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인터뷰 두 번째 이야기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3-12-31조회 17,673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인터뷰 두 번째 이야기: 
“그때는 내가 쓰면 최고의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정성일_ 드디어 <만다라>입니다. <만다라>는 한국영화사상 10 베스트 영화에 꼭 들어가는 한 편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훌륭하다고 말하기보다 이상하게 볼 때마다 심금을 울리는 어떤 힘이 거기에 있습니다. 감상이랄까 그런 게 전혀 없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마음을 움직인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깊이도 볼 때마다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고나 할까요. 임권택 감독님 말씀에 따르면 당신께서 어떤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제작사에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만다라>는 예외로 소설을 읽자마자 이걸 영화로 하고 싶다고 화천공사에 이야기를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일성 촬영감독도 큰 수술을 마치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찍다가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최후의 영화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소변통을 옆에 차고 촬영을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이 모든 힘들이 이 한 편의 영화에 모이면서 단지 1+1+1... 이 아니라 마술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난 영화인 것 같습니다.

<만다라>(1981)
<만다라>(1981)

송길한_ 그거는 정성일 평론가나 보는 눈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 이것은 창작자도 모르는 플러스알파가 있거든. 그건 몰라. 다 모르는 거거든. 이 비밀이 없으면 영화를 못해먹지. 이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거지. 미리 짜고 친다고 고스톱 되는 게 아니고, 영화를 하다 보면 진짜 아, 이건 정말 몸 한번 던져보고 해볼만 하구나. 이런 게 있거든. 근데 나는. 무엇인지 모르는, 애틋함 같은 게 근본 속에 있다고 하는 건, 소설에서처럼 단순히 두 사람의 구도자들의 실지적인 불교 생활을 그렸다면 그건 없어졌을 거야. 누구들은 이것이 광주사태 이후의 저항처럼 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여. 그건 두 젊은이의 자기완성을 위한 어떤 치열함을 그리자, 그런 데서부터 불교가 갖고 있는 꽉 짜인 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 않나 싶어. 그게 나는 오히려 대중들에게 더 보편적인 진동을 주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

정성일_ 선생님께서 처음 김성동 씨의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첫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송길한_ 난 그저 그랬어. 둘이 가다가 가끔가다 지산이가 나타나서,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서부극의 갱처럼 휘젓는 것 말고는 재밌는 게 없었어. 너무 논설이 길어. 안티 불교에 대한. 십 년간 회상을 하는데 지겨운 것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교단에 대한 것들은 다 삭제해버리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지. 그러고 나니 상당히 좋은 거야. 특히 서정성이 좋아.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버스 오는 씬. 그 장면에서 숨 막혔거든. 극장에서도 물을 뿌린 듯 정적감만 감돌았지. 

정성일_ <짝코>가 플래시백 구조가 통할 것인가를 놓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조마조마한 장치였다면 <만다라>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형이상학적인 대사가 통할 거라는 것이 제일 큰 관건이었을 텐데. 이 힘겨운 대사에 작가의 확신이 있었습니까?

송길한_ 나는 확신은 없었어. 절간에 드나드는 사람이나 알까. 젊은 애들은 더더욱 모를 테고. 하지만 못 알아들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는 사람이 봤을 때 저건 구라야 하면 작품 전체가 정말 구라인 거잖아. 하지만 제대로 썼구나, 하는 소수가 있다면 괜찮은 거니까. 감독님도 그 신념이었을 거야. 그런 신념이 무섭지. 그런 오기 같은 게 임 감독님에게 있다고. 관객이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는 거. 전문인들 몇 명이 인정하면 돼. 그게 상당히 중요한 거 같아. 그러니 편해지지. 무슨 어려운 얘기가 있더라도 그냥 썼지. 그래서 감독님은 정일성 촬영감독을 그렇게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어. 앓을 때에 문병도 가고. <만다라>는 서정성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그게 맞아떨어졌어. 풍광이 주는 비애 또는 애수라 할까, 그런 정감들이 관객의 가슴에 스며드는... 

정성일_ 한편으로 <만다라>는 첫 번째 데뷔작부터 순서대로 따라 오면서 다시 보면 임권택 감독님의 첫 번째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송길한_ 근데 그 형이상학이 그렇게 보편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주지는 않지. 그래서 맨 처음 이 영화를 절간의 승려가 아니라 두 젊은이가 자아완성을 향해서 가는 치열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 거였어.

정성일_ 여기에는 약간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찍지는 못했지만 <비구니>가 있고, 그리고 선생님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있습니다. 1980년대 임권택 감독님은 많은 시간을 영화에서 불교와 함께 보냈습니다. 불교의 무엇이 그렇게 그 시기를 이끌었을까요? 

송길한_ 나는 우선적으로 구도승들이 갖고 있는 치열성. 그게 가장 매력적이여. 그래서 그네들이 ‘만다라’를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가 아니라 거기까지 근접해가는 이야기를 한 것이거든. <비구니>는 분단 상황도 다 들어가는 건데, 전쟁 중에 그네들이 삶을 버텨내고 어떻게 자기들 나름의 원칙을 지켜내고 치열하게 가는가. 그리고 여기에서 고아를 위해 몸 한번 준다. 이런 거랑 의미가 달라. 이것은 붓다가 갖고 있는 큰 것과 맥이 닿고 있는 거지. 이 양반이 좀처럼 그런 소리를 안 하는데, 여름철에 혀 빠지게 쓰고 있는데 한번은 쓱 오더니 그래. 좋네, 어쩌면 이것이 송 작가의 대표작일 거여, 그런 소리를 다 하더라고. 나도 자부심이 있었고. 임 감독 자신도 본인의 입으로 나는 수많은 전쟁영화를 찍었지만 그렇게 스펙터클하고 착 앵기는 씬을 찍은 거는 처음이라고 했거든. 그런 걸 못 본다니 어이가 없는 거지. 김지미 씨도 몸을 던져 정말 열심히 했거든. <만다라>, 저건 내가 한방에 보낼 수도 있다, 그런 야심도 있었을 거야. 영하 몇 도 되는데 그 추운데 발가벗고 찬 물에 뛰어 들어가고 스텝들 다 있는데 무서운 거지. 그 열정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거여. 


<만다라>의 풍경

정성일_ <만다라>는 여러 가지 빛나는 부분들이 있지만, 촬영의 풍광이 아름답게 빛나는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이 풍광이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한데, 이런 경우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 헌팅과 시나리오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송길한_ 그건 원작이 있는 경우니 내가 무슨 풍경을 잡자, 어쩌자 할 수가 없지. 내가 헌팅을 다녀와서 지문에 어떻게 쓰고 그럴 수도 없고. 감독님도 이미 헌팅을 다 해놓으셨을 거야. 그때 아마. 

정성일_ 시나리오를 쓴 입장에서 완성된 후에 <만다라>를 본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송길한_ 좋았어. 거진 완벽 하구나 그랬지. 녹음실에서 봤을 때, 처음에 동안거(冬安居)에 관한 디졸브 몽타주가 있잖아요, 선방생활을 하나로 묶는. 사실 그게 (시나리오에서는) 뒤에 나오거든. 임 감독님이 꿈틀꿈틀하더니 “어이 송작가” 부르더니, 나를 데리고 필름 들고 편집실에 간 거야. 그리고 그 부분을 도입부에 갖다 붙이는 거야. 아예 동안거 과정을 영화 앞에 간략하게 싹 전제해버리는 거야. 그리고 보니 벌판길 롱 테이크가 압도된 거지. 편집을 상당히 꾸물꾸물하더라고. 그러다 밤 두, 세시 되었는데 딱 결심을 하더라고. 그 기억이 참 생생해. 

정성일_ 시나리오를 써놓은 상태에서 <만다라>는 유랑하듯이 영화가 진행됩니다. 이 경우 시나리오와 영화의 편차가 어느 정도 작용이 됩니까? 

송길한_ 불교 특유의 만행(萬行)이라는 게 있잖아요. 떠돌면서 수행하는 거. 나는 처음부터 절간 포함 로드무비라고 생각했어. 절간도 지나가다 들리는 주막이나 마찬가지인 거지. 이걸 도입부에다 때려버리고 그렇게 프리하게 간 거지. 그게 간결하잖아.

정성일_ 반면에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 대해서 많은 비평가들이 그런 압축적인 표현, 간결함, 어떤 감정을 절제하는 것을 장점으로 얘기하면서도 가끔은 지나치게 설명적이지 않나 그런 얘기를 종종하지 않습니까? 간결함과 지나친 설명이 공존하는 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송길한_ 영화 뒤에 자막 붙이는 거. 얘기를 영화로 다 해놓고, 주제가 되는 것을 목소리로 설명을 한다든가, 나도 대놓고 얘기 했어. 근데 감독님이 아니여, 다 필요해, 그러는 거여. 감독님이 필요하다고 하는 그런 영화들은 대부분 다 해외 영화제에 다 내보내려 한 것들이야. 그건 일종의 못 알아들음에 대한 어떤 자막으로써 주는 함축적인 테마가 아닐까.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에서 “사랑도 모르는 것들이 전쟁은 무슨”하는 야유의 자막처럼 하면 되는데, 사실 아무 것도 없어야 저게 뭔 이야기야, 하면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론을 딱 내려주니까, (잠시 생각) 하지만 그것이 감독의 자기 주관이고 신념이고 한다면 뭐라 말을 할 수 없어. 모르고 가면 몰라도 자기도 알고 간다는데 할 말이 없지. 어쩌면 그분만의 완벽성이 아닐까?

정성일_ 자막 문제뿐만이 아니라 저의 경우 <만다라>에서 법운 스님으로 나온 안성기 선배의 속세시절 대학생 에피소드가 나온 순간에는 설명을 넘어서서 당황을 했습니다. 이게 왜 필요하지? 

송길한_ 나도 죽고 싶어. (웃음) 내가 썼지만 정말 죽고 싶어. 그건 쥐가 물어갔으면 좋겠어. 그건 감독님도 마찬가지일 거여. 잘 없어졌다 그러실 거여. 물론 그의 세속 시절의 출가 동기를 설명하는 씬인데, 너무 구질구질한 거지. 그림도 별로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쳐다보면 더 죽겠는 거지. 그때 당시는 몰라서 넘어갔는데, 한참 뒤에 쳐다보니 내 보기에도 웃기고 손가락이 오글거려. 그 관념적인 대사를 연인끼리 주고받는다는 게..

정성일_ <만다라>는 몹시 강렬한 에피소드인데도 저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기억 속에 지워지는 게 지산이 법운과 사창가에 간 대목입니다. 매우 중요한 장면이기도 한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법운이 떠도는 풍광이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 대목들이 자꾸 잊혀 집니다. 한편의 영화 안에서 완전히 반대되는 그 두 에피소드, 지산과 법운의 세계의 균형을 잡는 게 무척 어려웠을 거 같습니다. 

송길한_ 법운의 승려생활이 청정 FM이라면 지산은 파계도 두렵잖은 무애주의(無碍主義)인거죠. 그러나 두 사람의 수행이 맞닿는 꼭짓점은 하나이고 같다. 길은 다를 수 있되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종착점은 같다. 이게 두 사람의 균형이 아닐까? 

정성일_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가끔 섬뜩한 느낌이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성공적인 시골 지도자를 다르면서 온갖 우여곡절 끝에 그 자리에 이른 인물을 다룬 다음에 문득, 이건 성공 다음을 다루어야 진짜 이 사람을 보는 거야, 할 때, <길소뜸>, 그리고 <티켓>에서의 원래의 비정함.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 거기서 오는 어떤 얼음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반대로 선생님의 시나리오를 읽으면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해석이나 결론에서 서로 근본적으로 갈릴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송길한_ 나도 무슨 신뢰나 이런 거 없어.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한, 우리가 그런 쪽에다 시야를 줘야하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투시지. 머 절대적인 사랑 이런 건 나도 없어. (잠시 생각) 무슨 말인지 나도 충분히 알겠고. 몇 년 전에 <달빛 길어 올리기>를 하는데 임권택 감독님이 저것들 미친 것들이여,를 입에 달고 살아. 전체 인물들이 다 미친 것들이여. 인간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치 자기 주문, 주술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미친 것들, 하고 가는 거여. 거기 더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스스로 자기 경계를 강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다 그분만의 안목이겠지. 

정성일_ <만다라>를 찍고 나서 다음 작품이 약간 당혹스럽게도 역시 로드무비이긴 하지만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찍었습니다. 

송길한_ 감독님도 그렇고 나도 그걸 생계형 영화라고 봤다고. 근데 전작전(全作展)에서 다시 보니 절대 생계형 영화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얘기했어. 감독님 만나면 반드시 얘기할 거야. 지금 보니 생계형 영화 아니라고. (웃음)

정성일_ 영화가 갖고 있는 굉장히 독특한 세계가 있다고 할까요. 진담으로 유부녀판 <만다라>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소 기괴한 발상으로 영화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송길한_ 이 영화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는데. 그 무렵에 막 ‘묻지마 관광’이 시작되던 때인 것 같은데. 먹고 살만하니까 여자들이 천연덕스럽게 ‘고독’이란 단어를 은근히 발설하곤 했죠. 그 고독은 여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공허감을 말하는 건데 시대적으로 이상한 바람기가 맴돌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그 무렵에 남편이 해외출장을 떠난 한 여성의 방황을 로드무비로 만든 것이 <나비 품에서 울었다>이죠. 

정성일_ 그게 원작도 없고, 그 어디선가 발상이 시작된 건가요? 

송길한_ 정진우 감독이 뻐꾸기, 앵무새 시리즈로 재미를 봤잖아. 그 시리즈의 하나여, 그게. 그냥 <나비 품에서 울었다>로 제목까지 붙여줬죠. 우리가 생계형이라고 했을 수밖에 없는 게 감독님도 그냥 하지! 그랬고. (웃음) 그야말로 그것은 길 위에서 만든 작품이야, 인물 몇 명만 설정해 놓고, 사전 헌팅 해 봐야 딱 맞는 것도 아니고. 대충 이렇게 맥락만 세워놓고 스텝 끌고 떠난 거지. 

정성일_ <나비 품에서 울었다>와 <안개마을>과 시나리오의 전후 관계가 어떻게 된 건가요? 임권택 감독님 말씀에 의하면 <안개마을> 헌팅 떠나는 차에, <나비 품에 울었다>를 찍자고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떠돌아다니는 장면 중간에 <안개마을>을 찍은 지역을 통과했고, 그래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겨울이 시작하는 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촬영 팀을 다 데리고 돌아와서 <안개마을>을 찍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나리오는 어느 쪽을 먼저 작업한 건가요, 아니면 촬영과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도 동시에 작업에 들어간 건가요? 
--
송길한_ 대종상 접수마감이 문제가 된 거에요. <나비 품에서 울었다>의 시나리오가 먼저지. 그때 시나리오도 시간이 있나 길어봐야 한 달이지. 그 안에 하여튼 하는 거지. 일단 검열을 맡아야 하니까 그냥 출발하는 거지. 내가 현장에 안가면 몰라도 가니까.. 그리고 로드무비라는 게 현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맥락만 서있고 궁극적으로 뭔 얘기인가만 공감하면 그냥 가는 거지.

<안개마을> (1982)
<안개마을> (1982)

정성일_ <안개마을>은 임권택 감독님 영화중에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기는 합니다만, 감독님 필모그래피에서 매우 특이한 영화입니다. 감독님이 추구하던 테마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온...

송길한_ 좀 미숙성된 영화지. 시나리오부터 좀 더 다졌어야하는데..

정성일_ 이문열 작가의 소설 “익명의 섬”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어요? 

송길한_ 이문열 씨가 이미 익명성을 주제로 쓴 소설들이 시리즈로 몇 편 나왔고 그 중에 계간지 ‘세계문학’에 실린 걸 읽었는데 오지에서 일어나는 익명성이 에로티시즘으로 생명력에까지 이르는 그의 착안이 어릴 적 우리 시골마을에서 비밀리에 떠돌던 얘기도 같고, 존재의 신비감이랄까, 이런 게 마음에 들었죠.) 내가 거기서 버스 정류장 앞에 산월이란 벙어리 술집 아가씨. 남자들은 (성적인) 분출을 어떻게 해결 하느냐, 나는 그것이 자꾸 생각나더라고. 산월이 에피소드가 잘 들어간 거라고 봐. 그것도 없으면 거기 적막한 산골에서 무슨 에피소드가 있어. 정윤희 누드가 나오지만, 영화가 그것만으로는 힘드니까, 대종상 일정에 대느라 단양 근처 수몰지역 근처 직티리라는 데서 최단 시일 안에 찍어낸 작품이요. 그게 근데 그 영화 하면서 오랜 시간 지지고 볶는다고 잘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죠.(웃음) 대종상도 주고, 안성기도 주연상 받고... 시즌이 많이 도와줬어. 눈이 올 때가 아닌데 눈도 많이 내려주고, 일이 되려면 그렇게 되는 거여. 감독님의 순발력의 승리랄까. 그런 작품이죠. 

정성일_ 문제는 정윤희 씨가 빛나게 아름답기는 한데 연기로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을 맡은 게 아닌가요?

송길한_ 맞어. 뭔지 모르고 나온 거 같았어. 거기다 내레이션도 밀착되지 않고 떠있지.

정성일_ 그 영화는 이례적일 정도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유독 많습니다. 그건 정윤희 씨의 출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그렇게 쓰신 것입니까?

송길한_ 처음부터 그렇게 갔어. 시간이 없기도 하고. 주인공의 육체적 백서이기도 해서, 내레이션이 없으면 맥락도 안서니까. 그런데 그걸 용케 보는 쪽에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내레이션이 나오니까 쇼킹하게 느낀 사람도 있어. 그건 착각이지. 

정성일_ <익명의 섬> 같은 작품을 시나리오로 쓸 때, 꼭 이문열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도, 선생님의 경우 원작자와 이야기를 하시나요? 

송길한_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어차피 소설은 영화에서는 소재니까. 그러고 다 끝난 다음에 우리 끼리 보는 시사에서 한번 같이 보고. 본인은 족하게 생각하고. 영화화된다고 하면 소설가들은 다 좋지.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근데 이 친구가 시나리오를 봤는지, 어쨌는지 이건 상당히 너무 깊이 들어갔고, 평론가나 할 소리를 하면서 어쩌고 뭐라 그러더라고. 아무튼 제작사인 화천서는 야무지게 계산했지. 베를린 영화제 출품한다고. 근데 영화제에는 그런 영화가 많잖아. 이게 로컬이지만 단순히 로컬도 아니고 익명성이잖아.

정성일_ 선생님이나 임권택 감독님은 <안개마을>을 거의 이야기를 회피하지만 이 영화는 그때 런던영화제에 다른 한국영화 4편과 함께 상영되면서 비평가들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때 <안개마을>은 유럽비평가들을 매혹시켰고, 많은 비평적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임권택이라는 감독의 다음 영화를 보고 싶다는 관심이 커졌지요. <안개마을>에 대해서 비평이 느끼는 매혹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지는 지요? 

송길한_ 나도 이상하게 생각해. 정윤희가 예뻐서 그런 건지.(웃음) 한국 고유의 로컬리즘과 그 속에 은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숨 쉬는 생명력으로써 익명성이 이채로웠을지도 모르지. 인간 존재의 미스터리를 솔직하고 깊이 들여다본 감독님의 안목, 그 독특성이 어필했을 수도 있고, 주인공 정윤희가 갖는 백치미와 그녀의 내숭이 빚어내는 인간의 양면성도 재미있고, 그런데 곁에서 보니까 사실 정윤희는 백치미가 아니고 다독(多讀)을 하는 내실주의자였어요.

<불의 딸> (1983)
<불의 딸> (1983)

정성일_ 이상하게 이야기가 안 되고 있는 중요한 영화중의 하나는 <불의 딸>입니다. 여기서는 <만다라>에서 다루었던,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건드리고, 또 한편으로는 <짝코>에서 형식적으로 다루었던 플래시백이 더 복잡한 순서로 동원되면서, <신궁> 이후 임 감독님이 탐색해온 무속신앙이라는 세계를 다시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주제와 형식, 질문이 집결되었다고나 할까요. 

송길한_ 욕심을 내자면 <불의 딸>은 샤머니즘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터득이 부족했어요. 그것이 피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민족의 한이나 그런 쪽으로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이 뒤에서 생각해봐도 계속 걸리고, 좀 더 알고 덤볐더라면, 원작자인 한승원은 잘 알았냐, 그쪽도 마찬가지여 오십보백보야. 내가 큰 만신 김금화 씨를 따라다니며 본질을 알고 보니까 그게 얼마나 피상적이었나, 그게 느껴지더라고. <서울만신>은 중간에 넘어졌잖아. 두 제작자들 간에 트러블이 생겨서. 나만큼 상처 많은 사람도 없어. 중간에 내린 게 참 많아. <비구니>도 그렇고, 차기작으로 썼던 <노을>도 좌절되고, <서울만신>까지...

정성일_ <불의 딸>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송길한_ 임 감독님하고 나하고 김지미를 왕 무당으로 하는 무당영화를 하자 그랬어. 그게 <신궁>에서 성이 차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좋다 그렇게 했는데, 오리지널을 쓰자니 시간이 너무 짧고, 좋은 찬스인데 제작자는 기다리고 있잖아, 얼핏 보니 한승원이 쓴 <불의 아들>이라는 연작이 있었어. 읽어보니 그런대로 말이 되더라고 그래서 감독님에게 읽어보라고 했지. 오히려 본질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게 잘 안되니까 얘기가 내가 생각해도 좀 피상적인 게 많았지. 

정성일_ 한편으로는 무속신앙이라는 것 자체에 공감을 전혀 못하시고...

송길한_ 모두 공감은 했으니 작업에 임했던 거 아니겠어? 상당량의 관련 서적이나 사례집 등을 통해 샤머니즘에 관한 공부도 열심히 했었지. 그럼에도 그 본질에 접근하는 데는 산 너머 산이었어. 공부해야할 폭이 너무 넓은 거야. 과학이나 정신 의학 같은 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무산되는 게 무속이어서 그 실체를 규명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원작자인 한승원도 어설프긴 비슷했어. 나는 좀 아는 줄 알고, 이건 어떤 의미에서 그런 거여, 하고 물어봤거든. 나는 시간도 없고 한승원 집에 눌러 붙어서 초고를 썼거든. 그 본질을 알려고, 근데 그도 본질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픽션으로 쓴 거야. 본질을 모르고 덤벼드니 안 되는 거여, 


정성일_ 이 영화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시피 한데, <비구니>에 대한 아이디어는 맨 처음 언제부터 논의가 시작되었나요?

송길한_ <길소뜸> 바로 전이지. 소설가 한승원이가 <비구니>를 쓴다고. 감독님이 같이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가 당시에는 불교를 그리 썩 잘 아는 사람이 아니야. 아주 해박하지는 않아도 뭔가를 좀 알아야 쓰지 않겠냐고. 중간에 보니까 본인도 슬며시 프레임 아웃을 해버리고, <만다라>때 우리 도와준 평상스님, 그 여름철에 평상스님을 오시라고 해서 고증을 받았지. 모르니까 물어봐야 할 거 아니야. 도움이 컸지. 이 분은 다른 분과 틀려서 관념적인 얘기라고 하더라도 맞아 떨어지는 거야, 나는 관념적인 얘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 꼭 필요한 거 아니고는 벗어나려고 했어. 나중에는 엎어지고 나니까 그동안 얼마나 매달렸던지 <비구니>의 비읍자(字)만 들어도 신물이 넘어올 정도였어. 전국의 비구니들이 몰려와서, 뭐, 다 아는 얘기지만 전두환 씨한테 짓밟혀놓고는 화풀이는 엉뚱한데다 한 거지.

정성일_ 시나리오 선집에서 <비구니>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분량으로는 선생님의 시나리오 중 가장 긴 것 같습니다. 만약에 실제로 영화화 됐으면 2시간 반이 훨씬 넘는 정도는 되었을 텐데요. 사실 한국영화 제도 안에서 2시간을 넘는 건 제작 규모랄까, 나중에 배급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든다는 걸 너무 잘 알고 계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반이 넘는 분량으로 <비구니>를 이야기해야할 만큼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까? 

송길한_ 해야 한다는 이유란 것이, 남자보단 여성을, 그러니 일반 승려가 아닌 비구니를 그려야하니 소모되는 게 더 많았어. 그리고 그 원수 같은 놈의 역사성, 전쟁을 합쳐놓으니까 이야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지. 뒤에 축약을 어떻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다 상영할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떤 점에서는 꼭 필요하고 있어야하는 거는 다 담아내자. 그리고 씬도 많아 그래서 죽었다 깨어난 작품이야. 그게 그만 엎어지고 나니까 내가 얼마나 울화가 치미는지, 한동안 술로 살았지. 감독님도 정일성 촬영 감독님도 김지미 씨도 다 함께 영화판을 떠나려고까지 했으니까...

정성일_ 선생님 마음속에서 <비구니>는 가장 야심적인 시나리오...

송길한_ 과장된 소리가 아니라 적어도 이게 완성되었다면 우리 작품을 밖으로 보여주는데 그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믿어요. 물론 거기에는 감독님의 완벽한 연출력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내용도 상당히 괜찮았고. <비구니>가 먼저 만들어졌다면 감독님 영화나 한국영화를 바깥에서 좀 더 보편적으로 보게 할 거라는 그런 자부심이 있었지. 그리고 이게 비구들의 얘기가 아니니까. <리틀 부다> 그런 엉터리들이 아니거든. 이게 말이 안 되는 얘기가 아니야. 붓다가 얘기한 게 그나마 고스란히 살아남은 것이 한국이여. 형식적으로나마. 그 내용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게 한국 불교여. 이것은 더구나 여성의 얘기이고. 여러 가지로 하면 괜찮은 얘기였는데, 임 감독님도 늘 아쉬워했거든. 그때 전쟁 씬은 정말 압도적으로 찍혔는데. 한번은 부산영화제에서 이태원 사장이 그러는 거여. 원작 승인을 해달라는 투로 얘기를 하는 거여. <비구니>를 다시 찍으면 어떻겠냐고. 좋다고 그랬지. 근데 그때 김지미랑 지금이랑은 많이 달라졌을 테고, 그것보다도 (<비구니>의 일부 찍은 장면들) 필름의 보존 상태가 너무 나빠서 많이 삭아버렸대. 그래서 다시 그것을 못 한 거여. 시대가 조금 좋아졌기 때문에, 다시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았고, 필름 상태만 좀 좋았다면 영화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정성일_ 그때 이미 찍은 <비구니> 촬영 분량이 어느 정도였었나요?

송길한_ 잘은 모르지만 오분의 삼 정도는 아닌가 싶어. 상당히 많이 찍었지. 

정성일_ 임권택 감독님께서 이제까지 찍은 전쟁장면 중 가장 잘 찍었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었는지 여쭤보면 말씀은 피하시더라구요. 저는 볼 수가 없었으니까... 어떤 전쟁 몹 씬이었나요?

송길한_ 그 몹 씬을 찍을 때 차기작을 쓰느라 내가 못 갔어. 그 장면은 고향 사리원에 묘진이랑 둘이 갔다가 전쟁이 터져서 폭격을 맞는 장면인데, 폭격 통에 빠져나와서 육보시를 하는 거 아니여. 그 다음에 가보니 묘진이가 죽고, 그녀들의 수행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무척 중요한 시퀀스였어. 거기에 시가전도 있었을 것이고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고 있는데 그냥 폭격이 쏟아지는 그런 것이었어. 내가 시나리오에서도 꽤 강렬하게 쓴 거 같은데.... (잠시 생각)

<길소뜸> (1985)
<길소뜸> (1985)

정성일_ <비구니>를 전후로 해서 <길소뜸>, <티켓>이 연이어지면서 임권택 감독님과 김지미씨와의 1980년대 여인 3부작이 어우러지는데, 선생님께 배우 김지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송길한_ 좀 늦은 감도 있지만 내가 본 김지미 씨는 새롭게 개안된 김지미였어. 배우로써 지금까지 스타로 있던 고정관념 속의 여배우가 아니라 조금 벗어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비로소 <길소뜸>에서야 냉혹한 여주인공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달라진 것이지, 그리고 그 열정이란 것은 무섭고 그 군번에 그런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힘들 것이고. 그리고 우선적으로 감독님과 호흡들이 서로 잘 맞았어. 

정성일_ <길소뜸>의 주제는 분단으로 인해서 이산가족이 된 이야기인데, 임권택 감독님이나 선생님이나 사실 이산가족은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짝코>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이지만 <길소뜸>은 반대로, 물론 한집 걸러 이산가족 아닌 사람이 있겠습니까만 친지 일가 중에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없는 건데, 그럼에도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여의도 이산가족 광장을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찍어나가게 만든 그 소재의 힘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송길한_ 당연히 분단문제였지. 우선 그게 불붙은 것은, 그때가 KBS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생방송으로 방영을 했고 전국이 눈물바다였지, 그런 다음 그 시기가 지나가자 침묵이 되고 공허해지고 잠잠해졌어. 그리고 실제 그런 사건이 있었어. KBS에서 발간한 사례집에 있더라고. 친자임에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춰두고 작품을 써나갔지. 

정성일_ <길소뜸>은 영화의 구성이 절반으로 갈라집니다. 절반은 화영과 동진이 만나면서 플래시백으로 그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런 다음 둘이서 석철이라는 아들을 찾으러 갑니다. 그 둘이 함께 아들이라고 여겨지는 남자를 만나러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는 장면을 망원렌즈로 찍은 장면은 정확하게 영화의 절반입니다. 구성으로서도 매우 특별한 구조입니다. 소재 혹은 주제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매우 특별한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송길한_ 글쎄, 나는 미드 포인트를 놓고 쓴 건 아니고, 적어도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상황들이 어떤 것인가를 설득하지 않으면 뒷얘기가 아무리 기가 막혀도 안 될 거 같으니까 우선 그걸 정신없이 쫓은 거지. 그러고 보니 이 얘기 저 얘기가 붙은 거고. 나중에 완성 돼서 보니까 그런 것들이 결코 쉬운 게 아니었어. 나는 지금도 생각해요. 거기에 화영이와 신성일의 고등학교 시절, 둘이 자전거 타고 통학을 하는데, 가면서 시를 읊잖아. “산보다 높아라...” 근데 그 시 원작자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 한용운 시야. 그 시대 유행했던. 나는 철저한 고증을 한 거야. 만약 지금 유행하는 하이칼라 시인의 시나 노래를 해버리면 시대적으로 안 맞아. 그래서 나는 거기 맞는 시를 찾기 위해서 무지 애를 썼어. 그러다 한용운 시를 뒤지던 중에 아주 딱 적절한 시를 발견했어. “산보다 높아라, 물보다 깊어라” 자전거 타고 가는데 사랑에 대한 더 길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이것만큼 맞는 시가 없어요. 근데 아무도 몰라. 이건 만해 한용운의 시야. 시나리오를 쓰면서 반쯤 죽어났던 그 여름이 생각나네요. 

정성일_ 임권택 감독님이 만든 모든 영화중에서 <길소뜸>은 전례 없이 논리적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모든 쇼트, 모든 제스처, 모든 대사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길소뜸>은 정말 차가운 영화입니다. 어떤 점에서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중에서 형식적 절정이랄까요, 이 영화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혹은 이 시기에 그래야 할 미학적 목표가 있었나요? 

송길한_ 아까도 얘기했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도대체 신뢰하고 껴안을 수 있는 존재냐. 나와 너가. 이런 개념도 있지. 민족이라는 게, 부부 간에 어쩌고저쩌고 한다고 해도. 그리고 아마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좀 비정할 만큼 냉철하게 본 영화인 거지. 가령 셋이서 탄 차가 개를 치는 장면에서, 그 장면이 논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이 지금 갖고 있는 내면의 상황들이 어떤 것인가 그걸 표명할 길이 없는 거여. 이 자식은 개를 먹거리로 생각하고, 전쟁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게 이네들 입장이지. 신성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잖아. 가족회의를 몇 번이나 열어. 빼도 박도 못하지만, 그런 점에서 내면을 표출한 거고, 개를 치는 장면은 임권택 감독님의 아이디어인데 나는 전체에서 가장 좋다고 봤어. 감독님의 서브 텍스트의 무서운 점이지. 에필로그에서 또 다시 재이산(再離散)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이자 복선이기도 했으니까.

<티켓> (1986)
<티켓> (1986)

정성일_ <티켓>은 임권택 감독님이 맹렬하게 리얼리즘을 찾는 영화입니다. 이때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길소뜸>과 멀리 느껴졌습니다. 임권택 감독님 필모의 특징 중의 하나는 A를 하면 다음에 B를 하는 것이 아니고 A 다음에 NOT A, 무조건 A는 아니어야 한다는 작용 반작용의 리듬이 있습니다. 

송길한_ 어떻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작품의 맥락이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지. 나는 어떻게 보면 그래야 되는 것이고 하는 것이지 꼭 자기 세계를 만든답시고 비스무리하게 패턴화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봐, 다양성이란 면에서. 요는 각 작품의 완성도가 문제겠죠.

정성일_ <티켓>은 한쪽에서는 <짝코>에서부터 죽 이어졌었던 역사의 문제가 희미하게 뒤로 물러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다라>에서 이어지는 철학적인 존재론적인 문제가 잠시 뒤에 선 채, 아주 드물게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도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회적 문제에 눈을 돌리는 영화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 혹은 네 명의 여자 주인공들의 어떤 부분에 끌렸습니까? 

송길한_ 사회적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세태(世態)적이라고 봐야지. 그것은 우리가 계획적으로 상업적인 영화를 하자고 했었어. <티켓>은 김지미 씨의 회사 지미필름의 오프닝 작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보고 감독님이 자꾸 얘기하는 거여. “어이, 이건 우리가 이제까지 했던 거랑 전혀 다르게 가야해”, 했던 게 장사가 되어야 하니까.

정성일_ 이건 에로영화도 아니고 고발에 가까운 영화인데... 보는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심지어 검열에서 뒷부분이 뒤집힐 만큼 마지막 결론도 끔찍하게 끝나고 있습니다. 근데 그걸 상업영화로 생각했다는 게 좀 놀라운 말씀이네요.

송길한_ <티켓>이란 게 표피적으로 보면 매춘에 관한 얘기 아닌가요. 그리고 그때만 해도 티켓에 대한 말이 없었어. 사회가 얼마만큼 사람을 비인간화 시키고 있나.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퍼져간 거여. 그래야 널찍하게 멀리 볼 수 있으니까. 사회가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것에 대해 그대로 그것을 고스란히 보임으로써 우리는 안티를 한다. 이런 얘기가 없어져야 한다, 그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거 나오고 티켓 다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버렸잖아. 근데 나는 몸서리쳐지게 죽을 맛인 게, 그 무대가 실제 다방이잖아, (이야기가 전부) 거기서 들락날락 하는 것인데, 감독님이나 나나 그것을 마당극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근데 마당극처럼 됐지, 그게. 김지미 씨는 상업영화로 장사하려고 한 게 아니라 완전히 열정적으로 잘 했어. 박근형 씨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시인 신동엽이 정도로 높여 놓은 거여. 거기서 흐르는 시가 신동엽의 시야. ‘아사녀’. 다들 모를 것인데, 반체제인사였고 또 그런 캐릭터가 변절해야 갈등도 증폭될 테니까. 나는 시나리오에서는 그런 걸 생각할 짬이 없었는데, 박근형이 딱 나타나서, 우리 사랑은 다 게임이 끝났다 그러고 차가 휭 하고 간다고. 처음에 이 친구가 그때 약 올리듯이 오렌지 캔 주스를 먹고 있었는데, 그걸 차 위에 놓아. 그리고 절교 선언을 하고는 차가 휭 가니까 그게 툭 떨어져. 그 소품이 말하는 건 쏙 빨아먹고 간다는 거지. 너무 자연스럽게 보여 지는 거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 노래가 딱 붙으니까. 절묘해, 그 대목이 오래 안 잊혀져. 

<개벽> (1991) / <달빛 길어올리기> (2010)
<개벽> (1991) / <달빛 길어올리기> (2010)

정성일_ <티켓>까지 작업을 하고 나서 <씨받이>가 두 분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습니다. <씨받이> 이후의 임권택 감독님 영화들 중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송길한_ 나는 <개벽>을 상당히 좋아해. 당시의 우리 영화 수준이나 형편을 봐서라도 그런 걸 건드릴 사람도 없었고, 누군가는 건드려야하는데 아무나 못 건드리는. 그런 작품이 두개가 있어. <달빛 길어 올리기>와 <개벽> 두 작품. 누군가는 꼭 건드려야해. 하지만 이건 아무나 못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_ 긴 시간의 공백 이후에 임 감독님 현장을 다시 방문하신 건 <달빛 길어 올리기>의 각색으로 참여할 때였습니다. 25년 만에 다시 곁에서 보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송길한_ 아직도 멈추지 않고 드라마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험하고 있는 모습. 그걸 하여튼 구현하려는 정신, 그게 내심 감동으로 다가왔지요. 


정성일_ 임권택 감독님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쳐다봤던, 말하자면 함께 작업을 했던 작가로써, 102번째 작품 <화장>에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송길한_ 그 양반의 스타일에 맞게 쿨하고 콜드 한 것. 나는 궁극적으로 이 양반이 100 작품 넘게 만들었지만 현재까지도 그런 소재를 백미(白眉)로 한번 찍어봤으면 하는 것을 바라요.. 임 감독님도 굉장히 재미있어 하실 것 같아. 주인공 오상무 부부의 삶의 궤적과 여직원 추은주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궁금해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색다른 걸작을 기대하고 있어요.

정성일_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에게 임권택 감독님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송길한_ (망설임)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존중하는 분.

정성일_ 두 분 사이에서 지금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만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사소한 이야기도 상관없습니다. 

송길한_ (한참 생각) 딱 떠오르는 게 없는데. 영화를 떠나서도 늘 마음속으로 가까이 계시니까. 

정성일_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_ 11월 10일, 날씨 화창했지만 바람이 몹시 차가웠음.
정리, 진행, 사진_ 이지영
※ 본 게시물에는 작성자(필자)의 요청에 의해 복사, 마우스 드래그, 오른쪽 버튼 클릭 등 일부 기능 사용이 제한됩니다.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