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 류(신하균)는 신장병을 앓고 있는 누이(임지은)의 수술비를 변통해야 한다. 언어소통의 불가능성은 영화 내내 류와 누이의 대화를 자막이나 내레이션으로 전달하도록 만든다. 이야기의 도입부, 한 라디오 방송에 류가 보낸 사연이 DJ의 목소리를 타고 흐른다. 카메라는 라디오를 든 류의 손, 환자복을 입은 누이의 손을 차례로 클로즈업한 뒤 이어폰 줄을 더듬으며 느리게 올라간다. 류와 누이는 옥상에서 각자의 귀에 이어폰을 하나씩 꽂고 라디오 사연을 듣는다. 마른 눈물이 흐르는 누이의 얼굴, 류의 뒤통수가 보이고, 다음 쇼트에서 두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 그리고 옥상의 전경이 사선 앵글의 익스트림 롱 쇼트로 제시된다. 액션이 벌어지는 공간을 총체적으로 조망해주지 않고 세부로부터 시작해 전체로 나아가는 쇼트의 위계는 일반적인 장면 구성 방식을 뒤집는다. 원경에서 전경으로 쇼트의 크기를 점진적으로 증감함으로써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지 않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에서 익스트림 롱 쇼트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거리를 증감하면서 장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지연시킨다.
말보다 이미지를 통해 스토리를 기술하는 박찬욱의 시청각적 스토리텔링은 쇼트 구성의 관습을 파괴하고 하나의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두 개 이상의 맥락으로 확장하는 편집의 전략을 구사한다. <
복수는 나의 것>은 자연스러운 쇼트의 배열이 스토리의 흐름을 매끄럽게 잇는 스타일의 표준 관행을 파괴한다. 다른 기술적 요인들보다 편집은 마음의 눈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새로운 관람의 경험으로 관객을 이끈다. 특별히 이 영화에서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소비에트 몽타주 편집 전통의 재래(再來)를 볼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에이젠슈테인이 ‘어트랙션(attraction)’이라고 부르는 몽타주의 효과는 폭력적인 결말을 향하는 캐릭터의 나선형 여정과 그것을 기술하는 편집 스타일을 통해 보증된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는 관습적인 쇼트-리버스 쇼트 체계를 찾기 어려운데 대화 장면에서 이를 대신하는 것은 카메라를 보고 말하기이다. 카메라를 보고 말하게 하는 것은 정면 클로즈업이 배우의 표정과 그것이 자아내는 인상을 가장 잘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류와 그의 여자 친구 영미(배두나)의 대화 장면에서 카메라는 정면을 향한 두 인물의 얼굴을 수직으로 찍는다. 류는 벙어리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은 영미 혼자이고 말의 내용보다 중요한 건 저들의 표정, 특별히 대사를 읊어주는 영미의 입술 모양이다.
창의적인 사운드 몽타주의 기능이 극대화되는 사례도 있다. 사운드 몽타주는 관객에게 충격을 주고 스토리 세계에 흩어진 위치들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동원된다. 류가 누이의 자살을 알고 울부짖는 신에서 절묘한 사운드 몽타주의 사례가 나온다. 류의 감정적 상처가 깊은 이 신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시퀀스이다. 누이의 자살 메모와 핏물 속에 잠긴 그녀의 팔을 보고 류는 울부짖는다. 텔레비전 모니터에서는 유선이 보는 동물 만화가 재생되고 있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세상을 잠식해가는 동안 몸값 거래가 이루어진 공원에서는 검은 비닐이 얼굴에 씌워진 채 묶여 있는 동진의 앞에서 개가 짖고 있다. 그 짐승 소리의 질감과 리듬에 맞춰 동진도 울부짖기 시작한다. 카메라의 주관적인 시점은 비명을 지르는 동진과 멀리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도시를 응시한다. 이 신에서 사운드 편집 및 청각 신호는 다른 위치의 캐릭터들을 나란한 좌표 위에서 연결하고 고도로 양식화된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편집 스타일에 담긴 영화적 효과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은 동진에게 류가 죽임을 당하는 신이다. 먼저, 관객은 동진이 류를 끌고 냇가를 가로지르는 조감 쇼트를 본다. 두 번째로 물속에서 류의 발목이 보인다. 이어 동진과 류의 투 쇼트로 커팅하여 동진이 복수의 정당성을 고지한다. 탁한 물에 잠기는 동진. 카메라는 방금 절개된 류의 아킬레스건을 클로즈업 쇼트로 잇는다. 류의 소리 없는 절규나 고통받는 노동 계급의 외침을 들을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심이 낮은 시냇물에 빠져 류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진. 핏물이 얼굴에 튀었을 때 동진은 눈을 깜박일 뿐이다. 마침내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게 된 동진은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다. 자본가의 노동계급에 대한 가혹한 승리를 함축한 류의 죽음 신은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복수’라는 아이러니한 주제를 달성하였다. 결국 모든 캐릭터는 복수를 찾는다. 그러나 관객은 복수심에 불타는 캐릭터 둘 다에게 공감하는지, 공감하지 않는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영화는 복수의 길을 택하면 아무도 이길 수 없고 선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이들의 죽음과 복수의 아이러니를 그린다. 유선을 인질로 삼으려는 류의 계획을 알게 된 누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누이의 자살에 이어 류는 유선과 함께 죽음을 향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결국 유선의 납치는 불필요했고, 누이를 돕기 위한 류의 노력은 연쇄적인 죽음의 원인이 된다. 류가 비극적으로 죽은 누이를 냇가 돌무더기에 안장하며 애도하는 동안 유선은 우발적으로 익사한다. 관객들은 류보다 먼저 위험을 인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관객들은 류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기 전에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 박찬욱은 이 플롯 기법을 자신의 해석적 관점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용하여 스토리와 주제를 연결하도록 촉진한다. 에이젠슈테인에 따르면, 쇼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든다. 그러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쇼트 간의 전환이 특정 시청각적 자료를 생략하여 관객을 오도하는 것처럼 보일 때 종종 의미는 모호해진다. 시공간을 오고가는 편집은 미지의 상태로 관객을 데리고 가서 인상과 느낌에 모든 것을 맡기고 캐릭터가 생각하는 것을 해석하도록 한다. 스토리의 더 큰 세계로 이끌려가기 위해 이 견인의 과정은 진정한 의미의 어트랙션을 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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