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태권 V>(1976)를 제작, 감독한
김청기 감독을 만난 것은 2012년 주제사 구술을 통해서다. 김청기 감독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이다. <로버트 태권 V>를 비롯해 <
로보트 태권 V - 제3탄 수중특공대>(1977) <
로보트 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1978) 등의 <로버트 태권 V> 시리즈와 <
똘이 장군> 시리즈는 지금의 중.장년층들이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봤을 영화들이다.
김청기 감독은 만화영화 제작에 입문하기 전에 출판만화계에서 만화작가로 활동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 김청기 감독이 만화작가로 활동한 당시는 어린이를 교육과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이지 어린이 문화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만화나 만화영화를 저급하다고 비하했다. 김청기 감독은 이런 현실에 회의를 느낄 즈음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 <
백설공주>를 보게 되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된 김청기 감독은 월트디즈니 영화를 수입하고 <
홍길동>(
신동헌 감독) 등을 제작한 세기상사의 <
손오공> <
보물섬> <
황금철인>에 원화맨으로 참여하면서 만화영화계에 입문한다.
1970년대 영화법에서는 만화영화를 문화영화의 범주로 포괄했다. 그러므로 당시 민간의 문화영화 제작사에서는 문화영화 이외에도 극장 상영용 만화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연유로
김청기 감독은 유현목 감독이 운영한 민간 문화영화 제작사인 유프로덕션에서 <
로버트 태권 V>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김청기 감독이 문화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된 연유는 비단 만화영화의 제작에만 있지 않다. 김청기 감독은 만화영화를 만들면서 한편으로 민간 문화영화 제작사의 주요 수익원인 광고영화 제작에 삽입되는 애니메이션, 그리고 각종 정보, 기업 홍보물에 들어가는 그래픽을 제작했다. 김청기 감독에 따르면 극장 상영용 만화영화를 제작할 당시 제작비의 일부를 광고 및 문화영화에 사용되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해서 얻은 수익으로 충당했다고 한다.
역사에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위로
김청기 감독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국립영화제작소 출신의
박영일 감독과 함께 만화영화 제작사인 서울동화를 설립해 <
로버트 태권 V>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
황금철인>(1968) <
보물섬>(1969) 등을 만든 박영일 감독이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김청기 감독은
유현목 감독의 유프로덕션에서 이를 제작하게 되었다. 1973년의 영화법에서는 영화 및 문화영화 제작업이 허가제였다. 영화제작사 설립이 여의치 않았던 김청기 감독은 대명 제작을 통해 <로버트 태권 V>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김청기 감독이 직접 제작사를 설립하고 영화를 본격적으로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제작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변경되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김청기 감독은 어린이 만화영화에 대한 인식 부족이 부족했던 어려운 상황에서 <
로버트 태권 V> 시리즈와 <
똘이 장군> 시리즈, 그리고 <
우뢰매> 시리즈 등 어린이를 위한 극장 상영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6.25전쟁 기간 중 아버지를 잃은 김청기 감독은 전후의 고단한 삶에서 만화를 보고 그리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김청기 감독은 어린 시절 김내성의 소년탐정소설과 디즈니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다. 이러한 문화적 경험은 후일 김청기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영화 <
정글북>과 늑대소년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
똘이 장군>은 세종문화회관 개봉 당시 1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주제가를 담은 앨범도 10만 장 넘게 팔렸다.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던
김청기 감독은 애니메이션에만 그치지 않고 어린이 잡지와 전용 극장을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
로버트 태권 V’와 ‘똘이’ 그리고 ‘우뢰메’ 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캐릭터이자 문화 콘텐츠다.
김청기 감독은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어려운 시절에 외국에서 수입한 만화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캐릭터를 내세운 국산 만화영화를 제작했다. 또한 어린이 문화가 척박했던 시절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비록 <
똘이 장군> 시리즈가 반공 이데올로기와 같은 시대적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청기 감독은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어린이의 즐거움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