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포츠동아」에서는 창간 11주년을 맞아 영화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영화 100년간 역대 최고의 영화와 감독을 뽑는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최고의 영화로는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선정됐으며, 봉준호 감독은 최고의 감독 순위에서 임권택 감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는 현재 한국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의 위치를 나타내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봉준호만큼 전 세계적으로 작가 스타일과 개성을 인정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 천만 관객을 돌파할 만큼의 대흥행작을 만들어낸 감독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봉준호 감독은 이미 독보적이라 하겠다.
그의 영화를 굳이 분류하자면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다분한 스릴러라 할 수 있다. 심지어 표면적으로 코미디물에 가까워 보이는 <플란다스의 개>(2000)조차 스릴러적인 요소가 있다. 또한 그는 할리우드 장르를 빌려오되 그 장르를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비틀어 새롭게 만들어낼 줄 안다. 일반적으로 범인이 잡히고 사건이 해결되는 형사물을 비튼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 자체보다는 괴물을 둘러싼 사회적인 환경을 부각함으로써 괴수물을 비튼 <괴물>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의 영화 주인공들은 주로 소시민으로, 중요한 순간에 넘어지거나 실수를 하는 결함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한 소시민들이 험난한 세계 속에서 버티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그의 영화 속에는 자주 그려진다.
관객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한국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과 풍자가 깔려 있으며, 그러한 주제를 코미디와 스릴러를 통한 오락적인 재미 속에 잘 녹여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줄곧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탐구해왔는데, 그 부조리를 탐구하는 과정은 마치 사립 탐정이 범인을 찾아가는 집요한 추적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은 늘 오인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그가 어떤 대상을 오인하게 되는 상황 자체는 거꾸로 한국 사회가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구조화된다.
지금 봉준호 감독은 일곱 번째 장편인 <기생충>(2019)을 선보이려고 한다. 그만의 새롭고 기발한 블랙코미디물로 예상되는(글을 쓰는 현재 티저 예고편만 공개된 상태다) 이번 작품은 <옥자>(2017)에 이어 두 작품 연속으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만큼 <기생충>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인 보편성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의 위상은 앞으로도 최소한 유지되거나 더 높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