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3>에서 송강호의 캐릭터 묘사는 한국영화의 스타일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한 배우의 페르소나의 출발점이자 정수로서 이 영화는 조형적인 언어구사력과 증폭된 제스처, 인물의 단면을 드러내는 신체 언어를 개발하여 이 대배우의 수많은 스크린 페르소나에 반(反) 영웅주의적인 페이소스를 심었다. 이 영화를 통해 송강호가 확립한 것은 신체 훈련, 신체 조작, 대사 애드리브를 통해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능력이다. 무언의 신체 언어에 대한 송강호의 재능은 무성영화 형식으로 연출된 한 챕터 ‘쌈마이(들)’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과장된 슬랩스틱 액션 장면들의 몽타주로 구성된 이 신은 표정과 몸짓으로 전달되는 색다른 퍼포먼스를 시전한다. 조필은 조직의 명예와 규범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묘사하려는 신경증적인 노력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조잡한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유머를 이끌어낸다. 송강호의 조필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히스테릭하게 행동하지만, 말을 더듬는 등 과도하고 놀란 반응은 그들의 불안과 취약성을 증명할 뿐이다. 그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구현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심오한 성찰을 몸으로 표현하는 이 배우가 <넘버3>를 통해 창조한 개성은 다양한 장르에서 확장되며 생생함을 더하게 되었다. 그의 레퍼토리 전반에 걸쳐 송강호는 힘과 권위를 추구하지만 그 본성이 목표에 닿지 못하는 인물들을 거쳤다. <
반칙왕>(2000)의 대호, <
살인의 추억>(2003)의 박두만, <
괴물>(2006)의 강두, <
우아한 세계>(2007)의 강인구,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이상한 놈, <
기생충>(2019)의 기택에 이르기까지 송강호의 말투와 신체, 분리된 행동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휘하는 집단으로부터 자신을 분리되어 가는 인물들을 묘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넘버3>에는 이와 같은 페르소나의 맹아가 있다. 보스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부하들과 겸상하는 것을 거부하는 대사,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고 협객 최영의의 무용담을 과장하는 말과 신체의 제스처는 위계와 권위를 보호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이 필연적으로 실패로 귀결되는 캐릭터의 파토스를 구축하는데 기여한다.
송강호가 권위과 자존심, 권력이라는 아우라를 유지할 깜냥이 못 되어 조롱거리가 되는 남자들의 대표주자가 된 발단의 지점에 <넘버3>가 있다. <넘버3>의 오프닝에서 조필의 등장 방식과 함께 분석해야 할 것은 그의 퇴장인데 조필의 마지막 모습은 검은 군화의 클로즈업 쇼트로 형상화된다. 자신들이 섬기는 보스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세 제자들은 참담한 실패 끝에 해체된 조직 ’불사파‘를 상징하는 아이콘을 내세운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 고수부지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에 조필이 나타났을 때 제자들은 마치 유령이라도 만난 것처럼 예전의 보스를 응시한다. 그들은 경외감 또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다. 카메라는 또 다른 청부살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조필의 군화 뒤꿈치를 클로즈업한다. 주변의 속도와 달리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는 이 남자가 불사의 아이콘을 향해 팔자걸음으로 당당하게 걷는 동작에서 이미지는 얼어붙고 배우 송강호의 커리어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