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懷疑) 김군, 2018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23-04-05조회 6,340

전(前) 육군 대령 출신의 사회운동가 지만원은 북한이 보낸 일명 ‘광수’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활동을 주도했다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기하학적 분석에 몰두해 있다. 요지는 인간을 식별하는 표식 중 하나인 지문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얼굴 역시 페이스 라인을 연결한 외곽선의 형태가 일치하면 동일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원리이다. 지씨에 따르면, 일베 영상분석가 ‘노숙자담요’가 항쟁을 기록한 사진 한 장에서 발상한 추적은 사진에 기록된 시민군의 페이스 라인, 미간 사이의 거리, 주요 요소들이 배치된 좌표의 연결선 등 얼굴의 기하학적 형태를 추출한 이미지 아카이빙으로 진화하였고 이를 북한 발(發) 이미지들과 대조하여 총 561명의 광수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얼굴에 대한 기하학적 분석에 동기를 제공한 것은 제1광수라고 명명된 한 시민군 청년의 사진이었고 그는 2010년 평양 노동자회관에서 열린 5.18 3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사내, 북한에서 농업상까지 지낸 김창식과 동일인물이라고 지씨는 주장한다. 매서운 눈초리와 어깨 골격의 생김새, 기관총을 다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화기(火器)를 다루는데 있어서의 능숙함 등이 심증으로 제시된다. 지씨의 주장은 “광주 사람들이 시위대를 형성한 적은 없고, 광주에서의 시위는 북한군 600명이 와서 저지른 폭동이며, 광주 사람들은 여기에 부나방처럼 끼어들어 부역을 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 시위도 없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지만원의 주장과 달리,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의 도입부 전개에서 사진 속 청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광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년 여인 주옥이 사진을 보고 그의 얼굴을 알아보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주씨는 지만원에 의해 북한군 김창식과 동일인물로 지목된 ‘제1광수’가 자신의 집에 수시로 드나들며 교분을 쌓았던 청년 ‘김군’이라고 주장한다. 항쟁 당시 시민군을 지원했던 주옥은 어느 날 어머니와 시민군들의 군용 트럭에 주먹밥을 올려주고 있었는데, 그때 김군과 재회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날카롭고 남자답게 생겼다”고 김군에 대한 인상을 전한다. 주옥의 아버지 주대체는 김군이 ‘왕대포 시음장’으로 불렸던 자신의 술집에 자주 왕래하였으며, 광주시 동구에 위치한 원지교 아래에서 천막을 치고 살던 성명불상의 넝마주이 고아였고, 7-8명의 또래 청년들과 그룹을 이뤄 다녔노라고 증언한다. 당시 넝마주이들이 항쟁의 주동이 되었지만 항쟁 이후 사람과 천막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옥이 이름 없는 청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강렬하고 그녀의 기억은 역사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지만원과 주옥의 추적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김군>은 이 둘을 대비하면서 이미지의 속성과 진실을 담지한 아카이빙 기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연출자 강상우는 지만원의 분석과 주옥의 기억을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두 극점에 두는데 여기서 지만원의 기하학적 분석은 과학에 근거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주옥의 것은 직관적이다.

김군의 얼굴을 찾아가는 이 로드무비의 여정은 5·18 기록 보관소에 안장된 한 장의 사진에서 우연히 출발하였다. 강상우는 역사적 증거와 증언을 번갈아가며 기록물과 삶의 이야기, 집단 기억과 기억 상실, 이미지의 메커니즘의 복잡한 역학을 서사화한다. 다큐멘터리의 구성 요소 중 생존자들의 인터뷰는 이미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역학을 탐구하는데 기여한다. 김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의 꼭짓점에 놓인 인물이 최진수이다. 장발에 반곱슬로, 하는 행동이 어리숙했던 청년 최진수의 등장은 미스터리의 영화적 해결방식을 보여준다. 시민군 최영철에 의해 1980년 5월 24일 발생한 송암동 학살사건 관련자로 지목된 최진수는 흑백의 사진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하여 1989년 2월 22일 제28차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서 국회의원 김인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으로 육화된다. 송암동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청년 최진수의 시점이 현재의 최진수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카메라는 그의 얼굴이 아닌 손을 클로즈업하고, 이에 상응하는 이미지로 동아일보 기자 최형주의 펜을 쥔 손도 클로즈업한다. 송암동 학살사건에서 죽은 희생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김군을 지목하는 과거의 최진수가 진술을 이어가는 동안 이미지 트랙에서는 현재의 최진수와 최형주 기자의 대화, 흑백의 자료 사진, 어두운 도로를 비추는 자동차 안에서의 쇼트, 운전석에 앉은 최진수의 측면 쇼트,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지도를 그리는 최진수 - 최형주 기자 앞에서 흰 종이에 지도를 그리는 현재의 최진수 이미지가 몽타주된다. 송암동의 민가에 피신한 시민군을 쫓아 온 공수부대에 의해 “김뭐라고만 알고 있는 동지”가 관자놀이에 총격을 받고 사망했음을 고지하는 증언은 과거의 최진수와 현재의 최진수가 합일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현재의 최진수에게 음성이 부여되고 과거와 현재는 연속성을 획득하며 영화의 추적도 종착점에 다다랐음을 암시한다. 현재의 최진수를 시각화하는 시퀀스에서 프로필에서 정면으로 이행하는 쇼트의 전개 방식은 역사적 미제에 접근하는 영화의 스타일을 대변한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개의 공명하는 이미지와 맞닥뜨리는데, 최영철이 송암동 사건을 진술할 때 등장한 자동차 앞 유리로 보이는 어둑신한 도로와 주옥이 “원지교 아래에서 쓰레기를 줍는 고아”로 김군을 묘사했을 때 다리 아래를 묘사하는 풍경 쇼트이다. 이 연결은 만난 적이 없는 좌표 상에 놓인 이미지들을 하나로 꿰어 배열한다. 최영철이 떠올린 최진수가 김군을 불러내고, 최진수의 호명이 주옥의 김군을 소환하는 것이다. <김군>은 송암동의 희생자(들)가 김군일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지만 이 기나긴 탐색의 과정이 스스로 말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지도를 완성한다.
 
  

2022년 5월, <김군>에 영감을 제공했던 청년이 차복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차씨는 각종 증거들을 통해 김군으로 지목된 사진 속 청년이 자신임을 입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학살의 후과를 상징하는 인물이 생존해있다는 것이 이미지의 권능을 의심하는 이 영화에 깃든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김군>은 다큐멘터리의 재현 양식, 이미지의 신실함에 대한 혼란에 기초한 영화이다. 공개 및 비공개 영상과 문서, 보도사진, 100명 이상의 생존자와의 인터뷰 등 방대한 컬렉션을 토대로 하여 엄밀한 조사 과정을 삽입하였지만 특정 양식이 진실을 생성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지만원과 주옥의 관계로 돌아가서, 지만원이 신뢰하는 안면 인식 기술과 주옥이 발동한 기억-감각은 그 간극이 크지만 과학적 탐사와 인간의 기억은 모두 확실한 진실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의 소명과 관련하여 에롤 모리스(<가늘고 푸른 선>(1988), <전쟁의 안개>(2003), <언노운 노운>(2013))는 “진실은 스타일이나 표현에 의해 보장되지 않으며 진실보다는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큐멘터리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진실은 모호하고 또 알아내기 어렵다는 믿음에 기초한 이 영화의 탐사는 예정된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어떤 다큐멘터리와도 다른 길을 갔다. 탐정 이야기와 비선형 배열의 조합은 관객의 판단을 위해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가고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 무게를 둔다. <김군>은 다큐멘터리 효과를 쟁점으로 하여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반성적 비판을 실천하며 혁신적이고 논쟁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진실 추구의 상대적인 방법론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옵션이 존재하는가? 현대 다큐멘터리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역사적 사건에 관한 진실을 발견하는 일 안에 내재한 거짓, 불일치, 모호함을 쟁론화하면서 동시에 기록물, 인터뷰, 아카이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의 역설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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