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B무비]공포특급 김희철,강제규, 1994

by.허경(정발산 영화거구) 2014-07-04조회 7,521
공포특급

강제규 감독을 모르는 영화팬은 없다.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천만 관객 영화이자, 현재까지도 최다관객기록 7위를 고수하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었고, <은행나무 침대>, <쉬리>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만들고 실천한 연출가이며 제작자이다. 그는 감독이기 이전에 충무로에서는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많은 영화팬들의 뇌리에 선명한 수작 <게임의 법칙>이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같은 작품의 그의 각본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시나리오 작가 경력과 <은행나무 침대>로 시작된 연출 경력 사이에 위치한 영화가 한 편 있다. 그것이 비디오 영화로 제작, 출시되었던 <공포특급>이다.
 
그 때 그 책들
그 때 그 책들

90년대 초반에 ‘어린이’ 혹은 ‘청소년’의 정체성을 가지고 질풍노도의 시기, 주변인, 방관자, 아웃사이더라 명명된 시절을 보낸 분이라면 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매직아이」, 「월리를 찾아서」와 함께 함께 항상 회자되곤 하는 추억의 서적류 3인방 중 하나가 「공포특급」이었다. 여기저기 떠도는 괴담, 전설 등을 모아 펴낸 책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 책과 제목이 같다. 제목‘만’, 같다. (포스터는 상당히 흡사한데, 책 「공포특급」이 <13일의 금요일>의 포스터를 그대로 베꼈다면, 영화 <공포특급>은 그대로 내긴 좀 그랬는지 거기에 <늑대인간의 습격 Wolfen>의 이미지를 합성했다. 이러나저러나 베낀 것은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습작’이다. 3편의 단편(<국화>는 중편으로 쳐도 될 듯하지만)이 들어가 있는 옴니버스 영화인 <공포특급>은 책이 대유행했던 1993년 바로 다음 해, 1994년에 비디오 시장에 출시됐다. 사실 제목이 같을 뿐이고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로 보는 것이 옳다. <공포특급>의 단편들은 모두 오리지널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옴니버스 구성이야말로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인 강제규 감독의 상업적 감각이 보이는 대목이다. 어차피 연출 연습을 하긴 해야 하는데 괜히 독립 영화나 단편을 만들어 영화제에서 몇 번 틀고 묵히느니 이런 식으로라도 시장에 내놓아 제작비도 뽑고 평가도 받는 일석이조의 방법을 취한 것이다. 물론 쌩짜 연출자가 아닌 충무로의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겠지만 그런 기반이 된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시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강제규 본인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아닐까? 이후 그의 행보가 처음부터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던 바로 그 길임을 생각하면 영화가 대단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뚝심 하나는 정말 인정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1. 지하철 살인
 
범인
범인

제목을 보면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다룬 것 같다. 그렇다면 물론 클라이브 바커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공포특급>의 <지하철 살인>은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지하철’이 아니라 ‘지하철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격전과, 이유 없이 펼쳐지는 무차별 살인에 대한 공포를 시각화하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 지하철역이라는 공간은 많은 영화에서 다뤄질 만큼 매력적인 공간이긴 하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미로가 있다면 지하철역이 아닐까?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는 공간의 매력을 살리는데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다. 주인공의 기지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살인마의 모습이 엄청나지도 않다. 배우 김주영이 맡고 있는 살인마 역은 옆집 아저씨가 칼 들고 마실 나오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좀 더 현실적인 악역을 맡았다면 사람 좋은 얼굴과의 역설이 가능했겠지만 ‘지하철역’이라는, 현실과 괴리된 느낌을 주는 공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도망을 가고 쫓는 와중에 느닷없이 트위스트 김 선생님께서 출연하여 죽어주셔서 웃음을 주기도 한다.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 전미선이 주연을 맡고 있다.

2. 국화
 
최종 범인 그녀
최종 범인 그녀

방송사 간판 드라마 <국화>가 방영되면서 차례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죽어 나간다. 다름 아닌 드라마의 주인공 국화를 괴롭히던 악역들이 그 피살자. 다음에는 누가 죽을지 모르는 가운데 방송사 드라마국은 비상사태에 빠지고, <국화> 작가의 정체도 미스터리한 가운데 드라마는 종영하게 된다. 그 가운데 불안에 빠진 사람이 있고 작가를 찾는 경찰은 진실에 접근해 가는데... 

당시로는 나름대로 호러영화로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 보면 오히려 <드라마시티>나 <베스트극장>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한 에피소드다. 따지고 보면 막장드라마 같은 이야기라 좀 가벼웠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꽤나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여인이 미디어를 통해 복수한다는 아이디어가 꽤 신선한 감도 있다. 살벌한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3편의 에피소드 중에 가장 공들인 티도 나고 짜임새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러닝타임도 가장 길다.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고, 그에 부족함이 없는 연출이라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94년 당시에 봤다면 꽤 재미있었을 에피소드. 애석하게도 요새 보기엔 자극이 세지 않은 편이다. 

3. 13인의 피
 

앞서 <지하철 살인>에서 클라이브 바커를 언급했다. 그거야 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아닌가? 지하철이 우리나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3인의 피>를 본다면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셋 중 누군가는 분명한 클라이브 바커의 굉장한 팬임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에피소드는 ‘13’이라는 숫자가 암시하듯 지옥의 사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핀헤드는 나오지 않지만, 옷은 얼추 비슷하게 입혔다.

한 남자가 건물 안을 헤매다가 우연히 목이 칼로 그어져 죽어있는 여자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다 다른 남자에게 붙잡혀 모두 파출소로 오게 되는데. 최초의 목격자는 기억상실증이라며 횡설수설하고, 경찰에서도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목격자를 붙잡아 온 남자가 수상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면 앞선 모든 이야기를 통째로 맥거핀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실 이 정도로 달라져 버리면 반전이라 부르기도 민망해지는데, 그냥 안면몰수하고 ‘<헬레이져>의 분위기를 흉내내 보고 싶었습니다..’ 하는 느낌이다. ‘뜬금없음’이라는 것은 나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장르의 관점에서는 꽤 재미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점이 재미있어서 이 에피소드가 가장 좋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배우 김승우가 출연하고 있다.
 
헬레이저 분위기
헬레이저 분위기

위에서 ‘습작’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영화의 만듦새가 그리 깔끔하지는 않다. 게다가 호러 영화팬이라면 좀 뻔히 보이는 민망한 차용(표절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그렇고)들이 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문득 돌이켜 궁금해지는 것은, 강제규 감독이 왜 ‘호러’라는 장르를 자신의 습작으로 선택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후로 이어지는 작품들에 단 한 편도 호러 영화가 없으니 한국 호러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의 결론은, 1. 제작비가 적게 든다. 2. 당시만 해도 이 장르를 업신여기는 분위기여서 거의 아무도 완성도를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심심하면 별 생각 없이 대여점에서 빌려다 보는 장르가 또 호러. 4. 게다가 ‘공포’는 서사와 표현이 극단적으로 어우러져야 하니 연출 연습으로는 더 없이 경제적인 장르. 라는 점이 그의 필모에 어쨌든 호러 영화 한 편을 올리도록 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제임스 카메론도 호러 장르에서 기본기를 다졌음(본인은 부정하지만 어쨌든 연습을 하긴 한 거니까)을 생각해보면 뭐. 그럴듯하지 않나? 

<공포특급>은 하지만 지금은 유명 영화감독이 된, 자신의 영화로 세계와 쇼부를 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한 청년이 ‘여기서부터 시작이다’라는 깃발을 꽂은 지점이라는 것에서 한 번쯤 볼만 하다. 삐용삐용B무비에서 소개하는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많은 모자란 부분 속에서 나름의 매력이 조금씩 풍기는 그런 영화다.

전미선 (지하철 살인)
김주영 (지하철 살인)
신새길 (국화)
최학락 (국화)
조준형 (13인의 피)
방은희 (13인의 피)

감독: 강제규, 김희철
각본: 강제규, 김희철

개봉극장: 비디오 영화

공포특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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