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기생충, 2019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22-09-08조회 7,566

<기생충>(2019)은 작가의 기질과 세계관, 스타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대다수의 표현 요소들, 카메라와 조명, 세트, 미술, 음악 등이 탁월하게 조정된 영화이다. 특별히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부터 꾸준하게 발전되어 온 봉준호의 내러티브 기술 테크닉이다. 봉준호의 서사는 언제나 실종, 살인의 모티프를 타고 움직이는데,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서사의 국면들을 지속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신만의 시각 양식을 개발하였다. 이 양식을 ‘가속기술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속기술법이라 함은, 내러티브 정보의 효율적 제공과 장면 전환의 가속화를 위해 가장 적은 수의 쇼트를 사용하여 빠른 속도와 리듬으로 한 장면이 이동해야 할 목표 지점에 매끄럽게 도달하도록 하는 시각화 전략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의 가속기술법은 음악가 정재일이 작곡한 테마 음악 ‘믿음의 벨트’가 깔리는 기나긴 장면들의 연쇄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박 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는 기정(박소담)에게 집안의 운전기사를 추천받는다. “믿는 사람 소개로 연결연결, 이게 베스트인 것 같아요.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라는 연교의 말을 신호탄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를 이동하는 사물들처럼 유기적으로 배열된 쇼트들의 연속 진행으로 구성된 시퀀스가 이어진다. 물경 8분 동안 진행되는 이 시퀀스는 봉준호 식(式) 가속기술법의 강력한 효과를 입증한다. 음악과 나레이션이 병합된 사운드는 다양한 행위들의 계열이 이어지는 시퀀스를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바로크풍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작곡된 스코어 ‘믿음의 벨트’는 극중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박 사장(이선균)의 집사 문광(이정은)을 내쫓기 위해 치밀한 협동 작전을 실행하는 시퀀스를 시청각적 스토리텔링의 백미로 만든다. 이 큰 사기를 계획하는 가족들에 관한 플래시백은 시퀀스 전체에 걸쳐 산재되어 있으며 한 번에 모두 완료되지 않는다. 마치 강도 계획의 모의를 촬영하는 영화 스태프들처럼 기택의 가족은 그들이 짠 플롯을 시나리오화하고 재연한다. 이 시퀀스에서 내러티브, 시각 이미지들과 대위법적으로 얽혀가는 음악의 효과는 기택 일가의 작전이 진행되는 경로와 정교하게 조응하면서 하나의 사건 단위를 도입하고 완결한다. 하나의 질감을 드러내는 스코어가 바탕을 제공하고, 이야기와 연기, 상황은 분리된 채로 연결되어 있는 열차 칸들처럼 유기적인 사슬로 묶여 있다. 이전 쇼트들이 이후에 올 것에 반향을 일으키고 하나의 요소는 다른 요소에 작용하여 흡사 오케스트라처럼 진행된다.
 
  

‘믿음의 벨트’ 시퀀스의 목표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가속기술법의 의의) 박사장의 집에 침투하는 기택의 가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의 효율적인 기술은 이야기의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이미지의 속도와 리듬은 매우 중요하다. 카메라 움직임의 템포, 방향은 치밀하게 계산되었고, 프레임의 속도를 조절하는 슬로우모션, 화면 밖 나레이션과 극중 대사의 티키타카, 시퀀스의 주요 국면들에 화면 요소들의 적절한 배치를 통한 완결 구조 등이 독립적인 시퀀스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채로운 스타일 장치들의 몽타주를 통해 봉준호는 기택의 가족이 문광을 내쫓기 위해 그녀에게 결핵 환자의 누명을 씌우는 기나긴 계획과 그 실행과정을 기술한다. 시퀀스의 구성은 기택이 박 사장의 운전기사가 되기 위해 고급 외제차 작동법을 학습하고, 테스트 주행으로 안정적인 운전 솜씨를 어필하는 신으로 시작하여 기정과 기우의 나레이션이 교차하며 이 집에서 문광의 역할과 됨됨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신, 문광의 복숭아 알레르기 내력에 대한 해설, 문광에게 결핵환자 혐의를 씌우기 위한 계획과 그 실행을 교차하여 최종적으로 작전의 종착점에 도달하는 신으로 전개되어 간다. 기우(최우식)의 과외 수업을 문광이 감시하는 장면에서 기택이 쓰레기통에서 피가 묻은 휴지를 들어 올리는 지점까지 장대하게 진행되는 이 시퀀스에서 모든 쇼트는 유기성을 가지고 연결되며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강도 계획 모의처럼 행위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그들의 배열은 연속성의 원칙 하에서 진행되고, 편집은 무의미한 커팅이 아니라 쇼트들 간의 일정한 흐름을 가진 논리적 전환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믿음의 벨트 시퀀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첫 번째 요소는 전체를 관통하는 카메라의 무빙이다. 서두에서 연교가 늘어놓는 설명대로 ‘연결연결’되는 신들 간의 이동은 카메라 무빙의 연쇄로 보증된다. 기택이 운전기사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신에서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카메라의 수평 움직임으로 시작한 시각화 방식은 박 사장의 집에서 기정과 문광의 이동을 따라 좌에서 우, 우에서 좌로 움직이는 카메라 무빙으로 연결되고, 문광에게 복숭아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계획 하에 기정과 기우의 액션을 보여주는 전, 후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이어진 뒤, 백화점에서 쇼핑 카트를 끄는 기택과 연교의 움직임에 동기화된 카메라의 수평 이동을 거쳐 문광이 버린 휴지를 확인하려는 기택의 액션을 따라가는 수평 이동으로 종료된다. 여기서 카메라 무빙은 시공간의 차이를 두고 발생하는 액션들을 하나의 테마와 목표로 꿰어내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공정으로 만든다.
 
  

이 시퀀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두 번째 요소는 교차편집을 통한 공간을 초월한 연속성의 창조이다. 분리된 두 시공간의 교차편집을 제공하는 것은 반 지하방에서 이루어지는 기택과 기우의 역할극과 마트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기택과 연교가 나누는 대화이다. 교차편집 국면은 두 시공간에서 티키타카를 이루는 대화로 연결된다. 기택의 “제가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라는 눙치는 대사와 연교의 “요즘도 결핵환자가 있어요?”, 다시 기택의 “집에 다솜이 같은 어린애도 있는데...”와 같은 대화가 반 지하방과 자동차 안에서 교차를 이루며 반복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틀에서 시퀀스의 통일성을 창조하는 것은 컬러이다. 컬러의 통일성은 초입부, 기우와 박 사장의 맏딸 다혜(정지소)의 과외 수업에서 간식으로 등장하는 피자 위에 뿌려지는 핫 소스와 이 시퀀스의 대단원에서 기택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지를 들어 올릴 때 그 위에 발라진 피로 위장된 핫 소스의 시각적 조응으로 이루어진다. 붉은색 컬러의 조응으로 세팅된 가속의 리듬은 거대한 계획의 단계별 진행을 연속적으로 이어줌으로써 강화된다. 핫 소스에서 비롯된 컬러 모티프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거대한 학살극이 벌어질 때 흩뿌려지는 피로 이어진다.

<기생충>의 ‘믿음의 벨트’ 시퀀스는 가난한 가족에서 부유한 가족으로의 이동, 분리되어 있던 그들의 병합을 단단한 시청각 이미지의 벨트로 묶는다. 이처럼 봉준호 식 가속기술의 전략은 집중과 통일성을 가지고 내러티브 기술(記述)의 효과와 스타일의 합일을 창조하는 탁월한 전략을 보여준다. 상술한 <기생충> 외에도, <살인의 추억>(2003)에서 시골 형사 박두만(송강호)의 애인 설영(전미선)이 지체장애인 백광호(박노식)의 별명 ‘덮쳐라 백광호’에 대해 설명하고, 두만이 그를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여 지하 취조실로 데려오는 일련의 쇼트 연결, <마더>(2006)에서 살인사건 희생자 문아정의 됨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네 아낙들, 소년들의 증언을 연속적으로 이어붙인 ‘미인박명 문아정’ 시퀀스 등이 가속기술법의 또 다른 사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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