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Testimony 임권택, 1973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4-11-26조회 14,200
증언 스틸이미지

한국전쟁 이후에 한국전쟁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할까? 영화는 처음에는 그렇게 물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런 다음에는 한국전쟁은 어떻게 경험되는가, 라고 질문을 바꾸었다. 전쟁의 시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한국전쟁을 장르영화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아마 그 자리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북한은 한국영화에서 신비로운 타자가 되었다. 추운 나라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사람들은 할리우드 SF영화에서 나타난 ‘인간의 마음을 가진’ (포스트모던) 사이보그들처럼 보였다. 주체의 분열. 아니, 차라리 환자라고 부르고 싶은 증후들의 집합. 여기엔 무언가 우리가 합류할 수 없는 접근불가능이라는 어떤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논점을 놓치면 안 된다. 한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전쟁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적인 정치적 역학들. 아직도 베일에 싸인 배경. 그 대신 여기서는 전쟁 이후의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지금 프리모 레비를 떠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생명과 증언이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고 그런 다음 다시 살아남았다. 구태여 다시, 라는 말을 쓴 것은 그 사이에 놓인 해방 직후의 좌우익 대립을 셈에 포함시킨 것이다. 역사의 자기 파괴적인 변증법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레비는 가라앉은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여기서 남은 자들을 구조 받은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전쟁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데올로기로 둘로 나뉜 민족은 서로 무자비한 살육을 시작하였다. 기록들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참혹하다. 휴전이 시작된 다음 ‘빨갱이’는 시민권을 박탈당한 자처럼 처리되었다. 단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연좌제라는 법의 새로운 항목으로 그들의 가족들까지 그 범위는 확대되었다. 그들은 범죄자들보다도 더 가혹한 취급을 받았으며, 어쩌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제공되는 어떤 배려도 없이 삶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야만 했으며,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증언도 금지되었다. 나는 지금 임권택을 말하는 중이다.

증언

당신에게 다소 양해를 구한 다음 나는 약간 소설처럼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임권택 감독님과 처음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이어진 긴 인터뷰를 하면서 <증언>에 이르렀을 때 한참을 멈춘 다음 몹시 고통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날이 며칠인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 기나긴 한숨소리는 바로 지금 곁에서 금방이라도 들리는 것만 같다. 이것만은 정말 내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였어요. 그 말이 첫 대답이었다. 나는 대답을 위해서 알리바이를 덧붙일 생각이 없으며 상황을 감상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인) 영화진흥공사는 1973년 4월 표면적으로는 ‘한국영화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영화제작에 나섰지만 내용은 국책에 따른 반공영화 제작이었다. 국방부가 이를 후원했으며 사단병력과 화력장비를 동원하여 전쟁장면을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지만 영화진흥공사로부터 허락받은 시나리오로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거절하면 되지 않나요?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신은 그때 막 유신정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부기관들은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는 것은 ‘반국가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서 신고의 대상이 되었다. 임권택에게는 이중의 난관이 있었다. 하나는 이미 그 자신이 부모님의 빨치산 경력으로 인한 연좌제 보호관리 대상의 가족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부모님만이 아니라 외가쪽의 친척들이 해방 직후 좌익 활동에 대부분 포함되었으며 그 중에 일부는 한국전쟁 동안 입산을 해서 빨치산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대구 교도소에서 총살을 당했고, 또 일부는 그 이후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실종되었다. 어떤 이는 ‘조선 인민공화국 해방군’이 후퇴를 할 때 함께 북에 올라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의 말로는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도 하지만 더는 안부를 알 수 없었다. 1973년은 전쟁이 휴전한 지 고작 20년밖에 흐르지 않은 다음의 일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다른 하나는 그 자신에게 내면적인 고문이었다. 임권택이 제안 받은 영화는 한국전쟁에 관한 반공영화였다. 물론 임권택만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만희는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그리고 김수용은 <전쟁의 얼굴>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의미. 1973년에 이르러 임권택은 긴 시간 동안 사극, ‘다찌마와리’ 영화, 만주 웨스턴, ‘나미다’ 멜로드라마, 홈 코미디, 첩보영화, 무국적 무협활극을 찍었으면서도 이만희, 그리고 김수용의 반열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임권택 자신의 말을 빌리면 “내가 비로소 영화감독이라는 책임을 갖고 만들고 싶었던” 영화, 그때 막 단 한 편 <잡초>를 연출했을 뿐이었던 그 해였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임권택에게 곤궁이 되었다. 자신이 국책의 도구가 되어 본의 아니게 부모의 선택을 비판하는 자리에 불려가게 된 꼴이 되었다. “내가 부모님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욕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임권택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자리에 불려갔다. “영진공 사장이 보자고 불러서 갔죠.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생판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사장 옆에 앉아서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공사 안에서 후반 작업들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을 다 아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그 옆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나한테 오래 전에 나도 잊어버린 친척 이름을 대면서 그 사람 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 친척이 한국 전쟁 때 산에 올라간 분이거든요. 그러면 도리가 없는 거예요” 완전한 수동성 안에서의 최소의 능동적인 선택. 그는 하여튼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는 어떤 합리적인 논의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해야만 한다. 역사에서 칼을 배제하고 그것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칼을 손에 든 그 앞에 자신의 부모의 삶과 시간이 놓여있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정신분석에 기댄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임권택의 트라우마. 임권택의 증후. 임권택의 오이디푸스. 임권택의 안티고네. 임권택의 늑대인간, 임권택의 억압. 임권택의 불안. 임권택의 대상-원인. 임권택의 (...) 등등. 대신 이때 임권택은 어느 자리에 놓여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다시 배치라는 문제. 말하자면 영화의 실행 안에서의 푸념 섞인, 때로는 불안에 가득 찬, 그래서 종종 자포자기해버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끝까지 그 자리를 향해 이동하면서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시네마틱한 역량의 위상기하학. 그 안에서 숨겨있을지도 모르는 예술의 조그만 힘은 어디로 이동하고 역사의 이면에 있던 개인의 작은 단위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척하면서 어떻게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가. 나는 약간 이 영화에 전략적으로 다가서고 싶다. 그 안의 불안정성. 몹시 위험한 말이지만 (대부분 버림받은) 1970년대 한국영화에 내가 매혹되는 순간은 과도할 정도로 요구되는 검열의 방어 속에서 그 틈 사이로 들어가 각자의 전략을 수행하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불안정한 상태를 발견할 때이다. 그때 무언가 부서지고 있다. 나는 그걸 바라보면서 봉쇄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로서의 불안정성을 생각한다. 스피노자를 흉내 내서 설명하고 싶다. 거미처럼 칭칭 동여매고 감싸 안을 수 없을 때,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내려다볼 수 없을 때, 두더지처럼 그 아래로 파고 들어가고, 그래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밑바닥을 뒤흔들기 시작해야 한다. 그게 거의 무의미할 지라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기가 실존할 자리의 확보를 위한 안간힘. 그런 다음 그 안에서 살아가기. 거기에서 우리가 보는 자기 삶에 대한 제작자로서의 역량. 이를테면 김기영의 <>. 유현목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김수용의 <웃음소리>, 이만희의 <04:00 -1950->. 아마 임권택도 그런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마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몹시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화의 제목은 <증언>으로 결정되었다. 임권택은 이 영화 안에서 아무 것도 증언해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김강윤이 각본을 쓴 이야기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는 거기에 아무 것도 더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재현(해야만)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 곤궁은 우리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사태를 훨씬 불안하게 만든다. 아무 결정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영화를 수행해야만 한다. 수행의 역설.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은 해야만 합니다. <증언>은 단순한 역설에 대한 증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영화에서 삶이 어떻게 통합되고 그 안에서 주체가 어떻게 분열되며 다시 그 안에서 고난이 어떻게 그 수행을 기록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시선과 광경 사이의 교차. 우리들의 관람과 영화의 광경. 물론 <증언>의 주인이 임권택이라는 식으로 등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평의 수사학 안에서 그런 식의 순진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도식적인 작가주의 관점을 버린 지 오래이다. 임권택은 그 영화 안의, (그런 다음 다시) 그 중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증언>에서 이야기의 문자를 재현시키는 일을 수행해야할 임무를 지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임권택이다. 그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내 말의 핵심은 바로 여기서 이 상황을 일반론으로 환원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언제나 특수한 조건이며 일회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언제나 이미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사건 안에서 모두 살아야 한다. 그 자리가 배우이건, 촬영이건, 조명이건, 프로듀서이건, 영화감독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임권택은 <증언>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박순아
박순아

장욱 소위
장욱 소위

<증언>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산산조각 난 영화이다. 이 말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의 전체가 있었는데 그게 어딘가에 부딪쳐 마치 실수를 해서 떨어트린 거울처럼 깨져버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총체적인 관점? 거기서 참조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는 그 시대의 불행? 그 어떤 요구에 대한 어떤 두려움? 어떤, 어떤, 어떤, 대답할 수 없는 어떤, 이라는 지칭.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증언>을 보는 내내 그게 한 편의 영화라는 내재적인 자기규정 말고는 마치 서로 다른 층위의 순간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처럼 제각각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첫 인상이었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고전적인 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의 계보에 속하는 방법의 자장 안에 있다. 언제나 그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이보다 더 동선이 반복해서 수없이 끊겨나가면서 마치 매번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경우는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없다. 그게 검열 때문은 아니며 미학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이걸 각본의 실패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게 보인다. 이 시나리오는 기능적으로 쓰여 졌다. 여기서 기능적이라는 표현은 제작에서의 역할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김강윤은 <증언>의 제작 방법을 염두에 두고 연출의 입장에서 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최소의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전쟁을 도발하고 그날 정오 무렵 박순아의 연인인 17연대 장욱 소위는 잠시 데이트를 하다가 재빨리 귀대한다. 서울은 함락되고 한강다리를 건넌 박순아는 피난을 가면서 전쟁의 수많은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그 수많은 참상의 씬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심지어 이 영화는 줄거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편리한 서술 장치는 끊임없이 개입하는 박순아의 설명(voice_over_narration)이다. 이 설명은 근본적으로는 <증언>에서 (이제는 사라진) 대한뉴스와 같은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상황을 설명하고 (주인공을 대신해서) 선과 악을 구별한 다음 평가를 내리고 때로는 신의 시점에서 전쟁에 대한 훗날의 역사적 평가까지 내린다.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 그걸 이용해서 임권택은 때로 재빨리 전체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하고(master_shot) 갑자기 시간을 옮겨가거나 조건이 바뀌었을 때 보충을 하고(transitional shot) 그런 다음 다루기 까다로운 경험에 대한 감정적인 설명을 한다. 화면 바깥의 목소리는 때로 이 영화의 시제를 모호하게 만든다. 가장 쉬운 방법, 그만큼 나쁜 모델. 나는 여기서 간단하게 평가에로 달려가는 대신 잠시 머물면서 질문하고 싶다. <증언>을 보고 있으면 명백히 순서대로 찍지 않았고(못했고?) 그 해 여름 영화 현장에 도착하는 군부대의 조건에 맞춰 촬영이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장면에는 대규모 군부대가 이동하고 있고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찍었기 때문에 (아마도) 인근부대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큰 규모의 전쟁장면과 최소의 출연진으로 이루어진 배우들로 찍을 수 있는 소규모의 장면들이 번갈아 오가도록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 중의 일부가 빠진다고 해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장면을 찍지 못했다 할지라도, 전체 구성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는 진행을 염두에 두고 씬을 배치하였다. 물론 각자의 시퀀스 안에서 진행되는 유기적인 쇼트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과장될 정도로 이 영화는 시퀀스 단위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퀀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진행될 때 여기서는 단지 사건의 조각난 단위가 아니라 경험의 파편이라는 내면의 붕괴에로 이끌린다. 이건 예기치 않은 재난이거나 아니면 이미 각오한 희생일 것이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증언>은 재난이거나 희생이다. 후렴구처럼 반복해보고 싶다. 재난이거나 희생. 어떤 피난처도 없을 때 맞이해야 하는 상황 앞에 서서 고스란히 느껴보는 고통. 

증언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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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할 때 정확하게 거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시계가 가리키면 포성이 울리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포를 쏘는 장면이 연달아 보여진다. 무료할 만큼 반복되는 쇼트. 아무런 긴장도 없는 쇼트의 연속. 우리는 이미 이 영화가 한국전쟁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게다가 이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대포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장면은 대포가 포격을 하는 쇼트는 있지만 이 대포를 누가 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똑같은 의미에서 그 대포가 목표로 하는 대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시퀀스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이외의 어떤 진술도 없다. 내가 여기서 읽어내고 싶은 것은 전쟁이라는 사건과의 사이의 거리이다. 그때 느껴보는 공포는 이 영화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1973년의 구호를 떠올려야 한다. “잊지 말자 6.25, 쳐부수자 공산당” 교실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이 구호와 함께 생활했다. <증언>은 만들어지고 난 다음 모든 학교의 학생들에게 의무 관람을 시켰다. 이때 <증언>은 한국전쟁에 대한 공포를 전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여기에 전혀 반대의 두 종류의 관람객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물론 한국전쟁을 본 적이 없는 전후 세대이며 다른 하나는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세대이다. 이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고작해야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을 때였다는 점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공교롭게도 어른들과 아이들로 정확하게 그 경험의 여부를 나눈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 사회 안의 절대적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경험. 그들은 그 경험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경험? 그러나 전쟁이란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경험을 소유하는 것이다. 각자의 피난. 각자의 생존. 그 경험에 보편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이 가르치려고 한 것은 공포가 아니었을까. 이때 영화는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참 좋은 때로구나"
"참 좋은 때로구나"

증언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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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새벽의 포격 시퀀스에 이어지는 장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필요 이상으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보내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다. 주인공 순아가 하숙을 하는 집주인 아줌마(황정순)가 그걸 바라보며 한 마디 거든다. “참 좋은 때로구나” 좋은 때. 참 좋은 때. 그날 전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날이 좋은 때라는 것은 한국근대사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표현이다. 해방직후 대한민국과 조선 인민공화국은 각자의 방식의 권력투쟁에 몰두하면서 한 쪽은 무자비한 숙청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미군정 아래 좌우익의 대립이 피비린내 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좀 더 간단한 설명이 있다. 거의 같은 시기를 다룬 임권택의 두 편의 영화 <증언>의 도입부와 <깃발 없는 기수>를 비교하면 된다. 전력의 대부분을 신의주 수력 발전소에 의지하던 한반도에서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에 공급을 중단했으며 경제적으로 남한은 북한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인 상태였다. 모든 것이 뒤숭숭하던 시절.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일요일은 참 화창했다. 그날 동대문 운동장에서는 야구경기가 있었고, 서울 시민들은 뚝섬에 나가 한가로운 한강에서 초여름 바람을 맞이하였다. 물론 그날 열일곱 살 임권택은 고향인 전라남도 장성에 있었고 이 모든 풍경은 시나리오를 쓴 김강윤의 기억일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그날 서울에 있었다. <증언>에 얼마만큼의 역사적 고증과 그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객관적) 기록이 담겨있는 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건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권택의 ‘증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임권택의 ‘증언’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태백산맥>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로부터 30년 후의 이야기이다.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는 동안 전쟁이 시작된다. 25일에 휴전선을 넘은 다음 북한군의 탱크는 이틀 후인 27일 미아리고개에 나타났다. 서울 시민들은 그제야 피난을 준비했고 (이승만 정부는 휴전선에서 ‘괴뢰군’을 격퇴시키고 있다고 방송을 했다) 28일 새벽 2시 30분 북한군의 남침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국군은 한강다리를 폭파하였다. (이승만 자신은 이미 피난 간 다음에도 서울을 “시민들과 함께 死守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 작전은 후일 효과가 없었으며 피난민들만 서울에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판결에 따라 폭파 명령을 시행한 책임자 최창식 대령이 9월 21일 사형을 당했다. 영화 <증언>은 사형 판결을 다루지 않지만 최창식 대령을 둘러싼 한강다리 폭파에 대해서 주인공 순아를 버려두고 긴박하게 오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피난민 대열에 섞인 순아는 이 결정을 알지 못하며 순아의 애인인 장욱 소위는 (마찬가지로 그 결정을 알지 못한 채) 그 다리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마지막 소대의 지휘관이다. 그리고 이 다리 폭파장면을 위해서 전조명 촬영감독은 일본 특수촬영 팀과 (그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미니어처 촬영을 별도로 하였다. (<증언>의 촬영감독은 서정민이다) 지금 보면 이 장면은 매우 조악해서 전쟁장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본 괴수물의 세트처럼 보인다. 내 설명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 장면은 공을 들였지만 효과적이지 않으며 기술적 수준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패배와 살육으로 가득 찬 이 영화의 무드에도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로 보인다.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아직 디지털 특수효과가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그때 할리우드 영화는 <에어포트>를 시작으로 재난영화(panic films) 장르의 붐이 막 시작되고 있었으며 <포세이돈 어드벤처>, <대지진>, <타워링>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었고 이 영화들은 <증언> 맞은 편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어쩌면 <증언> 제작진은 이 영화를 전쟁영화이면서 동시에 재난영화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약간 바보같이 반문하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되면 여기서 한국전쟁에 대한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때 <증언>이 요구하는 진실의 효과는 무엇일까. <증언>의 메시지는 이 영화를 국책영화라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과 달리 모호한 구석이 사방에 출몰하기 시작한다. 
 
증언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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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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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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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증언>은 전체적인 균형을 무시하고 긴 시간 동안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전체 상영시간 1시간 55분 중 한강다리가 끊어지는 순간은 30분 55초에 이르러서이다. 수많은 전쟁장면이 뒤에 기다리고 있으며, 게다가 한강다리 폭파장면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 이것은 실패한 작전이며 여기서 피난을 가던 서울 시민들은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한밤중에 강을 건너다 죽음을 당했다. 이 장면에서 순아가 죽음을 맞이하면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퀀스 전체는 순아의 동선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증언>은 한강다리 폭파 시퀀스를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다리 폭파를 결정하는 장교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번 다시 영화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하게 마치 저승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이승만의 목소리가 서울을 빠져나갈 때까지 여기저기 화면에 울려 퍼진다. 아마도 잡음과 함께 뒤섞인 소리들은 오래 전의 라디오 방송에서 가져온 테이프에서 고스란히 시간이 묻어나오기 때문이겠지만 반대로 <증언>에서 이 순간의 역사적인 실재는 오로지 이 목소리뿐이다. 시간의 결.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목소리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라는 실재와 대면하는 인공적인 이미지로서의 영화. 게다가 이 장면은 밤에 진행되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약점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실재와 외양, 경험과 풍문, 역사적인 증언과 인공적인 스펙터클, 영화와 라디오, 그리고 영화라는 훈련에 동원된 군대와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이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광경이 펼쳐진다. 광경? 그렇다. 이상하게도 서로 쌍을 이루면서 이 둘 사이의 간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좁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보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광경이다. 이를테면 피난민을 연기하는 엑스트라들의 무리와 진군하는 국군들이 교차하는 사이에서 김진규엄앵란이 마이크를 들고 군인들을 독려하는 웅변과 그들 곁에서 노래를 부르는 부인회의 모습은 얼마나 기괴한가.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지금 상황이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듯이 한가롭게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증언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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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은 그런 다음 순아가 한강을 도강해서 피난민 틈에 끼어, 때로는 남침하는 북한군 무리들과 함께, 그리고 위험한 순간마다 국군을 만나 구조를 받으면서, 낙동강을 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연인인 장욱 소위를 찾고 있으며, 장욱 소위는 그녀와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서울 수복을 하는 그 순간 시청 앞 광장에서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경례를 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죽음으로 퇴장을 한다. 그때마다 그 증인으로 순아는 매번 그들의 시신 곁에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역할을 떠맡는다. 순아가 그걸 지켜볼 때 비분강개한 목소리가(voice_over_narration) 나타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그 목소리가 이상한 것은 그 주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순아가 그 증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또 다른 증인이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시간적으로 지금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탈구된 상태로, 그 목소리는 자율적으로 화면을 향해서 중계방송 하듯이 진행된다. 그러나 이것은 ‘證言’이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지금 눈 앞에서 전개되는 이미지가 일종의 주관적 착시라고 설명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조차 이 목소리는 우리들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원래 이 목소리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바라보는 우리들을 차갑게 만든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서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오작동을 일으킨 경우이다. 혹은 정확하고 올바르게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배신하고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목소리의 미학적인 차원을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와 약간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장면보다 목소리가 먼저 울 때 슬픈 감정을 느껴보는 대신 자기의 기회를 빼앗긴 관객은 슬픈 영화를 쳐다보기 시작한다는 고전적인 시나리오 이론이다. 나는 단순하게 서투른 작법에 대해서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걸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보길 제안하고 싶다. 이 순간과 마주할 때 이상하게도 이미지에 목소리가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 이미지가 설계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미지를 먼저 보여준 다음 목소리가 뒤따라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목소리는 마치 특이한 환상에 대한 보충설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특이한 환상? 한국전쟁이라는 환상. 우리는 지금 이 전쟁이 순아의 피난길을 따라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녀 앞에 적과 아군이 번갈아 나타나 전쟁을 연기하는 중인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나는 한강다리에서 연출된 이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을 본 다음부터 마치 전쟁을 연출하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되었다. 

요점은 간단하지만 좀 기괴하다. <증언>은 곧장 전쟁에 들어가는 것을 한참 망설였다. 전쟁이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을 “참 좋은 때”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한강다리에서 현실적인 감각을 완전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 다시 긴 시간을 보낼 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를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만드는 씬들 사이의 교차가 몇 번이고 이루어진다. 여기서 한강 다리 폭파장면까지는 긴장감이 넘치는 대신 이상할 정도로 지루하고 길게 이어지면서 거의 지칠 만큼 늘려 놓았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일부 장면이 생략이라도 된 것처럼 순아는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다. <증언>에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한국전쟁을 경험적으로 재현하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오히려 이것이 더 진정한 목표인데)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참 좋은 때”가 무너지고 언제든지 다시 지금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한국전쟁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가능한 재현이다. 아마도 그것이 반공영화들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않은 오작동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기억하라, 고 요구하는 대신 “참 좋은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속에 숨어있었을 가능성의 환상으로 밀고 나아가는 방향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시작할 때, 그래서 정확하게 그 문턱이라고 불러야 할 한강다리 미니어처의 폭파 장면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갑자기 전쟁은 “참 좋은 때”의 이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참 좋은 때”를 보완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쟁. 당신은 이때가 유신정권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라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첫번째 예
첫번째 예

증언 스틸이미지

증언 스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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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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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수행성에 대해서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것은 마치 한강 폭파 이후의 장면들이 모두 “참 좋은 때”의 이면의 판본을 연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무대처럼 서로 연기를 하며 가장(假裝)의 시퀀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첫 번째 예. 순아는 피난길에 오르면서 예기치 않게 장소위의 부대원이었던 김일병을 만나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북한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 그 두 사람을 앞질러서 그만 한밤중에 잠시 몸을 의탁하기 위해 찾아든 곳에 이미 그들이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한밤중에 찾아든 남녀가 자신들의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면서 먼저 받아들인다. 그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김일병은 재빨리 자신을 그들과 같은 북한군으로 위장하면서 자기 고향인 북한말을 쓴다. 여기서 순아와 김일병은 북한군을 자신들을 환대해 줄 상대로 변모시키기 위해서 가장을 한다. 이때 거짓말은 그들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불가피하게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희미하긴 하지만 환대에 대한 배반이 숨어있다. 그들은 불균등하긴 하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환대와 거짓말을 교환한다. 이때 그 둘 사이에 매개가 되는 것은 가장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공포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어떤 아이러니한 익살이 감돈다. 두 번째 예. 추풍령을 넘으면서 북한군은 탱크 앞에 피난민을 내세운 다음 자신들은 그 뒤에 숨어서 지뢰를 피할 계략을 꾸민다. 그런 다음 피난민들에게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뒤에서 총으로 사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국군은 피난민들 때문에 매복해놓은 지뢰를 폭파시켜야할 지를 망설인다. 피난민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국군들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낫지 않느냐면서 (그러니 우리들은 북한군의 총알에 죽고 탱크는 국군의 지뢰에 폭파당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 전진을 거부하는 이들과 그래도 어쩌면 지뢰를 피해서 요행수로 살 수도 있다는 생존의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나뉘어서 두 편이 서로 다툰다. 영화는 그들이 긴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도 마치 그걸 귀 기울여 듣기라도 하듯 일시적으로 전쟁이 중단된 것처럼 보여준다. 여기서 피난민을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얼룩이라고 설명하면 완전히 논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상황을 완전히 아이러니하게 만들 수 있다. 피난민들이 두 개의 입장으로 나뉘어서 논쟁을 시작할 때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난 지금부터 공산주의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희생당하는 대신) 당신들의 탱크에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데올로기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나는 이 영화가 국책영화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다소 가혹하게 말하고 싶다. 여기서는 그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질문할 때 이 시퀀스가 요구하는 것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 전쟁에서 올바른 역할을 위한 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남겨진 것은 역할을 연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연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예는 다소 까다롭다. 순아는 북한군에게 붙잡힌 다음 장교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취조를 당한다. 자신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사실대로 말한다면 당신을 그냥 놓아줄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한다. 그는 순아에게 자신이 가방을 뒤지는 대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한다. 이때 순아는 가방 속에 장욱 소위의 사진이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사진은 발견되고 만다. 북한군 장교는 그 사진을 본 다음 잘 알았다면서 그녀를 그냥 풀어준다. 물론 순아와 또 다른 부녀자가 그들이 주둔하는 집을 떠나 발걸음을 옮기자 멀리서 조준사격을 가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또 다른 부녀자가 죽으면서 순아의 몸을 감싸 안기 때문에 그녀는 살아난다) 물론 여기서 북한군 장교는 처음부터 순아를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게임인 것이다. 그걸 순아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진실을 고백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친절한 요구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대응이 이 씬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여기서 상황을 괄호 친다면 북한장교의 예의바른 제안에 대해서 순아의 거짓말은 무례한 대답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풀어준 다음 조준 사격하는 것은 그녀의 거짓말에 대한 벌로 읽힐 수도 있다. 물론 후자는 위장된 거짓 논리이다. 이 시퀀스의 일차적인 목표는 (누구라도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공산당들은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회유를 하며 우리들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그건 모두 거짓말입니다, 라는 경고이다. 하지만 여기엔 까다로운 미끼가 있다. 그냥 총살시키면 되는 상황에서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느냐, 는 것이다. 단지 재미를 위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장면이 정말 문제가 되는 상황은 북한군 장교가 오로지 자기의 예의바른 태도를 남한의 숙녀에게 전시하기 위해서 정말로 순아를 살려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약간 서둘러 방향을 틀어보고 싶다. 네 번째 예에 이 장면과 똑같은 순간이 반대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순아가 남하하다가 북한군들이 국군의 복장을 하고 길목을 지키고 서서 본대로부터 탈영하여 국군에 귀순하려는 북한군들을 기다리다가 총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자 순아는 정말 국군을 만났을 때 마치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인 것 같은 연기를 한다. 국군을 만난 다음에도 자신이 북한군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여자를 만나자 국군은 순아를 체포하여 본대로 보낸다. 거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순아에게 매우 친절푀옇凋응막?전후 사정을 들으면서 충분히 이해했다뇩옇뺐?함께 하지만 그걸 자신들이 믿기 어렵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든다. 여기서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순아는 전쟁 중에 체포한 북한 정훈장교이다. 그런데도 정보장교는 예의를 갖추어 (자신보다 어린 그녀에게) 경어를 쓰면서 기꺼이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인다. 만일 여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북한군 장교와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친절하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 당신 말을 충분히 들었어요. 하지만 믿긴 어렵군요. 게다가 지금은 전쟁 중이고 당신 스스로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라고 소개한 것 말고는 다른 정보가 없군요. 당신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고 우리는 후퇴하는 중이니 즉결 사형에 처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순아가 사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국군 소위이자 순아의 연인인 장욱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여기서 북한군 장교와의 장면에서 <증언>에서 사용된 장면을 N(nor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을 N 2라고 한 다음 마찬가지로 국군 장교를 만나서 사용된 장면을 S(sou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은 S 2라고 부르겠다. 만일 N 2가 사용된 다음 S 2가 대응한다면 그건 북한영화의 버전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N 1이 사용된 다음 S 2가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는 몹시 부조리하지만 무언가 균형을 이루었다는 불편한 생각을 떨치기 어렵게 된다. 이 순간 여기서 한국전쟁을 괄호치고 오로지 주인공 순아가 두 개의 나라 사이에서의 전쟁을 오가면서, 이를테면 여기서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라고 가정하고, 이 상황과 마주쳤다면 순아에게는 가혹한 결정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잔인하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균형을 잡았다는 인상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난처해지는 것은 N 2가 사용된 다음 S 1이 여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물론 순아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서 남한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두 번째가 아니라 이 네 번째 판본이다. 왜냐하면 이 네 번째 판본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인 용서라는 방식으로 순아의 실수를 교정한 다음 되돌려 보내지만 남한은 조건을 달고 실수를 교정한 다음 그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S 1을 고정시켜놓고 N 1과 N 2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단순하게 한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S 1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N 1의 흉내를 내면서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제도 안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N 2를 선택했을 때 가장 난처해지는 설명은 북한군 장교가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훨씬 미묘하게도 순아를 보고 어떤 감정적인 동요를 느낀 나머지 한편으로는 예의바르고 친절한 자세 뒤에 위태롭게 숨어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에 주어진 임무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려 보냈다는 멜로드라마적인 해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군 장교는 이 영화에 나오는 어떤 인물보다도, 심지어 순아보다도 더 인간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북한군이 국군보다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책영화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가정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건 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사람이라는 명제의 반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놓았던 경계선은 무너지고 이제 이 전쟁에서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쟁에서 살아가게 된다, 혹은 죽어가게 된다. <증언>은 기묘하게도 매번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거의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간 다음 진부한 국책영화의 흑백논리로 재빨리 되돌아온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몇 차례이고 임권택의 전쟁영화, 혹은 국책영화에로 되돌아와야 할 것이다. 이때 망설이는 당신의 근심을 알고 있다.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함정 아닌가요.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보려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가,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무시무시한 기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잠시 멈칫 거리면서, 그것이 의도라기보다는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매번 거기서 우울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치 영화가 자기가 처해있는 영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거기엔 무언가가 추방되어 버렸다. 그저 광경만이 남았다. 단지 황폐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부서진 낮과 꺼져버린 빛 때문에 세상이 거의 지워진 밤. 그리고 낮보다 더 많은 밤. 그 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린 탓일까. 그런데 전쟁이 난 그해 비가 그렇게 내린 것일까, 아니면 촬영을 한 그 해에 내린 비 때문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이상할 정도로 습도가 높은 화면들. 종종 젖어있는 것만 같은 폐허들. 그때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 것일까. <증언>이 거의 부서져가면서 가까스로 이어져갈 때 거기 끼어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고통이나 연민이 이야기 안에 넘쳐나면서도 그걸 영화가 느껴보는 순간이 없다. 나는 지금 유령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이미 지나가버린 영화 안에서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을 기다리듯이 그저 길 잃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 같은 심정.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지금 그 시간을 다시 불러오고 있는 중이다. 두렵지만 이건 나의 사명이다. 그러니 <증언>을 향하여 소리 높여 질문한다. 말하라. 나는 너의 증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계속) 


약간의 첨언. <증언>은 판본의 문제가 있다. KMDb에 따르면 <증언>의 상영시간은 2시간 5분이지만 지금 내가 보고 이 글을 쓴 판본은 8분가량이 짧은 1시간 56분 58초이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증언>을 완성한 다음 이 판본에 대해서 제작사였던 영화진흥공사가 몇 가지 보충촬영을 지시했는데 이미 다음 작품을 촬영하고 있어서 그 부분을 제작 프로듀서였던 정진우 감독이 촬영하고 편집했다. 아마도 두 가지 버전 중에서 2시간 5분 버전은 정진우 감독의 보충촬영 추가 편집본일 가능성이 크다. 개봉은 이 버전으로 했을 것이며 현재 영상자료원 소장본은 짧은 임권택 버전(일 것)이다. 정진우 버전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기억하지 못한다. 



1973년 12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김강윤
촬영  서정민
조명  최의정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김창숙
신일용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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