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이강천 - 감독 - 도시적 반공 이데올로기의 벽 허문 <피아골>

by. 2008-11-11조회 2,991

이강천(李康天) 감독은 17년 남짓의 영화 생활을 통해 대표작인 <피아골>(1955)을 비롯하여 <격퇴>(1956), <백치 아다다>(1956), <아름다운 악녀>(1958), <생명>(1958), <두고 온 산하>(1962), <대좌의 아들>(1968) 등 모두 28편을 남겼다. 1954년 데뷔작인 <아리랑>에서 마지막 작품이 된 <타인이 된 당신>(1971)까지 멜로드라마 12편, 분단의 비극과 6·25 전쟁을 소재로 한 반공영화 9편, 시대극 7편이 그것이다. 이를 작품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멜로드라마

<백치 아다다>(1956), <사랑>(1957), <아름다운 악녀>(1958), <종말 없 는 비극>(1958), <생명>(1958), <젊은 아내>(1959), <청춘 화원>(1960), <사랑의 역사>(1960), <나그네>(1961), <무정>(1962), <낙동강 7백리 >(1963), <타인이 된 당신>(1971)




2. 반공 영화

<아리랑>(1954), <피아골>(1955), <격퇴>(1956), <두고 온 산하>(1962), <나는 속았다>(1964), <남북 천리>(1966), <죽은 자와 산 자>(1966), <대좌의 아들>(1968), <어떤 눈망울>(1968)




3. 시 대 극

<팔검객>(1963), <수양과 백두건>(1964), <미녀와 도적>(1965), <살아야 한다>(1965), <계룡산>(1966), <유성의 검>(1968), <공산성(公山城)의 혈 투>(1968)



<아리랑>(허장강·김재선 주연)은 무성영화 시대에 제작된 나운규의 <아리랑>(1926)을 원작으로 했으나, 시대 배경을 일제 지배 아래가 아닌 6·25 전쟁 이후 공산치하로 바꿔, 영진의 집 외양간에 숨어든 두 명의 미군을 간호하고 여동생이 희생되는 가운데 쫓아오는 북한군으로부터 탈출시키는 내용을 16밀리 화면에 담았다. 6·25 때 전선에서 낙오하여 공산군에게 고초를 겪었던 딘 소장의 실제 이야기를 주제로 부각시킨 것이다.



<피아골>(김진규·노경희 주연)은 지리산에 숨어 활약하는 빨치산들이 경찰지서를 습격했다가 빠져 나올 때 부상을 입고 소총을 버린 한 대원이 처단되면서 벌어지는 조직 내부의 반목과 모순된 이념에의 회의, 여대원을 둘러싼 애욕의 갈등 속에 자유를 선택하는 청년(철수)의 모습을 그린 문제작이다. 



<격퇴>(황남·최봉 주연)는 김만술이라는 육군 소령의 6·25 참전을 바탕으로 승공 의욕을 고취시킨 실화물이고, <나는 속았다>(신영균·문정숙 주연)는 남로당 재건을 시도하는 거물급 공산주의자를 돕다가 배신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여간첩 김수임의 일대기를 담은 것이며, <두고 온 산하>(김진규·모니카 유 주연)는 해방 후 흥남에 주둔하는 소련군 고문관의 딸과 한국 청년간의 국경을 초월한 로맨스를 바탕으로 소련군의 만행과 자유를 갈구하는 북한 동포들의 실상을 묘사한 것이다. <남북 천리>(김지미·김진규 주연)는 인민군에게 납북돼 강제 수용소에 갇힌 남한의 애국지사들을 구출하는 한국군 정보 장교의 활약상을 부각한 것이며, <죽은 자와 산 자>(신영균·김혜정 주연)는 1·4 후퇴 때 서울에 남아 국군 정보 장교를 도와 첩보 활동을 하다가 죽은 젊은 미망인의 이야기를, <대좌의 아들>(신성일·박노식 주연)은 모스크바 유학까지 한 인민군 대좌의 아들이 공산주의에 회의한 나머지 탈출을 꾀하다가 자기 아버지의 총탄에 쓰러지는 비극을, 그리고 <어떤 눈망울>(남궁원·박노식 주연)은 북한군의 후방에 잠입하여 싸우다 부상을 입고 은신중인 한 중위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 북진해온 국군과 극적으로 재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강천 감독이 주력한 분단 전쟁의 영화들은 한결같이 게릴라, 첩보, 전투, 전향 등 국군이나 민간인들의 반공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빨치산 조직 내부에 앵글을 맞춰 분란을 겪는 공산주의자들의 인간적인 고뇌의 모습을 그린 <피아골>은 단연 이채롭다. 이 영화가 해방 후 만들어진 <오발탄>(1961·유현목 감독), <하녀>(1960·김기영 감독),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신상옥 감독) 등과 함께 수작으로 꼽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피아골>은 인간과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7인의 여포로>(1965·이만희 감독), <남부군>(1990·정지영 감독),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반찬욱 감독)의 출발점이자 화두라 할 수 있다. 계용묵의 대표작인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백치 아다다>(나애심·한림 주연)는 남편의 난봉과 도박으로 인해 겪는 순진한 벙어리 아내의 설움을, 이광수 원작인 <사랑>(김진규 ·김현주 주연)과 <무정>(최은희·김승호 주연)은 각기 아내를 잃은 뒤에도 한눈 팔지 않은 병원장을 짝사랑하다 떠나는 간호사의 행로와 반일 혁명가의 딸 박영채의 고귀한 애정을 그렸으며, <아름다운 악녀>(조항·최지희 주연)는 모델이 된 창녀가 화가의 사랑을 받게 되자 신분의 한계를 느끼고 물러서는 내용을 담았다.



<종말 없는 비극>(박암·한미나 주연)은 1·4 후퇴 때 헤어진 남편을 만났으나 병석에 누운 애의 치료를 위해 여급 생활을 한 것이 빌미가 돼 버림받는 아내의 슬픔을, <생명>(최성진·문정숙 주연)은 고아로 자라나 사랑하게 된 두 남녀가 헤어지지만 미국 유학길에서 재회, 다시 결합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청춘 화원>(김진규·도금봉 주연)은 사기로 재산을 날린 아버지의 건축 공사를 아들이 맡아 일으켜 세운 뒤 도움준 애인과 결혼하는 해피엔드를, 그리고 <사랑의 역사>(최은희·김진규 주연)는 죽은 남편의 제자인 대학생을 몸을 팔아 뒷바라지 하는 미망인의 헌신을 소재로 삼았다.

<낙동강 7백리>(최무룡·김지미 주연)는 낙동강 상류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는 한 노인의 외동딸이 서울 청년의 유혹에 빠져 임신, 상경한 후에 겪는 비애를 부각시켰고, <타인이 된 당신>(신성일·문희 주연)은 시어머니와 맞지 않아 가출한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돼 남자 앞에 나타나지만 재결합을 외면하고 제 길을 걸어가는 자립의 의지를 그렸다. 또한 <팔검객>(김진규·이예춘 주연)은 광해군의 학정에 반기를 든 여덟 명의 무사를, <수양과 백두건>(김진규·박노식 주연)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폐비 소생의 세 옹주를 따라 나섰다가 흑두건 일당의 모함으로 살인 누명을 쓰게 된 세조를, <계룡산>(허장강·김혜정 주연)은 이조 말엽 계룡산 일대를 중심으로 서식한 사교 교주를, <유성의 검>(박노식·김혜정 주연)은 상납금을 호송하다 모사꾼 일당에게 급습당해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됨으로써 복수에 나서는 사나이를, 그리고 <공산성의 결투>(박노식·문희 주연)는 정적의 흉계로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오는 백제 개로왕의 손자 마모를 각기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전을 겨루게 했다. 



- 데뷔 전후

 
이강천은 1921년 12월 10일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미술계에서 종사하다가 이만흥 감독의 <끊어진 항로>(1948)의 미술을 담당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가 전주문화극장의 경영주인 친구 김영창(金永菖)의 제안으로 <아리랑>을 연출하게 된 것은 미술적인 감각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1952년 가을의 일이다. 먼저 남주인공인 영진 역에 이향, 여주인공인 그의 여동생 영희 역에 주증녀를 내정하고 교섭차 서울로 올라간 제작자와 촬영기사(강영화)가 그들 대신 허름한 차림의 낯선 사내와 여자를 데리고 전주역에 나타나면서 실망스러웠지만, 촬영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길다란 얼굴에 주먹코, 붕 뜨는 특유의 음성을 가진 이 사나이는 KAS라는 군예대 소속으로 무대 생활을 하던 허장강이었고, 여자는 극협(劇協) 회원인 김재선(金在仙)이었다. 이들을 남녀 주인공으로 기용한 이강천은 그때까지만 해도 허장강이 영화계의 보물로 크게 한몫을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날씨 속에 소방차를 동원하여 비를 뿌리는 강행에도 허장강은 몸을 움츠릴 뿐 군말이 없었다. 이 작품은 16밀리이기 때문에 촬영 당일에 필름을 현상하여 프린트기 대신 영사기에 구워서 랏슈를 볼 수 있었다. 



<아리랑>의 흥행(1954년 6월 11일·시공관)은 성공적이었다. 정부의 시책으로 이루어진 국산 영화에 대한 면세 조치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아리랑>이 촉진시킨 <피아골>은 1954년 해맑은 봄날 예향 전주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강천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전북 경찰국 공보계에 근무하는 김종환(金宗換)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자 후방에서 선무공작 업무를 수행하던 중 귀순자들이 쓴 좋은 영화 소재감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는 빨치산이 출몰하고 있었다. 그는 이 소재를 놓고 며칠 동안 생각했다. 내용은 마음에 드는데 스폰서가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좋은 동조자를 얻었다. 백 명의 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지리산 기슭 구례가 고향인 이 사람은 근방의 지리에도 밝았다. 그 동조자인 김병근이 제작에 직접 나섰음은 물론이다. 



피아골은 지리산에 깊숙이 자리잡은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학란이 있었던 조선조 말기에는 그 피아골에서 무수한 학살극이 빚어졌고, 6·25 전쟁 때는 은신의 거점으로 삼은 북한 잔류군과 빨치산에 의해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강천은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해변 마을 변산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평야를 덮어버릴 듯한 노란 채소꽃들이 복숭아꽃과 어울려 초가지붕을 둘러싼 부감의 정경은 차라리 한폭의 동양화였다. 그가 여름을 피해 굳이 가을을 촬영의 시기로 택한 것은 산의 선과 암석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는 암갈색의 구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갓 데뷔한 김진규를 빼고는 노경희, 이예춘, 허장강 등 경험있는 배역으로 짜여져 연기의 대결을 벌이도록 유도하였다. 출연자에게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인공적인 분장을 피하고 머리와 수염을 기르게 하였다. 잠자리에 들 때도 극중 의상을 입고 자도록 지시함으로써 연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필름이 모자란다는 점이었다. 속이 탄 것은 감독과 촬영 기사였다.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15커트를 세 커트로 줄여서 찍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아차린 김진규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피아골>은 이와같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화제와 논란을 파생시켰다. 전북 경찰국과 내무부치안국이 후원한 작품이었지만 빨치산 묘사에 사실과 다른 점이 내포되었다는 이유로 후원을 번의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되었다. 함에도 불구하고 <피아골>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이기 쉬운 분단영화에 설득력 있는 사실성을 부여하여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1955년 영화인 이금룡(李錦龍)을 추모하여 처음 시행한 제 1회 금룡 영화상 작품, 감독, 연기(노경희), 녹음상(이경순) 등 주요 부문을 휩쓸게 됨으로써 입증되었다. 이로써 1950년대를 정점으로 그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강천은 1993년 9월 2일 일흔 세 살의 나이로 허장강(아리랑), 김진규(피아골), 최지희(아름다운 악녀), 전영선(종말 없는 비극·아역)등 당대에 이름을 날린 배우들을 영화계에 배출시키고 세상을 떠났다. 



 

 
김종원(영화평론가·청주대 겸임 교수) / 2003년




<프로필>

1921년 12월10일 충남 서천 출생

일본 도쿄미술학교 졸업

1954년 <아리랑>으로 데뷔

1993. 9. 1 타계 


<주요 경력>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 간사 심의위원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영화검열심의위원



<수상 경력>

국방부장관 표창, 문교부 문예상,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표창

문화공보장관 공로상, 영화진흥공사장 공로상,대한민국 문화훈장



<작품 연보>

1954 아리랑

1955 피아골

1956 격퇴/ 백치아다다

1957 사랑

1958 아름다운 악녀/ 종말 없는 비극 / 생명

1959 젊은 아내 

1960 청춘화원 / 사랑의 역사

1961 나그네 / 이 순간을 위하여

1962 두고 온 산하 / 무정

1963 팔검객 / 낙동강 칠백리

1964 수양과 백두산/ 나는 속았다/ 미녀와 도적

1965 살아야 한다(일명 배꼽대감)  

1966 남북천리 / 계룡산 / 죽은자와 산자

1968 대좌의 아들 / 유성의 검 / 어떤 눈망울 / 공산성의 혈투

1971 타인이 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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