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순재는 1935년 10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생활하던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에서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현국민학교 재학 중 광복을 맞은 구술자는 서울중학교에 진학했다. 중학 시절 만주에서 돌아온 부모님이 비누공장을 경영하면서 제법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950년 여름, 바캉스를 떠날 계획에 동아백화점(현재 신세계백화점)으로 수영복을 사러 나선 일요일 오전 6?25전쟁을 맞았다. 구술자와 가족은 피란을 떠나 대전에 자리 잡았고, 구술자는 대전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대전고등학교에서 수학하던 시절 구술자는 선생님과 학생들을 설득해 연극 <햄릿>을 올렸다. 연극과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싹트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열정은 대학 진학 후에도 이어져 서울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 서울대학교 연극반을 재건해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고 대학 정기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중심으로 동인제 극단인 실험극장을 창단해 활동했다.
1964년 창립 멤버로 TBC에 참여해 방송 활동을 하던 중 1966년 정진우 감독의 <초연>에 출연하게 됐다. <초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화계 활동을 시작한 1966년 한 해 동안 <한>(유현목, 1967), <단발머리>(김수동, 1967), <빙점>(김수용, 1967),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등에 출연했다. 그리고 가파르게 성장하는 경제와 함께 급격히 계급화 돼가는 사회의 이면을 시종일관 비관적으로 그린 <막차로 온 손님들>(유현목, 1967)에서 주인공 동민을 맡아 열연했다. 경제개발이라는 국가정책과 반공이라는 이념이 시대를 지배하던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는 계급화와 도시빈민을 만들어냈다. 또한 반공을 앞세운 독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러한 사회의 부조리함이 투사된 스크린 위의 청춘들은 어두운 거리를 방황했다. 배우 이순재는 1960년대 청년들의 페르소나로 영화에 등장했다. 냉소적이고 때론 반항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를 1960년대 문제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꾸준한 영화 활동은 1970년대에도 이어진다. 1976년에 출연한 최인현 감독의 <집념>으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남우상을 수상했다. <집념>은 허준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인데 허준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후일 드라마 <동의보감>(1991), <허준>(1999)에도 출연하게 되는데 영화 <집념>이 그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방송통폐합으로 인해 TBC의 역사는 11월의 어느 날 막을 내려야 했다. TBC 소속의 배우들은 타 방송사로 옮겨 활동해야만 했고, 그 역시 KBS로 자리를 옮겨 활동했다. 대원군, 이현상 등 굵직한 역사적 인물들을 맡아 활동하던 중 MBC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 역할을 맡으면서 활동 무대를 MBC로 넓혀나갔다. 1991년 출연한 MBC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는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보수적이지만 따뜻한 아버지 역을 맡아 ‘대발이 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다. 2006년에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해 ‘야동 순재’라는 캐릭터로 더욱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누렸다.
젊은 연기자들과의 작업,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서 오랜 경험과 남다른 순발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가운데 <세일즈맨의 죽음>(2000)으로 다시 연극 무대에 선 뒤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연극 활동을 해오고 있다. 또한 식지 않는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젊은 영화인들과의 작업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덕구>(방수인, 2017)에서는 시한부 할아버지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척박했던 시절 무대에 올라 문화산업의 중심이 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배우 이순재는 새로운 도전에 주저함이 없다. 영화, 방송, 연극 그리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쉼 없는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이순재는 우리 대중문화사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 내일을 향해 직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