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올드보이, 2003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21-05-14조회 13,040

<올드보이>(2003)의 오프닝 시퀀스는 거두절미(去頭截尾)의 박력을 품은 하나의 이미지로 열린다. 수직의 구도로 촬영한 검은 실루엣의 물체가 위압적으로 프레임을 짓누른다. 흡사 그것은 권총을 쥐고 있는 사람의 손을 앙각으로 촬영한 쇼트로 보인다. 검은 실루엣의 손이 천천히 좌우로 움직일 때 폭발 직전까지 고조되는 사운드의 비트를 따라 카메라가 틸트 업 하면 어둠에 감싸인 얼굴이 드러난다. 이 돌연한 이미지의 형상들은 군불을 떼듯 서서히 긴장을 상승시키는 관습적인 영화 오프닝 기능을 무시한다. 정면의 클로즈업에서 왼쪽으로 카메라의 각도를 변경한 미디엄 부감 쇼트로 전환되면 이전에 보았던 이미지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은 강아지를 안은 성명불상 남자(오광록)의 넥타이를 주인공 오대수(최민식)가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다. 식은땀을 번들거리면서 강아지를 안은 남자가 대수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서 시간은 15년 전으로 빠르게 되감긴다. 15년 전 경찰서의 대수가 현재의 남자가 던진 질문에 대답한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첫 번째 쇼트는 남자가 건물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순간 그의 목과 실루엣의 형상으로 보였던 대수의 단단한 그립의 조합이었음이 밝혀진다. 대수는 이 사내를 건물 바깥으로 밀어 떨어뜨리려 하면서 그를 위협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올드보이>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진실을 잔인하게 배반한다. 영화의 테마를 압축한 이 이미지로 20분 후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강아지를 안은 남자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있고, 대수는 그런 남자의 자살을 저지하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오인의 몽타주는 처음 생긴 인식과 그것이 잘못된 인식으로 입증되는 장면들이 영화의 곳곳에 매설되어 있음을 알리는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오프닝의 시간과 20분 뒤 다시 그 시간으로의 복귀는 남자에 대한 위협을 구제로 전환한다. 넥타이가 총으로 변하고, 응징이 구원의 제스쳐로 화(化)하는 이 의미의 대전환은 <올드보이>를 주재하는 처음 본 것의 의미가 바뀌고, 주체와 객체가 뒤집히는 플롯의 효과를 모방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이와 같은 뒤집힌 이미지들의 도발에 계속 직면한다. 이미지와 사운드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연결을 도모하는 시청각 언어의 관습을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구조적, 스타일적 경향은 박찬욱의 후속작인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아가씨>(2016)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된다. <올드보이>는 영화의 문법, 내러티브 구조, 명시적이고 강력한 장면화 등 거의 모든 방식에서 이러한 스타일이 자라나는 출발점이다.
 
올드보이, 다리위에 아슬하게 걸쳐 떨어지기 직전의 윤진서

총이 넥타이로 변하는 둔갑술은 지난 20여 년 동안 박찬욱의 작가적 명성을 만든 문체적이고 형식적인 요소를 대표한다. 이 장면과 연관하여 추락을 저지하려는 제스쳐는 중요한 순간마다 되풀이된다. 그것은 대수를 거대한 복수의 고리에 갇히게 한 태초의 죄와 연관된다. 과거의 행동에 대한 탐사와 복수에 대한 갈증 사이에서 동요하는 대수의 깊은 망각을 깨고 솟아오른 이미지는 이 모든 사태를 조종한 이우진(유지태)의 누이인 수아(윤진서)의 투신자살이다. 서사의 클라이맥스에서 우진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을 뻗고, 시간이 전환하여 수아가 어린 우진의 손에 매달려 흔들리다가 검은 강물 아래로 추락한다. 누이의 추락을 막으려는 우진의 애절한 제스쳐가 오프닝 시퀀스에서 강아지를 든 남자의 추락을 저지하려는 대수의 액션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제스쳐의 순환은 복수(復讎)의 순환, 돌고 도는 원한의 고리를 암시한다. 이러한 영화의 주제는 비선형 퍼즐 플롯으로 최고조에 달했으며, 종종 여러 층위의 신들을 평행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극적 도약을 달성하고 있다. 미도(강혜정)와 대수가 15년 간 먹은 만두의 맛을 단서로 하여 중국음식점들을 순례하는 여정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시청각 몽타주는 시간과 공간, 행위의 계열을 가공할만한 리듬으로 건너뛰면서 신속하게 연결한다. 수직과 수평으로 틸팅과 패닝하는 카메라의 운동은 방향과 흐름, 속도를 일치시키면서 순식간에 미도와 대수의 수첩에 적힌 중국음식점들의 리스트를 지워간다. 대가의 손길을 느끼게 하는 이 몽타주 신의 종지부는 노트에 빨간 줄을 긋는 미도와 대수의 액션 매치 커트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놓인 두 인물의 행위를 일치시킴으로서 탐사의 여정은 마무리된다.
 
올드보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알 수 없는 손을 잡은 유지태

박찬욱의 복수 스릴러는 서사적으로 복잡하고, 스타일적으로 화려하다. 그의 주인공들은 종종 난해해지기도 했지만 몽타주에 기반한 양식은 세련미를 더해갔다. 그는 추상 회화와 비(比) 서사적 이미지, 장식적이고 구조적인 디자인, 타이틀과 자막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청각 표현의 요소를 극대화한다. 쇼트의 구성과 편집의 차원에서 <올드보이>는 내러티브 사건들에 대한 불가능한 뷰를 제공하고 카메라가 그 자신의 삶을 갖도록 허용한다. 넥타이-총의 변환과 더불어 이미지의 계열이 연속적인 시퀀들 안에 배치됨으로써 형태와 의미의 몽타주를 강화하는 사례는 미스터리를 품은 박스이다. 비가 추적대는 밤거리에서 납치되었을 때 대수는 공중전화 박스 안에 있었고, 15년 후 아파트 옥상에서 최면 상태로 풀려날 때 붉은색 박스를 박차고 나온다. 미도와의 관계를 확증하는 증거들은 봉인된 보라색 박스 안에 들어 있다. 이처럼 영화 속의 시각 요소들은 스토리에 접근하여 가장 인상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계열을 이룬다. 쇼트의 접속과 이행에 있어서도 정해진 룰을 따르지 않는다. 오대수가 이우진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이우진이 설명하는 펜트하우스 신은 전통적인 시간의 편집을 몽타주로 대체하고 있다. 감금방의 여러 국면을 포함한 긴 플래시백 시퀀스도 이러한 특성이 강조된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현란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이 시퀀스는 다양한 속도와 크기, 지속시간을 오가는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규모의 점프 커트, 오래 돌아다니는 카메라 움직임, 패스트 모션, 분할 스크린 등 선형적인 방식으로 쇼트를 배열하는 규범을 위반하면서 인물의 행동이 프레임 내에서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지각될 수 있는 방식을 쓴다. 이러한 시, 공간의 조직방식은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채면서도 분명하고 확실한 단서를 통해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숱하게 많은 장면들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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