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악마가 곡성, 2016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22-10-20조회 6,402

156분의 러닝 타임 동안 어둠의 한가운데로 인간을 몰아넣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곡성>(2016)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라스트 신의 페이드아웃으로 종결된다. <추격자>(2008)와 <황해>(2010)로 이어지는 전작에서와 같이 나홍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괴적이 되어가는 서사를 통해 능숙하게 통제된 폭력 장면들을 단계적으로 제공한다. 기이하게 뒤틀린 내러티브와 감정의 격동을 야기하는 대담한 묘사를 내장한 이 영화는 물과 나무, 약초, 동물, 산으로 둘러싸인 전라남도의 작은 마을 곡성을 미스터리에 휩싸이게 한다.

<곡성>의 줄거리는 뇌우, 번개, 안개, 악몽, 좀비, 퇴마사, 교수형에 처해지는 사내 심지어 죽은 사슴의 시체를 먹는 악마와 같은 이미지를 통해 조형되는 공포의 확장에 의존한다. 주술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고요한 마을에서 끔찍한 죽음이 발생하고 그 뒤를 좇아 기이한 사건들이 공동체를 압박한다. 동네 경찰이자 아버지인 종구(곽도원)가 미스터리를 조사하는 탐정 역할을 맡는데, 이 순박하고 익살스러운 시골 경찰이 광기와 착란의 상태로 변질되는 과정이 서사의 주조를 이룬다. 이 병증을 퍼뜨리고 있는 용의자는 깊은 산중에 사는 과묵한 일본인(쿠니무라 준)이다. 외지인으로 불리는 그가 불길한 기운을 몰고 오면서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에게도 발진이 돋고 험악한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린 종구는 아버지의 본능이 발동하면서 공격적이고 위협적으로 변한다. 어린 소녀의 천진함에 반해 선과 악의 공존은 인간의 본성이며 감정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비극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소재이다. <엑소시스트>(1973)와 <캐리>(1976), <유전>(2018) 같은 전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원을 추정하기 힘든 악령의 공세는 어린 소녀를 향할 때 더욱 끔찍하게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의 소문, 속담, 신념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공포와 불편함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무기력한 느낌을 전하는, 반복되는 롱 쇼트가 암시하듯이 악령은 공동체 곳곳에 그윽하게 도사리고 있다.
 
  

나홍진의 전작들이 도시 환경의 조건을 활용한 착란적인 편집을 구사한 것에 비해, 원시적인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한 <곡성>은 쇼트의 지속시간을 늘림(퇴마의식을 묘사하는 신들)으로써 공포의 시간을 부채질한다. 공포가 퍼지고, 스며들면서 도입부에 존재했던 어두운 유머를 빠르게 쓸어버리면서 나홍진은 관객을 마지막 동굴의 공포로 인도하기 위해 그럴듯한 개연성을 만든다. 믿음에 대한 성찰로 장식된 이 무자비한 어둠의 움직임은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영화적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 나홍진은 그가 다루는 영화의 언어 규범을 숙달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면서 관객을 원하는 곳으로 안내하거나 이야기를 조작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돌리는 데 있어 능숙함을 보여준다. 마을을 휩쓴 테러의 원인이 영원한 수수께끼로 봉인되기 때문에 종구의 탐색과 구조 노력이 무너지고 마을 사람들은 광기와 영적 위기의 가장자리로 내몰린다. 관객은 종구와 마찬가지로 길을 잃고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딜레마를 감수해야만 한다. 당황한 인물들 역시 세상이 점진적으로 사악해져가는 이유에 대해 해명할 길이 없다. 악은 어디서 오는가? 나홍진의 영화는 냉정하게 답한다. 이유는 없고, 인간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잇감이고, 악은 상황의 문제일 뿐이다. 등장인물들에게 내리는 폭우도 공포와 유혈 사태를 씻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함을 동반한 채 악마가 숨어 있는 지하 통로를 배경으로 하는 피날레는 타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곡성>이 던지는 질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라는, 영적인 차원에 놓여 있다. 악마의 확연한 존재 앞에서 보이지 않는 신을 믿을 수 있는가? 신성에 대한 의문과 확신 사이에서 동요하는 이 영화는 따라서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구축한다. 기독교의 교리에 근거한 스토리 안에서 나홍진은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 사실과 증거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애쓴다. 외지인의 존재가 드러나는 방식은 이와 관련된다. 일본인으로 설정된 외지인의 정신은 너무 괴물적이어서 그의 육체적 한계를 넘어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에 대한 역사적인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국가 혹은 민족적 경계를 흐리는 이 인물은, 순박한 무지렁이들의 세계를 교란한다. 일본인이 공동체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관념은 국가 정체성의 형성과정에서 축적된 뿌리 깊은 위기의식을 소환한다. 컨텍스트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만연한 악의 본성은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통제불가능한 것이다. 일종의 보안관인 종구는 가족, 공동체, 민족의 수호자로서 정당한 이유가 없이 횡행하는 악마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심리 지리학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할 것은 외지인이 기거하는 어둡고 허름한 집을 묘사하는 두 개의 신이다. 종구와 그의 동료 경찰 성복(손강국)이 처음 외지인의 집을 탐문할 때 카메라는 안에서 방으로 향하는 종구를 찍고 있다. 조류도감과 음화 등이 발견되는 이 날의 탐사에서 종구는 찢어진 창호지에 난 구멍 사이로 불이 켜진 신당을 훔쳐보다 돌로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진입한다. 종구의 액션이 진행되는 동안 성복의 수색이 교차편집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방 안의 가려진 장소를 들춰내기 위해 문을 여는 성복의 액션과 신당으로 들어서는 종구의 액션이 평행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두 인물은 각자의 시점으로 밀실의 풍경을 본다. 기괴한 형상의 조형물과 무당 의식용 밧줄, 향로, 흑백 사진이 붙은 신당과 죽음의 이미지가 덕지덕지 붙은 사진들의 몽타주를 카메라가 훑는 동안 카톨릭 부제 양이삼(김도윤)의 발을 물고 짖어대는 맹견의 흉포함이 또 하나의 계열을 형성하며 나란히 놓인다. 개에 물려 바지가 뜯겨나가는 소동은 마을에서 벌어진 죽음의 이미지를 촬영한 사진들의 몽타주와 편집된다. 삼분할 액션을 나열한 이미지들의 조합은 연쇄적인 죽음의 모티프를 환기하면서 신성(神聖)의 침탈과 그 대가를 형상화한다.
 
  

외지인의 집에 대한 두 번째 방문은 동일한 궤적으로 진행되지만 반대의 방향에서 조망된다. 종구와 양이삼, 두 사람만 등장하는 이 신에서 카메라는 종구의 위치에서 방을 찍는다. 그가 처음 방으로 들어갔을 때 보이는 것은 낡은 상 위에 삶은 닭발이다. 극단적으로 낮아진 위치에서 찍은 로우 앵글의 측면 쇼트는 벗겨진 벽지와 서까래를 배경으로 프레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하는 종구의 위태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방 안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찢어진 신문지가 너덜너덜 붙은 벽을 배경으로 시효를 다한 향로와 초들이 놓인 신당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마침내 종구가 보는 것을 드러내는데 완전히 꺼진 제단은 그 위에 소용돌이치는 증오와 처벌의 앞날을 예고한다. 첫 번째 방문에서 이삼의 바지를 문 맹견이 종구를 공격하기 위해 방안으로 뛰어들면서 응징이 시작된다. 촬영감독 홍경표는 이때 혼돈의 우주 속 인물의 고립을 강조하고 사건의 임의성을 강조하는 수평적인 와이드 쇼트를 별안간 보여준다. 이성을 상실한 종구가 귀신들린 집 안에서 맹견과 사투를 벌일 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외지인의 모습은 바스트 쇼트에서 익스트림 롱 쇼트로 후퇴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거리로 퇴각한 카메라는 익명의 눈을 암시하듯 느리게 앞으로 이동한다. 이 시선의 주체는 누구인가? 두 장소 간의 교차편집은 신체의 정신적 혼란과 그 병이 즉각적인 공간으로 확장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외지인의 방은 심리 지리학의 시각적 구현이다. 벗겨진 벽지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흉가가 숨겨진 정신병의 공간화라면 곡성은 그 증상이 발현되는 곳이다. 건축학적으로 이 집은 바깥에서는 그리 눈에 띄는 공간이 아니다. 친숙하고 무해해 보이는 집은 표면은 깊고 불길한 내부 방을 숨기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곡성>의 미장센은 경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면서 여러 겹의 레이어와 비밀을 숨긴 공간을 설정한다. 나홍진에게 이런 설정은 익숙한 것이다. 데뷔작 <추격자>에서 그는 연쇄살인마의 음울한 내면을 시각화한 집을 <곡성>의 그것과 동일한 형상으로 구조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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