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망루의 표면으로 굵은 물줄기가 쏟아지고 크레인으로 운반한 컨테이너를 타고 경찰특공대가 건물 옥상으로 내려온다. 건물의 계단 아래에서는 갑옷을 두른 진압 경찰들이 위압적인 소리를 내면서 치고 올라온다. 물리적으로 대항하기 어려워진 시위대는 망루 안으로 후퇴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망루에 좁게 난 구멍을 뚫고 화염이 솟구치는 광경이 보인다. 처음에 구멍은 두세 개 정도였으나 불길이 번지면서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구멍을 뚫고 분출한다. 사위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불길은 시위대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009년 1월 19일 용산 남일당 옥상 망루에서 발생한 참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
두 개의 문>(2012)의 카메라는 망루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용산은 미군 기지가 있던 서울 중심부 지역으로 술집과 성매매 업소 등이 밀집되어 있고 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후 개발업자들이 새로이 입주하여 지역을 재생하고자 한 특별한 내력을 가진 공간이었다. 일부 세입자들이 이주를 거부하면서 활동가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는데, 당국은 철거민 시위대가 기대했던 대로 그들의 요청을 경청하기는커녕 야음을 틈타 무력 진압, 해산에 나섰다. 그제까지 경찰의 진압 작전은 시위대를 화염병 투척으로 격화시키는 데만 기여했다. 이후 건물 내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 중인 시위대를 제거하기 위해 건물을 경찰특공대 병력이 추가 투입되면서 시위대는 남일당 망루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게 된다. 비극적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전조들이 있었으나 중단되지 않은 작전 명령으로 인해 철거민들 중 일부는 망루에 올라간 지 25시간 만에 주검이 되어 내려왔다. 이후 재판에서는 화염병을 제조하여 저항하는 불법적 폭력 시위가 참사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검찰의 주장과 이명박 정부의 시위 대응, 공권력의 무리한 진압 작전, 오판이 비극을 낳았다는 대책위를 중심으로 하는 진단이 맞섰다. 상반된 주장이 경합하는 재판정에서 쟁론이 오가는 과정까지를 따라잡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의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경찰의 증언 및 진술조서, 채증 영상 등 발견된 이미지, 말과 글, 소리의 조각들로 플롯을 구성한다.
<두 개의 문>의 스타일 전략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분기점이 되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진실의 탐구가 현상적인 사실에 머물지 않고 보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공백을 향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인식이 기초하고 있다. 생사여탈의 현장에서 발췌하여 영화에 삽입된 “모두 입구로 가서 밖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데, ‘다 죽어’하는 목소리가...”라는 말은 둘 이상의 의미로 해석된다. 목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 맥락은 무엇인가에 따라 상반된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세계의 진실은 모호하고 그것을 승인하는 영화의 수단은 보잘 것 없다는 믿음이 이 영화에는 내재해 있다. 영화를 연출한 공동감독들이 철거민과 진압 경찰의 입장 모두를 공평하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하나의 입장, 두 개의 입장, 다수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말은 영화의 윤리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진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 있으며 하나 또는 둘, 그 이상의 증거들을 가지고 승인될 수 없음을 자인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 뼈아픈 자성은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를 이동시킨다. 따라서 <두 개의 문>은 억압적인 정권의 모습과 그 정권을 유지하는 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말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진실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의 수단, 즉 기록과 인터뷰, 의견과 해석, 재연 등이 모두 말해줄 수 없는 곳에 웅크린 진실을 겨냥한다. 이 부조리하고 무기력한 세계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다. 사태를 관망하는 자리에 놓이게 되는 관객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명징한 해석보다 왜 문 안의 진실은 이야기될 수 없으며, 그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하나의 결론으로 판정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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