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김묵 -감독

by.오승욱(영화감독) 2012-02-08조회 3,025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한국 느와르라고 할 만한 한국의 범죄 스릴러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진다. 한국전쟁. 부패한 자유당 정권의 폭정. 4.19 혁명. 1950년대는 말 그대로 한국 사회의 소용돌이 기간이었다. 60년대에 태어난 나는 상상도 하기 힘든 그런 시대였을 것이다. 당시 영화 평론가는 한국 범죄 스릴러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범죄 스릴러 영화들의 수준이 높지 못한 것을 개탄하는 글이 신문에 나오기까지 하니 많이도 만들어진 셈이다. 

전쟁 중 수입되지 못했던 할리우드의 범죄 스릴러 영화들이 많이 수입된 영향도 있을 것이고, 영화는 당대의 욕망을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으로건 담아내는 그릇이니 당시의 암울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 범죄 스릴러 영화 속의 범죄 내용의 주를 이루는 것이 밀수와 가난. 그리고 간첩에 대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자본주의와 첫 번째 조우를 한 시기였으니 블랙마켓과 밀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 당연하고, 전후의 변방이었으니 국민 모두가 가난했다. 게다가 휴전 상태였으니 간첩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프렌치 느와르. 일본 범죄 영화. 할리우드 느와르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 범죄 스릴러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우리는 볼 수가 없다. 거의 모든 범죄 영화들의 네거필름과 프린트가 사라진 상태이다. 당시의 범죄 영화들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조각들이 있다. 미군부대 주변에서 도둑질을 하는 막장 인생들의 사랑과 욕망을 그린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 4.19 혁명이 일어난 당시의 현실을 고스란히 녹여낸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60년대 초 서울의 뒷골목과 그곳에서 기생하는 인간 군상을 그려낸 이만희 감독의 <검은 머리>가 그것이다. 당시 최고의 성격배우 황해. 박노식. 장동휘가 출연한 수많은 범죄 스릴러 영화들 중 시놉시스만을 읽고도 보고 싶은 영화들이 즐비하다. 

그 중 유난히 나의 눈을 끄는 감독이 있었는데. 바로 김묵 감독이다. 평양 출신인 김묵 감독은 국문학을 전공. 소설가 게용묵씨의 문하에서 소설수업을 하기도 했고, 전쟁 중 월남하여 제주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낸 이력의 사나이이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김묵 감독은 자신은 액션 스릴러가 본령이라 말하고, 박력있는 액션 씬 묘사의 소유자라 당시 영화계에서도 평가한 인물이다. 박노식이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역을 맡았다며 열연을 한 <피 묻은 대결>은 챔피언이었던 형이 링 위에서 시합 중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권투선수가 된 한 청년의 피나는 챔피언 도전기이다. 당시 이 영화에 대한 평은 청승맞은 이야기만 넘쳐나는 한국영화계에 싸우는 남자들의 피투성이 표정을 살린 박력 있는 영화라는 평이었다. 황해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악당들의 소굴로 위장 잠입을 하여 원수를 찾아내는 <현상 붙은 사나이>. 신성일이 복수의 화신이 되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자신의 애인을 강간한 범인들의 애인들에게 똑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는 <용서받기 싫다>. 신참 형사 황해와 노련한 고참 형사 이예춘이 범인을 쫓는 미스테리 스릴러 <내일까지는 말하지 마라>. 황해가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공포의 8시간>. 김묵 감독 자신이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했고 1976년에 박호태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한 사생아 신성일이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가 그의 이복형과 벌이는 반항과 애증의 드라마 <성난능금>. 구로자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의 표절작이 분명한 <급행열차를 타라>. 등등. 김묵 감독에 대한 당시 평단의 평가는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박력! 이 한마디였다. 

1963년 군사 쿠테타에 의해 영화 검열이 혹독해지자. 범죄 스릴러영화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자 김묵 감독은 항일 만주 독립군 영화들과 전쟁 영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리고 70년대 초.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들을 만들지 못하던 이 재능 있는 영화감독은 자신의 본령에서 멀어진 유행을 따르는 영화들을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무협 영화들이다. 1970년대에 나는 그가 만든 두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그 중 한편이 당수를 했던 이대엽을 주연으로 내세운 <혈권>과 유도의 유단자 윤양하. 이대엽. 합기도의 고수 황인식이 출연한 <악인의 계곡>이었다. 당시 쏟아져 나온 홍콩 무협영화와 한국 태권도 영화에 비교 할 때 그의 영화는 너무나 심심하고 점잖았다. 하지만 그것은 감독 김묵의 자존심이었다. 홍콩 무협을 따라하지 않는 한국 무협을 만들고 싶어 했으나 중과부적. 시간과 돈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 글: 오승욱(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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