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버닝, 2018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21-11-12조회 8,746

결백과 고통, 소외에 대한 세계관에 근거한 이창동의 인본주의적 이야기들은 그를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작가로 추인하였다. 스타일과 주제의 선택은 자연주의에 의해 주도되었던 초기작들을 넘어 작품을 거듭할수록 다의적 메타포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창동의 영화는 개발과 번영, 선진화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한국 사회가 우리들의 시야 바깥으로 밀어내었던,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둔 이야기들이다. <버닝>(2018)은 사회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분열에 관한 형이상학적 스릴러이다. 지극히 평범한 디테일까지 의례적으로 보여주는 성향 때문에 이 영화에는 정확한 의미와 유효성을 확인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정보가 흩어져 있다. 이창동은 하나 이상의 해석에 적합하도록 체계적으로 계산된 세부 디자인으로 복잡함을 가장(假將)하는 플롯을 제시한다.
 
  

스토리의 정합성을 부정하는 영화는 기만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함축한 긴 롱테이크 쇼트로 시작한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쇼트의 프레임을 트럭의 문이 3/4 정도 가리고 있다. 단순한 구도를 지속함으로써 관객들에게는 프레임 안의 디테일을 관찰할 시간이 주어지며, 그중 어떤 것이 앞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게 될 것인지를 추측하도록 요구한다. 잠시 후 문의 뒤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곧이어 연기의 기원인 담배를 든 손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한 청년이 얼굴로부터 프레임 안으로 진입한다. 종수(유아인)이다. 의미 맥락을 추정하기 힘든 이 이미지는 하나의 지시이며 플롯을 추진하는 모터이다. 종수가 몰고 다니는 트럭의 문은 프레임을 가려 보이지 않는 영역을 조성하고 이 비(非) 가시성은 최초의 미스터리가 된다. 뒤이어 나타나는 종수는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등을 보이고 서서 트럭 문을 열고 옷더미를 어깨에 올려 인파들이 가득한 거리를 걷는다. 카메라는 여전히 종수의 뒤를 따라가지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번잡한 거리를 지나 종수는 ‘90% 폐업 세일’을 하는 옷 가게 앞에서 요란한 춤을 추면서 호객을 하는 두 명의 나레이터 모델을 스쳐 안으로 들어간다. 종수의 뒤를 따라 온 카메라가 먼 발치에서부터 그녀들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종수의 시선에 동조된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들어오지 않는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왼쪽에 있는 여자는 종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그가 간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카메라는 종수의 뒤를 따르기를 멈추고 안으로 들어간 종수의 동태를 살피는 여자의 전신에 고정된다. 나중에 밝혀지기로 그녀는 종수의 초등학교 동창 해미(전종서)이다. 첫 대면에서 해미는 종수를 알아보지만, 종수는 알아보지 못한다. 즉, 해미는 보지만 종수는 보지 못한다. 해미가 종수를 단번에 알아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구도는 해미를 시선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다룬다. 이 롱테이크는 종수의 움직임을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관객들이 종수의 동조자가 될 수 있도록 부추긴다. 해미가 종수를 보는 행동과 해미를 객관화하는 영화적 계획 사이의 불일치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어긋남이라는 테마와 연결된다. 카메라가 그녀를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사회적 정체성이 결여된 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타자의 존재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거나 거부하는 신호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2분여에 달하는 오프닝 롱테이크 쇼트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선의 권력과 그 대상, 드러난 것과 잠재된 것 사이의 관계를 서사화하는 플롯의 쟁점을 압축하면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통해 ‘태우다’라는 모티프를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해미와의 몽상적인 재회 이후 종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침대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종수는 영화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보는 대다수 장면은 그의 시점을 통해 걸러진다. 그가 보는 것을 우리도 보고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한다. 해미의 방에 비치는 햇빛에 종수의 시선이 옮겨갈 때 카메라는 그 빛에 초점을 맞춘다. 불안한 꿈 장면에서 화염의 환영이 종수를 방문했을 때 관객들에게도 위협이 전해진다. 해미와의 에로틱한 만남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고 종수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고양이 ‘보일’을 돌보기로 한다. 이렇듯 <버닝>은 해미의 고양이에서 종수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부 사항들이 플롯의 진행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야기이다. 복잡한 스토리텔링 영화들처럼 식별된 주제와 내러티브 구성 요소는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보완하는 관계로 보인다. 여행을 마치고 해미와 동행한 부유한 남자 벤(스티븐 연)이 나타난 이후부터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문 뒤에 가려진다. 해미의 실종은 가장 큰 미스터리이며 종수를 미로로 몰아가는 필사적인 탐사 시퀀스에 들어서면서부터 해미 뿐 아니라 고양이와 우물, 두절된 전화 통화, 인적이 끊긴 비닐하우스 따위의 가려진 존재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벤의 방화는 물질에서 비(非) 물질로, 존재에서 비 존재로 상태를 전환시키는 행위이다. 오프닝 신의 담배처럼 벤의 방화는 존재하지만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사물들을 창조한다. 6분여의 기나긴 롱테이크로 구성된 결말부는 오프닝 쇼트와 공명한다. 여기서 종수는 ‘노는 일’을 한다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개마저도 메타포로 대체하는 벤을 살해하고, 태워버린다. 이 장면에서 성공적으로 재현되는 초현실주의적인 기운은 화염에 그을리는 벤과 포르셰에 대한 단정적인 해석을 유보한다. 사건이 진행되는 공간을 반으로 갈라 벤의 영역과 종수의 영역을 마주 보게 하면서 카메라의 위치를 이동하는 신 안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이음매를 확신시켜줌으로써 이창동은 종수가 벤을 태우는 한계 공간을 만든다. ‘태우기’의 양가적인 의미는 롱테이크를 통해 완성된다. 간단히 요약하면 <버닝>은 담배를 태우던 종수가 벤을 태우면서 끝이 나는 이야기인 셈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분법적인 시선, 세계관을 초점으로 한 이 이야기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리얼리티와 메타포, 종수와 벤으로 구체화된 이분법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표면과 심층에 항상 놓여 있다. 따라서 트럭 문 뒤에서 종수가 담배를 태우며 나타나는 것은 사회, 경제, 정치적 장막에 의해 가려진 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중심에 두고자 하는 윤리적인 주제를 암시한다. 플롯의 끝에 종수는 눈에 보이는 허상을 살해하고 태워버림으로써 메타포 뒤에 가려진 현실을 보기로 한다. 과연, 그때부터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닝>은 스토리텔링의 두 가지 양식, 예술적 형상화 방식의 두 극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종수가 소설을 쓰게 되는 동기와 과정, 결과로 나타난다. 벤을 살해하고 태우는 장면으로 이행하기 전에 이창동은 종수가 해미의 원룸 창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신을 배치한다. 카메라는 창문에서 뒤로 물러나 해미의 방과 서울 도심의 풍경을 프레임의 좌우에 나란히 놓는데, 이는 영화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남산 타워에서 바라본 시점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엔딩 시퀀스는 존재의 확실성에 대한 영화의 질문을 완성하고,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망각하도록 만드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따라서 수많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일종의 미장 아빔(액자 속 이야기)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여자친구의 얼굴을 치장하는 벤을 보여주는 신은 유일하게 종수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장면이고 벤을 살해하는 마지막 신에서는 오프닝 직후 관객의 눈을 대신해왔던 종수가 벤의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진짜 작가가 되어가는 종수의 글쓰기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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