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신철 -제작

by.김미현(영화진흥위원회) 2012-03-06조회 1,382
1990년대를 열었던 한국영화계의 키워드는 ‘기획영화’였다. 한국영화산업에 대기업 자본이 유입되고 제작비가 증가하면서 기획자의 사전 조사와 아이디어에 따라 제작되는 영화가 충무로의 신조류를 형성한 것이다. 1990년 미국 직배가 안착하고 한국영화 고사상태라는 한탄이 나오던 시절, 대기업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생생한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했고 변화가 불가피했다. 신철 대표가 이끄는 신씨네는 <결혼 이야기>(92, 김의석)로 기획영화 시대의 포문을 열었던 젊은 기획자 집단의 선두주자였다. 

신철 대표는 대학생이던 1978년 김수용 감독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우성영화사 기획실, 피카디리 극장, 명보극장 기획실 등을 거치면서 외화 수입, 기획, 마케팅을 고루 경험했다. 1988년 영화 전문 기획사 신씨네를 설립하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90), <베를린 리포트>(91), 그리고 <결혼 이야기>를 기획했다. <결혼 이야기>가 한국영화계에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수많은 신혼부부를 인터뷰해서 이를 영화 속 에피소드로 풀어낸 이 영화는 현실의 삶에 밀착한 생동감 있는 기획으로 서울 개봉관 52만 명을 동원하였다. 코미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뒤바꾸면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트렌드를 형성하였고 삼성영상사업단의 투자를 받았으며 영화 속 PPL을 도입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이정표가 되었다. 신철 대표는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1992년 신씨네를 제작사로 변경 등록하고 <미스터 맘마>(92, 강우석), <101번째 프로프즈>(93)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신철 대표는 이 작품들로 한국영화 코미디에 대한 관객의 인식을 가장 트렌드 한 장르 현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후 그가 도전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특수효과, 컴퓨터 그래픽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CG를 도입한 첫 영화인 <구미호>(94)는 기대에 못 미치는 엉성한 결과와 스토리 구조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은행나무 침대>(96)에서는 진일보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한국영화도 기술과 영화의 이야기를 얽어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 뿐만 아니라 IMF 체제에 본격 최루성 멜로로 복귀하면서 <편지>(97)와 <약속>(98)으로 시대의 공기와 호흡하는 재능을 다시 한번 알렸다. 

한편, 그의 작품 이력에서 <거짓말>(99)은 이례적이다. 대중성에서 비껴있으면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어디인지,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지 광범위한 논란을 일으킨 말 그대로의 문제작이었기 때문이다. 필름압수와 수색영장이 발부되는 등 등급 심의과정에서 ‘등급분류 보류’ 판정을 받아 표현의 자유와 등급제도의 변화에 섰던 작품이기도 하다. 떠들썩하게 대서특필되었던 이 영화에 대한 외설논란이 없었다면 등급분류보류 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좀 더 지연되었을지도 모른다. 

2000년대 이후 신철 대표가 보여준 행보는 대기업 투자, 기획영화, 장르 트렌드, CG에 이어 한국영화와 뉴미디어의 결합, 그리고 세계 진출이라는 과제로 나아가는 듯하다. 그는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 한 <엽기적인 그녀>(2001)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으로, 국내 488만 관객 뿐 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알려진 한국영화, 영화에서의 한류를 이끌어낸 작품의 제작자가 되었다. 차태현, 전지현을 한류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중화권에서 한국영화의 인기를 촉발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둘 수 있는 놀라운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디지털 복원한 <로보트 태권브이>(2007)를 개봉함으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로버트 태권브이>를 원 소스 멀티 유즈의 핵심 콘텐츠로써 현재까지 다양하게 발굴하고 있다. 

신철 대표의 영화인생은 당대의 트렌드를 최전방에서 뚫고 지나온 역사이다. <결혼 이야기>의 대기업 투자와 기획, <구미호>의 CG, <엽기적인 그녀>의 아시아 시장 없이 현재의 한국영화구조와 장르는 형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래를 살아가는 기획자, 제작자인 그의 차기 행보가 기대된다. 
/ 글: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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