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여배우
강수연이 아직 아역이었을 때다. 나는 영화 <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제주도에서 촬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점심을 기다리며 식당의 TV에 무심코 눈을 주던 중 아주 깜찍한 연기를 하는 어린 강수연의 모습을 드라마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앞자리에는 마침 아직 총각이었던
안성기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의 주의를 환기시켜 강수연을 유심히 보게 했다. 한참 TV를 들여다보던 안성기가 왜 갑자기 어린애 연기를 보라고 했는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쟤 어때?'
'뭐가요?'
'괜찮잖아?'
'응- 연기 잘하죠!'
'그게 아니라 매력 있잖아! 어때 저 애? 색시 깜으로….'
'누구? 나요? … 에헤이, 형두 참. 어린애 가지구…'
안성기는 별 싱거운 농담 다한다는 듯 그냥 웃어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진지했다. 저 아이는 곧 어른이 될 것이다. 불과 5년도 안되어 성인이 될 터이고 그때까지 안성기가 장가간다는 보장도 없다. 안 갈게 틀림없다. 흔한 말로 처녀 장가가려면 길러서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그냥 흘려 듣지말구 진지하게 검토해 봐라!
그때 나는
안인숙이란 배우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마도 1965년 전후 무렵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어렴풋이 기억 속에 아역 탤런트였던 안인숙의 껑충한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 잠깐 들렸던 TV방송국 안에서 어린이프로그램 녹화를 준비하던 목이 긴 아이가 자기보다 작은 애들 속에 둘러싸여서 재잘재잘 수다를 부리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었다. 당시 얼굴은 낮이 익었지만 이름까지 외우지 못했던 그 작은 소녀는 연기를 깜찍하게 잘했고 금세 부쩍부쩍 자라 중학생으로, 여고생으로 출연하더니 불과 5년도 안되어 성인의 역할 언저리를 비슷하게 넘나들더니 결국 훗날 내 데뷔작 '
별들의 고향'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할 때는 신랑이 내 고교 선배여서 꼼짝없이 형수님이라 부르는 처지로 바뀌었다.
안인숙을 캐스팅한 후로 나는 아역배우들을 단순히 어린이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대개 13살 전후다. 덩치가 아무리 커도 틀림없는 어린애다. 그런데 4년만 지나면 각종 미인대회에 나설 정도로 성장한다. 요즘 미인대회를 보라. 고교 2년 정도의 재학생이 꽤 많다. 좀 다른 예가 되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영화에서
김지미 씨를 처음 보았는데 지금은 사라져버린 을지로의 국도극장에서 보았던 그 ''
황혼열차''라는 흑백 필름은 고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로 김지미 씨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통해 13살 어린놈의 뇌리에 코스모스처럼 청순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각인되었던 여배우 김지미의 그때 나이는 겨우 18살이었다.
불과 5년의 차이뿐이지만 어린이와 어른이라는 엄청난 장벽으로 거리감을 만드는 억울한 시기는 우리 인생에서 오직 이 시기만 유일하다,
안인숙에 대해 회고하는 지금 먼저 떠오른 모습이 어린 시절이다. 일찍부터 TV와 영화 출연에 익숙한 연기 생활을 한 때문일까? 안인숙의 연기는 맑다. 우중충한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 그는 새로운 연기의 세계로 내 시야를 넓혀 준 장본인이기도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의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성질이어서 나는 안인숙의 다른 영화를 별로 보지 못했으나 안인숙을 통해 느낀 이미지는 매우 밝고 맑고 깨끗하다. 그래서 만약 그가 우중충한 연기를 썩 잘 해낸다고 해도 그 타고난 이미지와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짐작된다.
''
별들의 고향''의 크랭크인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 밖은 하얗게 눈으로 덮였다. 뜻밖이었다. 밤사이에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그날 예정된 촬영은 어렵지 않은 거리 로케이션 이었는데 처음 영화에 데뷔하는 감독은 첫 촬영을 쉬운 장면부터 찍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밤사이 내린 축복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는데 그 설경을 보자 나는 이 겨울에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눈일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원작 ''별들의 고향''에서 경아는 눈 쌓인 벌판에서 죽는다. 그 라스트 신은 조감독 시절의 경험으로 강원도 대관령이나 정선 임계 백봉령 정도에서 촬영하리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비한 설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으니 오늘 이 대도시에서 촬영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재빨리 조감독과 제작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촬영 계획을 바꾸어 라스트 신부터 찍겠다고 통보했다.
촬영장소는 연애시절 빈번하게 처가를 왕래하면서 자주 지나다녔던 광나루 강변이 머리에 떠올랐고 거기쯤이면 아주 장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침의 모든 갑작스런 계획이 마치 신들린 것처럼 진행된 것 같다. 드디어 촬영 현장에 도착해 우선 촬영장소로 적합하다는 만족감을 스텝들로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런 촬영계획 변경으로 주인공 경아 역을 맡은 여배우
안인숙은 전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분장사도 없었고 의상도 헤어스타일도 미리 연출부와 합의를 보지 않은 갑작스런 촬영인데다 아주 중요한 라스트 신이 아닌가? 연기자의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안인숙은 내색하지 않고 어떻게 분장했으면 좋겠는지 정중하게 감독의 의견을 물었다. 촬영반이 대기 중인 버스 안이었다. 갑자기 촬영 계획을 바꾼 감독을 힐난하는 눈초리로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얼굴이 뜨거웠다.
경험이 일천한 나로서는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머뭇거리다가 겨우 타락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가까스로 주문했다. 그러나 스스로 말해놓고도 내가 이해되지 않아 덧붙여 말한다는 것이 푹 썩은 얼굴이면 좋겠다고 해놓고는 얼른 돌아서 버스에서 내려왔다. 낯이 뜨거웠다. 연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두 의심하는 것 같았다. 등에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 스텝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눈 쌓인 벌판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비로소 촬영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 있는 걸음으로 다시 스텝들이 기다리는 버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웬걸!
안인숙의 얼굴은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푹 썩은 얼굴, 타락한 모습으로 분장사 없이 스스로 자신의 화장품이 그려 놓은 얼굴은 그야말로 ''
13일의 금요일''에라도 나오는 악마의 얼굴이었다. '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역 출신 명배우 안인숙의 감독 테스트에서 나는 첫 시험에 불합격이었다. 다시 제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모든 화장을 깨끗이 지우고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로 돌아가 촬영하자고 제의했다. 비로소 안인숙은 안심이 된다는 듯 기분 좋게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날 그렇게 나로 하여금 정신을 못 차리게 뺑뺑이 돌리던 크랭크 인은 그래서 그 역사적 감독 데뷔의 첫 외침 '레디-고!'를 언제 어떻게 했는지 전혀, 그리고 영원히 기억나지 않게 만들었다.
안인숙의 이미지는 맑고 밝고 깨끗하다.
별들의 고향에서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그의 이미지에 맞추어 성공적인 연기를 해내었다. 아무리 우중충한 장면도 그는 산뜻한 이미지로 나에게 새로운 연기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연기 생활이었겠지만 그 역시 별들의 고향은 아주 특별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언론사상 최고의 인기신문소설의 영화화, 그 수많은 경쟁을 뚫고 획득한 여주인공 경아 역, 본격적인 성인 역할, 구두쇠 제작자의 자존심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아주 흔쾌하게 승낙할 수밖에 없었던 노 개런티의 출연, 그리고 생전 처음이었을 누드 출연, 16년이나 연상인 슈퍼스타
신성일 씨와의 베드신, 등등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작품을 더 함께 만들었다. 나의 두 번째 영화 ''
어제 내린 비''. 개인적으로는 ''
별들의 고향'' 보다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이다. 영화 만드는 맛을 알았고 비로소 영화에서 연출자의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식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또
안인숙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고 내 친동생
이영호를 데뷔시켜 안인숙과 공연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안인숙은 물론,
안성기도 그렇고,
강수연도 그렇고 아역 출신들의 공통점은 타고 난 연기력이다. 태생적 연기자란 말은 그 연기의 천재성이 개발된 것이 아닌 만큼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된다. 대개 어려서 의식하지 못한 사이 그 천부적 감각으로 기능화 되어버린 연기 기술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재능처럼 본능성을 발휘해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창작의 고통과는 또 다른 거리감이 있어 예술성과 그 깊이에서는 손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품다운 작품을 만나 본인이 투지와 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