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영화의 배우 지형도에서 가장 큰 특징은 단연 신인 여배우의 약진이다. 올해만 해도 <악질경찰>(이정범, 2018)의 전소니, <이월>(김중현, 2017)의 조민경, <미성년>의 김혜준과 박세진이라는 주목할 만한 신인들이 등장했다. 작년엔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2018)의 진기주, <곤지암>(정범식, 2017)의 세 호러 퀸, <레슬러>(김대웅, 2018)의 이성경, <버닝>(이창동, 2018)의 전종서, <독전>(이해영, 2018)의 이주영, <오목소녀>(백승화, 2018)의 박세완, <마녀>(박훈정, 2018)의 김다미와 고민시, <박화영>(이환, 2017)의 김가희, <어른도감>(김인선, 2017)과 <사바하>(장재현, 2018)의 이재인, <죄 많은 소녀>(김의석, 2017)의 전여빈 그리고 <스윙키즈>(강형철, 2018)의 박혜수까지 신예 10여 명이 뛰어난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었다. 흥미롭다. 장르의 젠더 편중으로 인해 여성 캐릭터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에도, 신인만큼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충무로가 중견 이상의 여배우에게 주연급 비중의 역할을 허락하는 덴 인색하지만, 신인 여배우들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건 소비의 방식이다. ‘신인 여배우’라고 할 때 전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가족의 귀여운 막내, 사무실의 명랑한 활력소, 멜로 히로인의 어린 시절,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 친구…. 하지만 최근 신인 여배우들이 맡은 역할은 사뭇 다르다. 그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다. 현재 한국영화의 서사 속에서 그들만큼 고통받는 존재들은 없다. 중년의 남자 캐릭터들이 가치관의 카오스 속에서 갈등하는 동안, 그들의 정신과 육체는 점점 황폐해진다.
<악질경찰>의 미나(전소니)는 그 정점에 해당하는 캐릭터다. 이 소녀는 세월호 사건으로 친구를 잃었고, 범죄와 밀접한 상황이며, 끊임없이 폭력에 시달리고, 유일한 친구는 낙태를 해야 한다. 그 누구도 이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다. 공권력(경찰)마저 그의 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미나가 겪는 고통의 근원은 개인 차원을 넘어 거대한 사회구조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결국 미나는 “이런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유언을 남긴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이 죽음은 명백한 타살이며 범인은 ‘이런 것들’로 표현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마녀>의 자윤(김다미)은 또 어떤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체 실험의 대상이었던 이 소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며, 혼란스러운 정체성 속에서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죄 많은 소녀>의 영희(전여빈)는 친구의 죽음이 빚어낸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자해하고 목소리를 잃는다. <박화영>의 화영(김가희)은 욕설과 담배를 달고 길바닥 인생을 살며 폭력과 강간의 대상이 된다. 생존자, 고아, 아웃사이더, 루저, 희생자…. ‘신인 여배우 풍년’이라는 헤드카피의 속사정은 이런 캐릭터들로 대변된다. 그들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지대를 힘겹게 걸어가는 존재들이며, 한국영화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캐릭터에 그 모든 모순을 투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공교롭게도, 아니 운명처럼, 최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준 고통스러운 감정과 연결된다. 그것은 ‘지켜주지 못한 존재에 대한 애통함’이다. 세월호 사건 바로 다음 날 개봉한 <한공주>(이수진, 2013)에서 공주(천우희)는 말한다. “제가 사과를 받는 건데 왜 제가 도망가야 해요?” 그렇게 죄 없는 자들의 수난은 시작됐고, 이것은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서사가 됐으며, 낯선 얼굴로 등장한 신인들은 자신의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들꽃>(박석영, 2014), <스틸 플라워>(박석영, 2015), <재꽃>(박석영, 2016)의 정하담은 왜 집 없이 떠돌아야 했나. <검은 사제들>(장재현, 2015)의 박소담은 왜 악으로 가득 찬 세상의 제물이 돼야 했나. <마돈나>(신수원, 2014)의 권소현은 왜 그토록 착취당해야 했나. <차이나타운>(한준희, 2015)의 김고은과 이수경은? <꿈의 제인>(조현훈, 2016)의 이민지와 이주영은? <소통과 거짓말>(이승원, 2015)의 장선은? 과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박열>(이준익, 2017)의 최희서는? <귀향>(조정래, 2015)의 강하나와 최리는? <스윙키즈>의 박혜수는? 그들은 모두 역사와 사회라는 거대한 흐름 속의 가련한 희생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