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태 감독의 <
야구소녀>(2019)는 한국영화 아카데미의 장편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영화 아카데미의 장편 제작 과정을 통해 완성된 영화 중 관심을 끄는 경우는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에 소개가 되고(부산에서는 뉴커런츠나 비전, 전주에서는 한국 경쟁 부문에 주로 소개가 되어 왔다) 상당수 작품이 해외 국제영화제의 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새로운 감독들에게 주목을 해 왔으며, 국내 배급의 경우 아주 일부는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서, 최근에는 해외영화 수입사로 잘 알려진 ‘그린나래 미디어’나 ‘찬란’을 통해서 소개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해외 수입사가 국내 배급을 꾀하는 변화들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재능 있는 감독들과 열정 있는 제작자들이 넷플릭스를 달려간 이후 점점 더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장편들의 생태계는 현실로 잔존하기보다는 명분으로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은 배우와 꿈꾸는 영화 인력은 존재하지만 서서히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 가운데 최윤태 감독의 <야구소녀>는 일정한 상업적 장르의 틀 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주인공 주수인은 프로 선수의 진출을 갈망한다. 여기에는 핸디캡이 있다. 고교 야구 선수 중 유명세를 누린 주수인은 빠른 구속이나 재능으로 관심을 모았던 인물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눈길을 끌었다. 1996년에 사라진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했던 프로야구의 규정은 서류에서는 이제 사라졌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물론이고,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큰 걸림돌이 된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을 자주 연출한다. 그런데, 사회적 편견만으로 영화를 끌고 갔다면 다소 식상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구조는 새로 부임한 코치가 주수인에게 관심을 두면서 조금은 달라진다. 그는 프로 진출해 실패한 인물이다. 코치는130킬로 미터가 조금 넘는 구속으로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며 ‘여성’이라는 이유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시킨다. <야구소녀>는 사회적 선입견과 현실적 자각 사이를 오가면서 영리하게 프로 야구 진출을 꿈꾸는 주인공을 응원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그 가운데 내용을 채우는 것은 가족 멜로드라마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집 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 사이의 갈등은 딸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로 확장된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 일자리를 알선한 어머니는 고등학교 선수가 된 이후 딸의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없다다. 엄마는 수인에게 현실을 자각하라고 다그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그에 비해, 고교 선수로 들어가는 데 한 몫을 거들었던 아버지는 무능력하지만 자애롭게 주수인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다. 가족 드라마를 통해서도 이어지는 대립적인 구조는 이 영화가 스포츠 영화의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는지를 보여준다. 스포츠 영화의 외관을 띠고 있지만 3억 정도의 규모로 제대로 된 전문가 주의를 구사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 드라마는 성인 세계에 진입해야 하는 한 여성의 성장기로 자리를 이동한다.
하지만, 모처럼 등장한 야구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야구 세계에 대한 묘사는 아쉽다. 사실 전문가 주의는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에 중요한 핵심 중 하나다. 최근작 <
포드 V 페라리>(2019)가 대표적이다. 자동차의 세계를 두고 대결을 펼치는 인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은 이들이 자동차 산업의 현장에서 얼마나 해박하고 치열한가를 냉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취재와 상상력이 결합된 할리우드 영화 제작의 중요한 관행 중 하나다. 그에 반해, 한국 영화에서는 전문가 주의가 제대로 구현하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보면 <
타짜>(2006) 이후 지속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자신의 영화에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 전반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스포츠와 관련된 TV 드라마 중에는 <스토브리그>가 꽤 준수한 전문가 주의를 선보였는데, 이 드라마는 화려한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지 않아도 전문가 주의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드라마가 캐릭터의 생기를 불어 넣으며 남다른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은 제작자들이 최윤태 감독을 상업적인 재능이 탁월한 연출자로 지목하였을 것이다. 가장 큰 미덕은 절제미다. 대표적인 이야기의 흐름 중 하나가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함께 했던 정호가 펼치는 로맨스 드라마다. 고교팀 선수 중 일찌감치 프로구단행이 확정된 정호는 수인을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슬며시 마음을 전하는 로맨스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애정과 우정의 선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관객들에게 일정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영리함은 빛나는 연출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절제력이 모든 것을 상쇄하지는 않는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한국영화의 감독들이 해 왔던 것은 장르적 특징을 끌어안으면서도 자신만의 특징을 불어넣기 위해 ‘안전함’보다는 종종 모험을 선택하였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에서 과잉된 표현과 캐릭터의 기괴함,
봉준호 감독이 선택하였던 괴수 장르와 가족 드라마의 절합 등을 떠올려 보면 지금의 한국영화가 어떠한 안전핀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물론, 이들 감독과 단순비교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넘치는 절제미는 기대감을 뒤로 물리면서 아쉬운 패기의 지점을, 감독의 목소리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의 상당부분을 메워주는 것은 수인 역의 이주영 배우를 비롯하여 기본에 충실한 배우들의 연기이다. 이를 끌어내는 것 역시 감독의 몫이기는 하지만 장르적 상상력을 돌파할 현실의 목소리는 덜그럭 거리는 장면들을 끌어내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물 앞에 펼쳐져 있는 고통의 세계가 흡사 진짜인 것 같은 질감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 순간 영화는 절제된 장르의 힘을 넘어서서, 현실과 오버랩 되는 가공할만한 위력과 감정으로 다가온다. 일정하게 숭고미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순간들을 2010년대 이후 많은 한국의 독립 장편 영화들이 끌어내어 왔다면(
박정범,
양익준,
이수진,
김보라 등), 이 모험은 여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