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빨간 마후라, 1964

by.이영재(영화연구가) 2021-04-30조회 9,024
 
전투기 편대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다. 화면을 횡으로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비행기의 놀라운 속도감은 꼬리의 연기로 배가된다. 자욱한 운해가 화면을 송두리째 채우고 있다. 은빛 동체의 전투기들 저 아래로 지상은 까마득하게 검붉은 지형으로 보인다. 동체에 선명히 찍혀 있는 ‘R(epublic).O(f).K(orea). AIR FORCE’. ‘대한민국 공군’의 위용을 자랑하며 세 대씩 삼각편대를 구성한 9대의 비행기가 화면의 전방으로 날아 들어와, 가로질러 후방으로 빠져나갈 때 속도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공기와의 마찰음 사운드가 이를 청각적으로 확장시킨다. 그 위에 울려 퍼지는 주제가.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이 경쾌한 행진곡풍의 주제가는 곧 대한민국 공군의 공식 군가로 채택될 터이다.

<빨간 마후라>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가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 순간의 신상옥의 야심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성공한 색채 공중촬영”, “속도감 있고 박력 넘치는” 화면이라는 1964년 당시 <빨간 마후라>에 부여되었던 평가는 정말로 이 영화의 모든 것으로 보인다. 신상옥은 한국 전쟁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전혀 새로운 공중촬영을 위해 그가 쓸 수 있는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한 것 같다(참고로 공군을 소재로 한 최초의 한국영화는 1954년 홍성기가 감독한 영화 <출격명령>이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공군 파일럿이라는 삼각관계의 멜로드라마와 전우애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에서 공중촬영은 아직 시도되지 못하고 있었다.) 공군의 전면적인 지원으로 공중촬영을 달성해내고 있는 이 영화는 당시 일반적인 영화 한 편당 사용되던 필름 양의 무려 4배에 해당하는 8만 자를 사용하였으며(이중 절반이 생소한 공중촬영의 ‘시험’ 촬영에 소용되었다), 특별히 10배 줌 렌즈가 사용되었고, 고속촬영을 위해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던 고속촬영기를 빌려왔다. 이로써 <성춘향>(1961) 이래 컬러 시네마스코프라는 당대의 영화적 세계표준시를 성공적으로 시험하고 있던 이 테크놀로지스트는 비행기라는 대상이 보여주는 속도와 높이를 화면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빨간마후라, 추락한 전투기 주위로 움직이는 병사들

과연 <빨간 마후라>가 선사하는 것은 칼라 시네마스코프 공중촬영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시각적 쾌감이다. 화면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아찔한 활공. 그것들은 종종 급강하하며 폭탄을 투척하고 다시 떠오르는데, 정찰기에 부착된 카메라로 촬영된 이 장면들은 비행기-카메라와 대상인 전투기의 속도라는 이중의 움직임-속도 속에서 놀라운 쾌감을 선사한다. 속도와 높이를 탑재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의 사물들이란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 지상의 대공포가 하늘을 향하여 포탄을 발사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은 간단하게 지상의 사람과 사물들을 제압한다.

덧붙이자면 신상옥은 한국전에서 한국 공군의 활약상을 그려내는 이 영화에서 소위 역사적 고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영화의 전투기는 F-86이고, 클라이막스에서는 미그기와의 공중전이 감행된다. 실제로 F-86 제트기는 한국전 당시 미공군의 주력 전투기였으며(한국 공군의 주력은 P-51 머스탱. F-86은 전쟁 이후 3년이 지나서 한국 공군에 도입되었다), 한국 공군의 인적 물적 자원하에서 공중전은 불가능했다. 참고로 고지전으로 상징되는 지상의 지리한 공방전과 별개로 한국전에서 미군은 전쟁 초기부터 단 한 번도 제공권을 상실한 적이 없었다. 승패의 불확정, 휴전으로 잠정 종결된 이 전쟁을 다루는 할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이 미공군을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일정 부분 이로부터 기인한다. 즉, 공군 표상 속에서 이 전쟁의 이미지는 승리로 어필될 수 있었다.

1964년의 시점에 보여지는, 한국전 당시 F-86을 타고 지상 폭격과 공중전을 치러내는 대한민국 공군이라는 이 ‘소망적’ 형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백해 보인다. 그것은 한국전 당시 미공군이 수행하던 역할을 한국 공군으로 치환시킴으로써, 강력한 (동시에) 현대적인 대한민국의 남성성을 과시한다. 그런데, 이 명백한 표상 전략은 한국 전쟁영화라는 맥락 속에서 조금 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빨간마후라, 기도하는 사람들

한국전에서 미군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전략은 1961년 <5인의 해병>(김기덕)이 한국전쟁을 다룬 최초의 전쟁영화로 자리매김한 이래 한국 전쟁영화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법으로 제시되었다. 외부의 적에 대항하여 오롯이 한국군의 힘으로 내부를 지켜내는 이 문법을 통하여 한국 전쟁영화는 전쟁영화의 본원적인 정치성을 노골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적과 동지를 가르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슈미트) 위에서 어떻게 내부의 공동체를 창출시킬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된 한편, 이 공동체를 위해 죽어간 자들의 희생을 상기시킴으로써 구체적이고 심정적인 결속으로 나아가는 애도의 공동체 형성과 관련되어 있다. 요컨대 <빨간 마후라> 이전의 두 편의 성공적인 한국 전쟁영화 <5인의 해병>과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군’과 ‘희생’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어떻게 한국전쟁을 이 정치공동체의 원천적 장소로서 내러티브화하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을 한국군‘만’의 전쟁으로 부각시킬 때, 현재의 이 국가가 이들의 죽음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체를 공고히 하고자 할 때 여기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필연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 전쟁이 ‘내전’인 한에 있어서 제기되는 적의 이중성과 관련된 문제. 그러니까 이 적은 적이자 또한 ‘형제’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바로 이 문제와 직면했다. 인민군의 양민학살 ‘이후’로부터 시작하는 (그럼으로 인민군의 형상을 비껴가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적의 자리에 중국군을 둠으로써 내전이 야기하는 심리적 딜레마를 해소하고자 한다. 산등성이를 가득 메운 중국군이 나팔을 불고 꽹과리를 치며 벌판으로 밀려 내려온다. 롱 숏의 사이즈는 이들을 절대다수의 숫자로만 인식하도록 만든다. 참호 속 아군의 맹렬한 사격으로 달려오는 적들은 번번히 쓰러지지만 저 숫자를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서 감지되는 것은 보병적 전투의 무력감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죽음들은 <5인의 해병>의 희생 서사를 반복하며, 동일한 공동체의 활성화에 기여하지만 저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오는 적을 상대로 한 전투의 무력감은 <5인의 해병>과 달리 이 희생에 기초한 그 어떤 승리의 예감도 봉쇄시키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를 상쇄시킬 것인가?

1964년의 <빨간 마후라>는 이 순간 한국 전쟁영화가 봉착한 문제에 대한 아마도 가장 ‘탁월한’ 답변으로 보인다. 앞질러 말하자면 그것은 오로지 이 영화가 공군의 영화, 폭격기 조종사의 시점을 도입함으로써 가능해졌다. 보병의 무력감은 지상을 향한 공중에서의 폭격이라는 절대적인 위치의 비대칭성을 통하여 상쇄된다. 비행기가 점유하는 고공의, 속도를 동반한 시선. 이 속도와 높이 속에서 보병적 감각의 무력감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속도와 높이는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물의 고유성의 상실이라고 할만한 것을 동반하는 것이다. 시선의 위치는 너무나 높고, 너무나 빨라서 저 아래 있는 사물들은, 사람들은 거의 분간되지 않는다. 사물들과 사람들이 그 개별성을 상실할 때, 그것이 그저 추상적인 덩어리로 인식될 때 감정은 얼마나 이입될 수 있는가? 당신은 그를, 혹은 그녀를 분간할 수 있는가? 그 혹은 그녀의 얼굴을, 몸을 볼 수 있는가? 만약 볼 수 없다면 당신에게 그 혹은 그녀의 존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미를 갖는가, 혹은 그저 무의미한 덩어리에 불과할 뿐인가?
 
빨간마후라, 서로 기대어 있는 두 여인

오늘 ‘괴뢰군’이 숨어있는 자신의 고향을 폭격한 조종사는 폭격을 당한 자들 중에 당신의 친척이, 아는 자들이 있지는 않겠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르죠, 있었는지도.” <빨간 마후라>가 내전이 야기한 그 어떤 심리적 얼룩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조종사의 대답은 그 어떤 과장도 없이 솔직하고 담백한 것이다. 그의 위치에서 지상의 얼굴들이란 이미 식별 불가능하다. 이 순간 적의 얼굴을 둘러싼 딜레마는 원천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곧이어 조종사는 이 냉담함을 통해 더 높은 사명으로 가닿는다. “그러나 저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슬퍼하기 전에 이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찌 되든 싸움에 이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빨간 마후라>는 한국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그 어떤 영화보다 밝고 명랑하다. 슬픔도, 탄식도, 체념도 없는 이 세계는 누군가의 언급처럼 거의 ‘찬란’해 보일 지경이다. 그것은 ‘모르죠’라는 저 언급이 보여주고 있는바, 얼굴, 개별성, 구체성의 상실을 대가로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구현해낸 스펙터클의 핵심일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이 내전인 한에 있어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심리적 부하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영화이다. 그것은 오직 하늘을 나는 자의 시선을 획득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 시선은 조망하는 시선이자, 편재하는 시선이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자는 빠른 속도와 높이를 획득한다. 높이 속에서 사물들과 사람들의 개별성은 사라지고 그것은 그저 지형이 된다. 속도 속에서 사물들과 사람들은 빠르게, 거의 순식간에 뒤로 밀려가며 사라진다. 비행기에서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무정한’ 시선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시선을 획득한 순간 이 영화는 1960년대의 한국 전쟁영화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냉전 아시아의 문화장이라고 할만한 곳에서 통용가능한 이미지-상품으로 기능하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빨간 마후라>는 대만에서 거의 붐이라 할만한 현상을 만들어냈고(신상옥에 따르면 대만 국책영화를 이끌었던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은 그에게 이런 영화를 한 편 만들어줄 수 없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홍콩, 싱가폴, 태국 등지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둬들였으며, 일본 극장(쇼치쿠 계열)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첫 번째 한국영화로 기록되었다. 1960년대 중반 한국영화가 이룩해낸 공중전 스펙터클의 기념비적 이미지는 냉전 아시아에서 통용되는 시각적 보편성의 한 전형이 되었다. 이 지점이 <빨간 마후라>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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