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고영남 - 감독 - 승화된 영상에의 영원한 노스텔지어

by.이진모(시나리오 작가) 2008-11-11조회 1,718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 고교시절 배구선수였었다는 그는 운동은 한낮 여기에 불과했을 뿐, 당시 그가 내심 희구했었던 것은 아마도 연극 연출가나 영화감독도 아닌 연극 배우나 영화 배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한때 충무로 일원에서 몇몇 영화감독들이나 스탭들을 지목해 운운할 때 



'응! 아무개 그 사람 본래 영화배우 지망생이었어.'



라고 심심찮게 객담의 화두에 올려 이러쿵저러쿵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당시 고영남 감독이 아닌 진석모(고영남 감독의 본명) 고교졸업생은 뜻한 바 있어 고향 충청북도 충주군 수안보에서 무성영화 변사의 구성진 나레이션처럼 서울행 완행열차를 타고 부푼 마음으로 상경했던 것이었다. 당시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등으로 이어지는 기라성 같은 대 선배 감독 군, 다음세대들이 서라벌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각기 전문학과를 수학했던 것처럼 고영남 감독 역시 상기 학교 연극 영화과에 등록했단다. 그는 이 학교에서 그의 생애에 결정적인 전환기를 마련해준 연극계의 원로 이광래 교수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필자도 종종 뵌 적이 있는 그분을 바싹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졌음에도 항상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던 예술가연한 학자였음이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풍부한 젊음의 감성과 번뜩이는 예지로 이광래 교수로부터 희곡론, 연출론 등을 깨우친 고영남 감독은 당시 요즈음 대학로와 같은 연극의 메카 명동에 입성하게 되고, 그곳에서 선배들의 후원으로 입단하기 어려웠던 권위 있는 연극단체 '신협'에 비교적 쉽게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그가 연극에 깊이 천착하기도 전에 예기치 않은 또 다른 전기가 찾아온다 어느 날 명동과 인접했었던 영화의 메카, 충무로에서 제작부로 일하던 선배가 불쑥 찾아와 다음작품을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던 그에게 함께 영화작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종용해 온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기꺼이 응했다. 그때 제작되고 있던 영화는 외국의 저명한 소설을 번안한 멜로드라마 '육체의 길' 이었다. 



당시 충무로에서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던, 조긍하 감독의 야심적이었는데 장안은 물론 전국의 최루파 관객을 울음바다로 몰아 넣었던 이 작품의 라스트 시퀀스 촬영분은 눈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인공이었던 명우, 김승호가 방황과 질곡의 세월을 보내고 걸인이 되어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장면, 그런데 촬영팀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함박눈은 끝내 내려주지 않았다. 촬영팀은 하는 수없이 눈을 만들어 뿌리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전 스탭들이 모두 동원돼 이 작업에 동참했다. 일정한 포지션이 없었던 고영남도 친구와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고 어두워지자, 스탭들은 모두 식당과 술집으로 흩어졌고, 고영남만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외모와는 달리 충청도 시골출신답게 성실한 모습으로 홀로 작업하고 있던 그의 모습은 곧 조긍하감독의 눈에 띄게 되고, 즉시 즉시 연출부로 발탁되는 행운을 잡는다.



그렇게 제작 완료된 '육체의 길'은 대히트를 하게 되고, 비록 연출부 신출내기로 입문했지만 고영남의 어깨는 으쓱해졌다. 그 후 그는 권영순 감독에게서 이광수 선생의 '흙'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의 '표류도' 등 문예작품의 조감독으로 수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당시, 편집작업을 돕고 있던 김기덕 감독을 만나게 되고, 그의 데뷔작 '오인의 해병' 출세작 '맨발의 청춘'등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감독수업의 야심을 쌓아 간다. 그 즈음 영화계 배급구조와 흥행판권은 각 지방 업자에 의해 장악되었고 영화제작은 이들의 제작자본에 의존해 제작되던 시기였다. 이 무렵, 고영남 감독은 현 서울극장 대표이며 전국 극장연합회 회장인 곽정환씨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당시 '주유천하'라는 영화로 흥행에 성공한 곽사장은 현재의 위치와 성공을 예고라도 하듯 놀라운 추진력으로 충무로를 종횡무진했다. 고영남 감독은 곧 그의 눈에 뜨였고, 곽사장은 그에게 파격적인 너무나도 파격적인 임무를 맡긴다. 그에게 대뜸 영화 '잃어버린 태양'을 연출 의뢰한 것이다. 고영남 감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온 정열을 쏟아 자신의 데뷔작을 연출했다.


'잃어버린 태양'은 결국 크게 히트했고, 이에 고무된 곽사장과 고영남 감독은 즉시 요즈음 조폭 영화처럼 유행했던 액션 멜로 '명동 44번지'를 제작 연출했고 이 영화는 그해 흥행 1위를 쉽게 탈환해버린다. 이를 계기로 곽사장과 고영남감독은 당시 한국일보 현상공모 장편소설 당선작 '잃은 자와 찾은자' 강제구 소령의 전기영화 '소령, 강제구' 등 잇달아 히트작을 양산해낸다. 이때부터 충무로에서 그의 인기와 주가는 초고속 수직 상승했고 이러한 돌발현상은 그에게 미래의 부푼 희망과 감당할 수 없는 질곡을 예고하고 있었다. 충무로 전역 모든 제작자들은 고영남 감독을 연호 했고, 그에게 다투어 메가폰과 거액의 개런티를 맡기었으며, 그는 마치 급류에 휩쓸리듯 겉잡을 수없이 거품인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함몰 되어갔던 것이다.



그가 연출한 108편이라는 엄청난 편수는 대부분 이 시기에 작업한 것이다. 그의 술회에 의하면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작업개념이었다는 것이었다. 영화제작자이기 전에 장사꾼이었던 그들의 무절제한 욕심과 고영남 감독의 자신에 대한 통제능력부재가 그를 그렇게 몰아 세웠던 것이다. 그는 소용돌이에 밀려 지칠 대로 지친 채 1970년대 중반이라는 하구, 어느 둔치에 난파선처럼 표류한다. 그리고 쓰여진 그곳에서 멀리 구비쳐 오는 탁류의 범람을 응시하며 전신을 질타해오는 자괴감에 눈을 지긋이 감는다. 



그로부터 2년 동안 고영남 감독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실의와 방황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통음한다. 마치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처럼,,,,,, 그는 다시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긴 오수에 빠져든다. 그때 그의 지친 어깨를 두들기는 손이 있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영혼이었다. 
그의 대표작 '설국'




고영남 감독,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황폐한 그의 가슴에 ''이즈''의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그는 짧은 영탄과 함께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 고향산야를 돌아보았다. 거기, 멀리 산자락에서 마치 하얀 베일과 같은 소나기가 겹겹이 몰려오고 있었다. 황순원의 '소나기' 한국 단편 문학의 백미인 이 작품과 필자와의 만남은 그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전기였다. 고영남 감독과 필자는 나란히 유년의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엔 개울물과 징검다리와 쪽빛하늘, 갈밭, 들판을 나르는 학과 뚝길이 있었고, 멀리서 소나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과 소년이,,,,,, 이 두 작품을 연출한 것을 계기로 고영남 감독은 긴 슬럼프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활기찬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도약한다. 이후 그는 '꽃신', '빙점', '외인들', '영원한 관계', '코리아 커넥션'등 종전과는 다른 장르를 섭렵한다. 그러나 그에게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와 보람을 준 작품은 역시 '소나기'였다. 당시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출품에 시도되었고, TV에서도 해마다 방영이 되어, 오히려 안방극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도 EBS방영 이후 네티즌 사이에 '소나기를 사랑하는 모임'이 생겨날 정도였다. 또한 한국 문학 해외 소개차원으로 아리랑TV로 해외에 방영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지금 노년의 뜰에 서서 아직도 주체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의욕과 향수에 가슴 설레고 있다. 마치 개울가에서 조약돌을 주무르며 소녀를 기다리는 작품 속의 소년처럼,,,,,, 아마도 그것은 그의 자연 친화적인 영상에 대한 영원한 노스탤지어 일 것이다.
 
이진모(시나리오 작가) / 2003년




<프로필>

1935년 2월 22일 충북 수안보 출생

1964년 <잃어버린 태양>으로 데뷔 


<주요 경력>

1980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1988 영화진흥위원회 자문위원

1993 아트시네마 대표 이사

1995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2001 아시아디지털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작품 연보>

1964 잃어버린 태양/ 명동44번지

1965 마지막 정열 / 이세상 끝까지

1966 잃은자와 찾은자 / 소령 강재구

1967 탈선 / 바람

1968 안개낀 초원 / 빙우

1969 결사대작전 / 태양은 늙지 않는다

1970 위험한 관계 / 훼리호를 타라

1971 탈출 / 서북청년단

1972 꽃신 / 비목

1973 독수리전선 / 공수특공대작전

1974 청춘의 문 / 사랑의 나그네

1975 죽어서 말하는 여인

1977 설국 / 십대의 영광

1978 소나기

1979 수제자

1980 빙점81

1981 외인들 / 여자의 방

1982 광염소나타

1983 위험한 향기

1984 영원한 관계

1985 생머리 19살

1986 내가 마지막 본 흥남

1987 밤이 무너질 때

1988 미리마리 우리 두리

1989 제2의 성

1990 매춘2

1991 코리언 커넥션

1992 나의 아내를 슬프게 하는 것들

1993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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