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 급하게 써낸 트리트먼트가 운 좋게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CJ E&M이 공동 주관하는 산학협력프로젝트 2기 개발작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한창 상업영화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일하는 중이었지만,
이창동 감독님께서 기획총괄에 시나리오 멘토로 참여하시는 과정이라 어떻게든 병행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던 순간도 문득 떠오른다. 드디어 모임 첫날, 나와 함께 뽑힌 3명의 동기들과 함께 설렘과 기쁨에 잔뜩 들떠 감독님을 기다렸고, 조금 늦게 오신 감독님은 우리가 제출했던 트리트먼트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세심하고도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내 작품에 이르러서는, 아주 짧고 굵은 한 방만을 날리셨다. “이야기가 너무 가짜 같지 않니? 핵심만 남기고 처음부터 다시 써봐. 진짜를 찾아봐.”
충격이 너무 커서 창피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난 그 후 한 달 넘게 글은 한 자도 쓰지도 못했고, 그저 멘붕 속에서 방황하며 그간 억지로 피해왔던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당시 내가 썼던 이야기는 서사적인 재미와 자극을 준답시고 소화도 못 하는 여러 장르와 장식들을 그저 전시하는 수준이었는데, 나 스스로도 왠지 모르게 이야기가 붕 뜨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고민하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이후 다시 간신히 마음을 붙잡은 나는, 8개월의 시나리오 개발 기간 동안, 대체 내 이야기 속에 ‘진짜’가 있긴 한 건지, 정말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무엇이었는지를 끝없이 자문하며, 새로 쓰고, 엎고, 또다시 쓰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이듬해 최종 제작지원작에 당선되고 나서도, 예상보다 훨씬 줄어든 예산에 맞추느라, 또다시 ‘진짜 중의 진짜’와 ‘핵심 중의 핵심’만 남기는 수정을 감행해야 했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시나리오 작업 기간 동안, 이야기 속 사건을 확장하는 대신 인물의 감정을 깊이 파고들려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쩐지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고 평이해졌다. 그래서 한편 또 다른 걱정이 들고, 불안감이 일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아이들이 주인공인데, 이야기가 너무 작고, 유치하고, 사사로워 보이는 건 아닐까. 하지만 긴긴 고민 끝에, 결국 내가 그토록 영화로 드러내고 싶었던 세계가, 바로 그런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들이 오가는 평범한 아이들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세계에서, 같은 마음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솔직히 직면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편해졌달까.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깐 되려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달까. 그다음부터는, 그냥 그런 나 자신을 믿어주기로 결심했고, 에라 모르겠다, 내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가장 큰 행운이 찾아왔다. 초짜 감독인 나와 이런 작은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고 큰 힘을 실어주는 영화사와 스태프들을 만난 것이다. 특히 조감독을 맡아주었던 나의 절친 슬기와
민준원,
김지현 촬영감독님은 이후 계속된 시나리오 수정 작업에서도 늘 아낌없이 거침없는 조언을 해주었고, 스크립터 유라와 연출부 리아는 때때로 나 자신보다 더 나를 믿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엔딩 신은 촬영 전날까지 붙들고 고민하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는데, 그런 미친 나를 대체 무슨 마음으로 다들 지켜보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다들 나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시나리오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힘을 쏟은 작업은 캐스팅과 리허설이었다. 사실은 2014년 중순에 작품을 준비하다 중단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대략 8개월을 캐스팅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동안, 영화사 아토의
김순모 제작 PD님이 나와 함께 직접 발로 뛰며 아역배우들을 찾았고, 직접 프로필을 받고, 직접 연락해, 방방곡곡 아역배우들을 만나러 다녔다. 사실 나는 이런 발로 뛰는 캐스팅 과정을 굉장히 좋아해서 프리 작업 중 가장 설레고 신나는 순간들이었는데(사실 예산이 없어 이 일을 맡길 다른 스태프도 없었다), 제작 PD님은 그 바쁜 와중에 그 모든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실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오디션은 우선 배우와 1:1로 만나, 30분가량을 일상에 관한 잡담만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차에서 추려진 배우들을 대여섯 명의 그룹으로 묶어, 2-3시간 동안 일종의 ‘연극놀이’ 오디션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나와 연출부들은 ‘선생님’으로 참여해 배우들을 이끌었고, 함께 간단한 게임부터, 몸풀기, 재연극, 즉흥극, 그리고 미리 준 대본을 바탕으로 한 상황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촬영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선’의
최수인, ‘지아’의
설혜인, ‘보라’의
이서연, 그리고 보라의 두 친구를 맡은
김채연,
김희준 배우를 만나게 되었다.
이후 리허설을 진행하며 아역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텍스트에 얽매이지 않는 상황에서 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생생한 연기를 펼쳐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 배우로서 자신이 어떤 역할인지, 어떤 감정을 연기할지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연기경험이 없는 어린 배우들을 불안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특히 연기 중에 진짜 마음이 다치는 일은 절대 없게 하는 게 제1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뭇 상반돼 보이는 두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고민이 있었고, 늘 조언을 구하던 연극놀이 선생님을 초빙해 특별 세미나부터 열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체 연기가 뭔지,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에서부터, 각자 일상에 겪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걱정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때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우리들만의 비밀로 남아있다!)
이렇게 나와 배우가, 또 배우와 배우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믿고, 의지하게 된 다음 최대한의 리허설 시간을 확보해 시나리오의 모든 신을 즉흥극으로 풀어보는 과정을 숨 가쁘게 진행했다. 내가 시나리오 속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필요한 대사를 알려주면, 배우들이 그 상황에 몰입해 자신만의 언어와 몸짓으로 그것들을 표현해보는 연습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하며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새로운 디테일들을 찾아내기도 했고, 인위적이고 불편한 부분들은 함께 고민해 수정해나갔다. 확실히 배우들과 직접 이야기하며 함께 장면을 만들어 가면서 비로소 명확히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다. 또한 콘티작업도 리허설을 관찰하며 병행했기 때문에, 그만큼 촬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대비를 해나갈 수 있었다.
단편 <손님> 때부터 함께해온
김세훈 라인 PD는 모든 면에서 훌륭했지만, 특히 로케이션계의 황금손이었다. 때로는 감독보다 더 예민하게 시나리오를 분석해 여러 조건들을 따졌고, 직접 발로 뛰어 끝끝내 장소를 섭외하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한편 영화 속 선의 집으로 나온 연립주택은 사실 재개발 지역의 빈집이었는데,
안지혜 미술감독이 집 내부에 가벽까지 세우면서 가구와 소품들을 채워 넣어, 마치 선네 가족이 평생 살아온 집처럼 보이는 마술을 부리기도 했다. 내가 콘티와 배우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동안, 스탭들은 각자 초저예산과 싸우며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여러 조건들을 가능한 것으로, 더 좋은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7-8월의 무더운 한여름 동안, 1억5천의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무려 30회차의 기염을 토하며 <
우리들>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어나갔다. 촬영 내내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기적을 만났다. 교육청의 도움으로 학교 섭외가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 어린 배우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챙겨주는 스태프들(특히
이시현 조명감독과
강나루 동시기사,
김동위 미술팀장은 모든 배우 친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현장의 아이돌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배우들은 더위와 피로와 나의 잔소리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을 만난 것, 회차 때는 쨍하다가 휴차 때만 비가 온 것, 깊이 몰입한 배우들이 시나리오에 없던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낸 것 등, 지금 꼽으래도 3박 4일은 이야기해도 모자랄 기적들이 가득했다.
물론 기적이 일어난 만큼 충격과 공포의 순간도 많았다. 나는 촬영 5회차 만에 현장을 뛰어다니다 발가락이 부러져 내내 깁스를 하고 다녔고, 더위를 먹은 어린 배우들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급기야 토하기도 해 촬영이 중단된 적도 있다. 또 우리는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담아내기 위해 한 번에 5분가량의 롱테이크를 소화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 때문에 촬영감독님들과 붐맨의 팔과 어깨는 매번 부서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촬영 말미엔 촬영감독님이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혼자 조용히 심각한 건강 검진을 받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매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엎고 메고 다니다 생긴 산업재해로 밝혀졌다. 게다가 30여 명의 4-6학년 초등생을 10회차 가까이 매일 상대해야 했던 연출부 친구들의 정신건강은 또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매일 자신의 인내심과 피로도의 수치를 새롭게 갱신하는 작업이다. 사실 우리 연출부들은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천사 같은 친구들이었는데, 어쩌면 바로 이번 촬영을 통해 평생 절대로 아이를 낳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후반 작업 역시 천국과 지옥의 연속이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즉흥적으로 연기한 장면이 많았고, 대사도 넘쳐났으며, 온전히 감정으로 진행되는 서사였기 때문에 더더욱 편집이 중요했다. 만약
박세영 편집감독(우리는 단편 <손님> 때도 합을 맞췄다!)이 아니었다면, 그 모든 소스를 함께 세심하게 훑고, 조각내면서, 그야말로 장면을 한 땀 한 땀 직접 만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우리는 주말도 반납한 채 장장 3개월을 볕도 들지 않는 편집실에 몽땅 쏟아부었다. 특히 많은 대사를 잘라내고 압축하는 과정에서, 사운드까지 아주 미세하게 편집해야 했는데, 때론 음절 단위로 대사를 조각내서 이어 붙일 정도였다. 덕분에 진도가 느려 때론 하루에 한 신을 편집하고 탈진해 앓아눕기도 했지만, 어떻든 반쪽이라도 완성하고 나면 또 묘하게 쾌감이 일어 종일 신나하기도 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강박적으로 편집을 하다가는, 결국 둘 다 편집증에 걸리고 말 거야!”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종종 주고받았는데, 사실 둘 다 진짜 그렇게 되고 있는 거 아닌지 몰래 서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단편 <
콩나물>부터 함께 했던
고아영 믹싱감독은 주인공 소녀의 깊은 감정들을 ‘호흡’을 통해 드러내려는 계획이 있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까 반신반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함께했던 경험으로 믹싱감독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결국
최수인 배우는 장장 이틀에 걸쳐 영화 전체, 모든 장면의 호흡을 재연하는 녹음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전체 믹싱을 들었을 때야 비로소 그 자연스럽고도 디테일한 표현에 무릎을 탁 칠 수 있었다. 한편,
연리목 음악감독의 스코어는 마치 자연의 소리처럼 아이들의 호흡과 목소리, 공간의 앰비언스 안으로 녹아들었다. 애초에 나는 메인 악기로 기타를 원했는데, 연리목의 적극적인 주장에 피아노곡을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가 바로 설득당해버리고 말았다. 감정을 억지로 과장하거나 일부러 고양시키지 않으면서도, 다만 그 자체로 감정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는 놀라운 음악이었다. 나의 애매한 주문에도 이렇듯 멋진 음악을 만들어준 연리목에 아직까지도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숨 가쁘게 영화를 쓰고, 찍고, 완성해 어느덧 개봉을 앞두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동안 그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는 것에만 무식하게 덤벼들었지, 정작 ‘개봉’이란 과정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또 이렇게 닥쳐서 헐레벌떡 개봉준비를 하면서야, 영화산업에 대해 간신히 하나둘 배우고 있다. 결국 관객을 만나야지만, 그 긴긴 시간 멋진 사람들과 꽃 같은 시간을 바쳐 만든 이 무언가가 비로소 ‘영화’가 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매일매일 새롭게 깨닫는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제 개봉까지 나흘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까지도 내가 정말 진짜를 쓴 건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을 잘 담아 찍어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여러 가지 착각과 잘못된 판단, 실수로 인해 빚어진 오류만 눈에 보이는데,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갖은 부끄러움과 후회가 치고 올라 매일 밤 몰래 훌쩍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나 혼자라면 절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모든 여정에 진심을 담아 함께 달려와 준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 어떻든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벌써 이 영화가 완전히 내 손을 떠났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남은 건, 오로지 관객분들의 평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결과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두렵고 또 두렵지만, 그래도 뭔가 배우는 과정은 되겠지. 그래 뭐, 잘 배워서 다음 영화 때 잘 하면 되지 뭐! 하면서, 다시 출발선에 서있는 나를 매일 매일 달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