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이태원 -제작

by.김미현(영화진흥위원회) 2012-01-30조회 2,827

이태원 대표는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서편제>(93)의 신화를 일구고 <춘향뎐>(2000), <취화선>(2002)으로 칸느영화제의 영광을 함께한 제작자로 유명하다. 

이태원 대표는 1964년 설립한 건설회사 태흥상공을 경영하다 1974년 의정부 극장을 인수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같은 해, 경기・강원 지역 배급업자가 원하는 영화를 공급해주지 않자 그 지역 배급회사인 육림영화사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경강지역 배급업자로서 위세를 확장해가면서 1980년대에는 의정부 등의 경기지역 극장에서 서울 개봉관과 동시에 개봉하는 유례없는 성과를 이루면서 지역 배급업자의 ‘전설’이 되었다. 1970, 80년대의 도시화 과정에서 팽창한 수도권의 인구증가에 따라 경기 지역의 극장에는 관객이 넘쳐났고, 이것이 이태원 대표가 경강지역 배급업과 극장업에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었다. 
이태원 대표가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로 개명하고 영화제작에 뛰어든 1984년은 영화제작업이 자율화되기 불과 2년 전이었다. 젊은 시절 우연히 참여했던 <유정천리>(59)의 기억이 다시 영화계로 이끈 것 같다고 회고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은 한국영화산업 구조에 큰 변화가 닥친 시점이었다. 영화 제작업과 수입업이 자율화되었으며 순차적으로 한국영화시장이 개방되었다. 오직 허가받은 20여 제작사만 영화를 제작, 수입할 수 있던 20여년이 끝나고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이태원 대표가 제작한 <무릎과 무릎사이>(84), <어우동>(85), <돌아이>(85)는 연이어 흥행돌풍을 일으키면서 그를 제작업자로 당당히 자리 잡게 했다. 제작, (지역)배급, (지역)극장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경기・강원 지역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제작사가 직접 개봉하는 극장을 늘리는 직접배급을 확대하기도 했다. 한편, 1988년 <위험한 정사>로 미국 UIP의 직접배급이 시작되자 직배반대투쟁에 앞장섰으며 항의의 표시로 외화 수입증을 반납하면서 제작업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의 필모그라피는 <장남>(84)에서 <하류인생>(2004)까지 40여 편이 20여 년 간 쉼 없이 이어져 있다. 여기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흥행작 뿐 만 아니라 <개그맨>(88, 이명세), <그 후로도 오랫동안>(89, 박광수), <경마장 가는 길>(91, 장선우), <접속>(97, 장윤현), <세기말>(99, 송능한)과 같은 신인감독의 문제작도 포함되어 있다. 실력 있는 감독과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태원 대표의 기획・제작자로서의 이력은 임권택 감독과의 결합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만다라>(81)를 보고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 후 한국영화사의 가장 빛나는 파트너로서, 그들은 <아제 아제 바리 아제>(89)에서부터 15편을 함께했다. 이태원 대표는 임권택 감독이 제안한 것은 무엇이던 거절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던 제작자였다. 신뢰하는 창작자에게 전권을 믿고 맡겼던 것이다. 영화는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만드느냐는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결과 <장군의 아들>(90)과 <서편제>의 흥행몰이로 한국영화사의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웠다. <서편제>는 단성사에서만 3달 간 상영하여 1백만 관객을 동원한 초유의 기록을 쓰면서 한국적 정서와 소재로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이후 <춘향뎐>, <취화선>(2002)으로 칸 영화제 수상을 일구기까지 그들의 든든한 믿음과 뚝심은 지속되었다. 

이태원 대표는 자신의 돈으로 영화를 제작해야 진짜 제작자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그의 방식을 고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1990년 전후에 1억5천만 원 규모이던 제작비가 <태백산맥>(94)에서 28억까지 치솟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의 방식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기획・제작자로서 “하는 것이 좋고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으면 하는 것이 영화”라던 그의 정신은 언제나 되새길 만 한 것이다. 

/ 글: 김미현(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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