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달팽이, 2020

by.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22-04-21조회 4,497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나는 하나의 모순된 세계를 다룬 단편영화들을 떠올렸다. 그 영화들은 한 인물의 양면적인 모습, 한 작품 안에서 기묘하게 공존하는 이질적인 두 사건, 하나의 시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반복 등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구성하는 모순적인 두 개의 상태를 다루었다. 그것들은 흡사 세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서 삶에 대한 앎과 이해, 오해와 착각, 꿈과 몽상 등에 대해서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의 세계는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지면을 활용하여 내가 한동안 매료되었던 그 작품들의 친숙함과 낯섦에 관해 쓰고자 한다.

김태양 감독의 <달팽이>는 서울 종로 일대를 배회하는 한 남자가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두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전반부의 배경은 어느 화창한 여름날 오후이며, 남자는 을지로 3가 근방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어색한 인사, 공허한 말들, 그리고 엇갈린 기억을 통해 이들이 과거에 연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편의상 전반부에 등장하는 그 여인을 과거의 여자라고 해두자. 후반부는 전반부와 같은 날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시간대는 저녁으로 그리고 날씨는 소나기가 내린 뒤 그친다는 것으로 바뀐다. 남자는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한 여자를 만나 세운상가로 이동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친밀한 말투, 신체적 접촉, 서로 일치하는 기억을 통해서 두 사람이 현재 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의상 후반부에 등장하는 그 여인을 현재의 여자라고 해두자.

혹자에게 이 영화는 익숙한 장르적 형식을 가진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은 저마다의 영화사를 품고 있다는 질 들뢰즈의 말처럼, 도시를 배경으로 제작된 일련의 영화들이 하나의 느슨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탓이리라. 초창기 무성영화 시절의 액츄얼리티 필름, 1920년대 독일의 거리영화, 1950년대 전후 유럽에서 등장한 여러 새로운 물결들에 속하는 영화들, 할리우드의 코미디 영화, 필름 누아르, 로드무비 등이 도시를 시각적인 인상이 형성되고 우연적인 사건과 만남이 발생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그런 점에서, <달팽이>가 서울 종로를 작품의 무대이자 배경으로 끌어들이고, 주요 인물들이 계속해서 도시를 걷고, 주인공 남자가 도시에서 우연한 만남을 갖는다는 것 자체는 모종의 영화적 관습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이 영화에 관습만 있고 독창성이 없다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이 영화는 서울의 종로를 오후와 저녁, 옛것과 새것, 소멸과 생성 등으로 구분되는 것들 사이의 기묘한 대립, 공존, 연속을 통해 그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화 전체가 고유의 리듬과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 이 영화의 구성적인 단조로움은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반복을 통해서 상쇄된다. 이 영화는 전후반을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놓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주로 물리적인 요소들과 관련이 있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을지로 3가에서 우연히 만나 청계천로를 따라 종로 3가로 이동하며, 후반부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을지로 3가에서 만나 청계천로를 따라 종로 3가를 거쳐 종로 5가의 세운상가로 이동한다. 전후반을 이끌어가는 남자 주인공의 존재,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장소와 건물, 그리고 을지로3가에서 종로3가로 이어지는 동선의 일치 등을 통해 이 영화는 반복의 질서를 획득한다. 그 반복은 관객인 우리가 틀린 그림 찾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전반부에 등장하는 과거의 여자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현재의 여자로 대체되고, 화창한 날씨는 소나기가 내리는 날씨로 바뀌고, 관객의 시선을 기준으로 주로 화면 좌측 편에 위치하던 남자는 우측 편에 위치하는 것이 그러하다. 그 일련의 변화는 영화 속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적 실재가 지속과 생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그것은 이 작품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변해가는 도시를 통해서 작품 전체에 차이와 반복의 질서를 구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차이와 반복은 공간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시간적이거나 정신적인 것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반복 또한 중요하게 활용한다. 후자의 차이와 반복은 주로 기억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전반부에 등장하는 남자와 과거의 여자는 지나간 일들에 관해 담소를 나눈다. 이 대화에서 남자는 오래전 자신이 과거의 여자에게 들려주었던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한 순간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의 여자는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여러 기억을 현재로 가져오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그것들은 남자의 기억 속에서 이미 지워져 있거나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 일련의 대화에서 남자와 과거의 여자가 어긋난 기억 그리고 어긋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후반부에 등장하는 남자와 현재의 여자는 두 사람 사이에 공통의 기억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걷던 중 현재의 여자는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 이야기를 남자가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남자는 현재의 여자에게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여자는 자기가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다면서,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남자와 현재의 여자가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서 같은 시간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전반부의 어긋난 기억과 시간은 후반부의 공유되는 기억과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 영화가 강조하는 시간성은 달팽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영화 전반부에서 과거의 여자와 함께 길을 걷던 남자는 혼잣말처럼 “변할 게 뭐가 있나, 그냥 시간만 가는 거지”라고 말한다. 남자는 시간의 흐름이 제자리걸음과 같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남자의 생각은 영화가 끝나갈 즈음에 바뀐다. 남자는 현재의 여자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언제나 제자리인 줄 알았던 시간의 흐름이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현재의 여자가 버스 창문에 나선형 형태의 원을 그리는데, 그것은 달팽이의 껍데기를 보면서 떠올릴 수 있는 나선형과 닮았다. 그것은 분명 차이와 반복 속에서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주인공 남녀가 삼나무 나이테를 바라보던 것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두 작품 모두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를 따라 직선으로 뻗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것을 품으면서 원을 그리듯이 나아가는 것과 같이 묘사된다. <현기증>에서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판이 삼나무였다면, <달팽이>에서 그런 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도시 그 자체이다. 이 지점에서 <달팽이>가 도시를 작품의 무대 혹은 배경으로 끌고 온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어쩌면 이 영화의 연출자는 우리가 도시라는 삶의 공간 속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어제와 오늘, 만남과 이별, 생성과 소멸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영화적 시간에 대한 성찰로 연장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도시가 그러하듯, 영화는 지속과 생성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한다. 내게 다시금 비유와 함께 압축을 허락한다면, 나는 이 영화를 달팽이의 시간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으며, 영화는 달팽이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예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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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 <달팽이>(2020),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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