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형 감독의 <
우리의 낮과 밤>은 연인 관계인 지영과 우철이 공유하는 시공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영과 우철은 한 공간에 살면서 동거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두 사람이 평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7~8시가 유일하다. 지영은 주간에 피부마사지 숍에서 그리고 우철은 야간에 제빵소에서 일하고 있기에 사실상 두 사람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기는 힘들다. 영화는 지영과 우철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어긋났다가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두 사람이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공간, 시간, 시선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룬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력원은 지영과 우철이 맺은 어떤 약속이다. 오프닝은 잠에서 깬 지영이 막 퇴근한 우철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 일상적인 대화는 두 사람이 다가오는 주말에 어느 바닷가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일련의 정보를 통해 지영과 우철이 노동과 휴식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의 고리를 끊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여행을 위해 계획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연인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에 있어서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면, 두 사람의 욕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약속된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향연』의 한 구절을 참고하자면, 사랑은 지금 시간에 대한 욕망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욕망도 포함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이 나중에도 곁에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위기와 갈등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의지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련의 몸짓을 통해서 봉합된다. 영화는 지영과 우철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사건을 삽입하거나 등장인물들의 수사적인 대사를 활용하는 대신 지영과 우철이 예전처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프닝과 대구를 이루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철이 퇴근하는 모습, 지영이 우철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프닝을 일부 변주한 이 영화의 엔딩은 지영과 우철이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우철이 퇴근하여 집으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우철을 제외한 모든 군중이 동질적인 방향성을 갖는 것과 달리 오직 우철만은 그 균질화된 흐름으로부터 이탈하는 이질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우철의 몸짓은 군중의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동작과 비교했을 때 부자연스럽다. 우철의 그러한 몸짓이 그가 지영과 암묵적으로 약속했던 오전 7~8시 사이의 만남을 위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에서 안식과 해방을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영화와 사랑은 몸짓을 수사적으로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하나의 이미지에 어떤 의미를 고착시키기 이전에 무언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원초적인 몸짓을 통해 특정 감정, 정서, 정동을 일으킨다. 사랑 또한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몸짓을 통해서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창출한다. 사랑과 영화의 특이점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몸짓, 움직임, 행위가 있을 때 발생한다. 영화가 정지된 대상을 움직이게 하여 어떤 세계를 발생시키듯이 사랑은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약속의 시간, 공간, 시선을 드러내어 하나의 유일무이한 세계를 구축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낮과 밤>에서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지영과 우철이 바닷가에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는 그래서 더 영화적으로 보이는 그런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극 중에서 지영과 우철이 바닷가에 갔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관객인 우리가 그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지영과 우철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관객인 우리는 영화가 그리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은 습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낮과 밤>의 독특한 매력은 이 작품이 단순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사랑에 관한 믿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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