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감사용>의 이범수와 감사용 이기고 싶었던 남자들의 통한을 끌어안다

by.태상준(영화전문기자) 2019-05-20조회 1,298

최근 ‘믿고 거르는’ 한국 영화 개봉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개봉 영화들을 모두 ‘커버’해야 하는 비련의 현업 기자 후배들과는 달리 철저히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관람할지 말지를 결정해도 되는 ‘야인(野人)’의 특권이다. 이런 결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 감독일 테지만, 종종 출연 배우(들)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특정한 이미지가 강한 특정한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특정한 장르의 영화.’ 그 배우가 영화의 제작까지 담당했다면 ‘비(非)관람’ 100%다. 굳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그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그 영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마무리될지 예측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으로 확장하거나 도전 없이 그 배우의 기존 이미지만을 활용해 최근 흥행 트렌드를 버무려 ‘뚝딱’ 제작된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금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영화는 완성도뿐 아니라 캐릭터와 출연진의 화학반응 면에서도 최고의 효과를 낸 경우다. 김종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슈퍼스타 감사용>(2004)이 그 영화다. 실존했던 프로야구단 ‘삼미슈퍼스타즈’의 좌완투수 감사용의 실제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슈퍼스타 감사용>은 만년 꼴찌 팀인 삼미슈퍼스타즈의 감사용(이범수)이 OB 베어즈의 간판스타 박철순(공유)의 20연승을 눈앞에 둔 경기에 투입된다는 드라마틱한 줄거리의 영화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이범수가 반짝반짝 빛났던 것은 그 캐릭터에 배우 자신의 역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범수는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김성홍)로 데뷔한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난한 단역배우 시절을 겪었다. 비로소 <태양은 없다>(김성수, 1998)와 <신장개업>(김성홍, 1999)으로 이름 석 자를 알린 후 <정글쥬스>(조민호, 2002)나 <싱글즈>(권칠인, 2003), <오! 브라더스>(김용화, 2003) 등의 히트작을 내기는 했으나 <슈퍼스타 감사용>이 개봉된 2004년까지 이범수는 톱 배우라고 언급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상업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미완의 배우였다. 이러한 개인적 약점들이 오히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최고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영화의 제작사와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감사용 역으로 이범수를 점찍었다고 한다. 현역 선수 시절 당시의 감사용과 배우 이범수의 신장과 체중 등 체형이 거의 비슷했다는 외형적 요인은 물론 이범수가 배우로서 성장해온 배경이 중요했던 것 같다. “이범수가 배우로서 빨리 스타가 된 것도 아니고, 지금도 완전한 톱스타라고 말할 수는 없으므로 캐릭터에 자신의 개인적 느낌을 잘 투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김종현 감독의 말 그대로다.

감독의 이런 기대를 이범수는 저버리지 않았다. 극 중 이범수는 안정되고 섬세한 연기력을 기본으로 실제 야구 선수가 된 듯 감사용의 투구 방식과 버릇까지 완벽하게 재연하며 현재까지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몇몇 장면은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보는 이를 울컥하게 만든다. 극 중 클라이맥스를 넘어 감사용이 텅 빈 경기장에 널브러진 장면에 오면 캐릭터와 배우 자신의 화학반응이 극에 달한다. “이기고 싶었어요”라며 통한의 눈물을 토해내는 감사용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배우 이범수의 과거사가 오버랩된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슈퍼스타 감사용>은 김상진 감독이 연출한 차승원?장서희 주연의 코미디 <귀신이 산다>(2004)에 철저히 밀렸다. 추석 대목 시즌이었지만 전국 60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지는 결말’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 관객들의 경향도 여러 실패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슈퍼스타 감사용>이 흥행작으로 남았다면 이후 배우 이범수의 행보는 많이 달라졌을까?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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