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약속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우리의 낮과 밤, 2020

by.이도훈(영화평론가) 2022-08-25조회 4,581

김소형 감독의 <우리의 낮과 밤>은 연인 관계인 지영과 우철이 공유하는 시공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영과 우철은 한 공간에 살면서 동거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두 사람이 평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7~8시가 유일하다. 지영은 주간에 피부마사지 숍에서 그리고 우철은 야간에 제빵소에서 일하고 있기에 사실상 두 사람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기는 힘들다. 영화는 지영과 우철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어긋났다가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두 사람이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공간, 시간, 시선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룬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력원은 지영과 우철이 맺은 어떤 약속이다. 오프닝은 잠에서 깬 지영이 막 퇴근한 우철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 일상적인 대화는 두 사람이 다가오는 주말에 어느 바닷가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일련의 정보를 통해 지영과 우철이 노동과 휴식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의 고리를 끊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여행을 위해 계획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연인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에 있어서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면, 두 사람의 욕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약속된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향연』의 한 구절을 참고하자면, 사랑은 지금 시간에 대한 욕망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욕망도 포함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이 나중에도 곁에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의 낮과 밤>은 지영과 우철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그들 각자의 삶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지영과 우철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지영은 자신에게 피부마사지를 받으러 온 손님들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감정 노동을 하며, 우철은 불안정한 노동 시간과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서 여러 고충을 겪는다. 영화는 두 사람의 현재에 드리워진 그늘을 자연적인 환경과 인공적인 환경의 대립을 통해 그린다. 지영의 경우 주간에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빛을 보지 못한다. 그가 일하는 피부마사지 숍은 암막 커튼으로 외부의 빛과 시선을 차단한다. 우철의 경우 어두컴컴한 야간에 일하고 있음에도 항시 인공적인 빛에 노출되어 있다. 그가 일하는 제빵소는 형광등으로 작업장 전체를 밝게 비추어 노동자들이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지영이 자연적인 빛을 가로막은 인공적인 어둠 속에 있는 것에 반해 우철은 자연적인 어둠을 물리친 인공적인 빛 속에 있다. 비록 세부적인 조건의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자연적인 빛으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불안정한 노동과 삶은 지영과 우철 사이에 맺어진 여러 약속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화 초반에 이야기의 동력원으로 작동했던 지영과 우철의 약속은 이내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의 원인으로 바뀐다. 영화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서 지영과 우철의 약속이 지연되거나 이행되지 않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우철이 지영과 여행을 가기 위해 직장에 신청한 희망 휴가가 무산되는 이야기가 먼저 등장한다. 우철의 매니저는 직원 중 한 명이 작업 중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를 들어 우철에게 휴가를 반납하고 주말에도 근무할 것을 권고한다. 이어서 우철이 지영에게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서 작은 언쟁이 발생한다. 전자는 사회적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발생하는 약속의 불이행이며, 후자는 사적으로 맺어진 연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약속의 불이행이다. 두 경우 모두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과 그 약속과 관련된 시간성을 마치 애초에 없었던 일인 것처럼 되돌리려는 힘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지영과 우철의 시선이 엇갈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거 같은 대상을 바라보거나 서로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지영과 우철의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표류한다. 지영은 우철을 기다리면서 그가 없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우철은 지영이 출근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그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자책한다.
 

이 일련의 위기와 갈등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의지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련의 몸짓을 통해서 봉합된다. 영화는 지영과 우철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사건을 삽입하거나 등장인물들의 수사적인 대사를 활용하는 대신 지영과 우철이 예전처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프닝과 대구를 이루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철이 퇴근하는 모습, 지영이 우철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프닝을 일부 변주한 이 영화의 엔딩은 지영과 우철이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우철이 퇴근하여 집으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우철을 제외한 모든 군중이 동질적인 방향성을 갖는 것과 달리 오직 우철만은 그 균질화된 흐름으로부터 이탈하는 이질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우철의 몸짓은 군중의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동작과 비교했을 때 부자연스럽다. 우철의 그러한 몸짓이 그가 지영과 암묵적으로 약속했던 오전 7~8시 사이의 만남을 위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에서 안식과 해방을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영화와 사랑은 몸짓을 수사적으로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하나의 이미지에 어떤 의미를 고착시키기 이전에 무언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원초적인 몸짓을 통해 특정 감정, 정서, 정동을 일으킨다. 사랑 또한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몸짓을 통해서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창출한다. 사랑과 영화의 특이점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몸짓, 움직임, 행위가 있을 때 발생한다. 영화가 정지된 대상을 움직이게 하여 어떤 세계를 발생시키듯이 사랑은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약속의 시간, 공간, 시선을 드러내어 하나의 유일무이한 세계를 구축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낮과 밤>에서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지영과 우철이 바닷가에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는 그래서 더 영화적으로 보이는 그런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극 중에서 지영과 우철이 바닷가에 갔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관객인 우리가 그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지영과 우철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관객인 우리는 영화가 그리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은 습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낮과 밤>의 독특한 매력은 이 작품이 단순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사랑에 관한 믿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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