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B무비]공포의 이중인간 이용민, 1974

by.허경(정발산 영화거구) 2014-03-20조회 9,138

B급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칼럼을 쓰다 보니 항상은 아닐지라도 ‘뭐 괜찮은 거 없나’ 하며 눈과 귀를 코를 쫑긋거리며 다니기 일쑤다.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을 테지만, 한국의 B무비란 참 애매한 것이다. 외국영화의 예를 든다면 그냥 정리가 가능할 텐데, 한국의 경우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뭐라 말하기가 정말 어렵다. 못 만든 거? 너무 많다. 이상한 거? 90년대 이전의 못 들어본 영화를 꺼내면 거의 다 이상하다. 그럼 웃긴 거? 그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름대로 이쪽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이래저래 찾고는 하지만, 소문 듣고 찾아보고 실망한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다 아는 영화를 소개하자니 티끌만 한 양심이 간질거려 매번 그러지는 못하고. 당연히 나와야 했을 몇 몇 영화가 아직 다루어지지 않는 게 그런 이유다. 이번엔 <로보캅> 개봉에 맞추어 맹구가 살해당한 뒤 ‘18만 2천 원’을 들여 사이보그로 활약하는 <18만 2천 원짜리 맹구>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자료원에 영상이 없어서 포기. 아쉬운 대로 캡콤사의 유명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를 패러디한 <맹구짱구 스트리트 화이어>를 써볼까 했으나... 나 자신을 속이는 일 같아 그만두었다. 쉽지 않다.
 
KMDb에도 없는 영화 <18만 2천 원짜리 맹구>
KMDb에도 없는 영화 <18만 2천 원짜리 맹구>

그러던 중, 얼마 전 극장에서 좀 멀쩡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싶어서 고른 게(‘멀쩡한’이라는 형용사를 써놓고 한 선택이 이거라니 나도 점점 맛이 가고 있는 것 같다)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이었다. 영제는 < I, Frankenstein > 아이작 아시모프가 띠요옹~ 했을 것 같은 원제를 지닌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그 프랑켄슈타인에다가 <스폰>을 갖다 붙인 이도 저도 아닌 영화였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이 질문이 미묘한 과정을 거쳐 ‘나는 악마와 싸우는 영웅이다’에 도착하는 그런 판타지. 건진 거라면 영화에 등장하는 가고일 여왕이 내 취향이었다는 것과 오늘 소개할 영화가 떠오르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장르영화가 그리 부흥한 적은 없었지만 그 시도는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시도’만 이어지고 있다는 게 눈물 쏙 빼는 이야기입니다만) 해외의 괴물, 귀신에 대한 수입 역시 영화사 초기부터 이루어지고는 있었는데 지난 주에 소개한 <우주괴인 왕마귀>도 그렇고 오늘 소개할 <공포의 이중인간> 역시 그런 시도 중의 하나다. 이용민 감독의 1975년 연출작인 이 영화는 한국판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청평 정신병원
청평 정신병원

 
에서 시체를 살리는 연구를 하는 정 박사 일당
에서 시체를 살리는 연구를 하는 정 박사 일당

영화가 시작되면,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쏟아지는 불길한 날씨를 뚫고 옥경이 길을 간다.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제법 그럴듯하게 괴기스러운 건물. ‘청평정신병원’(실제로 이런 병원은 없다고)에 당도한다. 이 병원에는 환자의 시신을 이용해 죽은 자를 깨우는 실험을 하는 정 박사(이예춘)가 조수 준호와 박 군이 있다. 이들이 하는 실험은 서양의 프랑켄슈타인과 좀 다르다. 메리 셀리가 제시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몸을 기계-장치로 생각했을 때 그것의 활동을 재생시킬 수 있다고 치고, 자아의 문제는 어쩔 것이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정 박사는 이 책을 봤는지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이에게서 영혼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뭐 이러나저러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들은 병원에서 일하던 박 간호사의 몸에 3명을 살해한 개망나니 남자 살인범의 영혼을 심었기 때문이다. 실험에 실패한 줄 알고 내다 버린 그녀는 벼락을 맞고 ‘작동’을 시작해 온갖 행패를 부리며 결국 자신의 몸을 바꿔놓은 정 박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녀가 이 영화의 제목이 지칭하는 ‘공포의 이중인간’인 것이다.

이 이야기가 적당히 잘 흘러갔다면 무척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용민 감독은 촬영 감독 출신으로, 지금 보아도 꽤 잘 찍었다 싶은 장면들이 많다. 특히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미장센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멀쩡한 영화라면 ‘한국영화걸작선’에 갔겠지 이 ‘삐용삐용B무비’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우선 정 박사가 이 실험을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정 박사가 죽은 자를 깨우는 실험을 하는 이유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로서의 긍지!인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청년시절 일본군 학도병이었는데, 당시 대장이었던 ‘오노 소좌’는 수많은 다이아몬드를 오대산 어딘가에 숨겨놓았다. 이 사실을 안 정 박사는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30년간(전쟁은 45년에 끝나고 영화는 75년에 개봉한다. 이 놀라운 디테일을 보라)죽은 자를 깨우는 실험에 실험을 거듭, 오노 소좌를 살려내 다이아몬드의 위치를 ‘물어보려’고 한 것이다. 그가 오노 소좌의 시체를 파내려 오대산에 갔을 때, 동행한 조수 박 군은 묻는다. 
 
괜한 소리해서 죽는 박 군
괜한 소리해서 죽는 박 군

“아니 이것 때문에 그 오랜 시간 연구를 하신 겁니까? 그냥 산을 전부 뒤졌으면 훨씬 빨리 찾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 박사는 “이놈이 내 다이아몬드를 노리는구나.”라며 그를 죽여버린다. 과연 매드 사이언티스트. 마치, 이렇게 묻는 관객들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는 감독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일단 전제가 이러하니 이야기가 잘 풀릴 리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어가고자 하는 무리수가 상당 부분 등장하는데, 이게 요즘 말로 ‘꿀잼’이다. 박 간호사의 육체에 살인범의 영혼이 깃들어진 여자는 영혼이 남자이므로 자신의 집에 찾아가 아주 당연한 듯이 행패를 부리는데 그곳은 본인의 빈소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불쌍한 아내를 패주고 나오다가 육체(박 간호사)의 딸을 만나 박 간호사의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린다.(박 간호사의 딸이 먹을 것을 주자 넙죽 받아먹는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다 다시 청평정신병원으로 찾아가 정 박사에게 복수를 하려는데 그곳에서 현재 간호사 옥경이를 만난다. 그러고는 ‘예쁘다. 너를 좋아한다’며 강간을 하려 한다. 여자 둘이 이러고 있는 사이 정 박사가 나타나자 문득 생각난 듯 그를 죽이려고 달려든다. 
 
목 부러져
목 부러져

물론 그의 시도는 실패. 결국 정 박사는 옥경이의 영혼을 이용해 오노 소좌를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 실험에서는 분명히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나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살아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되었다. 오노가 정신을 차리자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묻고, 옆에 있는 옥경의 육체 쪽으로 목을 잡아 돌리며 영혼을 옮겨 저 여자로 살게 해주겠노라 약속한다. 부패한 육체의 오노는 아주 힘겹게 말한다. “목..부...러...져...” 죽은 지 30년 된 자가 하는 말치고는 꽤나 신선해서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암, 목이 부러지면 큰일나지...

이외에도 재미난 부분이 상당하다. 물론 의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로선 다루기 어려운 소재였을 것이다. 1910년 토마스 에디슨이 최초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제작한 이후 많은 영화가 이 괴물을 다뤄왔다. 그러나 그 소재의 섬뜩함과 주제의 깊이가 당시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포의 이중인간>은 어찌 됐든 75년의 한국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무리수들이 등장하고 영화의 꼴은 좀 우습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좋다. 황당한 설정, 이상한 행동과 대사, 밑도 끝도 없는 연출이 얼기설기 엮여져 있으면서도 조명과 촬영이 상당한 수준이라 보는 재미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 봐도 지루한 부분은 거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당시로써는 보기 힘든 노출까지 담고 있어(왜 전라의 여자 실험대상은 전선과 반창고를 꼭 유두 부분에 부착해야만 했을까.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B급 공포영화에 바랄 수 있는 모든 부분이 충족된다. 안타깝게도 무섭지는 않지만, 다른 부분들이 그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는다. 
 
공포의 이중인간
공포의 이중인간

이용민 감독은 꽤 재미있는 이력을 가졌다. 촬영감독으로 더 많은 경력을 가진 영화인인데, 그가 기획하거나 연출했던 영화들의 많은 수가 공포영화다. <무덤에서 나온 신랑>, <악마와 미녀>, 특히 각본, 감독을 모두 맡은 <살인마>, <목 없는 미녀>, <공포의 이중인간> 은 나름대로 분위기와 재미를 잘 전달하고 있으니 공포영화 전문감독이라 불려도 좋지 않을까? 당시로써는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촬영, 편집을 해내고 있어서 내가 본 그의 모든 영화가 무척이나 좋았다. 좀 더 제대로 된 각본가와 작업을 했더라면 정말이지 걸작이 한 편 나올 수도 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 컬트, B무비라는 으레 언급되는 감독들이 있다. 그 사이에 이용민의 이름이 왜 들어가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에라도 많은 분들이 그의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더 많이 이야기될 (조금 다른 의미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P.S : 현재 KMDb VOD 기획전(2014년3/4월)을 통해 집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 참고 하시라.

이예춘
김옥진
진봉진

감독: 이용민
각본: 이용민

개봉극장: 중앙
관람인원: 6,886명

공포의 이중인간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