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연애소설, 2002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2-08-19조회 8,459

* 본 글에는 <연애소설>과 <텔 미 썸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장르영화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성소수자들의 가시화가 갑작스럽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한정된 시공간에 허용된 젊은 여성들의 낭만적 동성애는 대중적 정서를 크게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가미해줄 수 있는 장르적 도구로 종종 사용되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김태용, 민규동, 1999)와 <텔 미 썸딩>(장윤현, 1999)이 그 시작이었다. 두 영화는 2000년대 장르영화에 등장한 레즈비언 캐릭터들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학교라는 억압적 시스템과 어린 여성들의 사랑, 우정, 질투, 불안, 분노 등의 복잡한 감정을 공포영화의 장르적 약호로 그려내 컬트팬을 양산했다. 이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그들 관계의 주 무대가 되는 학교 옥상이라는 열려 있지만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불안정하고 비규범적인 저항 가능성의 지점이 된다. 그러나 십대와 학교라는 특정 시공간에 한정된 여성 동성애의 초상이 ‘여고괴담 시리즈’와 이후 유사 영화들에서 반복되면서 역설적으로 여성 동성애에 대한 상상력이 제한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된 재현은 여성 동성애가 강력한 규범 체제에 대한 십대 사춘기의 반항이자 안정된 이성애 체제로 편입되기 위한 일시적 통과의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여성 동성애는 학교 밖에서는 불가능하거나 허용되지 못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시은(이영진)과 동성애 관계에 있던 효신(박예진)의 자살 후 아이들은 전염병처럼 귀신에 들린다. 여기서 동성애 욕망은 쉽게 감염되고 임시적이고 제의적인 것이며 그래서 정체성으로는 기입할 수 없다. 엔딩에 등장하는 학교 지붕을 덮칠 정도로 거대해진 효신의 유령은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아니면 효신은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지속하기 위해선 유령이라는 형상으로라도 학교에 남아야 하는 것일까?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레즈비언 유령은 이후 ‘여고괴담 시리즈’에서 반복된다. 동성애 관계가 2세대에 걸쳐 등장하는 <여고괴담 4-목소리>(최익환, 2005)처럼 말이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동성애 욕망을 재자각하기 위해서는 교사로서 학교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들은 레즈비언이 되기 위해 그 공간을 떠나지 못한다.
 

한편 스릴러 장르인 <텔 미 썸딩>은 캐릭터와 서사에 여성 동성애가 기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비밀로 꽁꽁 숨겨놓다가 연쇄살인의 전모가 마침내 밝혀질 때 핵심적 실마리로서 폭로된다. 사실 남자 주인공인 조형사(한석규) 입장에서나 폭로이지 채수연(심은하)과 그녀를 사랑해 남자연쇄살인을 도운 오승민(염정아)은 영화 내내 진실을 말한다. 여기서 관객들은 그 관계를 진작 상상할 수 있었던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뉘게 된다. 영화는 분명 타겟 관객을 조형사에 동일시되어 동성애 관계를 알아채지 못한 이들로 상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성애가 반전으로 작동할 수 없다. 냉철한 추리력으로 정평이 난 조형사도 여성 동성애는 상상력 밖에 있다. 채수연은 승민과의 동성애 관계를 조형사에게 여러 번 흘린다. 심지어 수연은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던 자신의 집에서 승민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자세하게 진술한다. 그 아이가 승민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여기서 플래시백이 삽입되고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 것처럼 묘사되면서 의도적 오인을 유도한다. 그래서 그 주관적 플래시백이 수연의 것인지, 아니면 수연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조형사(와 동일시된 관객)의 것인지 모호하다. 

여자 둘과 남자 한명의 관계 속에서 여성 동성애 관계를 숨겨놓았다가 뒤늦게 폭로하는, 그래서 동성애는 과거의 비밀이 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서사구도는 2000년대 영화들에서 종종 발견된다. <연애소설>(이한, 2002),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이무영, 2002), <주홍글씨>(변혁, 2004), <끝과 시작>(민규동, 2009)이 그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역시 결국은 이성애 관계가 서사를 추동시키는 큰 틀이 되면서 ‘여고괴담 시리즈’처럼 여성 동성애를 한 때의 ‘순수한 감정’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대상화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들에서 여성 동성애는 과거의 것이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의 결정체로서 대상화 되지만 그래서 궁극의 진정성을 갖게 되고 언제든 내부로부터 서사를 불안정하게 만들 잠재성을 갖는다. 
  
위의 영화들 중 이십대 초반의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 주인공인 <연애소설>은 오랜 투병생활로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십대들을 보는 것 같은 풋풋함을 그리고 여성 동성애라는 비밀의 폭로가 영화 전체의 서사구조를 뒤흔드는 측면에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와 <텔 미 썸딩> 모두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프닝부터 프레임 속 프레임으로 창문 밖 풍경을 비춰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진을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적 메타포로 사용한다. 사진은 순수했던 순간을 결정화하는 동시에 그 프레임 바깥에 있는 맥락이나 다른 진실을 지워버린다. 서사구조에 있어서도 프레이밍은 중요한 장치가 된다. <연애소설>은 영화 전체가 지환(차태현)의 지속적인 플래시백, 즉 지환의 주관적 프레이밍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20대 후반인 지환은 택시기사를 하며 등록금을 벌어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좋아했던 사진도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 직접 찍은 흑백사진에 하얀색 물감으로 쓰인 편지 한 장을 받는다. 주소도 이름도 없지만 짐작 가는 이가 있다. 사진은 과거를 상기시키고 이때부터 지환의 플래시백이 시작되며 영화는 현재와 5년 전을 오고간다. 5년 전 지환은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수인(손예진)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뒤따라가 고백하지만 곧 거절당한다. 이후 수인과 늘 함께 다니는 경희(이은주) 그리고 지환은 절친한 친구가 된다. 지환은 처음에는 청순하고 조용한 스타일의 수인에게 반하지만 이내 활발하고 명랑한 경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경희는 처음부터 지환을 좋아했기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일만 남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내내 몸이 아파 늘 조심하며 살았던 수인과 경희가 일생의 일탈처럼 지환과 여행을 갔다 온 이후 수인과 경희는 연락이 끊기고 지환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채로 홀로 남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요약된 서사는 지환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비밀과 폭로가 등장한다. 하나는 수인의 첫 사랑이 경희로 첫 만남부터 죽을 때까지 경희를 사랑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인과 경희가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불러왔다는 것이다. 즉 수인의 본명은 경희이고, 경희의 본명은 수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지환은 현재 시점에서 수인과 경희를 수소문할 때 경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러나 곧 (경희가 본명인) 수인(손예진)이 죽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상상 가능한 일부 관객들은 여성 동성애의 비밀을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게 하면서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비밀이 폭로되지 않도록 의도적인 오인 장치들을 흩뿌린다. 그것은 스테레오타입을 뒤집는 것이다. 긴 생머리, 프릴 달린 흰색 블라우스와 치마, 기운 없는 목소리, 얌전하고 의존적인 태도를 가진 수인은 겉보기에는 이성애 남성의 관습적인 이상형을 구현해 놓은 모습을 갖고 있다. 반면 짧은 머리에 늘 바지를 입고 히피 스타일의 장신구를 착용하며 직설적이고 크게 웃는 경희는 상대적으로 더 병약한 수인을 챙긴다. 경희는 전형적인 톰보이다.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에 따르면 수인은 이성애자이고 경희는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작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수인이고 경희는 지환을 사랑하는 이성애자(혹은 양성애자)이다. 영화는 수인과 경희가 이름을 바꿔 부르고 지환의 사랑이 수인에서 경희로 바뀌는 것처럼 관계와 욕망을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지환의 주관적인 플래시백으로 구성되지만 유일하게 지환의 것이 아닌 플래시백 장면이 있다. 수인과 지환이 단둘이서 각자의 첫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수인은 경희와의 첫 만남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 아이가 경희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플래시백에서 경희는,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머리가 긴 수인과 비교해 파란색 환자복을 입고 민머리를 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남자아이로 오인되게 만든 이 장면에서 <텔 미 썸딩>의 조형사처럼 지환에게 동일시된 관객은 수인의 플래시백을 관람하게 된다. 이 플래시백 역시 수인의 주관적 플래시백인지 지환이 수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각화한 것인지는 모호하다. 하지만 여기서 지환이 그 아이를 남자아이로 오인하고 있으며 수인의 첫 사랑이 경희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로맨스 이야기는 대부분 둘 다 사랑하는 여자를 교환하는 것으로 남성 동성관계를 공고히 한다. 그러나 지환은 교환되지 않는다. 수인은 지환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인과 지환 모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경희가 교환되는 것도 아니다. 경희는 초반에는 수인과 지환이 서로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지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은 오인의 과정에 놓이고 결국은 실패로 끝난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발화하는 유일한 관계는 수인과 경희다. 수인은 경희에게 죽기 전 분명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경희도 수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결부되고 서로의 이름을 바꿔가며 생존을 격려했던 둘의 사랑은 이성애적 사랑을 초과한다. 심지어 수인은 지환에게 자신의 사랑인 경희를 부탁하는 러브레터를 보낸다. 그 편지엔 경희가 좋아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아마도 잡지에 나와 있는 성격운세가 말했던 것처럼 수인은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시한부가 아니라면 경희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수인과 경희를 시한부로 만들면서 여성 동성애 관계의 가능성을 한정시키는 한편, 시한부로 인해 역설적으로 그 욕망을 단단하고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오히려 가장 실패하고 가능성 없고 끝까지 무지에 빠져있는 것은 지환의 이성애적 욕망이다. 이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가장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이성애가 도달하지 못한 혹은 개발해야 할 (영화학자 레이 초우가 개념화한) ‘원시적 열정’의 장소가 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가시화될 수 있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겨루거나 혹은 우정 때문에 양보하는 삼각 구도로 보였던 영화는 수인의 사랑의 대상이 경희라는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서사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언제 서사를 재구성하게 되느냐는 관객마다 다를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서 지환의 주관적인 플래시백으로 점철되어 있는 이 영화를 관객들 역시 다시 쓰게 된다. 지환은 그 새로운 정보를 끝까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지환에게서 벗어나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레즈비언인 수인의 시점을 갖게 된다. 관객들은 수인의 레즈비언 편집술에 동화된다. 이 영화에는 시계바늘을 돌리는 행위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지환은 첫 눈에 반한 수인에게 고백 후 거절당하고 관계를 우정으로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경희는 수인이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후회와 슬픔에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을 되돌린다. 수인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시계바늘을 되돌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수인이 분명하게 자기 욕망을 발화하고 응답을 들은 인물로 후회 없는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성애 지배적인 사회에서 늘 자기만의 편집술을 육화할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주변의 서사와 이미지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수인은 이 삼각관계에서 가장 많이 아는 자로(지환과 경희의 욕망, 그리고 자신의 욕망) 주어진 것들을 재편집해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수인은 지환의 플래시백으로 구성된 이 영화에 오인의 가능성을 품은 채로 자신만의 플래시백을 트로이 목마처럼 침투시킨다. 어떤 면에선 자기만의 (레즈비언) 편집술을 일상화하고 육화한 수인은 시계 그 자체가 되어 있기에 물리적으로 시계바늘을 돌릴 필요가 없다. <연애소설>은 결말에서 지환과 경희의 재회를 서사화하면서 뒤늦게 이성애 프레임으로의 봉합을 시도하지만, 이미 레즈비언 편집술의 역량을 경험하게 한 작은 플래시백의 침투는 의심과 실패 속에서 서사의 솔기가 끊임없이 뜯어지게 만든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