카메라를 들이댔을 뿐 아니라 천황제를 근간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숭상하는 일본의 주류 정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겨졌으리라. 고레에다 또한 평소에 아베의 노선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나는 <좀도둑 가족>을 나의 선생님과 같이 보았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나누었다.
나 - 고레에다 영화는 거의 다 보았는데, 저는 그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 지긋지긋. 사람도, 가족도 모두요.
선생님 - 어제 나는 일본에서 주변부 삶이 영화 화면에 담겨지는 거. 그것을 행하는 감독이 좋았다. 영화로는 아버지가 되는 법이 훨씬 좋지……. 영화는 가족 영화라기보다는…….
나 – 예... 그렇죠, 일본 주변부... 그 집 미술감독, 끝내주지 않아요? 쇼타(‘큰 아들’)가 두 번 버림받았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라고 기도했어요.
물론, 제 자신에게 대한 다짐이죠.
선생님 - 오키이. 어제 영화 릴리 프랭키가 사는 마지막 집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만 사는 집이었던 같은데. 쇼타가 그러잖아. 자기가 잡힌 거 일부러 그런 거라고. 쥬리 때문에 잡힌 거잖아. 가족들이 떠나려고 했던 것도, 이해한다는 거지. 자기를 보호하고자 하면 다 잡힌다는 거……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다른 방식의 삶의 지혜와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 그런 면에서 감독이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깊은 거지.
아시아라는 공간, 시간을 앞선 자본주의
일본은 어떤 사회인가. 나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기보다 한국이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에 관심이 없고, 한국은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내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일은 거리에 맘껏 나붙은 ‘共産黨’ 포스터였고, 두 번째가 자판기였다. 물론 일본 공산당은 망한 지 오래고, 재일교포와 오키나와 인들과 연대하기를 거부하고 자본가들에게 노동 고용을 부탁하러 다니는 ‘단체’다.
'共産黨' 포스터와 자판기
자판기는 몇 미터 간격으로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닥다닥, 거리의 가로수보다 아니 인구보다 많은 것 같았다. 음료, 담배, 라면, 인스턴트 식품은 기본. 여고생이 입던 팬티 냄새가 사라지지 않도록 캔으로 봉인한 섹스 관련 상품을 파는 자판기도 있다. 일본은 ‘한때’ 전자 제품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빵, 치즈, 잉어, 옷감, 디자인, 와인, 종이, 두부, 면(麵), 건축, 음악, 다신(多神), 화장품 그리고 세습, 서브 컬처의 나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다. 일단, 그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무시한다. 백인에 대한 호감은 자발적 식민지급이다. 나는 영어도 일본어도 못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느끼한 발음’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호토 워토(hot water)” 대신에 “할 워러, 프리즈”이런 식으로 말이다.
일본과 미국은 히로시마 원폭과 9․11 전까지,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자국이 전쟁터가 된 적이 없는 나라다. 덕분에 일본은 천 년 동안 아무런 파괴 없이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들은 ‘셀프 오리엔탈리즘’으로 서양의 일본관을 상품화했다. 서양인들이 일본 문화에 느끼는 신비로움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때 스시는 미국의 지식인 문화를 상징했다.
전통적인 국제정치학 교과서에는 ‘일본 편’이 따로 있(었)다. 외교 의전에서 일본은 공부가 필요한 사회다. 특별한 이해와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어 대개의 언어, 특히 우리말에서 ‘고려해보겠습니다’는 대개 긍정적인 의미지만, 일본어에서 ‘절대 불가, 앱솔루트리 노’를 의미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만의 문화가 있다는 얘기다. 파악되지 않는 타자?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을 썼다. 일본 사회는 기호(sign)만 있을 뿐 실제 말의 의미(이른바, ‘혼내’)를 알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다.
통념과 달리 일본은 류큐 왕조를 비롯한 수많은 다민족(nation), 다민족(ethnic) 국가, 다인종, ‘혼혈인’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근대 이후 강제 통합의 과정은 곧 내전을 의미했다. 홋카이도의 면적만 남한의 3분의 2를 넘는다. 고베나 오사카만 가도, 근대 초기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를 꿈꾸었고, 실현했다. 유럽 문화에 정통한 인문학자가 수두룩하다. 탈아입구를 실현한 정도가 아니라 일찍이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해서 국민국가 체제를 완성, 세계 제패를 기획하고 미국,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작은 나라(‘倭’)가 아니다. 노벨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1950년대에 ‘성취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일본 문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루투니언 같은 일군의 자본주의와 근대성 연구자들이 일본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이 공간적으로는 서구가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시간)는 서구를 앞지른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이면서 아시아에 있다. 서구를 쫓으면서, 동시에 서구를 초과했다. 이 ‘모순’은 현재 일본 사회의 고통이기도 하고, 인류가 다음 세계를 사유하는 ‘자원’이 될지 모른다.
일본 자국의 문학, 인문학, 역사학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이들은 남을 침략하기 위해 자신을 연구했고 이미 ‘정상(頂上)국가’나 ‘정상(正常)국가’를 경험했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처럼 식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나라 만들기에 열중하기보다는 당장, 자국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모든 담론이 “ ~ 게 되어야 한다(should be)”다. 현재는 지나가고 있는데, 오지 않을 미래를 설계한다. 자본주의와 발전주의, 민주주의가 같은 말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대신한 스마트폰 사용이 그것이다).
일본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 금융 유통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의 징조들이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출산, 자살, 우울증, 초고령화, 빈집 증가, 고실업, 프리터의 등장…… 힘든 일 기피 현상이 의대 진학 저조로 나타나서 일주일에 평균 1명의 임산부가 산부인과를 찾지 못해 사망한다. 최근에는 인생 자체를 리셋(reset)하는 자발적 실종인 ‘인간 증발’까지, 다른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회 현상이 있다.
일본의 계급 세습과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주의, 학벌 사회는 의외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북한은 정권 세습이지만, 일본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자민당 일당 독재는 전후 계속되고 있고 ‘가업’이란 이름의 계급 제도가 철저하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개그맨들이 어느 학교 출신인가가 병기된다.
오타쿠, 이지메, 히키코모리, 희망 난민(희망이 있지만 이룰 수 없어 고민하는 젊은이들), 하류지향(‘루저’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학생들), 소비 주체로서의 자부심,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 수학(數學)과 수학(修學)을 구분하지 못하는 도쿄 대학 학생들, 부자 나라 일본의 극빈층 노인들, 고독사 연 2만 명, 젊은이들의 탈력(脫力, 온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 함), 혐한(嫌韓), 혐중(嫌中)…….
일본의 현재를 살펴보는 것은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고레에다가 소중한 혹은 윤리적인 예술가인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 사회를 직면하고 고민을 담되, 그 상황이나 인물을 대상화하지 않고 껴안는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지닌 소구력이며, 관객은 그가 재현하는 특정한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좀도둑 가족>에서 가난한 일본인을 그렸다고 해서, 일본을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가 아무리 다양해도 전 세계 관객들은 미국 영화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비교가 된다.
사족 - <좀도둑 가족>에서 두 명의 배우가 생각난다. 역시, 배우는 작품으로만 만난다. 안도 사쿠라를 ‘취조’하는 이케와키 치즈루는 더 이상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그 소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눈썰미가 맞다면, 성 구매를 하는 남자 손님으로 잠깐 나왔던 배우는 <
종이 달>의 ‘못된 녀석’ 이케마츠 소스케다.
(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와키 치즈루
(좌) 종이달,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마츠 소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