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삐용B무비]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 남기남, 1989

by.허경(정발산 영화거구) 2013-12-02조회 8,527

남.기.남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마찬가지인 이 이름은 마땅히 이 코너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그의 등장을 기다려 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쓰려 하면 곤란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그는 남철도, 남성남도 아닌 남기남이기 때문이다. 그는 임권택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더 많은 수의 작품을 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청기처럼 아동영화에 영화 인생을 걸지도 않았지만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아동영화의 최고 흥행작품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영구와 땡칠이>는 애초에 정식 극장 개봉도 못 하고 어린이회관을 전전하였으나 폭발적인 인기에 뒤늦게 극장으로 확대 개봉한 최초이자 최후의 사례다. 영화인들은 180~250만 사이를 최종스코어로 짐작하는데, 이는 어린이회관 상영에 대한 집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뿐이면 쉬울 것이다. 그의 현장은 전설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중화권을 돌며 짝퉁 이소룡인 ‘여소룡’과 권격영화를 찍을 당시, 허가도 받지 않고 대만의 한 사찰에서 촬영을 감행했다. 해당 사찰의 관련자들이 저지했음은 당연지사. 연출부와 제작부가 사정을 설명하고 옥신각신하다가 도저히 허가를 받을 수 없어 남 감독에게 더 이상 촬영이 어렵겠다고 전하자 그는 말했다고 한다. “찍긴 뭘 더 찍어. 다 찍었어. 철수!” 이뿐만이 아니다, 임하룡, 이성미와 함께 한 <철부지>의 촬영 현장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짧은 촬영 기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촬영 6일 차가 되던 날 점심시간이 되어 연출부 한 명이 “감독님 식사하시고 찍으시죠.”라고 말하니 “뭘 더해. 다 찍었는데. 밥 먹고 철수!”라고 응수했다고 전해진다. 제작 스태프조차 알 수 없었던 남기남 연출의 마술.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큘라>에 출연했던 개그맨 정종철은 본인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대체 내가 뭘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편집본을 보니 영화가 되어 있는 거예요.” 띠요옹~
 
남기남 감독과 작품들
남기남 감독과 작품들

 
남기남의 영화는 그런 것이었다. 70년대 유신정권하에서 대충 빨리 찍어 스크린쿼터를 해결하고 외화를 수입하려는 목적에만 눈이 벌개있던 제작사들에게 남기남은 소중한 존재였다. 적은 제작비로 휘몰아치듯 영화를 찍어 눈 깜짝할 새 개봉까지 해치워버리는 남기남은 일종의 해결사였고, 가끔씩 흥행에도 대박까지 터트리기도 하는 영화 제작자들의 로또이기도 했다.(실제로 남기남은 고 이주일과 함께한 <평양맨발>의 흥행으로 정부가 선출한 우수감독에 뽑혀 할리우드에 가기도 했다. 정부가 우수감독도 뽑아 할리우드도 보내주고 참 좋았던 시절이었나 보다.) 
 
그중에서도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은 가장 재미있는 사례다. 이 영화는 1986년 미국 ABC에서 방송된 <태권소년 어니>라는 드라마로 인기가 높아진 ‘어니 리예스 주니어’를 기용해 만들어진 영화다.(그는 스턴트맨을 거쳐 액션배우로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도 방송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1989년 12월에 개봉한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의 광고 카피는 “겨울방학 특선! 태권소년 어니가 영화에 나왔대! 잘났어 정말! 태권소년 어니!”였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어니가 아니라 마스터 킴이어서 과연 남기남 감독이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내용이 무슨 의미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느날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 ‘하바드 박’이 살해당한다. 그는 헤로인 밀수 조직과 연관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의심을 받는다. 그와 절친이었던 재미한인회 회장 신성일(끝까지 극 중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은 하바드 박을 친딸처럼 여기며 보살피는 와중, 유학을 위해 무작정 미국에 온 마스터 킴을 만나게 된다. 집도 절도 없는 마스터 킴은 비슷한 처지의 고아 마이클(어니 리예스 주니어의 극 중 이름은 마이클이다. 고로, 극 중에 ‘어니’라는 존재는 없다.) 만나게 된다. 고아원에서 배운 태권도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마이클과 마스터 킴은 친구가 되고, 그 둘을 의기투합하여 폭력과 마약, 섹스의 위험에 노출된 미국 청소년들을 계도하기 위해 태권도 도장을 차리게 된다. 그리고 하바드 박을 쫓던 헤로인 밀매상들은 마스터 킴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도장에 쳐들어오게 되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좌)마스터 킴과 마이클의 첫 대련 '허허, 이 녀석이!' (우)'어때 우리 이제 친구 되는게.' '난 너 같은 부랑아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
(좌)마스터 킴과 마이클의 첫 대련 '허허, 이 녀석이!'
(우)'어때 우리 이제 친구 되는게.' '난 너 같은 부랑아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

어설픈 연기, 계속 헛갈리는 내용, ‘남기남’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유치한 촬영 등을 조금만 참을 수 있다면 영화는 나름대로 즐길 만하다. 무술 유단자 바비 J 킴과 어니의 무술 연기는 상당한 수준이며(남기남 감독은 한 때 무협영화의 흥행사였음을 떠올리자) 유해한 환경에 노출된 미국 청년들을 태권도로 교화하자는 애국적 스토리가 심금을 울릴랑말랑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설이 된 이유는 영화 밖에 있다. 이 영화는 1989년 12월에 개봉을 했다. 89년 7월에 남기남 감독이 연출한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그게 <영구와 땡칠이>다. 한 해에 그가 감독한 영화가 복수로 개봉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이 <영구와 땡칠이>가 촬영되는 중간에 찍혀졌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남기남 감독은 <영구와 땡칠이>의 촬영 도중 세트 제작을 위해 1주일의 시간이 비었다. 미리 스케쥴을 통보받은 남 감독은 제작자 몰래 비는 시간 동안 미국에서 다른 영화 한 편을 더 감독하기로 계약하고, 스태프 6명을 데리고 출국해버렸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유는 이렇지만, 항간엔 심형래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는 상태여서 남기남 감독이 화가 나 그랬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89년 개봉한 김청기 감독의 우뢰매 시리즈 5편 <뉴머신 우뢰매>는 그런 심형래를 빼고 ‘한정호’라는 배우가 에스퍼맨을 연기했다. 이 역시 심형래의 폭거(?)로 인한 일이었으나, 그가 우뢰매에서 빠지자 우뢰매와 심형래의 인기가 동반하락, 6편에서 에스퍼맨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곳에서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을 뚝딱 촬영하고 돌아와 <영구와 땡칠이>의 남은 부분 촬영을 3일 만에 완료한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스터 킴을 맡은 ‘바비 J 킴’을 왕년의 액션스타 ‘바비 킴’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사람이다. 바비 킴을 따라한 콧수염 때문에 멀리서 보면 얼추 비슷해 보이긴 하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냥 한눈에 봐도 다른 사람이다. 바비 J 킴은 바비 킴처럼 마초의 기운이 희번덕거리지 않는다. 맘씨 좋은 아저씨 같달까. ‘폭력과 마약, 섹스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 청소년들을 태권도로 교화시켜보겠습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저씨가요?’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같은 대사를 원조 ‘바비 킴’이 했다면? ‘암요 그러믄요 미국 꼬맹이들은 혼 좀 나야지요.’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소룡, 성룡을 패러디한 배우는 많았지만 한국 액션배우를 패러디한 배우는 바비 J 킴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누군가 속은 기분이 든다면 이름에 J가 분명히 들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기 바란다. (누군가는 ‘남충일’ 무술 감독 같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마스터 킴의 사람 좋은 4종 세트
마스터 킴의 사람 좋은 4종 세트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은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어니’ 이름을 빌어 졸속으로 제작된 겨울방학용 어린이 영화였다. 포스터를 봐도 그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영화의 기둥줄거리가 헤로인 거래에 연루된 ‘하바드 박’의 죽음이고 여주인공이 납치되어 강간의 위험에 빠지질 않나(덩치가 산만한 외국 배우가 벨트를 푸는 시늉을 하는 장면이 있다) 급기야 태권소년 마이클이 별다른 힘도 못써 보고 총에 맞아 사망하는 아스트랄 한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홍종원이라는 설과 장현수라는(<게임의 법칙>의 그 장현수 감독이다.) 설이 있는데, 네이버 검색에는 장현수, KMDb에는 홍종원이다. 남기남과 꾸준히 작업을 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면 홍종원이 맞는 것 같은데 구글 검색에는 아예 장현수와 남기남이 공동감독으로 올라가 있으니 참 어지러운 지경이다. 하여간 각본을 누가 썼든 ‘감독 남기남’이라는 크레디트 아래서는 크게 의미는 없을 것이다. 남기남이라는 브랜드는 강하다. 

남기남 감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한물간 직업 영화감독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현재까지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0년 <동자 대소동>, 2011년 <달무리>를 연출했다. 마치 영화를 공장에서 뽑아내듯 해치웠던 그의 감독으로서의 태도에는 이런저런 이견이 있다. 하지만 그가 했던 작업들은 철저히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영화들이었다. ‘3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별명처럼 따라붙으면서도 묵묵히 영화 한 길을 걸어온 이 노장은 죽기 전까지 “그럼 다 찍지, 남기남?”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영화 인생을 이어갈 것이다. 그는 한창 무협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릴 무렵인 70년대 언젠가 촬영차 고향 광주로 내려갔을 때, ‘환영. 천재감독 남기남’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영화에서 예술적인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고 한다. 예술인으로서의 생존이 아닌,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직업으로 영화를 규정지은 것이다. 

‘장인’이라고 부르긴 힘들겠지만, 자신의 직업과 주어진 사명에 철저하게 몰입했던 영화인으로서 존경받을 구석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1년에 9편을 찍는 괴력은 그저 빨리 찍는데 통달했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해내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천재 감독’에서부터 ‘저질’까지의 극단을 오갔던 남기남 감독에게 나는 ‘음지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바치고 싶다. 

바비 J 킴
ERNIE RAYES.JR
신성일

감독: 남기남
각본: 홍종원

개봉극장: 한가람
관람인원: 203(서울)명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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