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허문영과의 토크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4-02-11조회 31,284
영화평론가 허문영과의 토크

임권택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혹은 영화라는 우정의 이름으로 나눈 대화 (1)

영화에서 우정이란 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여기서 철학에서 사랑을 말하는 것처럼 이 말을 개념적으로 꺼내든 것이 아니다. 그저 우정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지금 당장 내 안에 가득 찬 사랑의 감흥이 막 넘쳐나고 있어서 그걸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말이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군가와 마주치기 싫어진다. 지금 막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 물론이다. 나는 이 말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중이 아니다. 약간 핵심을 벗어나고 싶다. 영화를 마주 대할 때 가장 당혹스러운 사실 중의 하나는 이 모든 것이 지나칠 정도로 기계군의 집합과 규칙으로만 이루어져있다는 어쩔 수 없는 결론이다. 노엘 버치는 좀 더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는 영화감독이나 분석가들, 비평가들이 사용하는 영화 용어를 보면 영화에 대한 그의 사유를 알 수 있다고 선언하듯이 장황한 영화의 요소들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 그의 저서 「영화의 실천」의 첫 문장)을 시작한다. 기술의 수사학들. 테크놀로지의 개념들. 그 안에서 만들어진 미학적 계보.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는 이 기계군의 인간성을 증명해야 하는 다소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비평의 투쟁은 이 자리에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한다. 한편으로는 영화라는 기계군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선과 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리듬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다시 생명의 개념으로 옮겨놓아야만 한다. 이때 우리는 파국적 진술을 주의 깊게 경계해야만 한다. 잠시 게을러질 때 이 둘 사이에 있지도 않은 서사를 만들어 하나로 봉합시켜버리고 싶은 유혹이 단숨에 우리를 삼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 중에서 이미 만연한 프로젝트는 다른 데서 가져온 시도를 내세운 다음 거짓 화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도로서의 서사. 이때 서사는 이상할 정도로 논리적이거나 과잉에 가득 찬 정치적 파토스로 넘쳐나거나 때로 허수아비의 정신분석이라는 불장난에 걸려든다. 자기참조의 동어반복이라는 함정. 우리는 원래의 자리에로 돌아가서 계속해서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막 보고 나온 이미지와 사운드의 카오스 속에서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가 닿기 위해서 이 질문을 반복하고 싶다.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낭만적인 메아리.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는 호소. 이때 우정은 지금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한 진리를 공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은 좀 기이한 몸짓을 보여줄 때가 있다. 나는 지금 그 순간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 차례대로 친구들을 호명할 생각이다. 아마 임권택은 좋은 참조점이 되어줄 것이다. 당신께서는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자리를 만든 것은 임권택이라는 이름,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신화적인 재창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를 그런 과정을 생산할 수 있는 담론들과 단호한 거리를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혹독한 비판을 견딜 수 있는 지에 대한 비평적 시련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친구들은 무슨 역할을 요구받을 것인가. 영화를 만나는 시간에 각자가 경험하는 사건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게 될 것이다. 나는 영화가 공동체 문화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한 편의 영화 안에 함께 거주하는 것에 대한 내 바람이 지나친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그래서도 안 된다는 믿음을 갖는 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좀 미묘한 문제가 있다. 우선 영화라는 사건과 마주칠 때 각자에게 도래하는 힘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 그런 다음 다시 개념으로 옮기는 작업, 종종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을 놓고 대차대조표를 만든 다음 자신이 만들어놓은 전체의 지도 안에 다시 기입시키려 들 때 이루어지는 수정 작업에 이르게 되면 가끔 우리는 서로의 대화의 교차점이 어딘지에 대해서조차 어리둥절해 질 때가 있다. 지금 금방 떠오르는 두 가지 예. 나는 로베르토 롯셀리니의 <스트롬볼리>를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별달리 이 영화가 걸작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장 결론에로 달려가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 앞에 섰을 때 내 기대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선택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관객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유별난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우리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생각해야만 했다. 물론 둘 사이에 놓인 차이를 과도하게 단순한 도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이 둘 사이에 어떤 종합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론적 폭력이 될 것이다. 그 둘은 그 자체로 각자의 힘을 소유하면서 공존의 화음을 서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일시적으로 분쟁을 피하려는 거짓 화해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으로부터 누구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스트롬볼리>를 설명하면서 어느 순간 문득 관객 앞에 외롭게 무대에 서 있던 나는 이 간극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만 화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정확하게 화음은 하나의 발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학생들과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를 서로 논쟁하듯이 의견을 나누는 수업 중에 일어났다. 다소 신기한 것은 그 중에 대부분은 이 영화를 그 전에 본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 하와드 혹스의 영화를 처음 본 학생도 있었다. 질문을 열심히 듣고 있다가 우리들의 대화가 완전히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지 여기에는 지식의 차이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보면서 미장센의 투명성이랄까, 말하자면 일종의 투시도법과도 같은 방법에 대해서 일종의 영화적인 기적이라는 리베트의 지적에 완전히 감명을 받은 다음 그 위에서 벌어지는 교환의 운동에 심취했기 때문에 무언가 거기서 출발해서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투명성이라는 말이 증명되기를 원했다. 이때 여기에는 의미의 논리나 장면의 수학적 배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도약의 차원에 대한 공감이라는 결정적 요청이 있다. 이를테면 오즈의 필로우 쇼트가 그저 풍경을 찍은 사진적 장면의 연결이라고 받아들일 때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상대방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 그건 히치콕의 <사이코>에서 마리온을 샤워 룸에 데려가기까지의 동선을 설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때로 주석을 길게 달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반대로 직관의 순간이 사유를 건드리고 그런 다음 거기서 울린 공감의 진동판이 비로소 만남을 열어줄 때가 있다. 물론 나는 간극 사이에 놓인 긴장을 즐긴다. 어떤 경우에는 끝내 좁혀들지 않는 거리를 통해서만 서로를 존중하면서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나는 이제까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호의를 지닌 수많은 지지자들을 만났지만 나와 동일한 방식의, 말하자면 체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쁨, 그 안에서 영화가 만들어낸 효과와의 접촉,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진정한 의미의 긍정적인 좌절과 희열에 가득 찬 패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아마 나도 그들에게 반대편에서 동일한 자리에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럴 때는 나의 지지에 동의하지 않는 친구를 만났을 때 비로소 더 많은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친구란 살아있는 하나의 범주이자 서로 다른 견해의 선험적 존재이다. 영화에서의 우정. 말하자면 내가 영화를 본 다음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나의 분신을 대면함으로써 나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허문영 문화평론가
허문영 문화평론가

첫 번째 초대한 친구는 허문영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지난해 부산 영화제에서 (한국영상자료원 바깥에서는) 처음으로 임권택 전작 회고전을 했기 때문이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허문영의 영화에 대한 견해에 항상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건 그도 그럴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걸 거의 의식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그의 첫 번째 비평집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의 추천사를 쓰기 위해 1998년부터 2009년에 이르는, 말하자면 거의 십년간에 걸쳐 서 있는, 58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서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오해한 것인 지도 모른다. 단지 서로 다른 영화를 지지한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같은 영화에 대해 우리는 서로 다른 감각의 바탕 위에서 각자의 개념 제작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충돌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자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종종 서로의 견해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매번 확인한 것은 (심지어 바로 옆자리에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서) 같은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일 지라도 그 안에서 전혀 다른 영화적 순간의 비탈(傾斜)에서 각자 서로 다른 참을 수 없는 기쁨과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허문영은 영화에서 욕망이 활동하는 반경 거리를 측정하는데 언제나 예민했으며 때로 매혹되었고 그런 만큼 그 활동에 대해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이때 허문영이 사용하는 욕망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용법이 아니다. 종종 남근을 영화의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그 안에서 성숙하지 않은 소년성에 대해서 주목을 하고 막(膜)의 신비로운 장벽과 폭력적인 파괴에 대해서 다루긴 하지만 은유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욕망을 꺼내들 때 거기서 그는 영화적인 순간이 하나의 힘으로 집결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에게 힘의 화음은 소중한 속도이며, 거기서 외부와 접촉하는 쟁점들은 단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과 세상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이며, 종종 그 흔적들과 변주는 위대한 영화를 위한 조건이다. 허문영이 존 포드를 위대하다고 느끼는 장면은 여기에 있다. 수 없이 주문처럼 되풀이해서 불러오는 존 포드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분명히 거기 있는데 가 닿을 수 없다. 가 닿을 수 없는 욕망. 닿을 수 없는 데도 마치 사이렌처럼 잡아당기는 힘. 둘 사이의 긴장. 사로잡힌 존재의 시선. 사로잡힌 자의 시선. 그 존재와 미칠 듯이 접촉하고 싶은데도 만질 수 없을 때 겪는 결핍 안에서의 시련. 그가 ‘랜드스케이프’를 풍경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존 포드의 풍경은 영화 용어이기 때문이다. 다소 도식적으로 내가 이해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가끔 욕망과 의지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이 설명으로 허문영을 니체(-푸코)주의자라고 손쉽게 부르기 위해서 서둘러 정의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런 방식이라면 (허문영 자신은 별로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리노프스키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그는 영화 안에 들어가서 살면서 체험을 하고 그런 다음 그것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 말하고 싶어진다. 허문영은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든 영화비평가들 중에서 촬영 현장의 자리에 가는 것을 가장 즐기는 관찰자이다. (일종의) 인류학을 방불케 하는 태도. 마치 현장탐사와도 같은 참여. 심지어 그는 홍상수의 <밤과 낮>에서 연출부를 하기도 했다. 꼼꼼하게 지켜보는 카메라의 위치와 이동. 그 안에서 스텝들의 활동. 아니, 말 그대로 공기의 리듬. 그런 다음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바르뜨의 에로티시즘에 이끌렸다. 현대 영화이론은 그를 전혀 매혹시키지 못했으며, 다소 거슬러 올라가서 앙드레 바쟁을 자주 참조하긴 했지만 때로 경계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리를 유지했다. 조나단 로젠바움을 존경하지만 그건 시네필의 태도에 한정해서일 뿐이며 그의 문제의식을 자기의 글 안으로 끌어들이진 않았다. (최근의 글로 한정지어) 제한적으로만 말한다면 토마스 엘세서와 D. N. 로도윅의 그림자를 읽지만 허문영은 이론과 불장난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런 다음 당연히 미처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그림자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언제나 그는 영화 안에서 자기를 불러 세웠던 욕망 주변으로 흩어져있는 개념들을 배열하려고 애를 쓴다. 애를 쓴다? 그렇다. 바로 그 태도가 그의 영화 비평을 읽을 때 다소 음란하게 논쟁을 전개되고 있을 때조차도 예의바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천년학>(2006)
<천년학>(2006)

영화에 관한 우정의 대화를 빨리 시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제목들을 호명하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허문영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가 작성한 두 개의 명단을 내놓을 것이다. 먼저 그 하나는 영화 주간지 씨네21에서 2008년 창간기념호에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당신에게 10 베스트 영화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한 대답이다. 허문영은 다음 열편을 썼다. (공동) 1위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2위 <엘리펀트> (거스 반 산트). 3위 <밤과 낮> (홍상수). 4위 <스틸 라이프> (지아장커). 5위 <천년학> (임권택). 6위 <폭력의 역사> (데이빗 크로넨버그). 7위 <남국재견> (후 샤오시엔). 8위 <멀홀랜드 드라이브> (데이빗 린치). 9위 <우주전쟁> (스티븐 스필버그). (공동) 10위 <일상적인 연인들> (필립 가렐), <행진하는 청춘> (페드로 코스타). 나는 이 명단에서 임권택만을 물어볼 생각이다. 1995년에 임권택은 <태백산맥>을 만들었고, 2007년에 <천년학>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축제>와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이 있다. 그런데 허문영은 그냥 간단하게 <천년학>을 선택했다. 배치는 구조나 체계, 혹은 과정이 아니다. 두 번째 명단. 한국영상자료원은 2014년에 40주년을 맞으면서 영화비평가들과 영화학자들, 기자들,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앙케이트를 돌렸다. 당신의 한국영화 100편은 무엇입니까? (아마 전체 명단은 이 토크가 소개될 무렵에 공개될 것이다) 여기서 허문영은 임권택의 영화를 15편이나 선정했다. 아무리 1950년 이전의 영화 프린트 상당수가 사라졌다 할지라도 이건 한국영화사 전체를 놓고 100편을 결정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허문영은 어떤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결정했)다. 현재 볼 수 있는 임권택의 영화중에서 허문영은 <두만강아 잘 있거라>,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족보>, <만다라>, <짝코>, <길소뜸>, <티켓>, <씨받이>, <개벽>, <서편제>, <축제>,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천년학>을 추천했다. 나는 이 목록 사이의 여백을 채워나가거나 혹은 간격 사이의 빈칸을 파고들거나 (같은 말이지만) 거기 있지 않은 제목을 호명하여 상속의 위계질서를 세우려 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이 목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이 명단에서 놀란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미 말한 것처럼) 숫자이다. 일백편의 목록 안에서 그저 우글거린다는 표현 이외에 달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임권택의 영화들은 허문영의 한국영화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백번의 사건 중에서 열다섯 번의 의미의 매듭. 다른 하나는 반대로 그 안에서 임권택의 영화들에 대한 표준 판본의 선택에 머물기 위해서 이상할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간단한 비교. 허문영은 김기영의 이름으로 물론 <하녀>를 추천했다. 하지만 그런 다음 갑자기 <이어도>와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에로 옮겨간다. 김수용의 <안개>는 걸작이다. 그러나 <화려한 외출>이 김수용이 그려낸 소시민 인정극을 대신할 만큼 중요한 영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견해이다. 신상옥은 <지옥화>도 없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도 없고 <로맨스 빠빠>도 없고 <폭군 연산>도 없다. 단지 <다정불심> 단 한 편만이 있을 뿐이다. 반대로 이만희의 목록을 만들면서 <생명>과 <04:00 -1950->를 포함시킨 것은 단지 역동적일 뿐만 아니라 과격한 인상을 자아낸다. 목록을 쳐다보는 내 감상은 이렇다. 허문영은 자신의 목록에서 계속해서 균형을 무너트리고 자꾸만 열어놓은 다음 그 무언가와 접속하려고 시도한다. 나는 그 접속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윤곽 전체가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만희는 허문영의 한국 영화사 안에서 벗어나려는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대로 임권택은 그 안에서 역사를 옹호하려는 듯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럴 필요가 생긴 것일까. 우리들의 대화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을 우정이라고 믿는다. 말하자면... 


 
정성일_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한국극영화의 개벽, 거장 임권택의 세계_ Fly High, Run Far, The Making of Korean Master IM Kwon-taek’이라는 제목아래 전작전을 한국영상자료원 바깥에서 가장 큰 규모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행사의 프로그래머셨는데, 행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적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허문영_ (망설이지 않고) 그냥 기억에 깊게 남았던 장면 하나는, 사실 제가 그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류승완 감독이 <장군의 아들>을 보고나서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그때 제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류승완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듣진 못했고, 나중에 감독과 통화를 했어요. 류승완 감독이 굉장히 들뜬 목소리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액션영화 전문 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그리고 <장군의 아들>은 임권택 감독님의 가장 완성도 높은 액션 영화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의 액션영화 중 한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선택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게 좋다고, 고민하지 않고 선택을 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본 <장군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액션영화라기보다는 풍경의 영화다, 혹은 무드의 영화다. 이 영화는 액션을 풍경처럼 다뤘다. 정통 액션이 벌어지는 순간보다 그 액션을 둘러싼 무드로 찍은 영화다. 어떻게 이 영화가 당대 상업영화로 인식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모든 걸 떠나서, 나도 이런 영화를 찍고 싶다. 이러한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류승완이라는 젊은, 지금은 그렇게 젊지도 않죠(일동 웃음) 어쨌든 임권택 감독에게는 열혈 청년 액션 매니아 감독이라고 인상지어진 류승완이라는 후배 감독이 십여 년 만에 임권택 영화를 다시 보면서 거기서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았고, 그 새로움에서 임권택 감독의 어떤 비밀을 본 것 같은 인상의 말을 했을 때, 그때 이것은 이 회고전의 멋진 순간 중의 하나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 재밌는 건 제가 그 말을 임 감독님께 전해드렸어요. 감독님, 류승완 감독이 그러는데요, 이거 상업영화 아니래요. 거의 마치, 고도의 예술영화를 본 것처럼 얘기 하던데요. 그때 임권택 감독님은 충격을 받으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러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장군의 아들>은 장사하려고 만든 영화다. 물론 개인적인 궁금함이 있긴 했지만, 예전에 찍었던 다찌마와리 영화들에 대해, 남성성, 남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보는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지만, <장군의 아들>은 철저히 상업영화로 기획되고 맞춰서 찍은 거다. 근데 그게 무슨 소리냐, 하시는 거예요. 굉장히 충격을 받으신 거죠. 이 장면은 굉장히 재밌어요. 실제로 제가 <장군의 아들>을 이번에 다시 본 느낌은 류승완 감독의 것과 비슷해요. 저도 이 영화를 굉장히 잘 만든 우아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 영화를 지금 2013년에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왜 상업영화였지? 그 해 흥행 1위였잖아요. 아마 서울에서만 60만이 본 영화죠. (<장군의 아들>은 1990년, 67만 9천명의 관객 동원하며 흥행 신기록을 세웠고, 그 이전 최고 기록은 <겨울여자>로 58만6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대대적인 흥행 기록을 세운 거죠. 여기에는 액션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액션장면의 화려함, 격렬함이 없어요. 두 번째, 비극적 결말도 없어요. 남성영웅의 비극적 최후도 없고 그렇다고 화려한 승리가 있는 것도 아니죠. 게다가 90년대 이후 모든 한국의 액션영화가 갖고 있던 로맨스도 없어요. 하다못해 남성간의 로맨스도 있거든요. 90년대 이후 한국액션영화에는 남성 공동체, 의리의 파토스 같은 게 있는데. 물론 남자주인공과 여자와의 로맨스가 반드시 끼어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로맨스, 사랑의 파토스 같은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상업영화가 될 수 있지, 생각했어요. <장군의 아들> 하나만 가지고도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되짚어 봐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죠. 다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임권택 감독님의 반응은 생각을 해봐야 겠다, 라고 하셨어요. 내 의지는 철저히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당신들이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알 수 없다. 그걸 충격이라고 말씀하신 건, 뭔가 자기의 의지를 벗어나 작품에 투영된 중핵이 따로 있다는 거죠, 그걸 감독님도 생각해보실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임권택 감독이야말로 인터뷰를 통해 알기 가장 어려운 감독이 아닐까 하는 건, 그가 말을 아끼기 때문이 아니라, 종종 자신의 의지를, 의도를 벗어나는 영화적 순간을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정성일_ 그렇다면 이번 임권택 감독님 전작전을 통해 재발견을 했거나, 재평가했거나, 말하자면 생각이 바뀐 작품들이 있습니까?

<상록수> (1961)
<상록수> (1961)

허문영_ 저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동을 받았던 건 <상록수>였어요. 정 선배가 그 영화를 미지의 보석중의 하나로 추천하시기도 하셨지만, 저는 그전에 그 영화를 보지 못 했어요. 줄거리는 진짜 너무너무 뻔한 계몽영화인데, 이 뻔한 계몽영화를 만들면서, 저는 정 선배처럼 쇼트 단위로 기억을 하지는 못하겠어요. 기억이 안돼요. 그냥 그 영화를 보고 즉각적으로 받은 느낌은, 이것은 사무치는 기다림의 영화다. 사무치는 기다림의 어떤 순간을 끝내고자하는데. 그걸 다 알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고, 만든 사람도 알고 있고, 심지어 (영화 속의)인물들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장(場)에 놓인 사람들이 그냥 기다리는. 그게 너무 사무치는 느낌. 그 사무치는 느낌은 단순히 하나의 쇼트를 잘 찍어서도 아닌 것 같고 연기를 잘 해서도 아닌 것 같고, 뭔가 카메라와 인물과 감독이 그냥 어떤 순간에 어떤 시간으로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밖에 생각을 못하겠어요. 임권택 영화를 종종 보고 나면 분석하고 해명을 하고 싶은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드는데, 그냥 그 느낌 자체에 빠져있게 되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상록수>가 그런 영화였어요. 끝나고 나서 그냥 멍하게, 멍하게 있던 기억이 나요.

정성일_ 이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네필처럼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말하자면 이건 지금의 마음의 상태가 <상록수>를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게 한 건데 올해 본 새로운 동시대 영화중 베스트는 무엇입니까? 허문영 선생의 심리적 상태를 알아봐야 하니까요. (웃음) 과거 영화는 무조건 존 포드가 차지하고 있으니 궁금하지 않잖아. (일동 웃음)

<풍경> (2013)
<풍경> (2013)

허문영_ 과거영화를 얘기해야한다면 (존 포드의) <선 샤인 브라이트 The Sun shines bright>(1953년)를 얘기하려고 했지만. (웃음) 그냥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망설이다가) 이미 평가받은 영화들은 재미없으니까, 제일 최근에 본 영화가 말씀하시니까 막 떠오르는데, 저는 장률의 <풍경>이었어요. 저는 (씨네 21에 실린) 정 선배의 인터뷰를 보니, 이걸 장률의 걸작으로 꼽고 있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근데 저는 이 영화가 걸작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를테면, 그냥 사람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도록 해주는 구나. 그냥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나, 그 사람이 놓인 사회적 처지나 운명이나 뭐,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 곤경, 그 사람의 개인적인 소망. 그런 거와 아주 무관하게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 그게 우리가 못해오고 있었던 일이었구나.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면서도, 우리의 생활자체는 점점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고 살도록 되어가잖아요. 심지어 카페에서도 얼굴대신 스마트 폰을 보고, 생활이 그렇게 흘러갈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그런데, 근데 이 영화는 얼굴을 보도록 권유하고 있구나. 아니, 보는 것이 좋은 일이고, 보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구나, 이런 느낌. 저는 영화 보면서 그게 드문 일이었어요. 그게 다큐여서 가능한 일이고, 장률이라는 사람이 어제 꾼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라는 질문을 잘 선택하기도 했고, 이게 영화적으로 훌륭하다, 아니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그런 점에서 <풍경>이 올해 최고의 영화는 아니어도 굉장히 특별한 영화라고 머리에 남을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성일_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임권택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었잖습니까?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이 영화를 찍은 사람이 누구지, 하고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처음 확인하게 된 영화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권택 감독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 첫 번째 영화는 무엇이었습니까?

<짝코>(1980)
<짝코>(1980)

허문영_ 저는 정 선배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그런 순간이 있었던 거 같아요. 물론 극장에서 개봉한 임권택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잘은 기억은 안 나지만 <만다라>였던 거 같아요. 그게 대학 1학년 즈음 됐겠죠.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극장에서 봤었고. 물론 <만다라>이후부터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죠. 하지만 제가 20대부터 영화를 의식하고 공부하고 찾아보고 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전에 직접 뵙기도 했었죠. 70년대 말인가, 80년대에 아버지를 따라 뵌 적도 있었던 거 같아요. (허문영씨의 아버지는 영화평론가인 고 허창 선생이다) 학생시절에 OB 베어즈에 가서 뵈었던 거 같아요. 아버지가 당시 영화진흥공사에 계셨던 시절에, 그때 임 감독님을 가끔 뵌 거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따라가서 인사를 드렸던 거 같아요. 막연히 그때는 <만다라>이후 임권택 감독님은 한국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거장 감독이라고 평판이 굳어졌기 때문에 그 평판의 영향아래 영화를 보았던 거 같고, 영화로 감독님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라는 느낌을 받은 건 그 뒤였던 거 같아요. 80년대 말인지 90년대 초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1990년 즈음 <짝코>를 비디오로 우연히 보았을 때였습니다. 개봉할 때는 못 봤고. 물론 그 영화가 임권택의 영화라는 건 표면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는 상태였고, 이 어른이 이런 영화도 만들었네, 뭐지? 하고 본거 같아요. 이 영화가 얼마나 정교한 플래시백의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지는 그 뒤에 다시 한 번 봤을 때 느꼈고,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이 영화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무대는 1980년 현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의 배경은 6.25이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좀 심원한 비극성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굉장히 마음이 아픈데, 이건 역사적인 어떤 허깨비를 쫓는 거잖아요. 평생을 바쳤는데 그게 허깨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그 허망함의 무게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그거였어요. 정교한 플래시백보다 훨씬 기억에 남아요. 두 사람이 탈출하고 나서 싸우는 데, 세상에 그렇게 비루하고 그렇게 초라하고 어이없는 싸움이나 액션이 도대체 어딨나, 심지어 카메라가 계속 찍지도 않아요. 둘이 계속 싸우는데 카메라 (프레임) 밖에 나가요. 둘이 빠져나가는데 카메라는 그냥 가만히 서있어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걸 잡고 있는데, 여기 지금 찍히고 있는 게 뭔가라는 생각. 카메라가 대체 뭘 찍고 있나. 그런 기억. 뭐, 이런 저런 이유로 이걸 만든 사람은 참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훌륭한 감독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다. 임권택 감독은 참 특별한 사람이구나. <짝코>를 90년대에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_ 임권택 감독님의 무슨 영화 다음에 <짝코>를 보았습니까?

허문영_ 아마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씨받이>를 띄엄띄엄 보고 보았어요.

정성일_ 1989년 전후가 될 텐데 그때 허문영 씨가 심취했던 영화들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걸작의 명단이라고 움켜쥐고 있던 그런 영화들, 그때는 사실 애매한 시절이었죠. 비디오가 쏟아진 것도 아니고 DVD가 도착한 것도 아닌 시절.

허문영_ 그때는 영화를 열심히 본 시기가 아닌데, 한동안 제가 그 시기 3-4년 정도 완전 사로잡혔던 영화는 <화이트 히트>였어요. (감독) 라울 월시의. (주연배우) 제임스 캐그니의 정유 공장의 마지막 시퀀스는!! “Mom, I'm on the Top!”하고 불타버리는 장면은... 아, (깊은 한숨) 세상에... 남자의 심금을 울리죠.. 오우삼? 너는 라울 월시의 손자다. 손자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또 당연히 그때는 우리가 홍콩영화에 혼절할 때가 아닙니까? 다 봤죠. 열심히 봤죠. 그때 (필름 포럼을 운영하는) 임재철이, 너 그런 이상한 영화를 보지 말고 이런 영화 좀 봐, 하고 영어 자막 캡션이 달린 영화를 보라고 주더라구요. 아, 영어 자막 피곤한데,.. (하고 집에 가서 본 다음) 그날로 형님, 월시 형님! (일동 웃음) 오우삼이 최고의 남자 감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월시 형님을 모시겠습니다, 했죠. 

정성일_ 사실 많은 영화 비평가들, 혹은 연구자들이 겪는 일이기도 한데, <짝코>를 전후로 해서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이전의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들과 이후의 영화들은 비평가들에게 내면적으로 어떤 불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허문영 씨께서는 앞의 영화들은 불완전하거나, 그 영화가 갖고 있는 다른 기준들, 그런 불화를 화해시킬 수 있었던 비평적 프레임의 변화랄까, 아니면 영화의 어떤 새로운 방점을 찍거나, 미학적이거나 영화의 존재론적인 방점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권택이 자신의 비평적 프레임워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개벽>(1991)
<개벽>(1991)

허문영_ 저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세계 전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해본 건 오히려 최근 들어서고 그전에는 계속 잘 모르겠다, 였던 거 같아요. 새로 만든 영화를 지속적으로 챙겨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90년대는 꾸준히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제가 90년대 겪었던 건 제가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는 계속 놓치게 돼요. 이를테면 <개벽>을 극장에서 봤거든요. 참 아름답다 근데 잘 모르겠다, 근데 그 영화가 비범한 영화란 생각이 든 건, <개벽>을 다시 본 건 2-3년 뒤에 TV에서였습니다. 그걸 보고 완전히 빨려들어 갔습니다. 그냥 아름답고 약간 비극적인 이야기가 좀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TV에서 <개벽>을 다시 보며 이 영화가 인물을 찍은 게 아니구나, 인물이 이 영화에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찍었구나, 라는 느낌. 일종의 패배의 이야기.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이 일본과 싸워서 졌다는 게 아니라, 인물이 서사 안에서 주인공이 되기에 실패한 영화구나, 그 실패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 영화가 대답해주지는 않지만, 그 패배의 불가피성에 대해 풍경이 대답을 해야 하는데, 풍경은 침묵하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풍경이 사무치게 슬프다는 그런... (잠시 생각하고) 굉장히 특별한 영화구나. 그 격동기에 격렬한 역사적 사건 한가운데 있는 인물을 찍으면서, 그 인물의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서사 안에서 실패라는 것들. 그 풍경의 비애라는 것. 굉장히 특별한 영화구나. 근데 정선배도 (지금 이 ‘임권택 X 101’) 연재에서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지적을 하고 있으시지만, 임권택 감독의 다음 영화를 봤을 때 그 이전 영화의 가설이나 프레임이 무너질 때의 난처함. <축제>를 극장에서 봤을 때 또 놓쳤어요. 이 동화적인 화해의 서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철저한 실패를 다룬 감독이 왜 동화를 통해 화해를 하려고 하는가. 그 영화를 또 다시 보고 영화가 또 그게 아니구나, 깨달은 것은 몇 년 후 비디오로 보고서였죠. 임권택 영화를 보는 제 반복된 체험은 처음 봤을 때는 계속 놓친다는 겁니다. 두 번 봤을 때 새로운 영화를 보게 되고, 세 번 봤을 때 또 다른 영화를 보게 되고. 오히려 임권택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영화 전체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계기는 <개벽>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죠. 그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름은 굉장히 이상하다, 절대 한 번에 닿을 수 없는 세상. 계속 진격을 거듭하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 직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2000년대 들어와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좀 더 자주 보게 되면서 계속 느끼게 되죠. 딴 것 보다 임권택 영화를 보면, 너무 재밌어요. 어떤 영화를 골라 봐도 재밌어요. 심지어 두세 번 봤는데도 또 새로운 것이 펼쳐지기 때문에. 어떤 때는 그냥 계속 보기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_ 이렇게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막 영화비평을 시작하고 있는 세대와 우리 세대가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처음부터 한국영화를 좋아하기 힘들었던 세대이지 않았습니까. 왜냐하면 영화들이 너무 나빴으니까. 그 나쁜 한국 영화들을 끌어안게 된 계기, 의식적인 포섭, 그런 계기를 개인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습니까? 전 사실 그 한국 영화가 너무 싫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고 그것을 끌어안는 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의식적으로 보지 않았다면 훨씬 더 긴 시간 한국영화에 대해 더 무관심했을 거 같아요.

<칠수와 만수>(1988) <개그맨>(1988) <성공시대>(1988)
<칠수와 만수>(1988) <개그맨>(1988) <성공시대>(1988)

허문영_ 저는 20대였던 80년대에 영화광으로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열심히 챙겨본 것은 아니었지만 꽤 많이 보았고, 의식적인 고민의 대상은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제게 임권택은 한국영화에서 굉장히 예외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임권택이 한국영화 범주나 역사 안에 있다기보다는, 한국영화가 있고 임권택이 또 있어서. 이 사람이 만드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걸 깨준 건 사실은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봐야죠. <칠수와 만수>(박광수), <개그맨>(이명세) 그리고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 인거죠. 한국영화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준 것은 이 세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그 사람들이 만든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들까지도 굉장히 훌륭했기 때문에 88년부터 90년, 91년까지 이 세 사람이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놨어요. 이 세 사람이 또 전혀 다르잖아요. 사실은 코리안 뉴웨이브를 쓰는 게 가능한지도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특히 이명세를 거기에 끼워 넣는 건 굉장히 이상하죠.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없던 것들이 만들어지기도 했구나. 그 세대는. 

정성일_ 조금 사적으로 질문을 해볼게요. 허문영 씨 경우에는 다른 비평가와 달리, 영화비평가 아버지를 갖고 있는 유일한 비평가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버님이 매우 눈이 밝은 분, 이런 얘기가 듣기 불편할 수는 있지만, 저는 살아생전에 아버님을 뵙고 영화에 관한 인터뷰도 했었으니까요, 눈 밝은 의견을 존중할만한 영화비평가이셨는데, 아버지와 영화 얘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허문영_ 거의 없어요. 아버지는 얘기를 하려고 하셨는데, 제가 피했어요. 의견이 달라서가 아니라, 아버지란 존재 자체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나 기억나는 건 있어요. 대화를 나눴다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들은 건데, 좀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한테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준 게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라고 말씀드렸는데, 90년에 <그들도 우리처럼>을 보고 말 그대로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냥 아, 이건 정말 걸작이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아버지가 그때 대종상 심사 예심을 할 땐가 본심을 하실 땐가 인데, 그때 잠시 같이 살았던 때인데, 피할 수 없이 얘기를 해야 하는 자리가 있잖아요, (웃음) 같이 밥을 먹어야하는 자리. 그때 <그들도 우리처럼>을 봤는데 그건 한국영화사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대종상 본심에 올라오지 않은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심사를 안 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과장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어요. 내 기억이 조금 과장되었을 수도 있는데,.. 제가 절대 피해왔지만, 일상적인 대화와 영화에 관한 대화를 피해왔지만, 갑자기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두 가지가 분명해졌죠. 이 사람이 나하고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완전히 공감을 하고 있구나, 그건 쉽지 않은 체험이잖아요. 영화 글을 찾아 읽었을 때도 아니니까. 또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은 비평가구나. 자기가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영화가 존중받지 않았을 때 자신의 선택을 어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 비평가구나,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게 얼마나 사실에 근거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대화밖에는 내 머릿속에 남은 게 없어요. 자기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 영화가 대종상 본심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서 대종상 심사위원을 거절한다, 정말 비평가적인 태도잖아요. 물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계속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웃음) 여전히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부담, 무게가 버거웠으니까. 그래도 그때 그 말은 계속 기억이 나요. 

정성일_ 영화 비평을 쓰거나 보거나, 영화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진전시켜 나가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영화 비평가, 비평의 방법을 보여줬던 사람. 그 사람이 꼭 비평을 쓰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걸 전용할 수는 있는 거니까. 이 사람에게 영화에 대한 배움을 내가 구했지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김현 문학평론가

허문영_ 사유를 배웠다기보다는, 그 태도를 늘 떠올리게 한 사람은 김현이었어요. 우리 시대 제가 20대 때 많은 스승들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백낙청, 김현, 유종호, 김우창, 김치수도 있었고. 단순히 문학 평론가여서가 아니라 비평가란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죠. 그렇게 보면 인문학적 환경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김현이 좀 특별했다고 볼 수 있는 건, 한 사람의 작품을 말할 때 그 작품 안으로 기꺼이 들어간다는 느낌. 그게 애정일 때도 있고 비판을 위해서 일 때도 있지만, 보통 다른 글을 읽을 때는 작품 밖에서 얘기를 한다는 느낌인데, 이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가서 그 작품과 함께 어떤 것을, 정 선배가 많이 쓰시는 말인데, 느껴본다, 아, 이 사람이 느껴보는 것 같아요. 제 표현으로 하자면 작품 안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그 안에서 헤매고 뭔가 바깥으로 나오는 줄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간다는 그 태도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게다가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 글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한국어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가 있구나. 김윤식 선생의 그 훌륭한 평론도 글의 딱딱함 때문에 질리게 될 때가 있잖아요. 김현은 자기 작품 안에서의 방랑, 방황의 과정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하는 사실이 좋았고, 뭐, 무엇보다 그 사람의 태도가 첫 번째로 비평의 굉장히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뭘 쓰다가, 그게 무슨 기사든지, 잡문이든지, 비평이든지 상관없이, 글이 막히면 김현 선생의 글을 아무 거나 읽으면 약간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 있어요. 직접적인 힌트를 준다거나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거나 하지 않더라도. 정화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성일_ 다시 임권택 감독님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겠습니다. (웃음) 당장 내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임권택 감독님의 최고 걸작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최근의 마음으로는 <장군의 아들>이에요. 영화를 다시 보는데, 영화에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들어 갔어요. 그 영화를 이전에 두세 번 정도는 봤었겠죠, 당연히.

정성일_ 우리 토크의 제목을 “결국 임권택은 <장군의 아들>이다”라고 하면 어떠실까요? (웃음)

허문영_ 굉장히 안 좋아 하시겠죠. 이거는 뭐, 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체험이기 때문에. 최고작이라는 질문은 사실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극장에 가서, 임권택의 영화를 한 편 봐야 한다면 뭘 보고 싶으십니까, 라고 질문하신다면... (잠시 생각) 약간 황홀하다는 느낌, 그런 게 있었어요. 뭔가 기적 같은 영화다, 이런 느낌. <춘향뎐>이야말로 정말 기적 같은 영화긴 한데. <장군의 아들>은 전혀 다른 철저히 상업적인 기획 아래 태어난 영화고 그렇게 소비되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다시 볼 때 이런 느낌을 준다는 게, 황홀감을 준다는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_ 그 대답을 보충하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더 하겠습니다. 단 한편의 한국영화라고 하면, 완전히 주관적으로 얘기할 때, 공식적이거나 객관적으로 말고. ‘한국영화는 무엇이다’라는 화법으로 얘기하면, 어떤 영화를 말하고 싶습니까?

허문영_ 사실 정 선배는 임권택의 영화 세계를 고민하시면서 한국적인 쇼트, 한국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 범주가 아직 제 비평적 생각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잘 못 잡겠어요. 그래서 어떤 영화를 볼 때나 그 범주는 먼저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는데, (망설임) 글쎄, 지금 그렇게 물어보신다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개벽>이에요. 

정성일_ 임권택이 아니어도 한국영화는 <개벽>이다. 이만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허문영_ ‘한국’이 붙어 있으니까... 한국의 최고작, 한국영화사의 최고작과는 다른 뉘앙스로 생각하게 되는 게, 이만희 영화에는 풍경에 대한 사유가 없어요. 장소에 대한 사유는 있는데... (망설이다가) 심지어 <원점>같이 설악산에 가서 찍은 영화도 풍경에 대한 사유가 없어요. 임권택 영화는 사유라고 표현하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풍경에 대한 깊은 감각. 존 포드의 서부극이 미국 풍경에 대한 깊은 감각이 있듯이, 그 감각을 가진 영화는 임권택의 영화 같고. 제일 내 머릿속에 깊이 남게 한 영화는 <개벽>이었던 거 같아요. <취화선>이나 <춘향뎐>이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때 풍경은 장식적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했던 거 같아요. 장식이 아니라 거기 있는 풍경, 그 풍경과 나와의 거리, 되게 특별한 풍경에 대한 감동을 전해주고 내 머릿속에 남긴 것이 <개벽>이었습니다.

정성일_ 부록으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웃음) 한국영화를 제외하고, 내일 당장 명단이 바뀔 수 있다 치고, 마음속의 단 한편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마음속의 가장 큰 별이랄까, 자기 머릿속에 영화의 별자리를 짜고 있는 그 중심의 별이랄까...

<바람>(1928)
<바람>(1928)

허문영_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오기 싫었는데 (일동 웃음) 즉각적으로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기 때문에, 계속 오래 남아 있는 영화는 빅토르 쉐스트롬의 <바람 The Wind>(1928년)이에요. 영화사에도 자주 언급되지도 않고,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에도 잘 안 들어오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전 그 영화의 굉장히 단순한 구도 안에 거의 모든 게 다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사람, 자연, 선택, 사랑... 게다가 그 무성영화 시대 말기의 영화들은 어떤 시대, 어떤 영화들보다 제일 시네마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925년부터 1930년 그 5년 동안 나온 영화들은 어떤 영화보다 더 훌륭해요. 유성영화가 나왔을 때, 마치 무성을 고집하듯이 만든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시네마틱한 힘이라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힘, 에너지가 있는 거 같아요. 그 시대 많은 위대한 여러 영화들이 있고, 다 훌륭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훌륭하다는 건 <바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작품 자체로 치면 <썬 라이즈>가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썬 라이즈>는 워낙 오랫동안 표준화된 전범처럼 남아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은 <바람> 쪽이 훨씬 셌어요. 바람이 스크린 바깥으로 불어오는 듯한 느낌. 어떤 특수효과도 없이 대형 선풍기만으로 그 바람을 만들었다는 거... 그거는 카메라가 혹은 만드는 사람들이 바람을 찍겠다가 아니라 바람과 대결하겠다는 방식으로 찍지 않았다면 그 느낌이 안 살아났을 거 같아요. 거의 원시림 안에서 자연을 찍는 다큐멘터리스트의 방식으로 찍은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람이 주는 그 감각적인 느낌은 굉장히 셌어요. 굉장히 특별한 영화다, 라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정성일_ 이렇게도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의 명장면은 어떤 것입니까?

<길소뜸>(1928)의 장면들
<길소뜸>(1928)의 장면들

허문영_ 사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재미없는 말이긴 하지만, 임권택 감독님 영화는 명장면 투성이에요. 이야기가 아무리 후져도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이상한 감독인데, 제가 지금 떠오르는 건 <길소뜸>에 관한 장면이에요. 간단하게 거기에 대해 쓴 적도 있는데 <길소뜸>에서 신성일김지미가 자기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를 찾아가 하룻밤을 묵어야하는 상황이 나오잖아요. 신성일은 그 남자 집에 들어가자고, 김지미는 중산층이자 비교적 그 영화에서 상류층 계급인데, 김지미는 그 남자 집에서 잘 수 없어서 자기 차 안에 기대있어요. 그 남자, 한지일은 술 퍼먹고 있다가 잔소리하러 나온 자기 아내를 평상 위에서 부부 사이인데도 거의 강간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부인이 쌩하고 들어가 버리는 그 장면. 아주 짧은 장면이죠. 마누라가 쌩하고 들어가고, 한지일이 몸을 김지미 쪽으로 스윽 돌려요. 카메라는 그대로 서있고 차 안의 김지미의 시선으로 그 장면이 찍혀 있는데, 그 장면이 임권택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 무서운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기억 속에는 어떻게 남아있냐면 한지일이 걸어오는 거예요. 김지미는 차를 빼고 어디론가 가버려요. 나중에 다른 숙소에서 잔 걸로 나오기는 하는데, 이쪽에 발기한 아들의 성기가 있고, 또 상류층 엄마가 있고. 나는 임권택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어떤 특별한 관심이 있다거나 그걸 주요 모티브로 찍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장면 같은 경우는 너무 사악하고 강렬한 성적 에너지로 가득한 장면이어서, 실제로 그 장면 없이도 영화는 성립되지만, 이 여인의 선택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 장면이 나온 후 김지미는 이 장면이 없던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한지일은 이미 낮에 차에 치어 죽은 개를 잡아먹었잖아요. 사악한 성기, 사악한 아들의 성기. 이걸 역사적인 맥락으로도 해석을 할 수 있고, 계급적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장면에서 절대적으로 바로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악한 리비도로 가득 차있는, 그래서 <길소뜸>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소뜸>도 보면 앞에 처음부터 얼마나 구린 대사가 많습니까. (웃음) 그 구린 대사를 완전히 다 한방에 보내버리는 장면이었던 거 같아요. 1980년대 임권택 영화에는 이상하게 그로테스크한 정념의 쇼트들이 되게 많아요. 많다기보다 그런 장면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와요. <티켓> <씨받이> <만다라>도... <안개마을>은 그 자체가 모티브이고, 그 자체가 모티브가 아닌 영화도 리비도가 그 서사를 초과해 버려요. 

정성일_ 허문영 씨의 자리에서 1980년대 임권택의 영화를 ‘리비도’의 시대라고 다시 한 번 정의할 수도 있겠네요.

허문영_ 네, 저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굉장히 센, 정념, 리비도가 막 서로를 키워나가는 순간이 있고, 그게 어떻게든 수습되거나 차단당하면서 결말이 대부분 다 비극적이거나 우울하거나. 근데 임권택 스스로는 그런 장면들에 대해서는 늘 말씀을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성일_ 늘 피하시죠. 그냥 그런 장면도 필요한거요, 라고 대답하시죠.

허문영_ <길소뜸>의 그 장면은 너무나 강렬해서 다시 보니까 그 장면에서 한지일이 김지미 차로 걸어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몸만 살짝 틀었는데, 그 튼 것만으로 성기가 막 다가오는 느낌인거에요. 그만큼 이 장면의 리비도가 센 거죠. 사실 잘못 기억된 상태로 있는 게 훨씬 더 이 영화를 정확하게 보는 거 같고, 보고 걸어온 건 아니었네, 라고 정리하는 게 오히려 잘못 기억하는 거 같고, 걸어오는 걸로 기억하는 게 이 영화에 대한 정확한 기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_ 좀 이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임권택 감독님의 첫 번째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는 처음 개봉했을 때 볼 수 없었고 긴 시간이 흐른 다음 비평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본 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난 영화를 회고한다기보다는 이 영화를 마치 1962년에 만들어진 현대영화처럼 본 느낌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임권택 감독의 시작은 어떤 감독이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허문영_ 그 영화에 대해서는 정 선배가 잘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더 보탤 말은 없고 (웃음) 그 영화는 29살에 만드신 첫 영화인데, 제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인상만으로는 감독이 마지막 장면만을 위해 만든 영화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까지 이르는 이야기는 일종의 핑계처럼 느껴지고, 오직 마지막 한 장면에서 모두 죽었고, 정 선배가 전멸의 테마라고 말씀하신 걸로 기억되는데, 설원에 서 있는 건 나무밖에 없고 인간은 전부 가느다란 실이나 점처럼 누워있는 느낌. 그 영화가 충격을 주는 것은, 임권택 감독이 데뷔작부터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데뷔작에서부터 철저히 상업영화를 만들겠다고 한 사람이 만든 첫 영화에 순전한 죽음의 이미지로 시작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시작일까, 어쩌자고 이런 것일까,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모든 영화를 제가 다 보지 않았지만 임권택의 대부분의 영화들은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한 느낌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어요. 실제로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느낌으로 흘러가고, 인물들도 끝이 아닌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알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으로 행동하면서 말과 이미지가 계속 충돌해요. 굉장히 특별하고 괴기스러운 데뷔작이다, 란 생각이 들어요. 그게 임권택 영화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습작이 아니라 굉장히 의미 있는 출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성일_ 두 번째 질문은, <잡초>가 블랙홀처럼 머물러 있긴 한데,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젊은 임권택, 작가 임권택이라고 이분화 시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시도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오랜 동안 저 자신이 반대해온 방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작전을 진행하면서 임권택이 임권택다워졌다고 생각한 그런 단락(短絡)의 지점은 언제였다고 생각됩니까? 

<망부석>(1963)
<망부석>(1963)

허문영_ 필모그래피가 워낙 울퉁불퉁해서 시작부터 어느 시점부터 명백히 임권택적이라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받은 느낌은... (잠시 생각) <망부석>. 아마 그렇게 훨씬 앞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인거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 바로 임권택적인 세계가 자리를 잡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의외로 너무도 젊은 나이, 64년 31세에 만든 작품인 <망부석>에는 임권택적이라고 말할 만한 게 많아요. 이 네 번째 작품에서 제가 그 이후의 임권택 영화에서 느끼는 게 여기 아주 많이 있구나하는 느낌. 이를테면 <짝코>에서 두 죽어가는 노인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을 프레임의 한 귀퉁이에서 벌이다가 프레임 밖으로 거의 빠져나는 그런 느낌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쇼트가 <망부석>에도 있어요. 혜경궁 홍 씨가 진짜 망부석처럼 서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데, 거기서 그 장면의 주인공은 혜경궁 홍 씨가 아니라 그 마당이고 정원이에요. 이미 자기의 네 번째 영화에서 어떤 예술을 찍겠다는 의도 없이 만들어진 전형적인 사극영화에서도 임권택의 쇼트가 등장하는구나. 되게 특별한 쇼트다, 라는 느낌. 물론 <망부석>은 이야기가 굉장히 울퉁불퉁하죠. 이후에 <요화 장희빈>만해도 <망부석>보다는 훨씬 세련되게 잘 짜여 졌어요. 그런데도 <망부석>은 이야기를 어떤 시점까지 끌고 가다가 자기가 찍고 싶은 쇼트를 그 순간에 등장시키는 어떤 연출의 힘이 여기 들어갔다고 생각됩니다. 

정성일_ 비평가들의 습관이자 씨네필들의 버릇 중의 하나로 이해할 텐데, 임권택의 영화를, 말하자면 다른 감독의 영향 관계 아래 놓으려는 시도, 노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끈질기게 임권택 감독을 미조구치 겐지의 계보 아래 놓으려고 한달까, 정작 임권택 감독 자신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빌리 와일더 이 세 사람을 얘기합니다. 좋아하는 영화로 꼽은 펠리니의 <>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아마 그건 심정적인 공감일 것입니다. 결국 임권택의 영화에 영향을 준 것을 세 명의 할리우드 감독인데. 이 명단이 우리를 몹시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 세 감독은 워낙 다른 사람이니까, 교집합을 찾자면 찾을 수 있겠지만, 영화사의 상식적인 교집합은 아니니까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우리 쪽의 질문인데, 영화사 안에서 임권택을 의식하든, 안하든 계보 안에 끌어들여 놓아야한다면 임권택 영화를 우리는 어느 계보 안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망설임) 솔직히 계보는 잘 모르겠어요. 해외 비평가들이 임권택의 영화를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계보 아래 놓으려고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게 잘 동의가 안 돼요. 

정성일_ 저는 임권택 감독님 영화 중 사실 미조구치 겐지의 영향을 받은 건 <아제아제 바라아제> 단 한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문영_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정 선배가 생각하시는 이유는 다를 수 있겠지만, 해외 비평가들이 떠올리는 건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50년대, 미학화된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일 텐데, 그것과 임권택의 유사성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임권택의 롱 테이크와 롱 쇼트는 장식적이거나 미학적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뭔가 다른 게 있어요. 그게 역사적 시간에 관한 것이든, 풍경의 침묵에 관련되었거나, 임권택의 경우 롱 테이크와 롱 쇼트는 장식적이지 않아요. 미조구치 겐지의 50년대의 카메라 워크는 거의 즐길 수 있을 만큼 장식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조구치 겐지의 50년대 영화 못지않게 30년대 영화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조구치 겐지는 어쨌든지 인물의 힘을 어떤 방식으로든 믿었던 사람이고, 그것으로 버텨내려고 했는데 임권택 감독은 믿지 않는 것 같아요. (망설이다가) 그냥 지켜보는 사람인 거 같아요. 이렇게 지켜보고 저렇게 지켜보고, 이 스산한 거리감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미조구치 겐지가 떠오르지는 않아요. 그 스산한 거리를 말한다면 차라리 존 포드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롯셀리니 이후의 모던 시네마에 정신적으론 더 가까울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모던 시네마는 역사적 시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직접 연결시키기는 좀 힘든 거 같고 임권택 영화는 계보에 넣기에 참 까다로워요. 지금 우리가 보기에 <춘향뎐>과 <축제>는 거의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영화 아닙니까. 이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적 시간, 역사적 풍경, 역사적 소재라는 풍경, 인물이 있고 심지어 전통적인 서사가 있고 동시에 가장 비서사적인 음악적인 리듬과 공존해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당분간은 임권택 영화를 어떤 계보에도 포함시키지 않고 생각을 하는 게 차라리 더 낫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훨씬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정교하게 분석해서 언젠가는 누군가, 혹은 정 선배가 찾아내시겠지만, 저는 계보에 넣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고, 저는 KMDb에 지금 연재하는 글의 제목을 '임권택 X 101'로 잡은 건 그런 뜻이라고 생각해요. 101명의 임권택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임권택이 101편을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101명의 임권택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어떤 틀이나 모델은 당분간 없는 걸로 하자, 그것이 억지로 찾아내는 것보다는 임권택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런 취지에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정성일_ 그렇다면 이번에는 임권택 쪽의 질문인데,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빌리 와일더, 그 세 명의 감독들로 부터 어떤 영향을 받은 걸까요? 사실 이게 더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계보를 짜는 건 주관적으로, 편의적으로, 실용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짤 수 있지만, 임권택 쪽의 방법이 더 이해가 안된달까...

허문영_ 빌리 와일더 쪽은 잘 모르겠어요. 윌리엄 와일더나 존 포드 쪽에서는 (망설이다가) 너무 딱딱하고 진부한 표현일 수는 있겠지만, 공동체의 윤리라는 문제, 혹은 공동체적 제의? 공동체적 윤리라는 영화적 가치와 공동체적 제의라는 모티브는 임권택 영화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거 같아요. 존 포드의 영화에서는 그 윤리를 어쨌거나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임권택 영화에서는 그 실천이 사실은 늘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 다 그 문제를 끝끝내 붙들고 있었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윌리엄 와일러도 그런 점에서 비슷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해>나 <작은 아씨들>이 갖고 있는 공간의 드라마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의 드라마, 사건의 드라마도 있지만 공간의 드라마틱한 배치라는 게 있잖아요. 굉장히 아름답고 영화적인 느낌을 그의 몇몇 영화에서 받습니다. 그 우아함이란 것도 임권택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우아함, 고귀함이라는 가치. 임권택이 보통 한국의 전통 문화를 중시한다, 라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정확하지 않은 거 같아요. 임권택은 오히려 전통 문화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아요. <씨받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 임권택이 갖고 있는 윤리적 질문은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라는 오히려 보편적인 질문에 가까워요. 그것이 혹시나 전근대적인 혹은 종교적인 어떤 것에서 그걸 찾을 수 있는가 질문을 하고 있는 거지, 전통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고 하는 건 정확하지 않은 거 같아요. 반복해서 <장군의 아들>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화면도 굉장히 아름답지만, 그런 것들이 다 들어있어요. 윌리엄 와일러 적인 것, 존 포드 적인 것, 심지어 빌리 와일더 적인 것. 되게 훌륭한 영화라니까요 (웃음)

정성일_ 재평가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허문영_ 그 영화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점 중에서 영화적인 요소가 아닐 수는 있어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예의에요. 예의라는 게 참 아름다운 거구나. 예의의 몸짓이라는 게 있잖아요. 싸우고 나서도 어떻게 예의를 지킬 것인가. 그게 사람을 되게 감동시키는 게 있어요. 영화적 훌륭함과 별개로. 예의라는 것, 공동체의 윤리라는 것, 우아함이라는 게 어쨌든 뭔가 연결되어 있는 거 같고 그게 <장군의 아들>이라는 영화에서 집약화 되어 있다는...

정성일_ 사실 대사를 할 때마다 굉장히 뭉클하죠. ''동생, 내가 졌소. 떠나겠소'' 

허문영_ 그게 영화적으로 촌스럽다거나 대사가 후지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되게 가슴이 아픈...

정성일_ 마치 우리 시대가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점에서 일제 식민지 강점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허문영_ 저렇게 해도 행위가 성립하고 얘기가 성립하는데 그게 지금은 마치 없는 것처럼 얘기가 만들어질까 싶은 거죠. 얘기가 성립하잖아요. 임권택이 그런 세계를 보여주는 거죠. 예의를 지키면서 성립되는 세계. 

정성일_ 장르를 갖고 얘기하자면 임권택 감독 자신은 수많은 장르를 찍었습니다만, 그 자신이 언급하는 것은 서부극 외에는,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장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말하자면 이제 KMDb에 '존 포드'를 연재하는 허문영 존 포드 매니아 덕후께서 (웃음) 임권택과 서부극이란 것 사이에서, 그가 만든 짧은 시기 만주 웨스턴이 아니라, 임권택 영화 전체를 놓고, 그런 다음 그 곁에 서부극을 놓고 임권택 영화와의 친화성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수색자>(1956)
<수색자>(1956)

허문영_ 굉장히 도식적으로 대답하게 돼요. 왜냐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서부극은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원형적인 장르라고 생각해요. 서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모든 장르들은 서부극의 하위 장르다, 서부극의 어떤 특정한 측면을 가져온 하위 장르다, 라고 까지 다소 지나치게 말하고 싶어요. 그게 원형적인 장르인 이유는 제가 아까 말씀드렸을 때 임권택 영화에서 발견하게 되는 세 층위가 있는데, 하나가 쉽게 말해서 인물의 시간이 있고, 인물이 하나의 얘기를 만들어가는 거죠. 또 임권택 영화에서 역사적 시간이라는 층위가 있잖아요. 영화에 끊임없이 역사적 인물을 끌어들이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역사적 시간, 또 다른 시간으로는 풍경의 시간, 전 이 점이 굉장히 특별한 층위라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가설은 임권택 영화는 이 세 가지 시간이 끊임없이 서로 긴장하는, 서로 서로 모습을 바꾸고 자리를 바꾸는 긴장과 자리바꿈의 영화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이 세 개의 시간을 같이 담고 있는 유일한 영화가 서부극인데, 서부극은 미국의 역사적인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졌는데, 그 경험으로부터 신화적인 영웅이 태어나지만, 신화적인 영웅은 풍경에서 자유롭지 않죠. 풍경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심지어 이 두 개의 시간들을 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부극이 갖고 있는 아주 원형적인 세 층위의 긴장과 대립이라는 게 임권택 영화에서 똑같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임권택 영화는 서부극적 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_ (잠시 생각) 음... 설득력이 있네요.

허문영_ 정확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느낌으로 항상 세 층위가 같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늘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자리를 바꾸기도 하고, 어느 한쪽이 가려서 안보기이기도 하지만, 임권택 영화에서 늘 그 세 개가 항상 작용한다... 굉장히 도식적이죠.


정성일_ 느닷없이 질문을 하자면, 영화에서 고전주의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대체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저는 개인적으로 고전주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크 오몽에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고전주의적인 영화가 있을 뿐이지, 고전적인 시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존 포드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그 이야기를 말할 생각인데, 존 포드는 고전적인 서부극을 만든 적이 없어요. 영화학자나 평자들에게 고전적인 서부극이라는 틀이 있지만, 그 틀에 맞는 존 포드 영화는 없어요. 서부극은 가장 고전적인 장르이고 존 포드는 서부극의 가장 고전적인 장인인데, 그가 고전적인 서부극을 만든 적이 없다면 고전기란 게 도대체 있었는가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무성영화가 얼마나 아방가르드의 천국이었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잖습니까? 

정성일_ 그 관점에 따른다면 영화라는 건 모던 시네마, 울트라 모던 시네마, 포스트모던 시네마 같이 시기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네요?

허문영_ 그것들이 비중을 달리하면서 어떤 경향을 만들어 낸 적은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진화론적인 단계를 거친 적은 없다,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아직도 1925년에 만들어진 무르나우의 <썬라이즈>가 항상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언급되겠습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항상 다른 어법들이 명멸하고 진행되어 오면서 어떤 기법들, 어떤 방식들이 추세적으로, 경향적으로 우위에 선 적은 있지만, 고전적인 시대가 있고 모던한 시대가 있었던 적은 없었고, 심지어 가장 고전적인 것처럼 보이는 영화들조차 모던한 혹은 포스트 모던한 힘이나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_ 만일 그렇다면 영화란 결국 모던한 것이다, 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모던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힘, 양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던을 작동시키는 그런 힘?


허문영_ 시간과 풍경, 시간과 장소. 이건 영화 이론가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만이 장소의 시간, 풍경의 시간을 담아낸다고 생각해요. 20세기의 영화만이... 풍경이나 장소는 사실 보통 영화에서 고정적인 것으로 등장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위대한 영화들에서는 항상 풍경이 승리하고, 장소가 승리한단 말이죠. 시간적 승리죠. 개인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이 풍경의 시간과 장소의 시간 앞에서 어떻게 버텨내는가가 영화가 시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앞에서 위대한 영화들은 종종 결국 풍경의 시간과 장소의 시간 앞에서 승리를 하는 방식으로 끝나거든요. 모든 인간의 개인적 승리와 역사적 승리는 잠정적인데, 영화만이 그걸 했던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그런 영화는 1910년대, 20년대에도 있었고, 영화만이 아직 그걸 가능한 것으로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는 본질적으로 모던하게 찍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본질적으로. 아무리 고전적인 의도를 가진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영화를 찍는 순간 모던한 세계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장소가 나오고 풍경이 나오는 거죠. 

정성일_ 우리 얘기로 돌아온다면, 그 주장을 따라가면서 임권택 영화를 가장 모던하게 만드는 시네마틱 모멘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제가 어느 순간부터 임권택 영화에서 감동받는 것은 카메라가 갑자기 물러설 때. 사건을 찍고 있다가 카메라가 느닷없이 물러서면서, 심지어 그것을 정면으로 찍지도 않아요. 한쪽에 몰아놓고 찍는데, 누구의 시선도 아니죠. 오직 카메라의 시선이나 감독의 시선인데 그게 미학적인 선택이 아니라 임권택이 인물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나 감각을 고스란히 한 표현인데, 그 표현이 저에게 그걸 굉장히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임권택의 롱 쇼트는 미학적인 선택이 아닌데도, 구도를 아름답게 한 것이 아닌데도 그자체로 너무 아름답지만, 물러서는 순간 굉장히 쓰라리고 뼈아픈, 슬픈 느낌이 동시에 들고, 인물이,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니구나. 임권택의 롱 쇼트가 갖고 있는 굉장히 특별한 힘인 거 같아요. 이를테면 롱 쇼트를 굉장히 아름답게 찍은 영화들이 많이 있잖아요. 하지만 임권택의 롱 쇼트만큼 슬픈 느낌을 주는 롱 쇼트는 거의 못 본거 같아요. 

정성일_ 임권택 영화를 굉장히 모던하게 만드는 힘 중의 하나는 플래시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미 <망부석>에도 플래시백이 등장하고, 여러 가지 변주를 거쳐서 이제 <짝코>에서부터 의식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플래시백의 구조는 가장 영화적인 토픽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만, 플래시백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기억의 방식이기도 한 것인데, 임권택의 플래시백이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년학>(2006)
<천년학>(2006)

허문영_ 저는 임권택의 플래시백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된 견해가 없어요. 그냥 잠정적으로만 말씀드리면, 임권택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와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과거가 결별하기 위해 등장한다는 것이 제 잠정적인 가정입니다.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플래시백이 등장한 적은 없어요. 그렇게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종적인 결말은 그 플래시백이 현재에 도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끝나는 거 같아요. 굉장히 이상한 플래시백인거죠. 현재와 늘 불화한다는 게 참 이상한 건데, 그 불화라는 게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닌데, 항상 그것을 등장시켜놓고 그것으로부터, 오늘을 설명하진 않아요. 아주 예외적인 경우 하나가 <천년학> 마지막 장면에서 송화가 등장해버리잖아요, 이것은 변형된 임권택의 플래시백이지 전통적인 플래시백은 아닌 거 같아요. 아 그래서 이렇게 됐구나가 아니라 튀어 나버린 거죠. 그렇게 보면 <천년학>도 매우 기괴한 영화인 거죠. 

정성일_ 그렇죠, 매우 기괴한 영화죠. 카메라가 물러나는 것이 임권택 영화에서 감동적인 부분이라고 하셨는데, 임권택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허문영_ 흥미롭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재미있다고 보는 건 섹슈얼한 부분이에요. 임권택 감독님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시지만. 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성적인 에너지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재밌어요. 90년대 이후 영화에는 그런 게 오히려 절제되어 있는 편이긴 한데 <장군의 아들>도 다시 보면서, 여기에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있다는 걸 다시 보고 깨달았어요. 완전히 까먹었거든요. 노출이 다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장군의 아들이 게다가 조루라는 설정... (웃음) 심지어 하고 나서 벗은 두 남녀의 뒷모습이 보이고, 여자가 박상민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그거 너무 재밌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에피소드는 이 양반이 도대체 저 에피소드를 왜 넣었을까, 그 다음에 성적으로 성공한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티켓>같은 영화는 몰락하는 영화고 타락하는 영화고 그 몰락과 타락에 분노하는 영화인데, 이상하게 그 막내 다방 레지가 고객과 섹스를 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장면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찍어요. 그런 대목들이 임권택 영화의 균질성을 깨뜨린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걸 분노의 영화로 보면 그 장면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거든요, 근데 그 장면이 있어요. 저는 임권택이 가지고 있는 정직함, 솔직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도 모르게 드러난 솔직함일 수도 있고 설계된 솔직함 일수도 있는데 어느 쪽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질문을 드리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라고 틀림없이 반문하실 거 같아요.

정성일_ 대담무쌍하게 제가 27살에 딱 그런 맥락으로 질문을 했어요. (웃음) 임권택 감독님이 대답을 하다말고, 저를 30초 동안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시더라구요. 그러시더니 그건 정성일 씨가 더 살아봐야 아는 거요, 하시는 거예요. 그냥 멍한 표정으로 다음 질문을 잊어버린 거죠 (일동 웃음)

허문영_ 이를테면 <천년학>에서 백사 노인의 화려한 죽음도, 표면적으로 보면 화려함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솔직함이거든요. 그 친일파가 호사스럽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습니다. 그걸 이 영화가 거부합니까? 거부하기는커녕 어마어마한 방식으로 찬미하지 않습니까? 찬미한다는 표현이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을 수긍하지 않습니까? 그걸 수긍한다는 건 엄청난 솔직함, 정직함인 거 같아요. 

정성일_ 그런 것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흥미롭다면, 불편한 대목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허문영_ 불편한 대목들은 대사들이죠, 대사들. 어마어마하게 교훈적인 대사들. 저는 임 감독님께 직접 말씀드린 적은 없는데, 감독님이 <짝코>를 말씀하실 때 늘 삭제되어서 아쉽다고 말씀하시는 장면 있잖아요, 그게 뭐냐면 행려 감호소에 있는 TV에서 방영하는 내용인데, 거기서 아나운서의 멘트로 6.25는 열강들에 의한 대리전 이었다, 그걸 말하는 장면인데 그게 짤린 거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하시잖아요. 그 말씀을 두세 번 들었는데, 임 감독님은 그게 그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 중요한 장면이라고 하셨는데 제 마음 속으로는 그 장면이 없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장면은 너무 설명적이고, 그 장면을 보고 두 사람이 깨닫는 건 말이 안 돼요. 두 사람은 이미 삶 자체로써 충분하고 그리고 상대방의 죽어가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거기에 무슨 새로운 각성이 필요해요? 그런 설명은 없어도 되는데, 말로 꼭 설명을 해줘야 애들은 알아먹어, 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대목이 되게 많아요. 그 설명이 나올 때마다, 감독님 설명을 조금 줄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말하고 싶어요. 

정성일_ 이를테면 허문영 씨께서 새로이 등극시킨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걸작, <장군의 아들>에서도 김두한과 김동회가 싸우는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김두한의 친구가 싸움판에 끼어들어 저놈은 일본의 개다, 라고 소리칠 때, 김동회는 나는 맞아죽어도 싸다, 라는 표정으로 일방적으로 맞을 때는 사실 김이 세죠. (일동 웃음)

허문영_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건 젊은이들에게 꼭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 대사는 늘 설명적이 되고 교조적이 돼요. 그때 저 장면이 빨리 넘어가면 좋겠다 싶어요.

정성일_ 우리가 임권택 감독님의 걸작의 시기만 얘기를 했었는데, 임권택 감독님의 68년에서 <잡초> 직전에 이르는 영화들, <삼국대협>, <뢰검>, <비검>... 참으로 장점을 말하기 힘든 영화라고 할까, (웃음) 말하자면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에서 정말 어쩔 수 없었지만 하여튼 영화를 만들어야만 했던 이 시기의 영화를 바라보는 느낌이 어떻습니까?

허문영_ 그 얘기가 나왔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질문을 드릴게요. 사실 제가 할 말은 특별히 없는데, 정 선배가 연재를 하시기 때문에 제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 선배가 쓰신 <장안명기 오백화>와 <뢰검- 번개칼>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보고 필사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웬만하면 구원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건 구원비평을 넘어서 신을 사도가 방어하듯이 필사적으로 방어한다는 느낌이었어요, 한 사람의 작가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했어야했나요?


<삼국대협>(1972)

정성일_ (잠시 생각) 무언가 이 시기를 비평이 써야 한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아마 그건 허문영씨께서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더 미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영화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 영화들이 무언가 부서져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제가 본 것은 의도적인 자포자기였습니다. <망부석>을, <법창을 울린 옥이>를, <황야의 독수리>를,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를 만든 감독이었습니다. 심지어 <삼국대협>에서 대나무 숲에서의 검술 액션 장면도 그 자체로 어떤 영화적 쾌감이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걸 찍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영화 안의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적장 구로다가 명검을 휘두르니까 대결이 시작되자 마자 중국의 외팔이, 일본의 맹협, 조선의 일지매의 칼이 그냥 무 잘리듯 부러져나갑니다. 이건 대결장면 자체를 찍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것입니다. 검술 영화가 클라이맥스에서 마지막 대결의 순간에 그걸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구로다가 명검을 두 번째 휘두르니까 외팔이의 팬티가 벗겨져서 그걸 추스르며 이 방 저 방을 도망쳐 뛰어다닐 때, 이건 그냥 이 순간을 마치 망쳐버리고 싶은 포기의 의지랄까, 긍정이 아닌 부정 안의 결단이 있을 때, 물론 저는 이것이 <잡초>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그때 막바지까지 와있는 임권택을 보는 느낌이 있었던 거예요. 저는 구원하고자 한 게 아니라 자포자기를 묻고 싶었던 거예요. 이 시기에 제가 건드려보고 싶었던 건 자포자기의 연출이란 무엇인가, 이것도 하나의 개념이 되지 않을까. 한 번도 영화비평이 건드려보지 않았던 문제, 만약 이걸 이론적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면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갔었을 때 수많은 감독들, 이런 관점에서 이만희를 구원할 수 있고 김기영을, 또 유현목을 새로운 자리에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 시기가 단지 폭력적인 검열뿐만 아니라 끔찍한 산업적 구조 안에서 영화에 어떤 기대도 없는 구경꾼에 가까운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대의 감독들이 견디는 와중에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포자기의 연출, 의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매우 부정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살아냄이랄까, 그런 것에 관한 하나의 서문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68년에서 79년에 이르는 이 시기의 한국영화를 위해서 누군가는 새로운 비평의 전술이랄까, 모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1960년대가 에덴동산이었다면 1970년대는 지옥의 연대기였습니다. 저는 지금의 영화 학자들이 하는 방식으로는 그 시기를 복원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어떤 실망감이 있습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비평가들의 임무 같은 것입니다. 이건 영화의 담론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영화의 형상이 부서진 것이니까요. 그런 생각이 있는 거죠. 너무 위험한가요? 

허문영_ 약간은 이해가 되네요. <뢰검>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이건 너무 지나치다. 이 영화를 정 선배가 설명하는 방식도 오마주도, 그리움도, 그 시대에 대한 회복에의 의지도 없는 어떤 특별한 방식의 회상이다, 라고 말했을 때, 이 설명이 성립하려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인격과 기억이라는 완전히 영화 외적인 요소를 동원하지 않으면 전혀 설명이 성립하지 않잖아요. 이 감독의 인격과 영화적 경험을 동원해야지 설명된다면,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이 아니지 않은가, 이 감독의 평전이 아닌가, 이건 이 감독의 삶을 말하기 위해 영화가 끌려온 게 아닌가, 그래서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 이 연재를 시작할 때 모든 영화를 처음 보듯이 본다고 했는데, 그럼 처음 보듯이 봐야지 왜 임권택 감독의 개인사와 영적 고뇌와 기억을 영화를 설명하는데 끌어들여서 이 영화를 왜 그의 삶을 말하는 데 쓰고 있는가, 이건 본인 필자의 처음 약속과 다르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정 선배가 지금 하신 말씀은 이건 임권택 개인의 어떤 선택일 뿐만 아니라 그 시기를 살아온 감독들, 어떤 시기에 감독들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패턴이고 양식이었다면 비평적으로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고 과도하다는 느낌 자체가 없어지진 않네요. 

정성일_ 이제 제 질문에 답할 시간입니다. (웃음) 

허문영_ (웃음) 저는 그 질문 외에는 정 선배의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어쨌든 임권택 영화뿐만이 아니라 히치콕, 존 포드 영화에도 버려야 할 영화는 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그걸 다른 평자가 선택해서 내가 못 본 걸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걸 내 눈으로 보기에 버릴 수밖에 없는 영화는 버려야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다 끌어안을 만큼의 힘은 없는 거 같아요. 그거는 인정을 해야 할 거 같고. 그래서 그 시절의 영화들, <뢰검>이나 <장안명기 오백화>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웃음)


<하류인생>(2004)

정성일_ 알겠습니다. 이건 제 숙제이군요. (웃음) 임권택 감독님이 <만다라> 이후에, 혹은 <씨받이> 이후에, 혹은 <서편제> 이후에 <취화선> 이후에 비평가들의 환호를 받고 잘 받아들여진 것 같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비평가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감독 중 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게 최근작, <하류인생>에 대한 비평의 실패, <천년학>에 대한 비평적 무관심. 말하자면 곁에서 생각하기에 한국의 비평 담론이 임권택 영화에 대해 가장 오해하는 측면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저는 그 오해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 임권택 감독님 본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개벽>에서 인본주의라고 말한 순간부터 저는 그 오해가 완전히 지배적인 게 되어서, 아직도 그 안에서 못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저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임권택 영화는 한 번도 인본주의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고 이 세상의 모든 영화는 인본주의적이에요. 따라서 인본주의는 임권택 영화를 설명할 어떤 키워드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임권택 영화는 반인본주의적인, 통상적인 의미로 인본주의라고 말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그가 영화적 순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임권택 영화의 키워드를 굳이 말하자면 저는 반(反)인본주의라고 생각해요. 임권택 감독님 스스로 굉장히 공들여 찍었고 알아봐줬으면 하고 바라는 장면 중 하나인, 춘향이가 곤장을 맞을 때 카메라가 뒤로 휙 빠질 때 그게 인본주의적입니까? 그게 곤장을 맞는 춘향이의 아픔을 카메라가 지금 같이 겪고 있습니까? 전혀, 천만의 말씀이죠. 전혀 아니죠. 인간의 개별적 고통이라는 것에 영화가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걸 외면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거에 매달려서는 영화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본주의라는 틀로는 카메라가 뒤로 빠지는 순간을 볼 수가 없죠. 그게 보입니까, 안보이죠. 뒤로 빠지면서 그 영화는 무엇에 봉사합니까? 판소리의 리듬, 음악적인 어떤 조화의 순간, 아름다움.. 인간의 개별적 사연, 인간의 개별적 드라마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의 순간을 위해 개별적인 고통과 시련을 포기해버리잖아요.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걸 뒤로 밀어내면서, 카메라가 뒤로 빠진단 말이에요. 이 카메라는 반인본적인 카메라에요. 이 카메라를 선택한 사람이 자신의 영화를 인본주의적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그걸 듣는 사람은 그런가 생각하고 그때부터 오해의 말들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장승업이 불가마 속에 뛰어 들어가는 장면이 인본주의적입니까? 전혀 아니죠. 장승업은 인본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한 사람이잖아요. 실패한데서 이 영화가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런 인간사와 다른 층위가 뭔가 있지 않을까하는 게 장승업의 최후의 선택이잖아요. 자기가 가마가 되고 자기가 도자기가 되고, 자기가 도자기 표면에 새겨진 그림이 되는 거잖아요, 흙이 되고 어떤 물질이 되는 거잖아요. 임권택의 영화는 끊임없이 자기도 모르게, 인간이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지만, 결국 그게 불가능하다면, 대신 어떤 고백을 계속 해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백의 어떤 시점부터 말 그대로 미학적인, 어떤 비약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까지 결국 자기 영화를 밀고 나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하류인생>에서 다시 인간의 얘기로 돌아왔을 때 미학으로 나갈 가능성이 전무한 인간의 이야기로 돌아왔을 때, 그 모든 시간은 죽어버리잖아요. <하류인생>에서 주인공의 시간은 결국 다 죽어버리잖아요. 각성이 없잖아요. 각성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각성이 어떤 비약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죽어버려요. 죽어버리기 때문에 영화가 자막으로 보충하는 거잖아요. 그 자막이 뭡니까? 맑아질 조짐이 보입니다. 맑아졌다는 것도 아니야, 맑아질 조짐이 보인다는 것, 이 드라마가 얼마나 완전히 실패했는지를 이 자막보다 더 철저히 드러내주지 않아요. <하류인생>은 아마 제 생각에는 감독님이 이렇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데, 만들다보니까, 아, 내가 더 이상 인간의 드라마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냥 깨달은, 스스로 만들면서 알게 된 영화, 그래서 마침내 그 영화를 어처구니없는 자막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는 영화, 마지막 그 몇 문장의 자막이 영화를 덮어버리는.. 그래서 난 이 오해로부터, 영화를 평하는 사람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임권택 감독님 스스로 표명하신 인본주의라는 키워드를 빨리 폐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 본인이 들으시면 굉장히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기 때문에 임권택 영화를, 상식적인 의미와는 다른 반인본주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볼 때마다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일_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비평가들이 정식화시킨다면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가 우리에게 준 영화적 유산이란 뭘까요? 너무 서두른 것일 수도 있지만.

허문영_ (망설이다가) 임권택의 영화는 컨셉츄얼한 모던 시네마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한 번도 없었어요. 한 번도 임권택은 컨셉츄얼한 모더니즘에 이끌린 적은 없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임시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임권택의 영화는 체험적인, 경험적인 모더니즘 영화인 거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소재에서 시작을 하더라도 모던 시네마가 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의 모던 시네마가 주는 어떤 감흥은 형식이 주는 감흥이 아니라 생(生)체험이 주는 감흥. 모던 시네마는 사실은 생체험이라는 게 키워드가 아니거든요. 근데 희한하게도 임권택의 모던 시네마는 생체험이 거의 절대적인 요소예요. 그게 임권택의 영화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요. 스스로 만들면서도 그걸 새겨놓고 그걸 보는 사람에게도 전이시켜요. 아마 우리가 임권택과 같은 땅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걸 좀 더 잘 느낄 텐데, 해외 관객들에게 종종 알쏭달쏭한 영화처럼 비쳐지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굉장히 특별한 유형의 특별한 모던 시네마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임권택이 어떤 형식의 모험을 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더라도 어떤 미학적인 몸부림으로 느껴지기 이전에 그가 처음부터 자기 머릿속에서 떨어질 수 없는 공동체의 윤리라는 문제.. 일종의 탐구과정이라고.. 뭐 잘, 하나의 몇 가지 키워드로 잡힐 수 없는 세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요. 공동체의 윤리가 사라졌다, 불가능해졌다라는 얘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모던 시네마는 그 이후에 찍는데, 임권택은 그 이후를 살면서 그 이전을 결코 잊지 못하는 사람.. 잊지 못한다는 자신과 눈앞에 보이는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세상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잖아요. 분열 자체를 그 영화가 계속 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위태위태한, 언제든지 분열 직전, 파열 직전의 모더니즘.. 그래서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 늘 아슬아슬한 느낌. 아슬아슬하게 넘어간다는 느낌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냥 미학적인 선택을 해버리면 되는데, 미학적인 선택에 만족을 못하거든, 그래도 혹시 라는 게 임권택의 영화를 위태롭게 만들고 그래도 정직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기 분열을 방어하기 위해 장치들이 들어오고, 그 장치들이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기적적으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어느 경우든지 위태로운 느낌은 들어요. <하류인생>이나 <천년학>은 엄청나게 위태롭고 <취화선>도 위태롭고, <춘향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점에서 몸으로 버텨낸다는 게 어떤 감독에게도 찾기 힘든 진정한 미덕이라기보다는.. 뭐, 팔자고 운명이고, 그 운명이 그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영화라는 출구로 삐져나온 힘 같은 게 되는, 그런 느낌을 남겨주신 것 같습니다. 

정성일_ 잘 들었습니다. 함께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생각해주어 감사합니다. 



2013년 12월 26일 약간 비가 내린 다음 몹시 바람이 차가웠음 
진행, 정리, 사진_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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