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롱테이크 신은 아마도 지현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식당에서 막걸리와 파전, 전골을 놓고 나누는 흥주와 세랑의 대화이다. 카메라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까닭에 우리는 머뭇거리는 저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진부해 보이는 시간의 길고 유동적인 흐름은 얇은 비닐 가림막 뒤에서의 조용한 대화를 보여줄 뿐이다. 비닐 가림막 너머에 있는 태양이 구름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카메라는 두 사람의 과거를 회고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서툴고 더듬거리는 말들을 수록한다. 주변에 떨어지는 빛의 명암은 그들의 변화하는 감정에 따라 황금빛에서 어두운 그늘로 수시로 바뀐다. 변화하는 빛과 서늘한 바람 소리,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기록된 이 신의 도입부에는 사마귀도 등장한다. 흥주는 사마귀와 방아깨비의 차이를 설명하고, 가을이 더 깊어지면 사마귀도 색깔이 낙엽 색깔처럼 변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고 이야기한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세랑은 어린 시절 몸에 사마귀가 났을 때 사마귀가 그걸 먹어주면 없어진다고 했던 속설이 진짜인지를 흥주에게 묻는다. 흥주는 사마귀는 몰라도 잠자리를 사마귀에 갖다 대면 그걸 물어뜯기는 했었노라고 경험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이런 식의 한담과 그들 각자가 과거에 다른 연인과 춘천을 방문했던 기억을 나누는 동안 사마귀는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흥주는 세랑이 앉은 쪽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옷에 붙어있던 사마귀를 쫓고, 어색한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나란히 앉도록 한 사마귀는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진다. 이 기우뚱한 구도 안에 세랑-흥주-사마귀가 나란히 놓인 형상은 춘천행 기차 안에서 쇠기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던 세 여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무려 12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인물들이 자신을 발견하는 무성한 풍경들을 천천히 축적하는 과정은 시간에 대한 감각과 미물(微物)에 투영된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전달한다. 평행 우주의 다른 좌표에서 지현은 청평사를 내려오는 길바닥 위에 죽어 있는 사마귀를 본 적이 있다. 사마귀는 어떻게 거기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장면의 비밀에 대해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 시간의 무게를 탑재한 이 장면들은 빛의 소멸, 미묘하게 반향하는 두 쌍, 투명함의 감각을 위해 시간의 드라마를 변환한다. 과거의 유령, 잃어버린 연결과 놓친 기회가 두 부분을 맴돌며 애잔한 사슬로 청년과 중년을 엮는다.
<춘천, 춘천>은 일상적인 장소와 날씨, 빛의 기록이자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인간과 자연에 관한 유려한 미니어처이다. 장우진은 풍부한 특성화와 미적 감성을 통해 세계의 복잡성을 추론하게 한다. 우리의 삶이 곧게 뻗은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곡선이며 때로는 이미 지나갔던 길의 되밟기라는 것을 이 영화는 이야기한다.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반복된 말과 사물, 우연한 만남, 이상한 재조합, 전화 통화, 절, 마라톤, 사마귀는 내러티브의 체계 위에서 진동한다.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장우진의 기하학적 플롯은 이중구조와 심리적 묵시라는 수단을 흡수하여 스토리텔링을 해석하는 관객들에게 복합적인 층위를 상상하도록 한다. 정보를 많이 제공하지 않으면서 한 번의 몸짓이나 이미지에 평생의 후회를 담는 이 캐릭터들은 과거를 몇 번이나 회상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완전히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생생한 계절의 톤에서 안개 낀 회색으로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이야기는 화장실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대는 카메라로 모호한 이중 결말을 이룬다. 표면적으로는 겸손하면서도 은근하게 야심에 찬 장우진의 연출은 세부 사항, 반복 및 후속 보기를 의미 있게 만드는 내적 운율을 통제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덜어냄으로써 남아있는 것들 안에 뉘앙스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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