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전정근 - 음악

by.최지선(음악평론가) 2012-09-12조회 3,636

전정근(1931~2007)은 196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영화음악 작곡가로, 1980년대까지 400편 이상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이하 작품 편수와 연도는 영상자료원 기록 기준으로 작성). 전후(戰後) 1950년대 영화음악이 기존에 존재하는 음반 수록곡들을 선곡하는 차원에 비중을 두었다면, 전정근을 위시한 음악가들은 창작을 통해 새로운 한국 영화음악의 도래를 알렸다.

전정근은 1954년에는 당시 많은 음악인들과 마찬가지로 군악대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의 연주와 창작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영화음악 입문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유재현, 1958)에서 김대현의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공식적인 데뷔작은 <주마등>(이만희, 1961)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는 한상기가, 김수용 감독의 영화에는 정윤주가 많은 영화음악을 담당했다면) 전정근은 이만희 감독의 많은 영화음악을 담당했는데, 이만희 감독의 작품 51편 중 44편의 영화에 음악을 맡았다. 전정근의 데뷔작 <주마등>을 비롯해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추격자>(1964), <흑맥>(1964), <7인의 여포로>(1965), <만추>(1966), <귀로>(1967), <여로>(1968), <쇠사슬을 끊어라>(1971), <0시> (1973),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등 많은 작품을 담당했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이외에도 다른 많은 감독들의 작품에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1960, 70년대 한국의 영화계는 과도한 다작 시스템을 통해 형성되었던 시기였던 만큼, 영화음악의 수요 역시 다량이 필요로 했다. 그렇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던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과 인력 부족으로 한 사람이 많은 작품을 소화해야 했고, 심지어 하나의 음악을 여러 영화에 돌려써야 했을 정도였다. 전정근의 영화음악이 장르를 불문하고 멜로드라마, 사극, 호러, 액션, 전쟁물, 수사물, 애니메이션 등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관속의 미인화>(1970), <>(1973) 같은 호러 영화, <호피와 차돌바위>(1967), <홍길동전>(1967), <황금철인>(1968), <황금박쥐>(1968) 등의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광대하다. 

그중에서도 전정근의 주요 스타일을 거론한다면, 당시 영화음악들에 오케스트라 스타일의 작법이 많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관현악 편성의 스코어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합창곡 스타일을 통해 웅장하고 비감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에도 뛰어났다. 그의 오케스트라 편성에 합창곡을 편성하는 작풍은 헐리우드의 영화음악 스타일(가령 미클로스 로자가 음악을 맡은 <벤허> 같은 1950년대 영화음악)과도 맞물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은 군사물, 전쟁영화 같이 박진감이나 웅장함의 표현이 강조되는 스타일을 위해 사용되곤 했다. 예를 들어 전정근의 증언에 따르면, 대작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에서는 6, 70명, 합창단 30, 40명을 동원하는 큰 규모의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경우, 그의 회고에 따르면 30인조 오케스트라를 대동했다. 그의 데뷔작 <주마등>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들이 합창 편성의 음악들을 배치했는데, 국립, 시립 또는 방송국 합창단부터, 때에 따라 음악대학 출신으로 구성된 은종합창단 등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관현악단의 지휘에도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영화의 장르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전형으로 만들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관악기 또는 브라스 섹션은 전쟁 영화에 주효했던 반면, 멜로 드라마에는 피아노와 현악기를 위주로 분위기를 주조했다. <귀로>에서는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김희갑의 연주를 대동한다던가, <만추>에서는 멜로디언을 사용하여 분위기를 주조해냈다. 괴기영화에서는 불협화음이 이용되었으며, 톱이나 차이니스 공 같은 악기를 통해 적절한 효과를 만들었다. 

이처럼 그는 당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통해 한국 영화음악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1964년 <흑맥>으로 청룡영화제 음악상을,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국제영화예술상을 수상했다. 1966년 <만추>는 부일영화제 음악상을, 1967년 <귀로>는 아시아영화제 음악상을 거머쥐며 1960년대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로 자리잡았다. 2008년 제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영화음악상을 수상했다. 
 
/ 글: 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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