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믿고 거르는’ 한국 영화 개봉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개봉 영화들을 모두 ‘커버’해야 하는 비련의 현업 기자 후배들과는 달리 철저히 개인적인 호불호에 따라 관람할지 말지를 결정해도 되는 ‘야인(野人)’의 특권이다. 이런 결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 감독일 테지만, 종종 출연 배우(들)도 영향을 미치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특정한 이미지가 강한 특정한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특정한 장르의 영화.’ 그 배우가 영화의 제작까지 담당했다면 ‘비(非)관람’ 100%다. 굳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그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그 영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마무리될지 예측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으로 확장하거나 도전 없이 그 배우의 기존 이미지만을 활용해 최근 흥행 트렌드를 버무려 ‘뚝딱’ 제작된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금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영화는 완성도뿐 아니라 캐릭터와 출연진의 화학반응 면에서도 최고의 효과를 낸 경우다. 김종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슈퍼스타 감사용>(2004)이 그 영화다. 실존했던 프로야구단 ‘삼미슈퍼스타즈’의 좌완투수 감사용의 실제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슈퍼스타 감사용>은 만년 꼴찌 팀인 삼미슈퍼스타즈의 감사용(이범수)이 OB 베어즈의 간판스타 박철순(공유)의 20연승을 눈앞에 둔 경기에 투입된다는 드라마틱한 줄거리의 영화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이범수가 반짝반짝 빛났던 것은 그 캐릭터에 배우 자신의 역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범수는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김성홍)로 데뷔한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난한 단역배우 시절을 겪었다. 비로소 <태양은 없다>(김성수, 1998)와 <신장개업>(김성홍, 1999)으로 이름 석 자를 알린 후 <정글쥬스>(조민호, 2002)나 <싱글즈>(권칠인, 2003), <오! 브라더스>(김용화, 2003) 등의 히트작을 내기는 했으나 <슈퍼스타 감사용>이 개봉된 2004년까지 이범수는 톱 배우라고 언급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상업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미완의 배우였다. 이러한 개인적 약점들이 오히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최고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영화의 제작사와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감사용 역으로 이범수를 점찍었다고 한다. 현역 선수 시절 당시의 감사용과 배우 이범수의 신장과 체중 등 체형이 거의 비슷했다는 외형적 요인은 물론 이범수가 배우로서 성장해온 배경이 중요했던 것 같다. “이범수가 배우로서 빨리 스타가 된 것도 아니고, 지금도 완전한 톱스타라고 말할 수는 없으므로 캐릭터에 자신의 개인적 느낌을 잘 투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김종현 감독의 말 그대로다.
감독의 이런 기대를 이범수는 저버리지 않았다. 극 중 이범수는 안정되고 섬세한 연기력을 기본으로 실제 야구 선수가 된 듯 감사용의 투구 방식과 버릇까지 완벽하게 재연하며 현재까지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몇몇 장면은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보는 이를 울컥하게 만든다. 극 중 클라이맥스를 넘어 감사용이 텅 빈 경기장에 널브러진 장면에 오면 캐릭터와 배우 자신의 화학반응이 극에 달한다. “이기고 싶었어요”라며 통한의 눈물을 토해내는 감사용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배우 이범수의 과거사가 오버랩된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슈퍼스타 감사용>은 김상진 감독이 연출한 차승원?장서희 주연의 코미디 <귀신이 산다>(2004)에 철저히 밀렸다. 추석 대목 시즌이었지만 전국 60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지는 결말’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 관객들의 경향도 여러 실패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슈퍼스타 감사용>이 흥행작으로 남았다면 이후 배우 이범수의 행보는 많이 달라졌을까?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