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후자의 경우로는 특정 대상이 시간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장면들은 대체로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의 상태를 의식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재경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의 배역을 따내기 위해 외바퀴 자전거를 타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예로는 재경이 문화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로 구연동화를 하는 장면들을 거론할 수 있다. 재경은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즐거워하기를 바라면서 구연동화의 시연 방식을 조금씩 바꾼다. 재경은 자신의 구연동화를 듣고 바라보는 아이들의 미래, 즉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여러 시도를 한 것이다. 또한, 이사를 앞두고 재경과 현수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사소한 언쟁을 벌이는 모습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반복과 습관을 통해 과거가 현재로 지속되고, 기대와 예측을 통해 현재가 미래로 연장되는 순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두 개의 시간, 즉 과거가 새어 들어오는 현재와 미래가 새어 들어오는 현재는 질적으로 달라 보이지만, 실상 두 경우 모두 시간의 속성이 인간이 의식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에 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썼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시간이 이음매에서 벗어나” 있는 그런 상태를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분명 뒤엉킨 시간의 질서는 우리를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들겠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시간의 기묘한 성격으로부터 도리어 위안을 찾으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시간을 의식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면 우리는 무기력해질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나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불안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좌절, 무기력, 패배,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고 난 뒤에 따사한 햇살과 말간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삶은 우리에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뜻하지 않은 행복과 위로를 전해주기도 한다. <햇볕을 볼 시간>에서 그런 우연은 재경이 산 중고 캠코더 안에서 발견된 누군가가 찍어 놓은 동네 풍경 또는 재경과 현수가 함께 하는 여러 소소한 일상들 안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다른 시간적 경험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고 그것이 다시 하나의 리듬을 구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삶의 흐름이 만들어낸 하나의 교항곡과 같다. 음악의 리듬을 듣고 느끼는 것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듯이 누군가의 삶의 리듬을 보고 느끼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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