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송정률 - 애니메이터

by.허인욱 2012-05-17조회 1,567

송정률은 1946년에 태어났다. 순정만화를 좋아해서 20살이던 1965년 만화업계에 입문해, 박수산, 김용도, 엄희자의 문하생 생활을 했다. 작품을 하기 위해 준비를 했지만, 1970년대 만화에 대해 불량 논쟁이 불거지며, 인식이 좋지 않게 되자, 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바꿨다. 1976년 충무로에 있는 애니메이션 업체인 세경흥업에 들어가 동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곳에서는 일본 도에이[東映]의 OEM을 하고 있었다. 그때 했던 작품들이 <당가도 A>, <마징가 Z> 등이었다. 당시 세경흥업에는 A파트와 B파트 2침이 있었는데, A파트는 송정률 혼자였으며, B파트는 7명 정도였는데, 한달 동안 혼자 1편 이상을 제작한 반면, B파트는 한 달에 1편 제작을 못할 정도였으니, 돈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

그렇게 하청 작업을 하던 1979년 <우주전함 거북선>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유현목 감독의 유프로덕션이 김청기 감독과 결별을 하면서, 그에게 감독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는 8개월 동안 2~30명의 애니메이터들을 데리고 작업을 했는데, 그 당시는 애니메이션 자재들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이라 고생이 많았다. 셀에 색을 지정하는 것도 감독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OEM 회사 등에서 버린 색을 구해 와서 칠할 정도였기 때문에 무슨 색이 있는지를 보고 나서야 색을 지정할 정도였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거북선의 완성을 위해 태권V가 해체되어 부품으로 이용된 줄 알았다가 위기의 순간에 다시 합체하여 적을 무찌르는 순간은 꼬마 관객들에게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의 반전이 있었지만, 흥행에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당시 개봉관으로 허리우드 극장을 잡았는데, 방학 30일 가운데 <별나라 삼총사>가 1차로 15일을, <우주전함 거북선>을 2차로 15일을 상영하기로 했는데, <별나라 삼총사>가 1000명 이상의 관객이 꾸준히 들면서 1달 내내 상영을 해버린 탓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2봉관에서 개봉을 해야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전체적으로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등에서 영향을 크게 받았음은 분명한 사실로, 이에 대해서는 감독 스스로도 부끄럼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그가 1982년에 연출한 <슈퍼 삼총사>도 <우주전함 거북선>을 만들 때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새 셀을 A셀, 사용한 셀을 물에 불려 색을 벗긴 것을 B셀이라고 했는데, A셀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B셀로 작품을 만들었다. 일본 OEM을 하는 회사들이 두 군데 있었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물품들은 관세 부과가 보류된 상태에서 수입된 보세라서 사용 후에는 다 태워서 없애야 했다. 그런 상황이니, 창작 애니메이션을 할 물품이 있을 수가 없었으며, 어쩌다 반출된 물품들은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업해서 완성시킨 작품을 상영하면 셀에 난 생채기들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반적으로는 작품 질의 하락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래도 흥행에는 성공을 해서 무지개극장에서 10일에 15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관객 1인당 감독에게 20원 정도의 보너스를 책정했었는데, 흥행으로 인해 80만원 정도를 더 받기도 했다.

<슈퍼 삼총사>를 만든 이후에는 미국OEM을 하는 한호흥업의 전신인 동서동화에 들어가서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등을 만들었다. <아기공룡 둘리>는 KBS의 조봉남 PD가 만화잡지「보물섬」을 가져와서 시작하게 되었다. 조봉남PD가 13편을 기획해서 1987년 추석특집으로 방영했는데, 오흥선, 김송필, 이영수, 신동헌 감독이 각각 한편씩을, 송정률이 1988년 방영된 것까지 9편을 맡았다. 

1990년에는 롯데월드가 제작하고 화인아트에서 기획했으며, 한호흥업에서 실제작을 맡은 극작용 장편애니메이션 <로티의 모험> 감독을 했다. 하지만 캐릭터 도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1993년 <꼬비꼬비>를 하면서 새한프로덕션을 세워 독립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던 욕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디즈니나 카툰 네트워크의 작품을 OEM 하는 등 회사 규모도 커지면서 바빠졌다. 그 와중에 <검정 고무신>을 하게 되었다. <검정 고무신>은 작가 도래미, 그림 이우영의 작품으로, KBS의 민영문 PD가 대원동화 측에서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그에게 가져온 것이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컸던 송정률이 그 작품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1999년 설날 특집으로 시작해 2000년 13화, 2005년 13화를 제작 방영했다. 처음 방송할 때는 16%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송정률은 <아기공룡 둘리>에 사용된 ‘라면’과 ‘구공탄’이라는 라면송의 작사를 해서 호응을 얻었는데, 당시 미국 OEM을 하던 데서 하던 방법들을 사용해서 캐릭터의 입과 음악을 맞추는 방법을 혼자 연구하기도 하였다. 그런 탓인지 악보만 보고도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 지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곡이 완성돼 녹음실에서 영상과 음향을 일치시키는 싱크를 하면 잘 들어맞았다. 이 외에도 <옛날 옛적에>, <꼬비꼬비>, <검정 고무신>의 주제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송정률은 순정만화를 좋아했던 것처럼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그는 1960~70년대를 배경을 하는 <검정 고무신>에 대한 애착이 많으며, 차기 시리즈에 대한 구상을 다 끝내 놓은 상태다. 그는 현역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 글: 허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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