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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꿈>(2013)의 다공성 내러티브는 완전한 가상의 영역에 있다. 그곳은 구획된 세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예술 형식과 재료들이 웅성거리며 대화하는 장소이다.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박경근의 실험적 다큐멘터리 영화는 설화와 역사,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의 서사를 겹겹이 엮어 뒤죽박죽된 연대기 속에서 근대성이 지워버린 사람, 의식, 과정을 되살리기 위한 혼란스러운 여정을 그린다. 다큐멘터리, 픽션, 아방가르드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이 영화의 변칙성은 도시 지형의 변화 과정을 조명하고 근대 국가의 성립에 관한 반성적 인식 위에서 구축되었다.
<철의 꿈>의 서사는 영화 내내 반복되는 네 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감독 자신의 목소리로 기술되는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을 배음으로 불교 의식 또는 무속 의식을 제시하는 계열의 영상이다. 보이스오버가 이 계열에만 속하는 것은 아니나 신을 찾겠다며 떠나간 연인에게 보내는 구어체 나레이션은 신과 사랑(열망)을 하나의 줄기로 엮는다. 두 번째는 내러티브 안에서 아카이브 푸티지의 재사용이다. 포크레인과 기중기로 이룬 경제개발, 한강의 기적, 산업화를 견인한 철강, 조선 산업의 자취, 생존과 인권을 요청하는 노동자 시위, 성장과 번영의 흔적들이 뉴스릴의 형식으로 드문드문 끼어든다. 아카이브 푸티지는 여러 계열들 간 관계에 대한 증언이 되고 가차 없이 진행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세 번째는 철의 위용 또는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울산 현대중공업과 포스코의 안과 바깥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한 이미지들이다. 웅장하고 단단한 기계와 철로 만든 배, 철근과 철판 더미들, 쇳물 따위는 위엄이 넘치는 물질에 대한 경외감 또는 괴물의 형상을 닮은 이미지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자아낸다. 그러나 철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의 절반에 불과하다. 다른 하나는 네 번째 요소에 해당하는, 다소간 허구가 가미되어 상상적 기술로 해석되는 고래에 관한 이미지들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암각화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내력과 함께 그 위에 새겨진 고래의 전설이 소환된다. 고래와 짐승들, 고래잡이, 사냥하는 사람들, 그들이 쓰는 도구들이 새겨져 있다는 암각화를 보며 먼 옛날 사람들은 부족의 화합을 다지고 고래 신을 숭배하는 재래의식을 치렀을 것이라고 화자의 목소리는 말한다. 그런즉 <철의 꿈>의 질문을 요약하면, 태곳적 고래는 어떻게 철의 신으로 거듭났는가? 쯤이 될 것이다.
<철의 꿈>이 구사하는 하이브리드 내러티브는 다큐멘터리와 아방가르드 형식을 오가며 작업할 수 있는 통합된 미학적 범주이다. 이런 유형의 영화에서 이야기의 형식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이지만 눈앞에 있는 재료와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텍스트의 수행적 측면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아카이브 푸티지의 배열은 새로운 문맥 안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구성적 행위가 된다. 구성적 행위는 관습을 뒤엎고 미개간의 영역으로 비상함으로써 본래 의도를 뛰어넘는다. 상이한 요소들이 병치되고 결합하는 비선형 내러티브는 기억을 자극하고, 이미지와 소리가 충돌하여 독립적인 표현 요소들 간의 신비하고 종종 뒤늦은 연결을 활성화한다. 세계와 그 기록을 내려다보는 영화의 광대한 영역에서 레퍼토리의 분해와 재조립이 다양한 표현 채널을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발굴된 영상과 음향의 파편들, 현재에 포착된 다른 시간의 흔적들, 관찰과 상상을 결합하여 <철의 꿈>은 역사의 잔재가 여전히 편재하여 모든 이미지 아래에 숨어 있고 그들 사이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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