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오마주, 2022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2-07-21조회 8,478

<오마주>는 신수원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로 2010년 장편데뷔한 후 올해까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왔다. 장편영화를 개봉하지 않은 해에는 옴니버스 영화, 텔레비전 단막극,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영화연출에 전념해 왔다. 한국영화에서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이만큼 생산적인 감독은 드물 정도다.

데뷔작인 <레인보우>는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서른아홉의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감독지망생 지완(박현영)의 좌충우돌을 그린 자전적인 영화다. <레인보우>는 저예산 독립영화였던 만큼 크게 흥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영화제에 수상을 하고 비평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배급사가 제공한 줄거리에 따르면 <레인보우>는 최악의 상황에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재기발랄하고 따뜻한 “응원”의 성장영화이자 음악영화다. 물론 이 설명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전형적인 성장영화를 넘어선 ‘근본 없음’과 지리한 일상에 느닷없이 침투하는 ‘날 것의 폭력’을 응시하고 그려낸 데 있다고 본다.

오래 전 태백의 한 미디어센터에서 <레인보우> 공동체 상영과 토크를 진행한 적이 있다. 평일 낮이었던 탓인지 대부분의 관객이 노년층이어서 낯선 독립영화 스타일과 영화감독의 장편 데뷔 이야기에 공감을 해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우려는 기우였다. 관객들은 영화계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주인공 지완의 고생담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코미디로 즐겼다. 특히 모든 시도가 엎어지고 지완이 친구인 조감독과 함께 바닷가를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영화현장에서 지인의 부탁으로 ‘행인3’으로 출연하는 장면에서는 예상을 넘어선 박장대소가 나왔다.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이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지인인 감독은 그냥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연기가 시작되자 만취한 남자를 연기한 배우는 느닷없이 행인인 지완의 뺨을 때린다.
 

만취한 남자: 아줌마 어디가? 어디 가냐고?
행인3(지완): 몰라요. 
(만취한 남자가 행인3의 뺨을 때린다)

감독은 지완의 리액션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계속 NG를 부르고 지완은 열 번에 걸쳐 뺨을 맞는다. 바스트 쇼트으로 반복되는 열 번의 뺨 맞는 장면은 지완의 움찔하는 신체반응과 매우 사실적인 사운드로 관객들의 몸도 오그라들게 만든다. 지완은 열 번째에 이르자 마침내 참지 못하고 “아프잖아! 그렇게 뺨을 때리고 그래. 그렇게 만만해 보여. 내가 그렇게 우습냐고. 나도 때리면 아프다고.”라고 폭발하며 행인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순간 일상과 판타지, 현실과 연출, 카메라 앞과 뒤,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가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신수원 감독 특유의 비린내 나는 날 것의 폭력은 거리를 지우고 포장을 벗겨버린다. 그것은 현실의 은유라기보다는 직접적인 직유이고 관객들은 스크린 위의 폭력을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듯이 반응한다. 지완의 친구인 조연출은 “맞으니까 좋냐? 이 매저키스트, 또라이야. 어디가 그렇게 가고 싶었냐.”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 말은 관객들에게도 적용된다. 자학적인 폭력은 지완과 관객 모두에게 이상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를 만들면서 지완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내용은 지난한 실패의 과정만을 담는다. 이로써 ‘성취’와 ‘실패’는 구분되지 않고 서로 엉키게 된다. 근본 없음과 느닷없는 폭력은 신수원 감독의 이후 장르영화들뿐만 아니라 최근작인 <오마주>에서도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이다. <오마주>에서는 여자들이 만든 창작물들은 빈번히 실종되며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여성 창작자들은 뿌리 없는 자기 욕망과 쓸모의 근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근본 없음은 자유로움을 줄 수도 있지만 또한 때때로 생존을 힘들게 만들며 심지어는 자기 존재에 대한 파괴적인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오마주>는 지완(이정은)과 친구인 프로듀서 그리고 남편과 아들로 구성된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레인보우>의 자전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지완은 이제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세 번째 영화 ‘유령인간’을 개봉했다. 흥행은 너무나 어렵고 그래서 첫 번째 영화만큼 그 이후의 영화 만들기도 녹록치 않다. 여전히 ‘성취’와 ‘실패’가 얽혀있다. <레인보우>에서 시나리오가 잘 써지지 않는 가운데 뜬금없이 개미의 환영을 마주했던 것처럼 <오마주>에서도 지완은 갑자기 ‘되’와 ‘돼’가 헷갈리며 시나리오의 진도를 뽑아내지 못한다. 장편데뷔가 <레인보우>의 미션이었다면, 이제는 영화계에서 생존하기가 목표가 된다. <레인보우>에서처럼 남편과 아들은 지완의 창작 작업을 막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폭적으로 이해해 주지도 않는다. 그는 외롭고 막막하다. 여전히 기댈 곳이 없는 상황, ‘근본 없음’이 그의 뿌리가 된다. 오랜 동반자였던 프로듀서도 영화를 그만둬야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지완은 과연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만들어야 할 동기는 무엇일까? 지완이 따라갈 수 있을 만한 선례가 있는가? 심란한 상황에서 지완은 영화박물관에서 1960년대 활동하던 여성 감독 홍재원의 새로 발굴된 영화 프린트에서 사운드가 소실된 장면의 복원을 위한 연출을 의뢰받는다. 지완은 사운드 복원을 넘어서 아예 사라진 장면의 프린트를 찾아내기 위해 홍재원 감독의 주변인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흔적을 쫒는다. 그러는 동안 지완이 사는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자살한 여자의 사건을 알게 되고 한참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옆집 여자가 실종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오마주>에 등장하는 1950-60년대 영화계에서 활약한 여성 삼인방 홍재원과 박남옥 감독 그리고 이영희 편집감독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여판사>는 한국영화사에서 두 번째 여성감독으로 기록된 홍은원의 데뷔작이다. 실제로 신수원 감독은 <레인보우> 개봉 이후 MBC에서 창사기획 특집으로 <여자만세>(2011)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박남옥 감독과 홍은원 감독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홍은원 감독은 약 12년 간 스크립터, 편집, 조감독으로 일하다 1962년 <여판사>로 데뷔를 하게 된다. 이 영화의 프린트는 유실되었다가 2015년 발굴되어 복원되었다. 하지만 일부 장면의 사운드가 온전치 않은 상태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였지만 1961년 서른셋의 나이에 타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사망한 황윤석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였다. 이 영화는 “홍일점 여판사에 홍일점 여감독”이라는 광고카피를 달고 있었던 만큼, 1960년대 각자의 직군에서 거의 유일했던 여성 전문직업인들을 연결짓는다. 여성 감독들에게는 끊임없이 텍스트 안과 밖을 연결 지으려는 시도가 스스로도 그리고 타인들에게서도 보인다. 이것은 때로 창조적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박남옥 감독이 <미망인>(1955)으로 장편데뷔한 후 차기작을 연출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홍은원 감독은 세편의 장편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계속 영화를 연출하고자 했던 바람은 이어지지 못했다. 홍은원 감독은 <여판사> 연출을 맡으며 실제 사건이나 원작 시나리오와는 다른 결말을 원했고 수정해 연출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두고 불행했던 이 나라 여성들”을 위해 법관으로서 일하겠다는 굳건한 사명감을 갖고 판사가 된 진숙(문정숙)은 시댁과 남편의 괴롭힘 속에서 결국 가부장제 체제에 굴복하고 판사를 그만두고 희생적인 며느리 역할을 맡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살인죄를 뒤집어쓰자 변호사로 변신해 법정에서 변론하며 공적 역할과 사적 역할을 협상하고 생존을 꾀한다. 시어머니를 비롯해 남편과 시댁은 여성이 판사로 일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일 뿐 아니라 심지어 가족의 해체를 촉진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대의명분이 중요한 진숙은 사적영역에서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욕망과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다. 진숙은 자신을 억압했던 바로 그 시어머니를 살리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여성들을 도우려 했던 대의를 실천하기 위해, 변론을 통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모두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재증명한다. 여성이 되고, 여성으로서 생존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구분지어 놓은 경계를 허무는 일이 된다. 그런 면에서 법정의 변론 장면에서 진숙의 설명적인 보이스오버와 사건을 재구성하는 플래시백으로 명징하게 재현되는 것 그리고 그중 일부 사운드 유실된 것은 너무나 상징적이다. 홍은원 감독은 당시 여성들에게 일단 실종되거나 죽지 않고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수정한 시나리오의 결말에서 일단 실제 사건과 달리 진숙을 살린다. 그리고 생존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설사 일부 타협이 있을지라도 법관으로서의 공적영역을 되찾아준다.

그래서 <오마주>의 지완도 실종된 프린트 일부를 찾는 것과 옆집 여자의 생존을 확인하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 지완은 이제는 폐허가 된 오래된 단관 영화관에 버려진 밀짚모자에서 우연히 유실된 프린트를 찾는다. 밀짚모자의 챙을 세우기 위해 사용된 필름 조각들은 설사 영화로서 기능하지 못했을 때조차도 또 다른 사용가치를 부여받고 있었다. 지완은 왜 그렇게 유실된 장면을 찾으려했던 것일까? 실종으로 뚝뚝 끊기며 연결되지 않는 서사는 어떤 폭력을 야기하는가? 여성들이 자신의 경력에서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아 자기회의에 빠질 때 성별은 징크스가 되기도 한다.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여자라는 성별이 혹시 일에 방해가 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 그 의심은 때때로 사실에 근거한다. 그럴 때 역사 속 선례는 그 징크스를 깨는 모티브가 될 수 있다. 홍은원 감독의 경우 영화 3편을 연출하고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면서 나이 들 때까지 평생 영화를 만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데뷔작 영화 한편을 만들고 더 이상 영화를 연출하지 못했던 박남옥 감독보다는 나아간 것이다. 홍은원 감독은 박남옥 감독, 최은희 배우/감독/제작자 같은 선배, 동료들과 함께 이것을 만들어 간 것이다. 군데군데 비어있고 희소하고 유실되어서 소재와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 여성 영화사에서 여성영화인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회의감과 근본 없음에 빠진다. 그럼에도 그 희귀한 조각들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특히 여전히 모자의 틀을 잡아주는 심으로 여전히 사용가치를 발휘하고 있을 때 그것은 징크스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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