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맛있는 '망가니쿠'의 세계 ⑴

by.캐롯(웹툰 작가) 2018-05-03
망가니쿠

고기 중에 가장 먹음직스러운 고기는 무엇일까? 베고 자도 될 만큼 두툼한 사이즈의 티본 스테이크나 입에 넣는 순간 녹는 부드러운 양념갈비… 세상에 맛난 고기들은 많지만, 세상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고기는 바로 망가니쿠(マンガ肉)가 아닐까 한다. 망가니쿠가 어느 종의 어느 부위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풀이해 드리자면, 망가니쿠는 ‘만화 고기’라는 뜻의 합성어로 만화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식용고기를 의미한다.

이런 신조어가 생긴 것을 보니, 만화 속 요리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던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다. (짱구네 가족이 아침식사를 하면 묘하게 배고파졌던 게 내가 식탐이 많거나 오타쿠여서가 아니라고요! 뭐, 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애니메이션 속 음식들은 더 맛있어 보이는 걸까? 여기에는 멋대로 추측한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재료적, 조리적 특성을 더욱 극대화하여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 속 고기들은 육즙을 잔뜩 머금어 윤기도 자르르 흐르고, 뜯어먹을 때는 육질이 쫄깃하다 못해, 거의 찹쌀떡 수준으로 탄력적이다. 계란 후라이라도 할까 해서 달걀을 탁! 깨뜨리면, 흰자와 노른자는 마치 90년대 라텍스 장난감 만득이 마냥 탱글탱글해서, 이리 흐를 듯 저리 흐를 듯 덩어리를 유지한 채 프라이팬 위에서 춤춘다. 푸딩들은 수분크림CF의 CG 처리된 여배우들의 피부처럼 반짝반짝 탱탱하다. 메론빵을 가르면 안에 갇혀있던 황금빛 크림들이 질량보존의 법칙을 무시한 채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고, 피자의 치즈는 원피스 루피의 피부처럼 한계 없이 늘어난다. 이러니, 현실 속 요리들이 어디 명함을 내밀 수나 있겠는가 하는 이야기다.

두 번째, 등장인물들의 갖은 오버액션이 자연스럽게 허용된다. 실사 영화에서는 연기파 배우가 나온다고 해도(예를 들면 하정우 같은), 연기 범위가 손과 표정, 넓게는 어깨정도까지로 한정되고, 표정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정말로 맛있게 먹는 표현을 하고 싶다고 해도, 온몸을 연기하며 먹는다거나, 지나치게 과장한 표정으로 먹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나는 연기욕심이 많은 배우가 맛있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울상을 넘어 표정을 마구 일그러뜨리고 과장된 몸짓으로 먹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식욕이 조금 떨어지기까지 한다. 청개구리 심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저렇게까지 먹을 일인가, 하며 짐짓 거만하게 바라보게 된다. 게다가 체면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굶주린 느낌을 표현하고자 입에 마구 묻히거나 옷과 바닥에 음식물을 떨어뜨리며 먹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한 걸 볼 때는 배우가 연기를 하며 무척 찝찝하겠다거나, NG가 나면 다시 깨끗이 정리하고 촬영해야 했을 텐데…하며 조마조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라면 걱정 없다. 마구 흘리든, 목젖이 보일 때까지 입을 벌리든, 식사예절은 무시하고 있는 대로 쩝쩝 소리를 내며 먹든, 씹을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고기 육즙이 입 밖으로 마구 뿜어져 나오든 잡념이 마음을 괴롭힐 걱정 없이 오로지 먹는 장면에만 몰입할 수 있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는 치아가 몇 개 남지 않은 노인이 고기를 한입에 삼키기까지 한다.

이러한 ‘애니메이션 먹방’들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암시하고, 애니메이션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상상력과 친근감, 공감이 개입될 여지를 넓혀주는 등의 효과를 담당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시청자들의 경험 범위를 시각적인 것에서 미각적인 상상의 범위까지 확장함으로써 좀 더 공감각적이고 적극적인 차원의 감상으로 이끄는 것에 있다. 이것은 이 애니메이션을 장기기억장치로 넘기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즉,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추억의 000’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유년기에 TV 만화 시리즈를 시청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망가니쿠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고기든지, 케이크이든지 간에… 어릴 때 본 수많은 망가니쿠들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실제로 영향을 끼치며, 그들의 삶에 많은 영감이 되기도 한다. 망가니쿠를 재현한 음식들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에서부터, 망가니쿠를 진짜로 요리하는 만화가가 주인공인 드라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 망가니쿠의 흔적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결코 ‘그림의 떡’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 애니메이션 속 미식의 세계를 다음 화에서는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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