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시아, 예술, 극장

by.백종관(영화감독, 전 아시아예술극장 프로듀서) 2015-09-10조회 5,490
아시아, 예술, 극장

2015년 봄,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은 새 영화 <찬란함의 무덤 Cemetery of Splendour>을 완성했고 칸 영화제는 다시 한 번 그의 영화를 지중해 곁으로 초청했다.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찬란함의 무덤>의 상영이 확정되었을 때, 그 소식을 한국에서 누구보다 먼저 접하고, 누구보다도 더 기뻐했던 곳이 있었다. 그 곳의 이름은 <찬란함의 무덤> 엔딩 크레딧 공동제작자 리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Asian Arts Theatre(South Korea)’ - 아시아예술극장. <찬란함의 무덤>의 아시아 프리미어 상영이 열린 곳은 부산도 블라디보스토크도 아닌 광주에 위치한 아시아예술극장이었다. 10월의 해운대가 아니라 9월 광주에서, 어떤 이유로 아피찻퐁과 차이밍량이 함께 관객들 앞에서 담소를 나누게 되었는지. 아직은 생소한 이름인 아시아예술극장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그곳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먼저 아시아예술극장이라는 이름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아시아’라는 명칭도 가볍지 않은 어휘인데 거기에 무려 ‘예술’이라는 단어까지 극장 이름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아시아예술극장의 정식 명칭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시아예술극장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극장이라는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광역시, 옛 전남도청 주변 부지에 새롭게 문을 연 공간으로, 정부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계획” 추진 결과로 만들어진 복합 문화공간이다(‘아시아’의 ‘문화중심’이라는 프레임은 이미 10여 년 전에 규정된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는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등 다섯 개의 세부 기관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예술극장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기관의 성격을 조금 거칠게 설명하자면 문화정보원은 아카이빙과 교육, 문화창조원은 전시, 예술극장은 공연을 만들고 선보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전당의 보도자료를 보면, 아시아예술극장이 “창·제작 중심의 아시아 동시대 공연예술센터”로 소개되어있다. “창·제작 중심”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예술극장은 이미 완성된 작품들을 초대하여 보여주는 것보다 직접 아티스트를 섭외하고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아티스트와 작업하고, 어떤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이것에 대한 단서는 위 보도자료에서 “아시아 동시대 공연예술”이라는 문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소위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불리는 작품들. ‘동시대 예술’이라는 것이 본디 형식적인 장르나 규범에서 벗어나는 시도들을 일컬어 왔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예술인가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는 것 자체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예술극장 ‘아워 마스터’ 프로그램을 큐레이팅 한(‘국제 공연예술계의 대모’라 불리는) 프리 라이젠(Frie Leysen)의 풀이를 참고하자면 그것은 “우리 동시대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이며, 동시대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예술가가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소통언어”를 사용하는 작업이다. 
<찬란함의 무덤>(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그의 죽음은 의뭉스럽다>(라야 마틴)
<찬란함의 무덤>(아피찻퐁 위라세타쿨) <그의 죽음은 의뭉스럽다>(라야 마틴)

이쯤에서 아시아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 라인업을 한 번 살펴보자. (나를 포함한) 영화를 애호하는 이들에게는 차이밍량,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라야 마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의 익숙한 이름이 아무래도 먼저 눈에 들어오기 쉬울 것 같다. 기본적으로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곳인 아시아예술극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술극장이 만들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경계 짓기’에 대해 사유하고자 하는 ‘동시대 예술’이기 때문이다. 개관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예술극장은 기존의 예술 장르 구분에 구애받지 않은 채 아시아의 동시대성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아시아 작가들을 찾아다녔고 그 결과 차이밍량, 아피찻퐁 위라세타쿨 등의 영화감독들과도 접촉하게 되었다. 

아피찻퐁의 경우, 그는 이미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전시 경력을 통해 현대 미술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는 등 영화 이외의 매체를 통해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었다. 그가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준비하던 영화의 아이디어(“전쟁과 사랑, 꿈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정교한 미로”, “열병에 걸린” 태국 사회에 대한 반추)는 예술극장의 비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에 아시아예술극장은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하며 그에게 영화의 내용과 연결되는 공연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었다.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서 공개된, 영화 <찬란함의 무덤>과 공연 <열병의 방>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아피찻퐁은 예술극장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게 영화와 공연은 같은 개념이다… 다만 새로운 장치들, 새로운 규칙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상영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 등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을 찾은 바 있는 라야 마틴은, 이번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을 통해 영화가 아닌 공연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는 필리핀 코딜레라라는 산악 지역에서 반정부 투쟁을 이끌었던 그 지역의 ‘영웅’, 페드로 둥곡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배경으로 한 공연 <그의 죽음은 의뭉스럽다>를 만들었다. 라야 마틴의 기존 작품 대부분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형태였지만, 영화라는 틀 안에서 그는 이미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통해 필리핀의 역사 그리고 영화의 역사에 대해 발언해 왔다. 그랬던 그가, <오토히스토리아>(2007)에서 역사적 인물의 재현 모델을 교묘히 비틀어보았던 라야 마틴이, 이번에는 그것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다시 변주해 낼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개관 페스티벌 라인업 중에서, 올해 베니스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된 자오량 감독의 설치-영상 작업 <자오량 프로젝트>도 씨네필이라면 관심 가져볼 만한 프로그램이다. 

아시아예술극장은 공연을 올리고 이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체가 아니라 국가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국가 차원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들여, 다른 장르도 아닌 ‘동시대 예술’을 제작하고 전파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매우 힘든 사례다. 작품 제작을 위해 연락을 주고받았던 다른 나라의 작가들, 제작 실무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아시아예술극장의 존재를 부러워했다. 전후 맥락이 어찌 되었든, 한국은 거대한 규모의 컨템퍼러리 아트센터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기관이 최초의 비전대로 “아시아의 예술이란 무엇인지, 동시대 예술이란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을 포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왜 이런 질문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사유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제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러한 작품들은 아피찻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공연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극장의 비전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페스티벌이 지속되어, 동시대성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영화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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