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조문진 - 소설적 묘사와 드라마틱한 영상미를 추구한 감독

by.장석용(영화평론가, 중앙대강사) 2008-11-11조회 1,260

오랜 친교를 해온 내가 본 조 감독은 깔끔한 신사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늘 자상하고 이타행의 모범을 보여주며, 지금까지의 영화작업을 천직으로 살아온 멋쟁이이다. 자신의 작품을 과대포장이나 과시하지도 않는 영화라는 화려함 속의 고고한 청자와 같은 분이다. 음력 1935년 11월 5일생으로 제물포고, 건국대학교 정외과에서 수학한 조 감독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침향』의 김수용,『』의 이두용 감독과 더불어 분단의 아픔을 그린 신작 『만날 때까지』로 원로감독으로 융숭한 대접(?)과 칭송을 받았다. 급변하는 영화환경 속에서도 투철한 작가정신과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그는 『만날 때 까지』로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임권택 감독이 타인의 시나리오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고 있을 때 조문진은 시나리오 창작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70여 편의 시나리오, 다수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그의 작품들은 약 45편에 이른다. 이중 일부는 보관되어 있고 이미 필름의 존재조차 모르는 작품들도 있다. 



제1회 도쿄 국제영화제는 12편의 초청작 중 하나로 그의 『언제나 타인』을 선정했다. 이작품은 비경쟁부문에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로 선정되었다. 이미 제6회 대종상에서 각본상을, 김지미·김희라가 신인상을 탄 동년, 『언제나 타인』으로 제6회 백상예술상 감독상에 빛나는 그는 충무로 도제 시스템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기록된다.



장군의 수염』으로 유명한 이성구 감독 밑에서 2년, 김수용 감독 밑에서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조연출 생활을 한, 조 감독은 한국영화가 침체기에 접어들 1969년 딸의 留學病을 모티프로 한 『포옹』으로 데뷔, 69년에만 『젊은 여인들』,『새색시』,『명동나그네』,『죽어도 그대 품에』,『여자의 모든 것』,『언제나 타인』,『남편』을 내놓는 기염을 토하였다.
이후 70년에 『분노』,『여자이기 때문에』,『약속은 없었지만』, 71년에 『말썽 난 총각』,『내 아들아』,『속 두아들』,『내 아내여』,『두 딸의 어머니』,『처복』,『지금은 남이지만』의 소프트 멜로, 가족과 가정의 이면을 묘사하는 전형을 고수하고 있었다. 



김수용 감독 밑에서 20여 편의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임해온 그는 주로 자신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영화연출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러한 영화창작 관습은 영화 스승인 김수용 감독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그가 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회귀』가 당선된 것도 김수용 감독의 영화감독으로서 문학성 강조의 탓도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대표작은 신분상승을 꿈꾸며 여성을 유린하는 멜로 드라마 『언제나 타인 』(20회 에딘버러영화제에 출품), 판이한 생활공간을 가진 두 형제의 이해공간을 그린『두 아들』,1920년대 충남 양반 가문의 비극을 그린 시대물 『古家』를 들 수 있다.
그는 곽지균 같은 감독을 대표적 조감독으로 두면서 그의 감정선을 전수하고 있었다. 이외에 심재석, 한덕규, 김수형, 양병간은 그와 작업을 같이한 조감독들이다.
그가 꿈 꾸어온 영화들은 데뷔작 『포옹』에서 보여주는 명쾌함이나, 빌리 와일더의 『아파트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챨리 채프린의 일련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태풍자와 인간 가치를 따스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현역감독 중 40편이 넘게 자신의 창작 시나리오로 연출한 감독은 한국영화사에 거의 없다. 그만큼 문학성을 앞세우는 그가 작가다운 작가로 부상한 영화는 『만날 때 까지』이다. 
당시의 영화제작 현실이 어떠했건 조감독이 비난 받을 부분도 여러 면에 걸쳐있다. 그의 멜로, 반공, 문예, 시대, 청소년물등은 1)한국적 멜로드라마나 코미디 등의 장르 발전에 역동적·예술적 접근으로 기여하지 못한 점 2)작가주의영화를 표방했지만 실험성이나 부문별 심층연구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한 점 3)도제 시스템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점 4)가족이나 가정의 진보적 풍경이나 비전을 과감하게 보여주지 못한 점등은 지적 받을 부분이다.


로버트 알트만 이나 조지 쿠커의 실험성이나 오손 웰스의 탐구정신, 데이비드 린의 클래시칼한 분위기를 제쳐두고 한국 영화의 생산에 몰두한 결과는 대부분의 충무로 감독들의 경우처럼 결국 후회스러운 부분으로 나타났다. 당시엔 누구나 할 것 없이 예술작업 보다는 호구지책으로 영화를 방편으로 삼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다작, 단기제작, 여러 장르 섭렵은 영화창작의 밀도를 떨어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전성기가 불경기로 크로스 오버되는 70년대의 감독은 작가정신의 고매함이나 영화의 예술성을 고려할 시·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검열의 공포는 단순한 소재를 요구하게되었고 결국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고리를 갖고 있었다 .



이런 가운데 생산된『무릎꿇고 빌련다,72』『엄마결혼식,73』『신설,74』『호기심,74』『올챙이 구애작전,74』『황홀,74, 김승옥의 『무진 기행』을 영화화한 작품』『어린 시절,74』『빗속의 여인들,76』『고가,77』『슬픔은 파도를 넘을 때,78』『사랑방 손님과 어머니,78』『과부,78』『학을 그리는 여인,79』『황토기,79』『두 아들,81』『내일 있는 청춘,82』『설마가 사람잡네,85』『젊은 밤 후회 없다』는 암울한 시대의 음영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90년대 들어 탄생한 『아들과 연인,92』과 『만날 때까지,99』는 비교적 안정되고 여유가 있는 가운데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환경 탓에 영화감독협회장과 공륜심의위원을 거친 그가 부르짖는 말은 영원한 현역이다. 
『아들과 연인』은 사돈이 될 부모님들이 애인인 경우를 설정한 것이고,『만날 때 까지』는 북에서 휴전선을 넘어 온 기억 상실 청년을 자식으로 생각하는 아버지 후보와의 재회를 그린 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 활약했던 배우들을 작품 제작 순으로 살펴보면 신성일,윤정희,김창숙,고은아,신영균,전양자,남정임,김희갑,남궁 원,김동원,한은진,박암,이낙훈,김순철,박노식,문 희, 최남현, 김진규, 강부자, 송 해,전계현,노주현,황정순,최무룡,문정숙.하명중,태현실,장동휘,김희라,신일룡,방희,홍성우,신 구, 김추련, 한인수, 윤미라, 황 해,도금봉,김상순,윤일봉,이대근,정혜선,민지환,선우용녀,조미령,현 석, 이덕화, 안소영, 선우 일란,하재영,윤양하,나영희,강석현,이상아,김혜선,이재룡,박근형,조용원,양택조,김인문 등 화려한 스타 군과 만날 수 있다. 
영원한 현역 감독,조감독이 있는 한 우리는 영화계의 또 다른 중심 축을 갖고 있는 셈이다. 가족과 인간, 고향이 살아 숨쉬는 인간미 넘치는 차기 작품을 기다려 본다.


장석용(영화평론가, 중앙대강사) / 2002년




<프로필>

1935년 11월 5일 인천 출생

1967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회귀'로 당선

1970 <포옹> 각본, 감독으로 감독 데뷔

1971 <언제나 타인> 동경 제1회 국제영화제 입선 공개 상영

1988 영화감독협회 회장

1989 미국영화직배 반대 투쟁위원장

1991 공연윤리위원회 영화심의위원

1994 청주대학교 강사

1996 영상작가교육원 강사]

1998 영상등급물 위원회 영화심의위원



작품명

1970 포옹/남편/분노/여자이기 때문에/약속은 없었지만

1971 말썽난 총각/두아들(속)/내 아내여/처복/지금은 남이지만

1972 무릎꿇고 빌련다

1973 엄마결혼식

1974 신설/호기심/올챙이구애작전/황홀/어린시절

1976 빗속의 여인들

1977 고가

1978 슬픔은 파도를 넘을 때/사랑방손님과 어머니/과부

1979 학을 그리는 여인

1981 두 아들

1982 내일있는 청춘

1985 설마가 사람잡네

1986 젊은밤 후회없다

1992 아들과 연인

1999 만날 때까지 등 47편

시나리오 100여 편, 소설집 '조문진 단편소설집', '재벌의 문' '조문진 시나리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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