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양택조 - 배우

by.김승경(영화사연구소) 2015-11-03조회 4,279
양택조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준우, 준서의 외할아버지이자 배우 장현성의 장인으로 언급되는 배우가 있다. 많은 대중에게 코믹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배우 양택조가 바로 그다. 2012년 진행된 구술을 통해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한국 연극영화계의 모습이었고, 예술을 사랑하는 ‘슈퍼맨’들의 치열한 창조 과정이었다.

배우 양택조는 1939년 연극배우이자 극작가, 연출가이던 아버지 양백명과 당대 최고의 연극배우이던 어머니 문정복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전국은 물론 만주와 상하이로까지 공연을 다닌 탓에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대신 사랑으로 품어주시던 할머니와 집에 쌓여 있던 클래식 명반, 수많은 책, 주로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아버지의 대본들이 그를 감수성 짙은 소년으로 키웠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대구로 피난 갔던 양택조 선생의 가족들은 대구극장 사장의 배려로 극장에서 피난 생활을 했다. 이미 대기실은 단성사 사장 가족들, 박구 감독과 반도가극단, 코미디언 이종철과 동료들, 김차봉 대표와 청춘극장 식구들 등 먼저 내려온 사람들의 차지였고, 양택조 선생 가족들은 대구극장의 큰 무대 구석에 세트처럼 방을 들여 그곳에서 지냈다. 양택조 선생은 당시 보았던 신파조의 악극은 물론 <싱고아라> <라 쿰파르타> 등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작품, 플라멩코 같은 스페인 춤에 이르기까지 당시 공연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에 대해 장면을 재현하며 설명해주었다. 또한 아버지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환도성의 봄> <그리운 황성> 같은 작품의 내용과 공연 모습, 아버지 스스로 맡은 배역을 위해 생니를 뽑고, 절름발이 역할을 하기 위해 세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동안 다리를 뒤로 접어 꽁꽁 묶어두었던 열정 등을 이야기하며 당시 무대 배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해주었다. 그리고 무대의 수준이 떨어지면 공연 중에도 가차 없이 독설을 날리던 관객들의 행태까지 묘사하며 당시의 공연 문화에 대한 다층적인 연구가 더 깊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도 밝혔다. 양택조 선생이 예술계로 본격 진출한 것은 이 직업에 대한 동경이나 꿈 때문이 아니라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한양공대에 재학 중 군대를 제대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병에 걸리고 가세가 기울면서 생활 전선에 나서야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당장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어릴 적부터 보아오던 연극이었다. 드라마센터에 입학해 6개월 만에 안톤 체호프의 <청혼>이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나게 되었고, 그때 느낀 배우로서의 희열이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연극은 영화에 밀려나고 있었고, 이모이던 배우 문정숙의 도움으로 이만희 감독의 조연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4년부터 이만희 감독의 조연출로 활동하며 연출에 관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당시 연출부의 삶은 생계를 해결해주지 못했고, 아직 제대로 펼치지 못한 배우로서의 꿈도 양택조 선생을 조연출로만 묶어놓지 못했다.

성우가 된 배우, 다시 스크린으로

1960~70년 한국영화계는 후시녹음의 시대였다. 당장 배우가 되는 대신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성우였다. 1966년 TBC 4기 성우로 시작해 조연출 생활과 성우 생활을 병행하다가 1970년 조연출 생활을 그만두고 성우의 길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막론하고 1000여 편의 작품 녹음에 참여했다. 특히 중국 무협영화가 유행하던 당시 진성, 라유 등의 목소리를 전담했으며, 한국배우 중에서는 독고성의 목소리를 맡아서 했다. 또한 조연출 시절의 역량을 알아봐준 감독들 덕에 도급업을 시작해 역할에 맞는 목소리의 성우를 찾아 작품을 꾸리기도 했다. 1983년 임권택 감독의 작품 <불의 딸>에서 김희라의 목소리를 연기했는데, 김희라가 그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성우들의 노력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때마침 영화계에서 동시녹음이 본격적으로 도입돼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배우들이 필요했고, 양택조 선생도 배우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주로 악역을 맡았고, 텔레비전으로 진출해 MBC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 편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이간질하는 중국 사신 심유경 역할을 맡아 얄미운 연기로 시청자의 미움을 받았다. 그러다가 <투캅스>(강우석, 1993)의 다혈질 경찰서장 역할로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되고, 1997년 <그대 그리고 나>의 최불암 친구 역할로 코믹한 이미지의 친숙한 배우가 되었다. 배고픈 시절, 모든 것이 여의치 않던 시절 그의 배고픔을 잊게 해준 것은 작품에 대한 열정이었으며, 그를 채워준 것은 관객들과의 교감이었다. 배우 양택조는 조연출 시절 2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영화화하기도 했고, 아버지의 작품을 현대 감각에 맞게 수정 보완해 <안중근과 이등박문>(2005)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올리기도 하는 등 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연극배우, 조연출, 시나리오 작가, 성우, 영화배우에 이르기까지 연극과 영화계를 종횡무진했던 ‘슈퍼맨’ 양택조 선생은 그 누구보다 연기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창조하는 배우로서 살아가는 현재진행형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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