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영화, 등으로 말하는 영화 말투, 2020

by.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22-07-27조회 3,666

김경래 감독의 <말투>는 주인공 민기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민기는 머릿속에 있는 말을 정제하지 않고 내뱉는 특유의 말투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자주 갈등을 겪는다. 영화는 민기가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의 말투가 대화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민기와 그의 주변인들 간의 대화에 의존하는 이 영화가 민기의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그의 등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하면 총 다섯 개의 대화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따른다. 그 대화 장면들은 카메라를 고정해 놓은 상태에서 롱 테이크로 촬영한 것이다. 각각의 대화 장면은 절제에 가까운 부재의 미학을 추구한다. 어쩌면 이 영화를 연출한 김경래 감독은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을 것, 샷-리버스 샷을 쓰지 않을 것, 오버 더 숄더 샷을 쓰지 않을 것, 시점 샷을 쓰지 않을 것,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것, 클로즈-업을 쓰지 않을 것 등의 규칙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는 고정된 카메라, 롱 테이크, 대화의 지속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따르면서 촬영했을지도 모른다. <말투>에 적용된 연출 방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구축되었건 간에 이 작품이 여느 극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화 장면의 관습을 위반한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이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불순해 보인다.
 

얼굴 없는 영화는 가능한가? 과거 영화가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부 비평가들은 영화의 매력이 배우의 얼굴에 있다고 주장했다. 극장 스크린에 투사되는 실물보다 큰 사이즈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매혹의 대상으로, 특히 클로즈-업을 활용한 얼굴 이미지는 대상의 영혼을 다루는 기술이고, 그런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렬한 현상학적인 경험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영화에서 얼굴은 관객을 더 크고, 더 깊고, 더 초월적인 세계로 초대할 수 있는 매개체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벨라 발라즈와 같은 영화학자가 영화의 얼굴을 그 자체로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에 가깝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자면, 어떤 대상의 전면을 포기하고 그것의 후면을 시각화한다는 것은 영화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를 제거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말투>가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 영화가 얼굴로 대표되는 특정 대상의 표면을 통해 그 대상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마저 포기했다고 섣불리 단언하기 힘들다. 오히려 이 영화는 얼굴의 재현이라는 영화적 관습과 거리두기를 하는 방식을 통해 영화가 그 고유의 전시적, 묘사적, 표현적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처럼 보이다. 그러한 연출적 의도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을 모두 말할 수 없다는 비교적 자명한 이치를 따르듯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얼굴이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실제 이 영화 속 일부 대화 장면과 그것을 지각하는 관객의 반응을 상상적으로 그려보자. 민기는 친구가 통영에서 방어를 잡았다고 자랑할 때 그 물고기가 방어가 아니라 부시리라고 말한다.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던 중에 영화가 재미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여자친구의 입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민기의 이러한 직설적인 말투는 담화적인 측면에서 어떤 현상을 진술하거나 그것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 쓰이지만, 관계적인 측면에서 그의 말은 타인을 무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판단조차도 민기의 말과 그의 얼굴 표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말과 표정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민기의 말투에 불편하게 반응한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사실만으로 민기의 말투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짓기 힘든 것처럼, <말투>는 민기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를 최소화하여 민기의 겉모습과 그의 속마음에 대한 관객의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얼굴 없는 상태로 시각화된 주인공 민기의 신체는 독해 불가능한 텍스트 내지는 이미지로 볼 수 있다. 민기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의 등만 줄곧 바라보아야 하는 관객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한편으로 관객은 민기의 등을 보는 내내 그의 겉모습과 속마음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서 혼란을 겪으며, 다른 한편으로 관객은 민기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민기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거나, 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거나, 그의 내면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후자의 경우 관객은 영화가 전시하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대신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할 것이며, 더 나아가 영화가 보여주는 것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얼굴 없는 영화의 가능성을 부분적으로 실험한 고전적인 작품 중 하나로 장 뤽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1962)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초반부에는 약 5분 동안 카메라를 향해 등지고 앉은 상태로 여주인공 나나와 그녀의 전남편 폴의 대화 장면이 등장한다. 장 뤽 고다르는 나나와 폴의 대화 장면을 구상하면서 직관적으로 뒤에서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관객이 배우들의 얼굴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랐으며, 등을 돌리고 대화하는 나나와 폴의 모습을 통해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도덕적 갈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다르가 의도했던 것처럼 나나와 폴의 대화 장면은 얼굴이 아닌 등이라는 평면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표면의 이미지, 사회적 관계, 인물의 내적 특징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흥미롭게도 나나와 폴이 카메라를 등지고 앉은 채로 대화하는 장면이 끝난 직후 폴은 나나에게 어느 아이가 쓴 에세이의 한 구절을 읽어준다. 그것은 표면이라는 껍질을 벗기면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영혼이 드러난다는 우화적인 이야기이다. “새는 안쪽과 바깥쪽이 있는 동물이다. 바깥을 제거하면 거기에 안쪽이 있는데 안쪽마저 제거하면 영혼이 보인다.”
 

고다르가 활용한 우화적 비유에 기대어서 말하자면, 영화는 어떤 대상의 표면을 거쳐 그것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하나의 여정을 그리는 예술이다. <비브르 사비>에서 나나와 폴의 등을 보여주면서 전개되는 대화 장면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과 파국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말투>에서 주인공 민기의 등을 보여주면서 전개되는 대화 장면들은 주인공 민기의 불안한 내면을 겨냥한다. 민기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말투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영화는 민기의 주변환경과 그의 내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민기가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후 구토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장면은 한 인물의 표면, 내면, 영혼으로 이어지는 짧지만 긴 이 영화 속 여정의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영화가 끝나도 관객은 민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민기의 삶과 정신을 그의 등 이미지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이 영화 속 이미지는 늘 불완전하고, 불편하고, 잔혹한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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