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 어느 누구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없는 작품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보기만 해도 트라우마처럼 가슴이 아파지고 눈에 눈물이 고이는 그 기억으로부터 떠난 이들이건, 떠나보낸 이들이건, 지켜보던 이들이건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세월호가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금도 우리의 바람은 여전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바람 말이다.
차갑고 어두운 밤. 세차게 쏟아지는 비와 거친 파도.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것만 같은 작은 조각배. 어두운 푸른색 톤의 배경은 너무나 차갑게 느껴진다. 마치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 같다. 그러나 고래의 뱃속은 전혀 다르다. 그 안에는 밝고 화사한 노란색 꽃들로 가득한 정원이 펼쳐진다. 공기마저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미지만으로도 두 공간은 선명하게 대비된다. 공간에 따라 인물의 구성 역시 대비된다. 바다 위의 그녀는 홀로이다. 춥고 어둡고 외롭다. 그러나 고래 뱃속에서 그녀는 그토록 찾아다니던 딸을 만난다. 둘의 포옹은 따뜻하고 애틋하다. 이러한 공간의 이미지와 구성의 대비는 엄마와 딸의 만남의 절실함을 더한다. 함께 있는 그 순간만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
빅 피쉬>는 이러한 절실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고래 뱃속에서 딸을 어렵게 만나지만, 바다라는 현실적인 공간이 그녀를 바깥으로 끌어당긴다. 헤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다시 차가운 바다 위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딸을 만나기 위한 그녀의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보다 강하고 모진 마음으로 그녀는 작살을 단단히 잡는다. 이것은 세월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다. 끝나지 않는 싸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들,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의문들.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은 싸움이겠지만, 힘주어 작살을 들고 자신을 보호해줄 밧줄조차 끊은 채, 바다를 마주하고선 수많은 그녀들에 대한 지지를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된다.
전작 <더미: 노 웨이 아웃 Dummy: No Way Out>에 이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박재범 감독의 졸업 이후에 만들어진 첫 작품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호를 바라보는 간절함을 담아 하나하나 만들었을 감독의 손길이 작품 가득 느껴진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고래와 노란색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작품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작은 위안이 하나 있다. 고래 뱃속에 펼쳐진 너무나 아름다웠던 노란색 꽃밭이다. 그리고 더 이상 춥지 않은 곳에서, 예쁜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에서, 그곳에서만큼은 행복했으면 하고 조용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