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우정의 순간과 우정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셀프-포트레이트>(2020), <사갈>(2022)

by.박동수(영화평론가) 2022-11-29조회 3,489

이동우의 <셀프-포트레이트 2020>(2020)은 우정의 영화화를 시도한다. 영화는 아침부터 술에 취해 이동우에게 20만 원을 요구하는 이상열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보들레르의 말을 말라르메의 말로 착각하는 그는 오즈 야스지로나 하길종 같은 영화감독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그의 정체는 2000년 단편영화 <자화상 2000>(2000)을 통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등에 진출했던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뒤이어 벌어진 여러 불행으로 인해, 이동우를 만난 2017년의 시점의 그는 알코올 중독과 조울증을 앓고 있는 노숙자가 되었다. 이동우는 영화 속 자막을 통해, “집 앞에서 이상열을 처음 만난 날 그는 나에게 자기만큼 멋지다고 말을 걸어왔다. 심심했던 나는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라고 이상열과의 첫 만남을 밝히고 있다. 한때 유망한 영화감독이었던 이와 현재 주목받고 있는 감독의 만남은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이상열과 우연한 만남을 반복하던 이동우는 카메라를 들고 그와 동료 노숙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상열이 영화감독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즈음의 일이다. 영화 만드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이동우의 말에 이상열은 동료 노숙인을 스탭과 배우로 캐스팅하여 영화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이는 반복하여 좌절된다. 조울증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이상열은 구치소에 오가게 된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이 과정을 담아낸다.
 

이동우는 첫 영화 <노후 대책 없다>(2016)에서 자신과 펑크 동료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담아낸 바 있다. 영화제작을 의도하고 촬영된 것이 아닌 푸티지들을 편집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이동우 감독을 대리한다기보단 현장을 경험하는 또 하나의 인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무엇보다 <노후 대책 없다>의 카메라는 이동우만의 것이 아니다. 영화의 크레딧에는 이동우와 박수환, 두 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크레딧에 정확하게 담겨 있지는 않지만, 카메라가 두 사람 외에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을 것임을 영화 속 여러 장면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셀프-포트레이트 2020>의 크레딧에는 촬영이 따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동우 감독은 ‘연출’ 크레딧으로만 엔드크레딧에 올라가 있다. 이는 곧 촬영과 편집을 비롯해 엔드크레딧에 기재되지 않은 대부분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려준다.

크레딧에 자신을 단순히 ‘연출’ 역할로만 표기했다는 점은 이 영화 속 카메라의 사용을 떠올렸을 때 흥미롭게 다가온다. <노후 대책 없다>의 카메라가 ‘펑크 공동체’라 할 수 있는 곳에 속한 또 하나의 인물과, 다시 말해 관객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초대하는 것과 같았다. 반면 <셀프-포트레이트 2020>의 카메라는 촬영 크레딧을 따로 기재할 필요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이동우 자신과 결부되어 있다. 이 영화 또한 전작처럼 영화제작을 염두에 두고 촬영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이상열과 함께한 이동우의 시간에 관한 단순한 기록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온 것보다 같이 약속을 하고 시간을 보내러 왔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1)는 이동우 감독의 말처럼, 그 기록을 재구성하여 지금의 영화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촬영된 순간과는 별개의 사안으로 다가온다. 적어도 이 영화에 한정해서는.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이상열의 <자화상 2000>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이상열이 비디오로 소장하고 있던 15분가량의 <자화상 2000>과 메이킹 영상, 영화제 현장 영상은 이 영화 전체에 흩어져 삽입되어 있다. 특히 이상열이 구치소에 있던 2019년의 분량 대부분이 이상열의 영화와 영상들로 채워져 있다. 마치 이상열의 부재를 이상열이 찍었고 이상열의 과거가 담겨 있는 영상들로 대체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나라 평론가의 말처럼, <셀프-포트레이트 2020>의 구조는 “이상열의 영화가 이동우의 영화를 감싸 안고”2)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동우의 카메라가 찍을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조차, 이상열의 영화는 그의 다른 분신처럼 이동우 앞에 놓여 있다. 3시간에 가까운 영화 전체에서 이동우와 이상열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순간은 단 두 번이다. 하나는 이상열이 이동우의 집에 찾아온,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이다. 다른 하나는 출소한 이상열이 이동우와 함께 편의점 테이블에 만나 금주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이다.

영화의 부제 “나는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는 <자화상 2000>의 부제 “나는 나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를 잘못 말한 이상열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동우의 카메라는 두 사람이 함께 담긴 그 장면을 기록했고, 이동우의 영화는 두 개의 영화를 함께하는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의 부제는 단순히 이동우가 이상열의 지금을 자신의 미래처럼 느껴, 그를 일종의 반성적 거울로 여긴다는 말이 아니다. “나”와 “너”의 지칭이 뒤섞이는 순간, 카메라 앞의 대상이 모두 “나”이면서 “너”가 되는 순간을 향해 이 영화는 흘러간다. 그 순간 이 영화는 우정의 기록이나 증거가 아닌, 우정 자체를 관객 앞에 제시한다.
 

하지만 이동우 감독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사람이 나 때문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3) 이 말 한마디로 이동우가 <셀프-포트레이트 2020>과 영화 이후의 이상열에 관해 가진 생각을 갈음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신작 <사갈>(2022)을 통해 그것을 얼핏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사갈(蛇蝎)은 뱀과 전갈이라는 뜻으로, “남을 해치거나 심한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뜻한다. <사갈>은 이동우가 영화과 동기인 박건호를 오랜만에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채업자이자 도박중독자인 그는 돈을 버는 족족 술과 도박으로 탕진한다. 성실하게(?) 사채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다른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상황이 충족되는 순간에도 그의 손은 도박을 향한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이 우정의 순간이라는 찰나를 담아내기 위해 168분의 시간을 동원했다면, <사갈>은 156분 동안 박건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끝없는 실패를 담아낸다. 

사채업자라고는 하지만, 박건호가 수금해야하는 돈은 대부분 100만원이 채 되지 못하는 작은 돈이다. 5만원, 10만원, 20만원가량의 빚들은 불법도박으로, 돌려막기로, 또 다른 샛길들로 사라진다. 이는 사채를 쓴 채무자뿐 아니라 박건호 본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사갈>에 담긴 박건호와 그 주변 사람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무간지옥이다. 박건호가 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그는 어김없이 추락한다. <사갈>은 러닝타임 내내 그 과정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이 영화의 외형은 이동우의 다른 영화들과 유사하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길거리에서 적당히 촬영한 인터뷰, 상황을 설명하는 작은 폰트의 자막. 흥미로운 것은 이동우 감독의 존재 자체다. 세 편의 영화에서 이동우는 점차 자신의 출연을 줄여간다. <사갈>에서 이동우가 프레임 속에 들어오는 장면은 박건호의 본가에서 식사하는 그의 뒷모습 정도다. 박건호 등과 대화할 때 그의 목소리가 영화에 담기긴 하지만, 그의 모습 자체는 전작들에 비해 극히 적은 순간에만 등장한다.
 

반면 자막을 통한 이동우의 발화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사갈>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해서 "이 영상이 내가 만드는 마지막 다큐멘터리였으면 좋겠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전작이 이상열의 이야기였던 만큼이나 그와 함께하는 이동우의 이야기였다면, <사갈>은 박건호의 이야기를 담아내지만 다큐멘터리 자체에 관한 이동우의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끄집어낸 이야기다. 영화 중반 즈음의 자막은 박건호를 왜 찍기 시작했는지 까먹었다고 고백한다. 그와 더불어, 이동우는 자신의 영화 때문에 박건호가 불행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영화는 잠시 <셀프-포트레이트 2020> 이후의 이상열을 잠시 보여준다. 이동우는 이상열이 영화 촬영 이후 조울증이 심해지고 구치소를 들락거리며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헛된 희망을 심어준 것 같다는 죄책감을 토로한다. 그 죄책감은 <사갈> 전체에 맴돌고 있다.

<사갈>의 이동우는 이상열을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들고 박건호를 찾고, 박건호를 찍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이동우가 박건호에게 갖는 거리감은 관찰적 다큐멘터리라기엔 너무 가깝고, 참여적 다큐멘터리라기엔 너무 멀다. “이동우의 카메라가 이상열을 찍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이 무의미한 것처럼, “박건호를 찍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 또한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동우는 이 무의미한 가정을 토대로 누적된 죄책감을 토로하고 있다. “남을 해치거나 심한 혐오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제목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사갈>은 우정의 순간을 포착하여, 우정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관객 앞에 펼쳐 놓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람과 우정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판단을, 끔찍하게도 자기파괴적인 죄책감을 수반하는 그 판단을 고백하는 영화다. 

이동우의 고백대로, 그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박건호를 만났을 때 떠올렸던 생각은 그도 관객도 알 수 없다. 그러한 지점에서 <사갈>은 꽤나 비겁한 영화다. 이동우 감독의 생각을 옮긴 자막들을 보고 있자면 그가 박건호라는 ‘사갈’을 수단삼아 자신의 죄책감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준다. 혹은, 그러한 박건호를 찍어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는 자신을 ‘사갈’이라 지칭하는 것만 같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이 촬영된 ‘함께’의 순간을 ‘우정’으로 만들어가는 영화였다면, <사갈>은 어느 순간 ‘함께’일 수 없는 이와의 동행을 담아낸다. 우정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이후에도 이동우는 카메라를 들고 박건호를 찍었다. 그렇다고 <사갈>이 절교를 찍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관객은 이 영화 이후의 박건호를 모른다.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이동우가 박건호와, 이상열과, 동료 펑크들과 보낸 시간들이다. 관객은 영화 이후의 그들을, 그들과 이동우의 관계를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가능한 우정의 순간과 우정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을, 그 순간을 찍고자 그 순간과 뒤엉켜버린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동우의 영화들을 보고 난 뒤에 이러한 질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카메라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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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1 제12회 부산평화영화제/기록문 <셀프-포트레이트 2020> GV, 「부산평화영화제 아카이브」 2021.12.31, https://bpff.tistory.com/entry/셀프-포트레이트-2020-GV
2) 이나라,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수상작 비평 전문] <셀프-포트레이트 2020> : 불타는 우정의 자화상, 「씨네21」, 2021.10.12, cine21.com/news/view/?mag_id= 98724
3) 앞의 글, 「부산평화영화제 아카이브」 2021.12.31, https://bpff.tistory.com/entry/셀프-포트레이트-2020-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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