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이재한 - 감독

by.황미요조(영화평론가) 2015-08-04조회 5,564

이재한 감독은 1971년 한국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4살 때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다 뉴욕대학교 영화과에서 영화를 공부한다. 대학 졸업 후, 뉴욕의 이민 2세대, 10대 갱스터의 삶을 다룬 <컷 런스 딥>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 여러 국제영화제를 돌며 상영된 후 2000년 한국에서 개봉하지만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한다. 그러나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을 만드는 능력이 인정되어 이후 이재한 감독은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연출하다 2001년 일본의 니혼TV 드라마 <퓨어 소울~내가 너를 잊어도 Pure Soul~君が僕を忘れても>를 리메이크한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2004)를 연출한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2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 박스오피스 5위를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수출되어 인기를 모았다. 특히 이 영화는 일본에서는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30억 엔의 수입을 올려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역대 흥행 1위의 한국영화가 되었는데, 2010년에는 츠지 히토나리(?仁成)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일본어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 サヨナライツカ>를 연출하며 일본에서 자신이 세운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라는 박스오피스 기록을 깬다. <사요나라 이츠카>는 13억 엔의 수입을 올리며 장기 상영되었고, 2010년 일본에서 상영된 외국영화 중 16위의 흥행기록을 세운다. 2010년 여름 개봉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포화 속으로>는 한국에서 약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고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차기작으로는 오우삼 감독의 1989년 작 <첩혈쌍웅>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는 <더 킬러 The Killer>가 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무산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 베스트셀러 「제3종의 애정」을 원작으로 한 <제3의 사랑>을 촬영하여 2015년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교포 영화감독 이재한의 행보는 그의 데뷔작 <컷 런스 딥>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소수 민족적 정체성으로부터 얻었을 법한 경험을 활용한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사요나라 이츠카>는 한국에서 기획/제작된 프로젝트이지만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여 일본어로 제작되었고 태국 방콕에서 한국/일본/태국의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되었다. 그의 영화들은 제작, 투자 방식, 그리고 그 영화가 말을 거는 대상을 설정하는 데 있어 전통적인 의미의 한국영화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어로 제작된 영화든, 영어로 제작된 영화든 그의 프로젝트들의 기획과 제작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이러한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범-아시아적인(pan-Asia) 궤적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동시대의 ‘한국’ 영화계를 홈 베이스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동시대의 한국영화란 전통적인 충무로 영화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어 내는 프로듀서 체계가 근간이 된 충무로-이후 영화도 아닌 아시아에서 가장 최전방의 엔터테인먼트 상품들을 생산해 내며, 전 아시아적인 팬덤을 지닌 문화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한국영화이다.

한류는 아시아 각 지역의 문화산업계에 때로는 감탄을 동반한 벤치마킹의 모델로서, 때로는 방어적이고 적대적인 음모론의 중심으로서 한국 정부가 세밀하게 기획한 전략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정부에서 기획하고 시행한 한류의 전략이, 실제로 존재해온 아시아의 각 지역의 한류 팬덤을 앞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부 차원의 그리고 산업 차원의 전략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러한 전략적인 프로젝트들은 오히려 번번이 실패했다 할 것이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 연달아 기획되었으나, 실패한 합작 블록버스터들은 상당 부분 이렇게 잘못 계산된 대(對)-아시아 전략들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실패의 원인이 아시아에서 한국영화나 한국의 문화 상품들에 대한 인기가 식었기 때문은 아니다. 히트 한류 상품들은 세대와 지역의 범위를 넓히며 계속 출현하고 있으며, 다만 그 흐름과 규모를 예측하고, 기획, 통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여전하다. 

이재한 감독과 그의 영화들은 앞서 언급한 그러한 규모와 영향력을 갖는 동시대의 한국 문화상품에서 기대할만한 코스모폴리탄적이고 범아시아적인 감각들의 예상 가능한 구현물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시장 전략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의 한국문화 소비자들 역시 함께 공유하고 있을) 취향과 문화적 자산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보여 더욱 흥미롭다. 이재한 감독은 <사요나라 이츠카>의 제작 동기를 말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츠지 히토나리의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자연스레 익숙한 일본 배우가 일본어로 연기하는 장면이 상상되었기에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이러한 <사요나라 이츠카>의 제작 동기는 경제적 전략을 위한 현지화라는 목표에서가 아니라 다문화적인 문화상품 소비와 그로부터 비롯한 지식, 역사적 상상력에서 온다. 예컨대 (해적판을 제외하고라도) 한국 밖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유래의 출판 콘텐츠인 귀여니의 청춘 소설을 읽으며 방콕이나 자카르타, 혹은 상하이나 부탄의 소녀들이 자신의 로컬 스타보다는 그만큼, 혹은 그보다 친숙한 한국의 아이돌들을 떠올리며 가상 캐스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2010년대의 한국영화는 연구도, 비평도 심지어 산업도 따라 잡고 있지 못하는 어떤 순간을 목도 중이며, 이재한의 영화들은 그 새로운 현상과 변화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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