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정광석 - 촬영감독

by.안재석(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 2015-05-22조회 1,778

1960년대 한국영화계엔 흔히 ‘가케모치(掛け持ち)’라고 하는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 관행이 있었다. 입도선매(立稻先賣), 즉 영화가 제작되기 전에 미리 지방 흥행업자들에게 영화상영권을 팔아 그 돈으로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 한국영화의 제작방식에서 자본을 투자하는 지방 흥행업자들이 선호하는 몇몇 스타 배우들의 출연은 중요한 요건이었고, 또 얼마나 많은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는지가 당시 배우들의 인기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졌기 때문에 생겨난 웃지 못할 진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겹치기 관행은 비단 배우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감독을 비롯한 기술 스태프들도 겹치기를 했다.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소위 몰아 찍기에 능한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선호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 인기 감독, 스태프들도 배우들처럼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후시녹음의 시대였기 때문에 대사를 외우지 않고도, 역할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도 얼마든지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한다는 것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일이다. 빨리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빨리, 잘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광석은 바로 이 신기에 가까운 일을 했던, 그것도 단연 최고의 촬영감독이었다.

1956년 <장화홍련전>(정창화)의 조명부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김영순, 이성휘 등 촬영감독의 문하에서 촬영부 조수로 경력을 쌓고 1962년 이봉래 감독의 <새댁>으로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흑백 시네마스코프의 안정되고 유려한 촬영으로 데뷔작에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감독을 능가하는 뛰어난 기억력과 작품 해석력으로 몰아 찍기에도 능해 여러 제작자들의 부름을 받았는데, 이 시기 여러 편의 영화를 겹치기 촬영하면서 한 해에 7~8편은 기본이고 심지어 1968년에는 12편의 영화를 촬영하기까지 했다. 특히 그는 ‘몰아 찍기의 귀재’라고 불린 장일호 감독과 황금 콤비를 이뤄 <생명은 불꽃처럼>(1965), <일지매 필사의 검>(1966), <서울아줌마>(1967), <황혼의 부르스>(1968), <단발기생>(1968), <상사초>(1968), <제4의 사나이>(1969)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자신의 영상미학을 완성해나갔다.

하지만 그는 오랜 연륜으로 힘들게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자신의 영달(榮達)이 아닌 후배 영화인들을 위해 썼다. 혈기만 왕성하고 연출의 틀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신인 감독들에게 그는 든든한 조력자였는데,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젊은 남자>(1994)까지 8편의 작품을 그와 함께 작업했던 배창호 감독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다. “<꼬방동네 사람들> 마지막에 안성기 씨와 김희라 씨가 막 싸우고 하는 장면 있잖아요? 그걸 하룻밤에 다 찍었어요. 그게 콘티상으로 60 몇 커트예요. 밤에 라이트 다 설치하고 슛 들어가면 10신데, 새벽 4시 반, 5시까지 7시간을 찍었는데, 어려운 신 아니에요? 동네에서 쫓겨나게 생겼으니까 더 이상 찍을 수도 없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소위 몰아 찍기 하고. 물론 리허설은 다 해놨죠. 연기자하고 이렇게, 이렇게 미리 맞춰놓고, 찍고…. 근데 ‘배 감독, 이거 라스트 커트지?’ 탁 아는 거예요. 그렇게 정신없이 찍었는데…. 그 호흡들이 기가 막혔어요. 그런 몰아 찍기의 능률성. 그런 계산하는 거. 그런 면에서 정말 많이 배웠죠.”

배창호를 비롯해 신승수(<장사의 꿈>), 곽지균(<겨울나그네>), 박종원(<구로아리랑>), 이현승(<그대 안의 블루>), 김성수(<런 어웨이>), 김지운(<조용한 가족>) 등 1980~90년대 한국영화 대표 감독들의 데뷔작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고,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 <마누라 죽이기>(1994),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김상진 감독의 <광복절 특사>(2002) 등도 그의 열정이 듬뿍 담긴 작품들이다. 2006년 <아랑>(안상훈)까지 근 50년 넘게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때론 엄하기도 했지만, 늘 따뜻한 애정으로 후배 영화인들을 격려하고 다독여주었던 한국영화계의 ‘큰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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