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드라마가 아닌 괴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표면적 범죄와 심층적 범죄라는 <살인의 추억>의 구조를 이어받는다. 납치와 실종의 상황은 <괴물>에서 반복되는데 괴물은 내러티브에 구조를 부여하는 장치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초점은 아니며 실제로 괴물은 플롯이 전개되는 동안 점차적으로 중요성을 상실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도시의 표면 아래 숨겨진 현서를 찾는 가족의 여정이 현대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범죄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박씨 일가가 관료 조직과 자본에 얼키고 설키면서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상징물인 한강 다리 아래를 전전할 때 그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고 그저 경멸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경찰은 현서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병원은 현서를 찾기 위해 격리를 해제하지 않으며, 강변을 소독하는 방역 요원들은 쉽게 뇌물에 굴복한다. 남일은 급진주의 액티비스트 시절의 정치적 이상을 고액 연봉과 교환한 친구 뚱게바라(임필성)에게 배신을 당한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경제적 성공을 연상시키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 있는 통신회사 사무실에서 뚱게바라는 휴대폰 추적을 통해 현서의 위치를 찾아내지만 카드빚을 갚기 위한 신고 포상금을 노리고 경찰에 남일을 신고한다. 이러저러한 삽화들을 통해 봉준호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환상을 야유하고 경제적 기적을 돌연변이 괴물로 재탄생시켜 근대화를 얻기 위해 지불한 사회적, 도덕적 비용의 크기를 가늠하고자 한다.
<괴물>이 폭로하고자 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범죄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프롤로그는 돌연변이 생물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장면은 주한미군 사령부이자 서울 중심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이곳 근처에 현재 한국 정부가 터를 잡았다는 사실도 기이한 반향을 불러온다)의 영안실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한국인 부하 직원에게 포름알데히드 병을 하수구에 버리라고 명령하고, 소극적으로 항의하던 부하는 이내 순순히 복종하여 수백 병의 독극물을 싱크대에 쏟아 붓는다. 이 장면은 고전 공포영화의 클리셰인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더 미묘한 공포는 부하가 미친 과학자의 명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불안을 조성하는 이 장면은 자국민에 극도로 해로울 수 있는 범죄를 종용하는 미국의 명령에 순응하는 한국 정부의 종속성을 재현한다. 한 병원 장면에서 기괴한 방호복을 입은 미국 관리가 한국인 의사에게 강두의 뇌를 뚫으라고 명령하는데 이 가학적이고 비논리적인 행위를 한국인 의사는 묵묵히 수행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괴물이 자연이나 과학, 심지어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종이라는 정치적 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주장한다. 괴물을 만드는 것은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아니라 한국인 조수이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인 ‘숙주’는 미국에 기생하는 한국의 지위를 가리키면서 심오한 범죄의 본질을 암시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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