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하는 신은 이 네 가지 형태의 음악-이미지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공한다. 고문 신은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인 판소리 내러티브의 영화적 시각화로 시작됩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문 현장으로 이미지가 이동할 때 노래하는 목소리가 멈추고 판소리의 말하는 목소리로 대체된다.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할 준비를 지시한 후 변학도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무대에서의 가창이 보이스오버 사운드 트랙으로 돌아온다. 판소리 보이스오버는 집장사령이 고문을 위해 이동하는 거동과 움직임, 형장을 들고 와 땅바닥에 흩뿌리고 그중 하나의 형장을 선택하여 들어 올리는 행위를 설명한다. 음성과 이미지의 이러한 구성은 위에서 이야기한 음성-이미지 유형의 두 번째 범주를 보여준다. 다음은 세 번째 범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번에는 가창의 보이스오버가 아니라 집장사령의 말과 겹쳐지는 대사가 보이스오버 역할을 하여 고문당하는 춘향의 마음과 몸의 움직임을 사설로 묘사한다. 고문 장면의 극적이고 음악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춘향은 일자 포악으로 변학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말로, 그 위에 겹쳐지는 판소리 가창은 노래로 분리된다. 일종의 아리아라고 볼 수 있는 이 장면에 대한 임권택의 영화적 표현은 ‘더블 보이싱’의 사례를 제공한다. 화면에서 춘향의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창자의 소리는 동일한 가사를 각각 말과 노래로 발음한다. 그리고 춘향의 고문 이미지 위에서 서로 다른 층위의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춘향의 저항과 변학도의 명령, 집장사령의 타격이 교차하는 매질 현장에서 무대의 메타 디제시스 세계로 이미지 트랙이 이동함에 따라 춘향의 말하는 목소리가 이중 보이스에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판소리 가수의 목소리가 최종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즉,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유형, 극장에서 춘향을 공연하는 판소리 가수의 노래를 화면에서 듣고 본다. 고문 신은 원천 판소리처럼 음악적 정교함과 감정적 강렬함 면에서 가장 흥미롭다. 이 장면을 통해 임권택은 연극 무대에서 노래로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넓은 의미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영화적 연출을 완벽히 실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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